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터 하우스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혈연으로 맺어진 어느 가족 이야기
빅토리아 벨림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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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를 경악에 물들게 만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여러 방송사들의 뉴스에서 시시각각으로 러시아의 무자비한 공격을 중계하던 것이 기억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지나온 역사가 증명하듯 옛날부터 깊은 연관이 있는 나라였다. 두 나라의 사이가 아슬아슬하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그때 푸틴의 저돌적인 우크라이나 공습이 시작되었고 그것은 비단 두 나라의 국민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작가 '빅토리아'는 에세이 《루스터 하우스》를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그녀는 2022년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되기 한참 전, 자신의 고향인 우크라이나를 방문한다. 비록 고국을 떠나 남편과 벨기에에 살고 있지만 언제나 우크라이나 사람이라는 의식이 있었기에 늘 자신의 뿌리에 대해 궁금했던 그녀는 외할머니 '발렌티나'와 함께 살며 가족의 역사를 되짚어 보기로 한다.


 전쟁이 훑고 지나간 우크라이나의 모습은 참혹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소비에트 연방에게 자의로든 타의로든 충성했지만 소련은 그들을 버렸다. 오히려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정복하기 위해 잔인한 일들을 서슴지 않았다. 수백만 명을 굶어죽게 만들었고, 그들이 나타낸 충성을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짓밟아 버렸다. 소련에게 우크라이나는 그저 이용 가치가 있는 식민지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유럽연합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은 그들을 우려에 찬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끝내 외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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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세계가 우릴 도와줄 겁니다. 포기하지 말아요."

그 말에 버스 전체에 웃음이 터졌다. 남자가 한 말이 일프와 페트로프의 건달 소설 <열두 개의 의자>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였던 것이다.

유럽연합은 자기네 국경선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 '우려를 포명'하거나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는 게 고작이라, 방금 남자가 던진 역설적인 농담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한마디로 지금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뜻이었다.


《루스터 하우스》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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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소련의 행태 속에서 빅토리아의 가족들은 끊임없이 흔들리면서도 아등바등 살아왔다. 증조할아버지의 기록에 등장한 '니코딤'이라는 이름이 그것들을 가르쳐 주었다. 일개 교사였고, 그전에는 소련의 뜻에 따라 성실히 일하던 니코딤은 순식간에 반란의 주동자로 내몰렸고 문서에 기록되지 않은 모진 고문을 겪으며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니코딤의 죄는 그 자신에게만 고통을 준 것이 아니었다. 니코딤의 후손들마저 소련이 억지로 씌운 누명 때문에 비참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우크라이나 윗세대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밝혀지며 내 마음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덧없이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가슴을 죄어오는 느낌이었다. 특정한 사상과 이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들이 가져온 결과는 너무나 참혹했다.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빅토리아는 주위 사람들의 도움과 격려에 힘입어 가족의 역사를 차근차근 따라가고 결국 자신의 뿌리가 얼마나 튼튼하고 강했는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애써 외면해왔던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며 새로운 자신을 만나게 된다.


 빅토리아의 곁에서 함께 걸으며 우크라이나의 역사 수업을 받은 느낌이 든다. 현재 우크라이나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투항과 핏방울과 땀이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변함없이 끈끈하고 따뜻한 가족애를 엿볼 수 있어 한편의 감동적인 가족영화를 본 듯한 느낌마저 드는 이야기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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