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1 - 제국의 부활
박문영 지음 / 평민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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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황제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이 경복궁 재건 당시 지하에 감추어 놓은 금괴가 있다?!

사도세자가 마련하여 정조가 규장각 아래에 보관하다가 흥선대원군이 이를 발견하여 경복궁 재건 당시 그 아래에 묻어두고 고종으로 하여 부국강병의 탄탄한 나라를 만들게 하기위해 비밀리에 보관되어 온 금괴.

그 금괴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만약에 정말로 그런일이 있다면? 하는 호기심은 이내 흥분으로 이어진다.

노래 독도는 우리땅의 원작자이며 동시에 작가인 문영의 황제- 제국의 부활은 흥선 대원군이 숨겨놓은 금괴가 지금도 경복궁 아래에 잠자고 있다는 설정 아래에서 고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부터 근 현대에 이르기까지 길다면 긴 시간 동안의 이야기이다.

 

한때 쇄국정치로 비난 일색이었던 흥선대원군에 대한 평가는 현대에 여러모로 재해석되고 재평가 되고 있는듯 하다.

드라마나 각종 서적들을 통해서도 그의 쇄국정치는 내실을 다지지 않고서 이양의 문물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였을때의 여러 파괴적이고도 많은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음을 경계하고 조심하자는 큰 뜻이였다 라고 재해석. 평가 하는 책을 읽은 기억이난다.

누구의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역사적 사건들이나 역사는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 쉽게 빠지기 쉬운 맹점이기도 할 것이지만 어느 시각에서든지 간에 고종황제로 부터 치욕적인 한일합방과 일제강점기를 떠올리는 것은, 비록 후대의 사람이고 겪은 상황들이 아닐지라도 불편하고 원통하고 애잔한것이 사실이다.

드러내놓고 들여다보기엔 가슴아프기에 그저 묻어두고만 싶은 기억 쯤으로 설명할 수 있을 듯 하다.

 

소설 황제- 제국의 부활은 3권으로 출간되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3권으로 풀어내기 보다는 두껍지만 진득하니 집중하며 읽을 수 있는 한권의 책으로 탄생하였더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역사에 실존했던 인물이고 그들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보는 견해와 시각마다 다를 것이지만 작품 전반에 묻어나는 작가의 생각들이 그대로 문장으로 드러나 있어서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했다.  작가의 목소리를 키우기보다는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고 생각하고 짐작하게 하는 독자의 몫으로 넘겨두었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내내 들었다. 작가의 이력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작가의 일본에 대한 생각은 충분히 전달이되고도 남으며 외려 조금 넘쳤다 하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듯하다.

소설속에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대원군과 기타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호칭이 정돈되지 아니한 느낌을 받을 수가 있는데 명성황후를 민황후 혹은 고종이 명성황후를 부르는 말로 부인이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차라리 중전이라는 말로 통일 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사도세자로 부터 마련된 금괴가 고종과 대원군의 시대를 지나면서 황제 제국의 부활을 위해 쓰여지기를 바라는 대원군의 생각이 책을 읽는 동안 이내 오롯이 읽는 사람의 마음이기도 했다.

마지막 부분의 현대로 넘어와서의 전개가 다소 황당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작가가 바라는 황제 제국의 부활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하고 생각하니 그가 꿈꾸는 제국에 실제로 가까이 갈 수 만 있다면 좋지않겠나 하는 이심전심의 마음으로 마지막 장을 넘겼다.

과연 작가가 바라고 대원군이 바라고 고종이 바라고 이 나라의  사람들이 바라는 제국의 부활은 저런 모습이었으면 하는데 생각이 미치니 세권의 책에서 들려오던 작가의 격앙되고 힘찬 목소리가 실로 들리는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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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닥터 - 제1회 자음과모음 문학상 수상작
안보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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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그 안에 빠지게 되는 시간보다 기괴하고 오묘한 겉표지와 작가의 사진에 온 시선을 빼았기고말았다.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함과 오묘함이 서린 고양이 목을 쥐고 있는 표지의 인물과 전혀 연관이 되지 않는 81년생 매력적인 작가의 사진 앞에서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굳이 작가의 성별을 따져가며 책을 선택하고 읽는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서 느껴지는 작가들만의 문장과 구성은 판이하게 달랐다. 선이 굵고 감정의 기복이나 숨을 몰아 쉴 틈을 주지 않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완전히 작가에 몰입되어 책이 읽히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별 시덥잖은 소리로 작가니 문장이니 아는체 하는 (정작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이유는 안보윤작가의 오즈의 닥터를 읽으면서는 작가를 알지 않고 책을 읽었다면 당연히 남성 작가가 쓴 책이겠거니 했을지도 모를만큼 문장마다에 힘이 넘쳐 흘렀고 현실과 환상을 오고가는 경계를 미처 깨닫기도 전에 또 다른 장면을 펼쳐보이는 과감함이 있었다.

물론 개인적인 편차가 따르기도 하겠지만 오랜만에 아주 흥미롭고 신선한 책을 만난듯 했다.

현실과 환각을 오고가는 경계도 불분명하고 읽으면서도 되려 환상인지 착각하게 만드는 이 작품이 신선하다는 느낌이 든다는건 어떤 이유에서 일까.

 

주인공 '나'는 가상의 정신과 상담의인 닥터팽에게 끊임없이 거짓된 이야기를 하고 그 거짓말들은 현실과 전혀 상관이 없는 내용이면서도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거짓으로 만들어낸 '나'의 이야기는 현실의 '나'를 설명하기에 충분한 밑그림을 이미 그려내 보여주는 듯 하다.

기괴한 모습으로 때와 장소를 정하지 않고 나타나는 닥터 팽 역시 환각인지 현실인지 인지하기 까지는 책을 읽는 동안에는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다. 닥터팽의 입으로 던지듯이 내뱉은 한마디 한마디들이 '나'의 본 모습과 현실을 자각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역시 이 작품만의 역설이고 매력이 아닐까한다.

거짓과 허구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나'와 닥터팽 또다른 축을 이루는 인물 수연을 통해 교차 보여줌으로써 이야기의 서사는 완성이 된다.

 

“자네가 믿고 싶어 하는 부분까지가 망상이고 나머지는 전부 현실이지. 자네가 버리고 싶어 하는 부분, 그게 바로 진실일세.”

닥터 팽의 입을 통해 말 했지만 '나'를 통해 말 한 것이고 또한 수연을 통해 말한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실과 환각을 오가는 묘한 긴장감과 호기심은 살짝 흥분되는 스릴을 맛볼 수 있었고 또한 인물들을 옆에서 혹은 뒤에서 숨어 지켜보는 듯한 기분마져들어 읽는 동안 혼자서 어설픈 관음증에 빠지기도 했다.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가는 도로시는 결국 마법사를 만났던가 어쨌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오즈- 그 오묘하고 신비 혹은 이상한 길을 안보윤작가의 오즈의 닥터와 함께 하는 동안엔 충분히 신이 났다.

둘둘 말아 감아 올린 이불 속에서 몇날 동안이나 오즈의 닥터와 함께한 날들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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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 그리고 이순신
이은식 지음 / 타오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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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우리는 그와 가깝다.

가장 가까이는 최소의 단위가 아님에도 보편적으로 많이 통용되는 화폐에서 그러하고 의도되었건 의도하지 않았건 학교에서 가르침이 그러했고 많은 책들과 드라마나 미디어에서도 그러했다.

이순신은 나라를 구한 성웅이다. 그 말에 조금만치라도 의심이나 의문이 없었다.

오히려 이순신이 승리로 이끌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 낸 해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함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그런 이순신을 이야기 할 때 늘 한 켠에서 웅크린채 비난의 화살을 받아야 했던 이가 있으니 그가 원균이다.

원균에 대한 연구와 이해가 사실 지금에는 예전과 다른 부분이 많고 새로이 해석되는 부분도 많은 것으로 안다.

비겁하고 졸렬한, 전장에서 도망친 장수가 아니라 그 역시 나라를 위해 힘을 아끼지 않은 장수임을 이야기 해주는 책들도 이미 여러권이고 티비 프로나 각종 역사를 다루는 미디어에서 그의 이야기를 접한 일이 꽤 많았다.

 

어쩌면 이순신의 영웅적인 면모에 가려 제대로 된 평가나 조명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재조명이나 재평가는 차치하더라도 왜곡되어서는 아니된다라는 생각에는 역시 동의 하는 바이다.

저가 이은식의 역사 이야기 시리즈중에서 원균을 재조명하고 평가절하된 그를 복원하는 책을 만났다.

원균 또한 나라의 위기에서 나라를 위해 애 쓴 부분이 어찌 없겠는가 하는 물음에서 부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저자는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을 비교 대립 시키며 원균과 이순신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 이순신의문중인 이식이 45년 후인 1643년 수정 편찬된 선조수정실록을 들어 선조 당시의 기록인 선조실록과의 차이와 내용의 상이함을 비교하고 원균에 대한 기록의 차이를 이야기한다.

이식이 이순신 문중의 사람이라서 이순신의 편에 입각하여 선조수정실록을 편찬했다는 데는 상당히 설득력이 떨어짐도 사실이다.

역사를 재편하는데 있어 같은 문중의 사람이라는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부분이 그 당시에도 간과되었을리 만무하다.

이순신은 당파에 흔들림이 없는 인물이었음은 임난 당시 의주로 피난간 임금의 치우침에도 꺽이지 않은 모습에서 확연히 알수 있고 그런 이순신이 거짓 장계로 원균을 모함하여 벌주기를 청하고 역사왜곡의 발단을 제공했다는 저자의 논조에는 적잖이 동조하기가 힘들다.

후세의 사람들이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피난을 간 임금과 조정은 바다의 상황을 잘 알지 못했고 외려 이순신에게 피난 조정에 필요하니 종이를 구해 올려보내라는 실소를 금치 않을 수 없는 명까지 내리는, 난 중에도 당파에 찌들은 임금은 왜적을 무찔러 명성을 얻은 이순신을 외려 경계했다.

그런 이순신을 저자가 원균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선 예로 들은 선조실록의 사료가 모아지던 피난 조정에서 그에 대한 호의적인 이야기를 찾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싶다.

 

이순신을 경계하는 임금과 이순신이 가지는 힘을 경계하던 조정의 신료들이 이순신을 폄훼하고자 하였음을 지금의 어리석은 사람인  본인 조차도 알겠는데, 그러한 선조실록이 옳지 못하여 수정실록을 편찬하고-단지 이식의 혈족이라 이순신에세 호의적이고 원균에게는 비겁한 장수라는 오명을 씌웠다는것은 억지스럽다 아니할 수 없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고 그 역사의 옳고 그름 역시 살아있는 사람들이 평가해야 하는 것임에는 틀림없으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원균에 대한 불합리하고 불의한 역사의 오명은 이순신을 흠집 냄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닌 원균 스스로의 정당성과 설득력있는 역사의 기록에서 찾아야하는게 아닌가 한다.

 

원균을 높이고자 이순신을 끌어내리는 이야기가 없었더라면, 오히려 원균의 사람됨과 나라를 구하는데 애를 쓴 장수로서의 모습을 더 부각 시켜놓았더라면 저자의 이야기는 훨씬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저자의 입장에서 본다면야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인 본인 조차도 이순신이 거짓 장계로 역사 왜곡의 발단을 제공하였고 이순신의 혈족인 이식이 남긴 선주수정실록의 편파적인 기록과 교육되어지고 철저히 왜곡된 시각을 가진 어리석고 편협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원균에 대한 저자의 생각 역시 편파적이다 아니할 수 없고 원균이 뒤집어 쓴 것이 진정 오명이라면 시대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세대에 엄한 이순신을 패대기치지 않고서도 그 오명을 풀어줄 다양한 시각의 이야기들을 기대해본다.

 

이순신을 옹졸하고 졸렬하며 야비하기까지한 사람으로 묘사하는 시각에 울컥하는 목울대를 진정시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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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러브리티
정수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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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다이어리의 정수현 작가.

그녀가 택시를 타고 토크쇼를 진행하는 프로에 출연한것을 우연한 기회에 보았는데 글에서 느껴지는 것 만큼이나 발랄하고 상큼했다. 거기에 더해 자신만의 시각으로 현 사회에 현상을 꼬집어 내고 그것들을 글로 표현으로 형상화해 내는 감성에 부러움과 찬탄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압구정 다이어리로 칙릿 소설이라 하면 당연히 제일 먼저 떠오르는 그녀의 신작 셀러브리티.

사실 인터넷 언어나 신조어를 별루라 하는 편이기에 셀러브리티 라는 단어가 가지는 뜻과는 상반되게도 자꾸만 반감을 가지게 되는건 어쩔 수 없었다.

셀러브리티....트렌드를 생산해내고 그 트렌드로 한 시대를 풍미시키는 사람들을 칭하는 신조어,

내용에서도 등장하지만 세계적으로 너무나 많이 알려지고 관심을 받고있는 패리스 힐튼이나 빅토리아 베컴, 다이애나 비 등의 감히 엄두 낼 수는 없지만 그들의 트렌드와 멋은 언제라도 따라 하고픈 욕망이 생기는 것을 부인 할 수 없다.

물론  칙릿 소설을 읽기에는 내가 좀 많이 먹었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여자는 나이가 어떻든 간에 아무래도 여자이기에.

 

공주라 생각하며 공주의 삶을 꿈꾸던 여자 아이는 자신이 공주가 아니었음을 알게 될 때 가장 먼저 무슨 생각이 들까.

나는 어땠었나....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며 내가 하고자 하는것은 언제든 이룰 수 있고, 내가 원하는 것은 모두 가질 수 있다고 믿었던 그 모든 것들이 허상과 과대망상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어린 나를 잠시 생각해보았다.

배신감....그래 상실감 보다는 배신감이 컸던듯 하다. 나는 공주였고 공주가 아님이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공주급의 여자아이인데 세상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 배신감. 상실감 보다는 배신감이 컸던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시절을 생각하면 설핏 웃음이 난다.

셀러브리티의 갈피 갈피를 장식하는 주인공 백이현의 삶도 다르지 않다.

공주를 꿈꾸고 모든것이 나를 위해 존재함을 믿던 시절을 지나 스물일곱, 갖고 싶은 가방을 사기 위해 빈곤한 식탁과 빈곤한 정신을 마다치 않는 연예인의 사생활로 지면을 장식해 먹고 사는 잡지사를 다니는 직장여성.

셀러브리티에서는 그런 그녀에게 정말로 영화처럼 드라마 처럼 혹은 세상의 모든 젊은 여성들의 상상에서나 가능하고 존재할 법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류스타 유상현과의 만남에서 그를 비롯한 주변인들과 꼬이고 꼬이고 확대되고 확대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뭐 시대정신을 담아내고 깊은 철학을 가진 작품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약속없는 토요일 배를 깔고 누워 읽으면서 너무 행복했음을 고백한다.

백이현과 유상현의 이야기들이 묘한 두근거림과 흥분을 가져다 주어 첫장을 넘긴지 채 몇시간이 지나지 않아  한 숨에 책을 읽어내려갔으니 책을 읽는 세가지 즐거움을 뛰어넘는 재미의 즐거움이 있었으니 깨달음과 앎, 감동을 주지 않아도 읽는 순간 동안은 흥분되고 웃음이 절로 났다.

주인공 백이현처럼 이십대 여자애 였더라면 느끼는 즐거움이 다를까 생각해보았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아련함의 즐거움도 또한 얼마나 큰지.

세월은 셀러브리티를 환호하거나 백이현의 스펙타클하고 극적인 삶을 갈망하거나 탐하지 않게 만들었지만 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혼자만의 상상으로 키득커리던 그 때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 확신단다.

그 날의 나는 지금의 나를 상상해 본 적이 없고, 지금의 나는 또한 시간이 지난 후의 나를 상상하기가 힘들다.

그때 그때를 사랑하라. 오늘의 내일도 내일이 되면 오늘의 오늘이 되는 것이니 현재와 현실을 살아내는 법을 깨닫게 되고 알게될테니까.

 

깃털 처럼 가볍게 읽히고 솜뭉치 처럼 부드러운 소설이다.

여자들만의 소설이라 어느 남정네가 이야기 한다해도 " 그래 니들이 뭘 알겠니" 하며 핏 하고 웃어 줄 여유를 알 수 있는 소설을 백이현의 나이를 훌쩍 지난 어느 겨울 어느 날에 만나 참 재미나게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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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 -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최준식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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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인생사가 마음처럼 굴러가지 않을때 '굿이라도 해야하나' 혹은 '점이라도 보러가야겠다' 라는 말들을 하고는 한다. 물론 나 역시 농담처럼 쉽게 이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서양인들의 문학이나 문화를 보면 기독교적인 색채가 짙은 것이 종종 느껴지곤 한다. 그들은 오랜 기간을 걸쳐 자연스레 기독교적인 생각으로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왔음을 알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부분이 유교적인 관습과 문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역사인 조선시대에 숭유억불 정책으로 유교가 크게 번성하여 중,의, 예, 효 를 중시하였고 현대 역시 그 큰 틀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듯 하다.

우리의 동네 골목 골목 마다 찾을 수 있는 점집이나 무당집, 험한 산을 오르고 올라 치성 내지는 기도를 하는 이들을 볼 수가 있는데 아주 오래전 부터 우리 곁에 엄연히 존재한 흔히 무속신앙이라 불리는 무교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책을 만났다.

 

책에서는 무속이라는 단어의 부당을 설명하는데 무속의 속 자가 저속하다라는 의미가 짙기때문에 무교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미신이라 천대하고 비하되고 왜곡되었다는 저자의 설명에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가기도 하지만 속이라는 단어의 저속하다라는 표현보다는 사람들과 그만큼 가까운 곳에 있는 친근한 종교라 불교에서도 일반 사회를 일컫는 말인 속세(俗世)라는 말 처럼 친근한 종교라 무속이라 불리었고 불리어 왔다고 믿고싶은 마음이다.

 

무교에대한 오해와 천대가 한국인들의 근본에 깔려있는 무교를 향한 믿음을 저속하고 촌스러운 것, 무시되는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하는 것은 어느정도 사실일지도 모른다. 무교란 범위가 워낙에 광범위하고 쉽사리 질서를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러한 왜곡이 더욱 심화되었고 저자가 지적 하는 것 처럼 자생 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있고 자체적으로 통합의 어려움이 있기에 지금껏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였고 또한 그러기에 한국인들의 근본신앙임에도 무교를 신봉하는 이들이 미신이라 비하를 받은것이 사실일 것이다.

 

저자는 무교에는 많은 문화적 자산이 안겨져 있기에 무교를 복원하여 사회적인 통합과 사회적 성숙을 위한 기틀 아래에에 서게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문화적 격변에 대응할 수 있는 정신적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 민간신앙으로서의 무교의 복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무교를 정당화 하는 수단으로 다른 종교를 빗대어 비하하거나 혹은 저것도 그러한데 이것이 이러한 것 쯤이야 어떻겠느냐 식의 뉘앙스가 무교가 한국인의 근본신앙임을 주장하는 말에 제동을 걸기도 한다.

이것은 마치 '너희 나라는 원숭이 골에 달팽이에 무엇 무엇도 먹지 않느냐'

'그럼 우리가 개고기 먹는게 뭐 어때?'하는식의 빈약한 주장으로밖에는 비쳐지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다.

개고기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원숭이 골이나 달팽이를 트집잡아서는 기대하는 만큼의 설득력을 이끌어낼 수 없기에 우리에게 개고기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어떤 역사가 있으며 어떤 개고기 문화를 만들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외려 더 자연스레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은 아닐까말이다.

무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다른 종교의 폐혜를 가지고서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무교가 한국인의 근본신앙임을 더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풀어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조금 더 세밀하고 농도 짙은 무교의 세계를 경험하고자 하는 이들 보다는 무교에 대한 막연한 생각과 궁금증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어울릴만한 책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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