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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다산 1~2 세트 - 전2권 ㅣ 조선 천재 3부작 3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24년 11월
평점 :

300페이지가 넘는 책 두 권을 읽는데 주말까지 5일 걸렸다.
이미 유명하고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착각하는 탓에 보통 이런 역사 소설은 지루할 수 있다는 편견이 있었다. [다산]은 보기 좋게 그 선입견을 날려버린 책이다. 5일 동안 정말 좋아하는 만화책 읽듯 몰입했다.
다산이 유배지에서 돌아와 노후를 보낸 여유당을 최근에 방문했었다. 마을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다산이 어떤 마음으로 여유당에서 앞 뒷산을 바라보면서 글을 지었는지 설명을 들었지만 한 귀로 흘렸었다. 2권을 다 읽고 나서 프로그램 해설사님이 설명이 생각났다. 왜 안채에서 마당을 배경으로 먼 산을 바라보라고 했는지 이제 알겠다.
인물을 다루고 있지만 생애를 나열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주요 사건 위주로 짧게 끊어 이야기하고 있어 읽는데 편안했다. 뒤에 작가의 말을 보고 그 이유를 알았다. 호흡이 짧아진 요즘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추었다고 한다. 그래서 읽기 쉽고 재미있었나 보다.
2008년에 나온 소설의 개정판이라고 한다. 한 번 쓴 소설을 시대에 맞게 고쳐 쓴 탓에 더 재미있게 집중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파친코]나 [작은 땅의 야수들]처럼 서사 위주의 단문은 아니다. 오히려 읽기 전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문장과 내용이었다.
그런데 왜 새롭다고 느꼈을까? 아니 정확히는 현대적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분명 옛것을 옛 문장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현대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마냥 재미있기만 했다.
김훈의 [허송세월]에서 정약용과 정약전의 유배 생활 이야기가 나온다. 처음 알게 된 학자가 아닌, 고문으로 나약하고 솔직해진 인간적인 모습의 정약용에 대해 처음 접했는데 [다산]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묘사한다.
다산은 천주학을 처음에는 학문으로 받아들였다. 유학과 불교의 가르침, 주역의 핵심 사상을 모두 천명으로 이해하려 했다. 다산은 천주학 신자 이전에 책을 읽는 사람이고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나약하다고 생각했던 그의 모습은 독서와 작문을 선비의 최우선으로 삼아 후대에 기록하여 남기고 싶어 했던 스스로의 사명을 굳건하게 지키고자 했던 작가로서의 진심이었다.
18년 유배 생활 동안 오백 여권의 책을 지었다고 한다. 하도 글을 많이 써서 노년에는 손가락에 마비가 왔고, 붓을 손에 묶어가며 책을 썼다. 이토록 목숨 다해 책을 쓰는 이유를 다산은 선비의 사업이라 말한다.
하늘의 뜻을 받아 태어난 선비는 세상의 어짊을 실천하기 위해 글로 기록하여 후대에 남기고자 하였다.
따로 기록하여 기억하고 싶은 정보도 많았고 다산의 말을 빌려 깨닫고 싶은 삶의 진리도 많았다. 옮겨 적는다고 기억할지, 이해할지는 자신 없지만 적어 놓으면 나중에라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간략하게 정리한다.
* 1권
잔치를 묘사하는 장면에 어렵지 않게 개고기가 등장한다. 선조들은 개를 먹기 위해 키웠나 보다.
달이 차면 기운다. 누구에게서 사랑을 받는 만큼 누구에게서는 미움을 받는다. [주역]에 있다.
의를 행한다는 당대 금수저의 모임에도 술과 음악, 기생이 항상 함께 한다. 개와 돼지를 같이 잡는다.
천주학의 큰 스승이었던 이벽은 생부의 시험에 스스로 청산가리를 탄 물을 마시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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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상소문을 본 정조는 "진실로 착함의 싹이 온화하여 마치 봄기운이 만물을 싹트게 하는 것과 같이 종이에 가득 펼쳐져 있으니 끝없이 감격스럽구나"라는 평을 했다. 시와 같다.
사람이 부드러운 음률을 듣게 되면 어짊을 실천하게 된다. 선비의 도에 항상 음악과 여인이 함께하는 까닭이다.
정조는 다산을 시험하여 경연 전날에 [학이]편만 준비하면 된다 말하고는 정작 경연에서는 [선진] 편을 강의하라고 했다.
형과 아우에 대한 열등감으로 도교에 빠졌던 정약종은 이벽과의 토론 이후 천주학에 지나치게 심취하여 결국 가문을 멸문으로 이르게 하고 말았다. 가문의 덕을 받아 공부했으나 스스로 가문을 버리고 택한 선택은 스스로는 물론 가문까지 화를 입혔다. 그는 선교함을 떳떳해 했으나 남겨진 가족에게 행해진 고초의 원인이 본인에게 있음을 외면했다.
정약종이 순교한 이벽의 그림자로 살아감 또한 열등감의 모습이었다. 다산은 이를 지적했으나 정약종은 인정하지 않았다.
매형 이승훈과 다산은 재판장 앞에서 서로를 탓하며 자신의 무고를 주장했다.
다산은 머릿속에 책이 5천 권 이상 들어 있어야 세상을 제대로 뚫어 보고 지혜롭게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 2권
다산이 정리하는 중국 속담 중에 이런 속담도 있다. "아름다운 여자가 집에 들어오면, 못난 여자의 원수가 된다" [사기]에 있다.
먹어야 할 밥은 기어이 먹고, 읽어야 할 책은 기어이 읽는다.
정약용을 강진으로 유배한 이유는 노론 우의정 서용보에게 홍희운이 강진 현감이 자기 사람일 강진에서 정약용을 죽일 수 있다고 조언했기 때문이다.
다산은 이미 이때 대륙이 아닌 바다를 경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상을 장악하는 강한 나라를 꿈꾸었던 정조의 영향이다.
거문고는 죽어간 누에고치 2만여 마리의 고통을 비틀어 품고 있다. 아픈 삶을 비틀어 꼬아 만들면 소리가 나고 소리는 빛이 되어 날아간다. 거문고의 농현(눌러서 한 두음 높낮은 음을 내닌 기법)은 자신의 위아래를 넘나들며 화합하며 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책을 잘못 읽으면 남의 이론을 자기 이론인 양 착각한다. 혜장이 그렇다. 무슨 책을 읽든지 비판적으로 읽고 자기만의 특이한 주장을 펼 줄 알아야 한다.
혜장은 말한다. "새들은 하늘을 날지만 하늘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서로 거래함으로 통섭한다. 오직 탐욕스러운 벼슬아치들만이 거래하지 않고 수탈하고 착취한다.
선비의 글쓰기를 말한다. 선비는 시시콜콜 기록하여 남겨야 한다. 마음 가는 대로 수필도 쓰고, 세상 경영에 대한 주장도 쓰고, 사귄 사람의 바른 행실도 써야 한다. 생각이 사라지기 전에 글자로 잡아두어 다음 생각을 풀리게 한다. 생각은 샘물과 같아서 자꾸 품어야 새로운 물이 솟아 나온다. 붓을 놀리면 생각이 풀린다.
천하의 큰 기준이 둘 있다. 진리와 이득이다. 최상은 진리를 지키며 이득을 본다. 차상은 진리를 지키지만 이득을 잃는다. 하급은 진리를 버리고 이득을 얻는다. 최하는 진리를 버리려다 이득도 잃는다.
사람은 무언가를 가두려는 본성이 있다. 자연의 짐승을 가두어 기르고 외간 여자를 가두어 아내 삼는다. 적으로부터 보호한다고 성 안에 동족을 가두고 어떤 사상과 이념 속에서 자기를 가둔다. 다산도 다산 초당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았다.
선비의 소명은 세상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는 사업(글쓰기)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