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그녀들 일본문학 컬렉션 2
히구치 이치요 외 지음, 안영신 외 옮김 / 작가와비평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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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여자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인상을 썼던 기억이 있다. 체지방이 적고, 이쁜 핫케이크를 먹기 위해 2시간을 기다리고, 반짇고리를 가지고 다니고 따위의 나열을 보면서 “지금 2022년인데?”라는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19세기 일본의 여성작가들이 쓴 여성주의 문학이라니! 그것도 한 작가가 아니라 여러 작가의 단편 모음집! 당연히 관심이 갔다.

만듦새

일단 작고, 가볍고, 무선인 게 너무 마음에 들었다. 튼튼하고 격식 있어 보이는 양장도 좋지만 나는 커버도 없고, 가름끈도 없는 가벼운 책을 선호한다.

*

하늘색 표지가 참 이쁘다. 작가와비평의 일본문학 컬렉션 시리즈 작품이라 간결하면서도 색감으로 승부하는 느낌. 그리고 표지 왼쪽에 작은 날개가 포인트다. 처음에는 포인트 구름인가 싶어서 보니까 날개였다.
이 몸뚱이 없는 날개가 19세기 여자들의 노력처럼 느껴져서 좀 슬프면서도 좋았다.

내용

총 9개의 단편이 실려있으며 모두 19세기의 일본 여성 작가가 쓴 작품이다.
작품-작품소개-작가소개 3파트가 한 세트처럼 이어져 있는 책이기 때문에 읽기에 친절하다고 느꼈다. 일본에 페미니즘이 시작할 당시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나는 특히나 다무라 도시코의 ‘그녀의 생활’이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복잡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주인공 여자는 무려 처음에

“결혼은 남자한테 영혼을 빼앗기는 거나 다름없어. 나는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면서 혼자서 살 거야. 사랑을 핑계로 결혼이라는 함정에 빠질 순 없어!”

라고 생각한다. 요즘 해도 부모님한테 등짝을 맞을 말인데 과감하게 내뱉는다. 하지만 보통 남자와는 다른, 그래도 가장 여자를 이해해 주는 축에 속하는 남자를 만나 결국 결혼한다.

처음에는 모든 게 아름답게 돌아가는 듯하나 점점 집안일은 주인공의 몫이 되고, 빛나던 예술적 재능은 서서히 고립된다. 그것이 그녀가 특히 바보라서 생긴 일도 아니고 그녀의 남편이 특별하게 나쁜 사람이어서 생긴 일도 아니다. 그냥 어쩌다가 보니 일어난 납득 가능한 일들이 모든 것을 그렇게 몰아간다.

주인공은 결혼을 후회하는 도중 가장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임신’ 나는 그 구절을 읽으면서 탄식했는데 주인공 역시 한없이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 후 이야기는 가장 놀라운 결말로 치닫는다. 아이를 낳으니 너무 이뻐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긍정적으로 살 수 있었다는 해피엔딩. 작품소개에서는 이 해피엔딩이 그 당시 시대에서 오는 한계라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기 때문에 진정한 공포로 끝맺음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다시 아이가 커서 조금 불행해지면 또 아이를 낳고... 또 아이를 낳고... 그럴테지 나는 이 여자가 아이를 낳고 행복해진 것이 어떤 굴복으로 느껴진다. 자기 일하는 사람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던진 ‘아내’가 된 것이다. 일본 공포영화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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