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
필기할 때마다 맨살이 닿았다
에어컨 바람이 지나쳤다 물 백묵이 칠판 위를 지나갔다
단락이 길어질수록 청량은 달궈졌다
망우에 갈래?
자전거를 타고 플라타너스 길을 달렸다
일찍 떨어지는 이파리가 있어 얼굴이 아팠다
망우에 가면
우리는 가장 어린 시체가 되어
살 속에서 뜨거워지는 석양을 바라봤다
가출한 애들이 쳐놓은 텐트가 잔디를 입고 솟아났다
시와 시를 구분하는 경계석을 넘나들며 우리는
우리 밖으로 나갔다 돌아왔다
붉은 얼굴들이 뚝뚝 떨어지는 사이
청량한 사이였다
여름특강이 아직 끝나지 않은 사이였다
우리는 함께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투명이 우리를 가려준다는 믿음>, 청량
김영미 - 밀리의서재 - P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