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민족종교 말살책 - 개정판
윤이흠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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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동네 전체가 걸어서 삼십분이 걸리는 작은 교회를 다니던 때가 있었다. 어른 아이 할 것없이 약속이나 한듯이 일요일이면 채비를 하고 나서던 풍경이 아직도 선하게 그려진다.

그렇게 믿음은 말고라도 그시절 어른들이라면 일제시대를 견뎌오신 어르신들도 계셨고 전쟁을 살아오신 분들이 꽤 많았었다. 일제시대에 어떤 탄압과 박해가 있었는지 눈물을 삼켜가며 말하던 주름진 얼굴이 있었고 눈물 흘리며 듣던 어린 꼬맹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단지 개신교에서 많은 박해와 탄압만이 존재 하는 줄로 얘기 들어왔고 또한 그와 다른 생각은 별로 하지 못했었다. 이래서 사람은 많이 배우고 많이 읽어야 하나보다.

꼬맹이 시절 분개하며 듣던 그대로만 여직 알고 있는 한심한 사람을 보겠나.

 

일제의 민족종교 말살책,

책을 통해 한국 민족 종교가 과연 나같은 무지한 많은 사람들로 인해 아직도 사교의 오명을 쓰고 사이비 종교라는 오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19세기 중엽 후천 개벽의 종교사상으로 나라를 잃고 일제의 식민지 통치를 받는 민족적 치욕의 과정에서도 우리 민족은 현재의 재앙을 극복하고 앞으로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는 불굴의 확신이 있었다. 험난한 역사의 횡포앞에 스스로를 포기 하지 않고 보존 하고  '한반도가 중심이되고 한민족이 그 주역을 담당하게 된다'는 후천 개벽의 종교사상으로 나타났다.

일제는 보국 안민과 민족개벽 즉 민족 주체 의식, 독립의지의 민족종교(악국민족종교)를 신흥종교, 유사종교, 사이비 조교, 사교 라는 용어로 이해,설명케 했으며 이러한 민족종교를 말살코자 하는 총독부의 정책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조선총독부 포교규칙, 즉 식민지에서는 민족주의와 항일의 정신적 온상이 되는 것이 종교라 보고 이를 탄압하려는 방향으로 많은 정책을 실행하게 된다. 1)괴뢰단체를 통한 분열정책 2)이념적 내부 분열정책 3)민족감정의 이반을 통한 고립정책 4) 반사회 단체로의 매도 정책 5) 무력적인 제압정책 . 이러한 방법을 효과적으로 적용함으로써 모든 민족 종교단체들이 오래지 않아 사회적인 공신력을 잃도록 조작했으며 치밀게 종교단체들이 끊임없는 내부 분열을 거듭하도록 만들어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무자비한 탄압 정책의 희생을 만들어냈다.

오늘 우리사회에 남아있는 민족종교들은 이러한 탄압을 견뎌낸 애국적 종교운동의 결과이다.

 

이 책은 3개(천도교, 보천교, 대종교)민족종교  교단에대한 자료를 소개하고 민족종교 탄압의 역사적 자료와 그에 근거한 과거 역사를 구조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지금 까지 알려진 조선 총독부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해 놓았다.

천도교, 보천교, 대종교에 대한 일제의 치밀하고도 계획적인 민족종교 말살 정책을 여러 자료와 신문기사를 실어 탄압 정책의 악랄함과 치밀함을 조명한다.

과연 이럴 정도로 민족종교가 그들에게 위협적이었을까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50년이 안되는 식민지시대를 통해 일제가 민족 종교에 남긴 폐혜가 과연 그 뿐이었을까. 그들이 남긴 폐혜 중에는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이들에게도 아직 남아있는듯 하다. 식민지를 거쳤기에 이만큼 발전이 있었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민족종교에 대해 올바르지 못한 교육을 받은 사람인 나는 민족종교에 대한 탄압이 이토록이나 계획적이었다는 것에 분노를 느끼며 아직까지 민족종교에 대한 올바르지 못한 (가령, 사교나 사이비 종교라는 오명)이해를 부끄럽게 느낀다.

 

한국민족 종교의 일제 탄압 정책의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민족종교에 대한 많은 연구가 계속되어 사이비 종교, 사교 따위의 용어들이 설 자리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미래지향적인 시각에서 과거의 역사를 종합적이고 비판적으로 이해하며, 가해자의 악랄함과  피해자의 약점을 동시에 조명하면서 인간지성의 보편적 목소리에 귀 기울여 과거를 비판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다.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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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있다고, 하루키가 고백했다 - 말의 권위자 다카시가 들여다본 일본 소설 속 사랑 언어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윤정 옮김 / 글담출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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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 특유의 문체와 서술 방식이 언제나 낯설었다.

처음 접한 일본 소설은 하루키를 만나면서 부터였다. 드라이 하고 쿨한듯 하며 때로는 냉소적이고 담담하며 가끔은 비웃음을 머금은 허무가 있었다.

번역체의 걸러낸듯한 문장은 글자로 한번 읽히고 다시 뜻을 담은 문장으로 읽히곤 했다.

상실의 시대를 읽으며 "나"에대한 정립이 쉽지않았었다. 지금에야 센스있고 세련된 비유를 따라가지 못한 탓 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든다.

 

말의 권위자인 다카시는 일본 소설 속 사랑의 언어들을 풀어내며 그 언어들을 음미할 수 있는 길을 잡아준다.

 

"더 멋진말을 해줘요."

"네가 너무 좋아 미도리."

"얼마 만큼 좋아?"

"봄날의 곰만큼 좋아."

다카시는  먼저 하루키의 소설들 속 사랑의 언어를 이야기한다. 봄날의 곰이라니 하루키처럼 답해줄 사람이라면 그것이 누구더라도 두렵거나 망설이지 않을 듯 하다.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는 좋아했던 남자가 언급한 적이 있는 책이었으나 읽으며서 진도가 나가지 않아 진땀을 뺀 기억이 있다.  금각사를 읽은 것이 아니라 금각사를 이루는 글자를 읽었었다고 고백해야겠다.

다카시는 금각사에 대해 기묘하고 독특한, 나쁘게 말하면 그냥 나쁜 남자의 본보기와 종류룰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고 그 끝을 완성했다 라고 한다. 말 더듬이 장애를 가진 주인공과 가시와기의 언어을 통해 나쁜 남자의 사랑의 속삭임을 들려준다.

하루키의 소설속 사랑의 언어나 나쁜 남자의 사랑의 속삭임보다 마음을 잡아끄는 것은 보통사람들은 어떻게 사랑을 속삭일까 에서 얘기하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전차남 에서의 사랑 언어가 마음을 울렸다.

대중적이기도 해서일까 하루키 처럼 특별하지도 않고 나쁜 사람에 속하지 않는 대다수의 나같은 이들의 불타오르지는 않지만, 뭐라도 내세울것 없는 사랑이 잔잔한 우리의 사랑이 아닌가 싶다.

 

많은 사랑 중에서 남녀간의 사랑이라면 바라는 대로 이루어 지지 않는 것이 사랑이 아니던가. 교통사고 처럼 찾아오는 사랑이 있는 가 하면, 늘 그자리에 있는 그 무엇처럼 스며들어버린 사랑도 있을 것이다. 어느 사랑이든 그 사랑의 속삭임의 언어가 아름답지 않을까.

다만 바란다면 바라는대로 이루어지지도 않겠지만 하루키의 소설속 사랑의 언어를 들려줄 참이면 낫겠다 하는 바람.

 

말의 권위자 다카시가 들여다본 일본 소설속 사랑 언어 라는 부제하에 하루키의 사랑속삭임, 나쁜 남자의 사랑속삭임 보통 사람의 사랑속삭임을 하루키의 소설들과 금각사, 산시로, 겐지이야기, 지금 만나러갑니다를 비롯 한 보통 사람들의 사랑 속삭임을 네편의 소설로 그 안의 사랑과 그 언어를 담아놓았다.

사랑에 늘 서툴고 지나고는 후회와 절망만이 남았을 많은 사람들은 소설 속 특별한 사랑도 그 특별한 남녀도 결국은 우리들의 이야기이며, 그들 속에 우리네들이 있을거라 믿고싶다.

 

단지 사랑의 언어로 이해하기에는 소설속의 언어는 가히 풍부하다.

사랑도 삶 속에 한 부분인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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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사진관
김정현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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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사진관을 읽기 하루 전날 밤 꿈에 한적한 시골 대로 변에 퇴색해가는 건물의 고향사진관을 보았다. 
’고향사진관’ 퇴락했지만 선명한 간판이 눈에 선해 꿈에서도 한동안 어리둥절해 있었다.

이미 꿈속에서 고향 사진관을 본 후라서 인지 펼쳐든 고향사진관의 모습은 그대로 마음에 와 박혔다.

 

군대를 제대한 스물다섯의 청년이 다니던 학교 마저 접고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의 수발과 어머니와  형제들을 건사한다.

얼마나 막막하고 답답했을까 그  속마음을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서걱거린다.

아버지의 고향사진관을 운영해가며 어머니를 모시고, 형제들의 결혼을 치뤄내고 자신 또한 한 가정을 일궈가면서  용준이 겪고 감내해야 했을 마음의 무게를 가늠키 어려웠다.

사랑보다 깊은 신뢰로 아내와 결혼을 하게된 용준은  시간이 지나며 친구들의 소식이 전해지고 전해지는 장소가 된 아버지의  모습이었던 사진관을, 또한 자신의 모습인  사진관을 지켜나간다. 
그의 꿈과 미래가 사진관 안에서 또아리 틀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녹록하지 않은 현실에서 용준은 고민과 고통과 절망 사이에서 그저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나갈 뿐이다.

20년의 병수발을 하는 동안 그도 아버지가 되고, 한 여자의 남편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 후...... 
찾아오는 아버지의 죽음과 용준의 가족에게 닥치는 그것이 한없이 원망스러웠고 슬펐다.

용준과 그의 가족들에게  찾아오던 잔잔한 듯  일상적인 행복은  곧 용준에게 닥칠 일을 대비하지도 못한채 급작스럽고 바쁘게 그들에게 들이닥쳤다.

 

과연 젊은 날의 꿈과 그려보던 미래를 접고 저렇게 고향 사진관에서 한 생을 지낼 수 있을까. 
그것도 병수발을 하면서 가까운 곳도 오래 머물지 못하고 오로지 아버지에게 맞춰 지낼 수 있을까. 
용준의 삶은 내게 손사래 쳐지고 있었다.
그의 삶은, 고향사진관에서의 그의 삶은 아버지가 자신을 지탱하게 만들었듯이 그 또한 가족들에겐 지탱하는 지지대였음을.
그의 삶은 그 안에서 아늑했을까. 아늑했겠지.....

 

아버지였고 아버지 이며 아버지 였을 세상의 모든 그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후들거리는 눈으로 꿈 속의 고향 사진관을 다시 둘러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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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네딕트 - 인류학의 휴머니스트
마거릿 미드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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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의 휴머니스트 루스 베네딕트

 

사실 인문학이나 인류학에 관한 수업이나 이론공부를 해본 적이 없고  관련 책들을 읽은 기억이 거의 없다. 

학교에 다닐때에도 인문이나 인류학 같은 과목을 물론 배웠겠지만, 기억에 남아 있지 않는것을 보면 과연 나는

이런 학문들에 관심이 없었나보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안에서 살아간다는 뜻이기도 한데 그런 사람을,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야 말로 관계 속에 살 수 밖에 없는 사람에게는 인문학과 인류학은 필요충분 조건을 가지게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인류의 문화에 대한 무지함과 무관심이 지나쳤던게 아닌가 살짝 반성도 해본다.

 

루스 베네딕트에 대해 거의 아는게 전무하고 그의 유명저서 문화의 패턴과 국화와 칼 을 읽어 보지 못했으나

마거릿 미드가 지은 루스베네딕트의 전기는 그녀의 전기뿐만 아니라 논문 이 함께 실려있어 자연스레 관심이 베네딕트의 저서들로 모이게 되는것 같다.

베네딕트의 생애를 간결하게 보여주고 그녀의 저작에  관한 핵심 사항을 집중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그녀의 연구와 인류학 분야엥서 문화와 인성의 연구에 매진하면서 수향한 역할들을 집중 서술한다.

어린시절의 베네딕트는 자신이 인류학으로 뛰어들게 될 줄 예상을 했을까.

그녀의 결혼 생활과 여성으로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써의 고민과 불합리한 상황들을 마주 볼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미드는 베네딕트의 전기보다 훨씬 분량이 많은 그녀의 논문들을 실음으로써

단지 미드의 설명과 이해를 통해서가 아닌 베네딕트의 설명과 이해를 통해 그녀의 주관과 생각을 보여준다.

인류학 연구에서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정립하려고 애쓴 베네딕트의 논문들은 단지 학문으로서가 아닌 베네딕트라는 한 여성이 살아내면서 빚어놓은 베네딕트 자신만의 인류학의 결과물일 것이다.

루스 베네딕트의 전기는 그간 관심을 갖지 않았던 혹은 알지 못했던  인류학적 인문학적인 면에서 신선한 생각의 거리를 던져 주었다.

 

루스 베네딕트의 생애와 저서와 논문 만큼이나 마거릿 미드의 블랙베리 겨울이 궁금해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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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타샤
조지수 지음 / 베아르피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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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타샤.

 

책을 접하게 될때 사전정보가 거의 없고 편견이 없는 상태에서 읽게 되는 책에는 종종 두가지 감정으로 나뉜다.

사전정보 없이 선택한 책에 대한 근원 모를 노여움과 허탈함이  그 하나이고, 읽으면서 점점 내용 속으로 빨려들어가며 말 할 수 없는 충족과 매혹이 신뢰로 까지 이어지는 경우이다.

언제나 독서가 부족한 사람인지라 책을 읽고 표현할 길도 없고 정리도 되지 않아 몇줄 감상 남기는 것 조차도 버거울때가 많다. 그리고 나스타샤를 만났다. 작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고 이미 십수권을 저술하 자못 알려진 사람이라고 소개되었을뿐 그는 이름도 필명을 고집했다 한다.

캐나다에서 조지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펼쳐지는 삶의 파노라마.

캐나다는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내리고 춥단다. 조지를 만나기 위해선 이 긴 겨울밤이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조지는 미국에서 유학하고 캐나다에서 대학 교수를 하고 있는 조지는 웰드릭이란 곳에 정착을 하게 되고 상공회의소 회장 딸인 멜리사에게서 웰드릭사회에 정착하는데 심적으로 많은 위안과 위로를 받게 된다.

강의를 준비하고 책을 집필하는 중간에도 친구 그렉과 아내 베시와 플라이 피싱을 즐기고 웰드릭의 시민들과 컬링을 한다.

그가 웰드릭에 정착하여 만난 사람들의 인연은 플라이 피싱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한국유학생으로 불법체류자가 된 유진과의 지렁이 양식사업으로 이어진다.

낚시를 위해 커티지로 가는 길에 외진 커피숍에서 러시아 이민자 나스타샤와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나스타샤의 미소와 분위기에 매혹된다.

캐나다에서의 외로운 삶과 개인주의적이고 인간적 유대가 없는 삶에서 조지는 나스타샤를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자신 또한 나스타샤의 삶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댓가를 기대하지 않는 조지의 나스타샤에 대한 연민과 알수 없는 이끌림은 사랑이 되었다. 조지는 나스타샤와 함께 생활하게 되고 그녀를 돕는다.

조지의 사랑은 나스타샤가 가질 미안함과 수치심도 정당화 시킨다. 조지는 열정적이고 투명한 사랑으로 그녀에게 삶을 주고 그런 그녀와의 삶이 이어질수록 그녀의 불행을 치유해주고 자 애쓴다.

어느날 나스타샤는 사전과 노트를 들고 조지에게 과거를 고백한다. 남편 보리스와 아들 아니카에 대하여.

우크라이나 분리 독립운동의 시기에 자본주의에 낭만전 환상으로  나스타샤의 남편 보리스는 분리독립주의자가 되고 그녀에게 폭력을 휘두르게 된다. 그로 인해 나스타샤는  KGB와 우크라이나의 개들로 부터 지옥같은 폭력과 육체와 정신의 아름다움을 잃었다.

외로움을 털어 내기 위해 바쁘게 살아야했던 조지는 나스타샤의 행복을 위해서 보리스와 아니카를 구하게 되지만 나스타샤의 상실이 두려워 알콜중독자가 된다. 그녀의 고통을 덜기 위한 일이 결국은 그 자신의 고통이 되고 또한 나스타샤의 고통이 되었다.

나스타샤라는 이름을 조지가 주었듯이 그는 그녀를 구했고 그 가족을 구했으나 자신을 잃어갔다. 그리고는 그녀의 아들 아니카를 통해 살아내는 삶을 완성하게 된다.

나스타샤. 그녀가 조지의 투명한 사랑 앞에서 나스타샤로의 삶을 얻었듯이 조지의 사랑은 나스타샤를 닮은 아니카를 보살피게 됨으로 완성된다.

 

이렇게나 슬픈 운명을 가진 사람들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사랑 얘기는 작가의 언어와 만나 한차원 높은 경계를 뛰어넘는다. 주변 사람들과의 우정과 플라이 피싱. 컬링 등은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조지를 이해 할 수 있게 만들고 언어와 종교 돈과 삶, 음악과 예술등에 대한 철학적인 소재를 깊은 통찰력으로 논리정연하게 풀어낸다. 철학적 사고가 삶속에도 언제나 있었다는 것을 작가의 심미안을 통해 만났다.

 

겨울 밤이 다 새도록 나스타샤를 만났다.

설득력있는 문장으로 종교와 언어와 삶에 대해 얘기하는 작가에게 깊이 매료되어 마지막 장을 넘기며 그래도 계속 되는 삶과 조지의 사랑이 남아있을 나스타샤의 마음을 떠올렸다.

조지에게 사랑을 가르쳐준 나스타샤.

나는 아름다운 사랑과 눈 내린 캐나다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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