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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맛 캔디 - 만화가 이빈 에세이
이빈 지음 / 비에이블 / 2024년 12월
평점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
여전 같으면 잘 안 읽었을 법한 에세이가 점점 좋아지는 걸 보면 나이가 들었나 보다. 또래 혹은 인생 선배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다들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가득이나 만나는 친구도 별로 없고 사교성도 없어서 주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데 지금 내가 잘 살고 있는 건지, 남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그렇다고 남의 가치관이나 철학을 조언 받고 싶지는 않다. 요즘은 특히 사회가 어수선해서. 그래서인 지 33년간 만화 그리는 일에 몰두한 저자의 에세이는 현재의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사실 책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든가 어떤 삶이 올바르다든가 하는 일체의 방향성이 없다. 그저 저자의 이야기를 수필처럼 한다. 어렸을 때 이런 이런 일이 있었고 남편을 만나서 이렇게 아이를 키우며 살았고 만화는 예전부터 좋아했지만 만화가로 사는 건 생각과는 달랐다는 이야기를 옆에 있는 친구에게 들려주듯 편하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위안이 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평범(사실 평범하지는 않지만 일반인 범주에서 직장과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평범하게 하는) 한 이야기는 나 같은 소시민에게 잔잔한 감동과 위안을 준다.
나 역시 학창 시절 만화책을 끼고 살았다. 고 3 때 부모님은 '저놈이 만화책 보는 열정으로 공부를 했으면 서울대를 갔을 거야'라며 실망하실 만큼 만화책에 빠져 살았다. 집에는 500여 권이 넘는 만화책이 겉장 하나하나 비닐로 곱게 포장되어 있었다.(이걸 하나하나 내가 포장했었는데 군대 제대하고 보니 없어졌더라. 그때의 허탈함이란)
좋아하는 장르가 달라서 작가의 자두나 걸스 등 대표작은 모르지만 작가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누나!) 작가가 에세이에서 하는 이야기는 무척 익숙하고 반갑다.
테이프 늘어지면 냉동실에 넣는 거라든지 회수권으로 떡볶이를 사 먹는 거라든지 야자 땡땡이 치고 놀다가 뒤지게 처맞은 이야기 등등
학창 시절 활발하고 산만해서 친구가 많았다는 저자와 달리 난 남자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사교성이 없어서 매년 같이 밥 먹어줄 단 한 명의 단짝만 사귀었다. 물론 나만 그런 거고 그 단짝은 다른 무리 속에서 잘 어울리며 지냈다.
해서 초등 시절같이 그림 그리던 단짝이 중학교 진학 이후 멀어지는 상실감 같은 내용은 누구보다 잘 공감했다. 좋았던 선생님과 난폭했던 선생님의 이야기나 초등학교 시절 반 친구들의 다양한 에피소드도 재미있었다.
만화는 보지 않았지만 '자두'이야기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나도 평범하지 않은 친구들 이야기로 소설을 하나 가득 쓸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평범했던 나와 달리 주변 친구 놈들은 정말 괴팍했으니까. (언젠가는!)
시대가 야만적이고 폭력적이어서 학교에서 강제로 혼밥 도시락을 싸오게 했다든지 남아 선호 사상이 강해서 아들에게 집안의 모든 자원을 몰아주었다든지 사과보다 바나나가 더 비싼 과일이었다든지 하는 이야기도 모두 공감이 되었다.
가장 반가운 이야기는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였고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는 '천사의 팬티' 이야기였다.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참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만큼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어주기도 했지만
아! 고기를 먹지 않는 저자에게 육류를 강요하는 주변인들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왜 우리는 다름을 인정하고 있는 대로 수용하지 못할까. 나부터 반성한다. 물론 고기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나 먹을 것도 없어서.
책이 작고 예뻐서 가볍게 들고 다니면서 하루에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읽고 나면 날이 제법 추운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조금 따뜻해진다.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