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글와글 들썩들썩 보건실의 하루
첼시 린 월리스 지음, 앨리슨 파렐 그림, 공경희 옮김 / 창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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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일 때 교회에서 주일학교 담임 교사를 맡은 적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처음에는 엄청 낯가리고 조심스러워하던 애들이 어느 정도 얼굴 익히고 나자 교회 안에서 애들이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선생님 머리가 아파요, 엄마 예배 언제 끝나요, 어제 동생이 내 간식을 빼앗아 먹었어요, 성경책 읽어줘요, 놀이터 가서 놀아요 등등"

한창 밤늦게까지 놀고 주일 아침에 늦잠 잘 나이었던 20살의 어린 교사였던 내가 새벽 6시 예배에 참석해야만 했던 이유가 바로 이 꼬마 제자들이 교회에서 선생님 언제 오냐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내 인생에서 초등학생들과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는데 결혼하고 애를 낳고 키우다 보니 지금은 초등학교 3학년 딸 쌍둥이의 아빠가 되었다.

창비 미디어 그림책 서포터 그림책 [와글와글 들썩들썩 보건실의 하루]를 읽고 상상이 되었다. 초등학교 교실(이 책은 보건실)에서 하루에 벌어질 일이 얼마나 '와글와글' 할지.

더구나 보건실이라니. 초등학생 여자아이 둘을 3년째 키우다 보니(이제 3학년이니가) 애들은 리액션, 함박웃음, 과장과 오버, 서로에 대한 질투와 배려, 빼앗음과 나눠줌 등 온갖 사람의 심리와 행동이 원색 그대로 어우러진 집합체라는 걸 깨달았다.

겨우 2명 키우는데도 이리 힘든데 하루 종일 보건실에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애들을 상대하는 보건 선생님의 노고는 말하나 마나.

표지부터 인상적이었는데 흔들리는 이! 사실 멀쩡한 이빨이 흔들리고 빠진다는 게 워낙 당연해서 그렇지 생각해 보면 이거 정말 공포스러운 경험이다. 애들은 조금만 다치거나 긁히거나 넘어져도 세상 무너지는 것처럼 호들갑이다. 미세 플라스틱이 문자라는 부모의 대화를 엿들은 다음부터 플라스틱 컵에 있는 물은 먹지도 않는다. (평소에 간식 먹을 때 손이나 좀 잘 씻지)


우리 애들도 자주 이러는데 애들이 위가 작아서 그런지 한 번에 많이 먹지 못하고 금방 배고파한다. 간식 먹고 나면 또 입맛 없다고 밥은 정작 잘 먹지도 않는다. 현직 교사였던 저자가 경험한 학교생활을 그림책으로 쓴 거니 간식을 찾아 보건실에 오는 아이들이 정말 있다는 이야기겠지? 도서관에 있는 간식을 노리고 오는 애들은 있다고 들었는데 보건실이라니.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친구들에게 창피해서, 엄마랑 헤어지고 마음이 아파서 보건실을 찾는 아이들. 어디선가 읽은 내용인데 물리적으로 상처가 나면 약을 바르거나 먹는 것처럼 정신적인 상처에도 실제로 약을 먹으면 치료가 된다고 한다. 그 약의 효과와 가장 유사한 성분이 몸에서 스스로 나오기도 하는데 타인에게 위로와 공감을 받았을 때 나온다고 한다.

보건실은 상처를 치료하는 공간이다. 배고픈 아이, 친구에게 놀림당한 아이, 이빨이 흔들리는 아이, 집이 그리운 아이, 콧물이 흐르는 아이, 팔꿈치를 부딪친 아이, 머릿니 때문에 가려운 아이, 가시에 찔린 아이, 친구와 부딪치고 화가 난 아이, 구토하는 아이, 코피 흘리는 아이는 물론 종이에 베어서 피가 나는 교장 선생님까지.



그림책에서 표현되는 보건 선생님의 표정은 항상 웃는 얼굴. 키즈 카페나 야외 공원, 놀이터에서 초등학생들에게 둘러싸여보면 안다. 애들과 함께 하는 직업은 항상 웃고 있기 정말 어렵다는 것을. 아이들의 시선과 관심과 부탁과 요구사항을 하루 종일 들어야 하는 입장에서 아이들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아이들에게 웃는 얼굴로 대해주시는 애들 담임 선생님, 사서 선생님, 보건 선생님 등 모든 선생님들께 새삼 감사하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마지막 문장이 참 좋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서로를 보살펴주고 치료해 준다면 삶이 더 따뜻하고 안전하고 편안하지 않을까 싶다.

애들과 같이 읽었는데 한동안 보건실 놀이를 하자고 졸라서 행복했다. 난 누워만 있으면 되는 환자 역이니까.^^

https://blog.naver.com/changbi_book

창비 블로그에 6월 중순에 이 그림책과 관련된 독서 활동지가 올라온다고 한다. 그때 다시 읽고 애들이랑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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