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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우주 한 조각 - 매일 만나는 우주의 경이로움 ㅣ 날마다 시리즈
지웅배(우주먼지) 지음 / 김영사 / 2024년 3월
평점 :
유튜브 채널 <보다>를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후로 몇 날 며칠을 <과학을 보다> 시리즈를 보는 데 할애했다. 한 편당 3~40분의 분량으로 40편이 넘게 올라와 있는데 거진 다 봤다. 거의 모든 영상을 다 본 채널은 <과학을 보다>와 <최재천의 아마존>밖에 없다. 나 꽤 과학을 좋아하는구나. 나로 30년 넘게 살면서 새로 업데이트되는 선호, 취향이 새삼 놀랍다. 유튜브 채널로 일방적 내적 친밀감을 깊게 쌓은 천문학자의 새 책이 나왔다. 그런데 그 책의 만듦새가 심상치 않다. 이렇게나 크고 묵직한 책이라니 이 책의 주인공은 글이 아니라 사진이다. 우주의 풍경을 가득 담은 도록이다.
제임스 웹을 발사할 거라고 떠들썩했던 때가 기억난다. 뉴스로 소식을 접한 나는 시큰둥했었다. 이게 이렇게 호들갑 떨 일인가. 제임스 웹이 찍은 첫 사진을 무려 미국 대통령 바이든이 직접 나와 브리핑하면서 공개했다. 사진을 보는 순간 저절로 알게 됐다. 아, 호들갑 떨 일이구나. 대단한 일이구나. 안경을 쓰는 사람이 처음 안경을 맞추고 안경점 문을 열고 나왔을 때의 기분을 잊을 수 있을까. 별 불편함 없이 살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안경을 통한 세상은 다른 세상이었다. 이렇게나 모든 물체가 선명히 잘 보인다니, 밤에 빛은 번지는 게 아니라니. 허블 세대로서 제임스 웹의 사진을 처음 봤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안경 전후로 나의 시선이, 나의 생활이, 나의 세상이 달라졌듯이 제임스 웹 이후로 지구인의 시선이, 생각이, 포부가, 희망이 달라지겠구나 직감할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제임스 웹이 찍고 공개한 대부분의 사진이 실렸다. 이외에도 허블 망원경과 보이저, 뉴허라이즌스, 퍼서비어런스 등 탐사선이 보내온 사진들도 있다. 각 사진은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날짜와 짝을 이루는데 날짜와 관련된, 연상되는 사진을 소개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론 한 달 한 달 분량으로 끊어 읽기 좋았다. 사진에 대한 코멘트가 길어야 한 페이지다. 할애되는 분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기초지식부터 설명하지 않는다. 이 책을 사고 소장할 독자들은 어느 정도 천문학 지식이 있겠지만 혹여 부족하다 느낀다면 책 말미에 있는 용어설명부터 읽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벅찬, 흥분한 오타쿠의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한다. 예를 들면 쿠엔틴 타란티노를 바라보는 봉준호 감독이라든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앞에서 소장품을 이것저것 꺼내 보이는 이동진 평론가의 모습이다. 평소엔 차분하고 점잖고 한 분야의 대가인 분들이 좋아하는 대상 앞에서 무장 해제되는 모습에, 얼굴에 만연한 행복이 내게 전가되는 듯하다. 수많은 우주의 모습을 담은 사진 앞에서 저자 지웅배 박사의 모습도 이러하다. 이거 보세요, 저기 좀 보세요, 정말 대단하고 아름답고 경이롭지 않습니까? 흥분해 벅차오른 우주 오타쿠가 아주 훌륭한 도슨트가 돼주었다.
영화 <그래비티>는 보는 영화에 그치지 않고 체험하는 영화로 확장한 유일한 영화였다. 주인공이 대부분 우주 공간을 영유하는데 극장에 있는 관객도 우주 공간으로 끌어들인다. 이 책은 일부러 밤에만 읽었다. 해가 지고 밤이 깊어지면 빔프로젝터를 내리고 우주 플레이리스트를 틀었다. 글자가 간신히 보일 정도의 불만 켜고 책을 읽으면, 읽는다기보다 감상을 하면 가성비 우주여행을 하는 듯했다. 우주 오타쿠뿐 아니라 책 오타쿠도 충분히 벅찰 수 있는 순간이었다. 책장을 넘기면 새로운 사진이 나온다. 가끔은 우와..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사진을 만날 때면 압도당한다. 책 오타쿠가 우주 오타쿠를 가이드 삼아 할 수 있는 최고의 가성비 우주여행이었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창조의 기둥’이 이미 사라지고 없어졌을 거란 루머는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P11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아주 세밀한 모습으로 은하의 내부를 꿰뚫어 보는 제임스 웹과 함께 은하 해부학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제임스 웹이 정면을 향하고 있는 거대한 나선은하 19개의 심장부를 겨냥했다. - P93
그 독특한 모습 때문에 이곳은 ‘신의 눈동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망원경이든, 사람의 눈이든 여전히 우주의 눈동자는 우리를 압도한다. - P190
지금으로부터 약 1000~500년 전 오리온 성운의 중심에서 두 개의 무거운 별이 충돌했다. 그 순간 사방으로 강력한 충격파가 퍼져나가 주변의 높은 밀도로 모여 있는 수소 분자 구름 속을 파고 들었다. 충격파와 부딪히며 뜨겁게 달궈진 수소 분자들이 붉게 달아올랐다. - P284
천왕성의 위성들은 모두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다. 천왕성은 가장 문학적인 행성인지도 모른다. - P293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던 작은 하늘 속에서 5000개가 넘는 은하들이 드러났다. 우주의 끝이라 생각했던 세계는 그 너머의 또 다른 우주로 나아가는 관문일 뿐이었다. - P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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