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재밌는 수상한 과학책 - 우주에 관해 자주 묻는 질문 20가지
호르헤 챔.대니얼 화이트슨 지음, 김종명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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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재밌는 수상한 과학책 - 호르헤 챔, 대니얼 화이트슨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천문학에 대해서는 병아리 눈물만큼의 궁금증도 없었다. 말하고 나니 뭔가 좀 민망하지만 사실이다. 어떻게 궁금해하지 않을 수 있냐 물으면 글쎄, 뭐랄까. 그것을 왜 궁금해해야 하냐 되묻는 것으로 나를 경시한 상대방에게 뾰족하게 날을 세울 것도 같다. 독서모임으로 만난 책벗은 이따금 독모 중 이야기한다. 결국 책을 읽는 것도, 삶을 사는 것도 ‘나’를 알아가기 위한 여정이라 고.

그 ‘나’를 알아가는 과정 중 어쩌면 필수불가결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과학’이지 않을까 한다. 수십 년을 과학 서적과 담쌓고 살다가 최근 몇 년 동안 유명한 과학서들을 몇 권 읽어냈다. 30대 초반, 최재천 박사님의 저서를 접하며 동물 및 생물학에 관심이 쏠려 <술 취한 코끼리가 늘고 있다>나 <털 없는 원숭이>같은 책들을 이어서 읽은 적도 있다. 관심이 있어 읽었던 과학서를 제외하고는 부러 찾아 읽지는 않았는데 김영하 북클럽으로 알게 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통해 그런 책들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이어서 읽게 된 책들은 앞서 언급한 <코스모스>를 포함해 유시민 저자의 책이나, 심채경 저자의 에세이에 이어 지금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까지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읽기 힘든 책을 함께 모여 읽을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벽돌책 깨기 멤버님들 감사합니다)

이 책 <이토록 재밌는 수상한 과학 책>은 출판사에서 서평 의뢰가 들어왔고, 대부분의 서평 의뢰를 거절하고 있는 지금, 유일하게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과학에서 여러 분야가 있겠지만 바로 ‘우주’에 관한 이야기라 해 두 번 고민 없이 수락 메시지를 보내고 책을 기다렸다. 목차를 한번 보라. 단순하게는 시간 여행에서 도플갱어(또 다른 나), 블랙홀이나 소행성 충돌, 외계인의 존재와 사후세계까지… 뭐 하나 허투루 정해진 챕터가 없을 정도다.

그래서 뭐래? 또 다른 내가 있을 수 있대?라고 묻는다면, 나는 결코 쉽게 답을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이 재미있는 건 바로 그런 지점이다. 초등학생 아이와도 충분히 함께 읽고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다행인 것은 중간중간 화려하지 않은 삽화들이 들어가 있어 두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겁내지 않고 책을 집어 들 수 있었다. 결코 쉽지 않은 내용이다. 용어나 구성, 저자가 내세우는 주장이나 가설들이 어린 친구들이 단박에 이해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 많은 사실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학습할 필요는 없다. 그저, 그런 생각을 해 볼 수 있다고? 정도만으로도 이 책은 과학이라는 조금은 높은 허들을 가뿐히 넘어설 수 있게 해준다.

아이들과 독서회 또는 글쓰기 수업을 하는 나에게 이 책은 이따금 아이들에게 소소하게나마 던져볼 수 있는 질문거리를 그득 채우고 있다. “얘들아, 이 세상 그 어디에, 너랑 똑같은 사람이 있다면, 너는 어떨 것 같아? 어떻게 하고 싶어?”, “얘들아,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데 그 크기가 어마어마해. 아마도 이 지구가 빵 부스러기처럼 바스러질지도 몰라. 그럼 너네는 마지막 밤, 무엇을 할 거야?”

과학을 모르는 나도 책이 재미있었던 건 과학적 사실과 접근보다 무언가를 상상할 수 있는 단초를 얻은 것에 크게 감사한 책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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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력의 배신 - 원치 않는 집중을 끊어내는 몰입 혁명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23
한덕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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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서평마감일이라 아이를 재우고 거실로 나와 남은 책을 마저 다 읽었다. 맨 뒷장을 덮으며, 어? 이 책은 육아서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책의 표지를 꼼꼼히 들여다봤다. 분류번호는 300번으로 사회과학서로만 분류되어 있고, 그 어디에도 ‘자녀’라는 말은 없다. 타깃 독자층이 구체적으로 누구였을지 궁금한 책이라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책을 뒤적였다.

그러다 갈증이 일어 뭔가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까 초저녁 마지막 하나 남은 맥주를 털어 넣은지라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맥주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 몰라 냉장고를 열였는데 시원한 콜라와 탄산수는 버젓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만, 맥주가 없었던 거다. 순간 고민했다. 나 지금, 맥주 먹어얄것 같은데? 남편이 봤으면 아마 한마디 했을거다. “어지간히 해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카디건을 걸치고 지갑을 손에 쥐고는 도어록 손잡이를 밀어 현관문을 연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순간, 퍼뜩 떠오르는 생각. 나 혹시 중독인가?

4개에 9천 원인 세계맥주 4캔을 사들고 와서는 다시 식탁에 앉아 그중 하나인 블랑 맥주 330밀리리터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한 모금만으로도 충분하던 캔맥주는 우연히 한 캔을 다 비워내며 야릇한 쾌감을 느꼈고, 그렇게 1여 년을 마시고 나니 500밀리리터 캔도 모자라 한 캔을 더 까고 있는 나. 책에서처럼 ‘내성’이 생긴 건 아닌가? 수동적 내성과 충동적 갈망이 결합된 술에 대한 현저성이 높아진 상태는 아닌지…

이 책을 육아서에 가깝다고 표현한 건 바로 책 속 내용들이다. 메시지로만 이해하면 육아서에 국한되지 않으나 제시된 예들이 대부분 게임 중독이고, 게임 중독에 따른 폐해들을 자세히 열거하고 있어 자녀의 게임 과몰입으로 고민 중인 부모에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들이 그득했다. 특히나 재미있었던 부분은 게임 폐인과 프로 게이머를 비교한 부분이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게임 중독과 프로 게이머에 대한 얄팍한 지식과 이해가 통째로 드러난 부분이었다. 조절력을 상실한 게임 폐인이 게임을 이어갈 때의 뇌 모습과, 일종의 훈련으로서 게임을 이어가며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게이머의 뇌는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게임’ 자체에만 매몰되어 보지 못하는 지점들을 뇌의 각 부위를 예로 들어 자세하게 설명한다.

흔히들 집중력이란 한 가지 일을 꾸준히, 꽤 오랜 시간 지속시키는 능력이라 착각하기 쉬운데 여기서의 방점은 그 ‘한 가지 일’에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밤새도록 하면서 집중하는 건 집중력이 높은 것이 아니다. 하기 싫은 일이지만 본인에게 필요한 일을 집중해 처리하는 능력이 진정한 집중력이고 그것을 높이기 위해서는 멀티태스킹이라 해, 일의 전반적인 흐름과 속도를 컨트롤하고 지속시키는 힘이 바로 집중력이다.

책은 몰입과 중독의 차이를 명징하게 그려내며 결국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한 끗 차이이긴 하지만 명백히 다른 두 집중에 대해 한 번쯤은 고민해 봄직을 제시한다. 또, 중요하게 짚고 갈 부분은 바로 ‘공존질환’. 언제고 읽었던 중독에 관한 책에서도 언급한 부분인데 말 그대로 두 가지 이상이 공존하는 질환을 의미한다. 중독 증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바로 이 공존질환으로 인한 중독 증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아이가 게임을 밤새도록 해서 성적이 떨어지고 건강이 악화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반대로 건강이 악화되어 할 수 있는 건 게임밖에 없어 게임을 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중독 그 자체에만 가려져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문제점들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핸드폰을 하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길고 깊다면 한 번쯤은 다른 각도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쟨 왜 저렇게 핸드폰을 손에서 못 놔? 가 아니라 핸드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할 만큼 불안한 이유가 뭐지?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도둑맞은 집중력>과 결이 같지만 조금 더 뇌과학 쪽으로 기우는 책 <집중력의 배신>, 혹 게임중독과 관련한 정보가 필요하다면 1독을 권한다.

@jiinpill21

#도서지원 #책벗뜰 #책사애 #21세기북스 #몰입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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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아이 2 죽이고 싶은 아이 (무선) 2
이꽃님 지음 / 우리학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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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아이 2 - 이꽃님




얼마 전 있었던 일이다. 아침마다 등교하는 아이가 현관을 나서면 함께 따라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현관문을 열어 놓고 아이와 몇 마디 주고 받는다. 차조심해라, 물 많이 마셔라, 물건 잘 챙겨라… 부러 입에 쟈크를 채우지 않으면 하나마나한 말들이 잔소리처럼 튀어나올까 매 순간 입술을 오물거리며 아이를 배웅한다.

아이가 탄 엘리베이터가 1층을 내려간 걸 확인하면현관을 닫고 전실로 들어와 전실 창을 연다. 대략 5초~10초 후에 아이가 공동현관 앞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10층인 전실창에서 손을 흔들면 아이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 귀찮다는 듯 손을 흔들어준다. 대개는 그렇게 아이와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등교 일정을 마무리하는데, 그날은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간 아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순간, 10층에 선 엘리베이터에 누군가 타고 있었다는 게 상기되며 마음이 쿵하고 주저 앉았다.

하필이면 전실창에 고개를 내밀어 아이를 보는 동안 흰색 트럭이 무언가를 싣는듯 퉁탕거리는 소리를 냈고, 마치 그 소리는 아이가 그 트럭안으로 실려지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빌어먹을 말도 안되는 상상이 떠올랐다. 지아야! 지아야! 단지 안으로 울려퍼지는 쇠된 소리. 하의 실종에 노브라였던 옷매무새를 돌아볼 겨를 없이 현관문을 발칵 열었다. 당장이라도 1층으로 내려가 잠긴 트럭문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실제로 내가 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그럴지도 모른다는 정황 뿐, 정황만으로도 지옥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쳤고, 마음에서는 이미 일어난 ’사건‘이 되어버렸다. 지금이야 말하면서 조금 부끄럽기까지한 날구지지만 그 순간은 정말로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날의 나를 자꾸만 떠올렸다. 나는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끔찍한 망상을 했으며, 사람과 트럭, 아이의 부재를 왜 그런식으로 해석한건지 조금 의아스럽기도 하다. 여기 책 속에서도 주연이는 전연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주연이가 친구를 죽였는지 따위는 아무에게도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저,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고, 또 설령 직접 죽이지 않았다 해도(누명을 쓴거라 해도) 결국 죽게 만든것 아니냐는 도를 넘은 공격에 더이상의 진실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안타까운 마음도 잠시,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봉착했다. 어떤 사건을 접할 때 우리는 얼만큼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까? 나는 얼만큼 그것을 투명하게 받아들일 수 있나?

아직, 책을 끝까지 다 보지 못했다. 오늘이 서평 마감날이라 읽은데 까지의 단상을 써본다. 다 읽은 후 갈무리 된 감상은 댓글로 남길 생각이다. 혹, <죽이고 싶은 아이 1>을 읽지 않은 분들이라면 꼭 한번 그 책을 읽어보길 강권하고 작가의 책임감으로 쓰인 이 책 2권도 바로 이어서 읽어보길 권한다.

아, 그날의 뒷이야기를 마저 해야겠다. 다급히 현관을 열고 튀어나가려는 찰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들고 나간 우산이 고장나 우산을 바꾸려고 다시 올라온 아이의 유유자적한 모습에 어안이 벙벙. 다른 우산을 건네며 온 몸에 힘이 빠진 난 속으로 되낸다. 아이고, 내 팔자야!

@woori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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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구에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가장 우연하고 경이로운 지적 탐구 서가명강 시리즈 37
천명선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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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구에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천명선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좋은지 아닌지를 따졌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좋은 것들에도 무수히 많은 요인이 있고, 반대로 좋지 않은 것에도 이유는 여러 갈래로 쪼개진다. 그렇게 자잘한 이유는 차치하고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단순하게는 불통과 크게는 이질감이리라. 소통이라는 것이 비단 언어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비언어적 몸짓이나 눈빛, 또는 감정을 드러냄으로 서로 오가는 정보 또는 교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특유의 감각과 더 정교한 방법으로 그들과 소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다른 것에서 오는 이질감도 이유 중 하나이다. ‘인간도 동물이라는 범주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하게 인간과 동물은 다르다(다르다는 표현이 조심스럽지만, 일단은 쓰겠다)는 것에 의심이 없다.

 

그럼 여기에서 또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해서 그들의 존재까지 싫으냐, 그건 절대 아니다. 책에서도 나왔지만 몇 해 전 호주 산불 때도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야생 동물들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동물이 구조의 손길을 받지 못하고 그대로 스러지겠구나. 그로 인해 인간도 피해를 봤지만 정작 수치를 알 수 없을 만큼 많은 동물은 다 어디로 갔을까나. 아이들과 야영지를 갈 때도 마찬가지다. 시커먼 풍뎅이가 날아 들어와 어서 잡으라 악다구니 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확하게 이야기한다. 여기는 이 친구들이 사는 곳이라 우리가 신세를 지고 있으니 이들을 잡지도, 죽이지도 말아야 한다고, 산 채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이 책은 인간과 동물의 공존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단순하게 반려동물에서부터 지구를 공유하는 모든 동물에 관한 이야기다. 서두에서 말한 그들과 내가 다르다는 이질감에 대해 저자는 결코 다르지 않다 이야기한다. 생김새가 다른 것이라면 온 세계 사람 모두를 합쳐도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듯이 겉모습이나 습성이 다른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다만, 인간보다 늘 열등한 존재로 그들을 대하는 우리는 과연 그들보다 우등한가? 되묻는다.

 

재작년부터 기후나 환경에 관한 책을 보면 으레 드는 생각이, 인간에 대한 혐오다. 그래 혐오다. 인간은 당최 어떻게 생겨먹어서 이렇게까지 잔인하고 욕심 많은 존재인가? 열등과 우등을 넘어 우리 인간이 동물을 제대로나 이해할 수 있나 말이다. 우리와는 다른 영역으로 소통하고 살아가는 동물의 다양하고도 특수한 능력을 우리가 무슨 수로 설명하고 이해한다 말할 수 있는가?

 

사람보다 낫다는 말도 그렇다. 그 말의 전제는 사람보다 못한데 어쩌다 한 둘의 동물은 사람보다 낫다는 뜻이 아닐까? 인간을 구조하고, 인간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인간에게 이로운 동물에게서 우리가 흔히 느끼는, 그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동물. 왜 우리는 동물에게 인간다움을 필요로 하는가!

 

무슨 복을 타고나서 호모 사피엔스가 여태까지 살아남아 마치 지구, 아니 전 우주가 자신들의 것인 양 설파하지만, 그저 인간도 이 우주를 구성하는 여러 개체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한 번 더 강조하게 된다. 동물을 좋아한다고 해서, 즉 애호가들에게만 동물의 생존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취향이나 선호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닌 존재 자체로서 보호받고,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동물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기까지 얼마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그 말은 마치 나는 아이를 싫어해, 나는 보수당을 싫어해, 나는 목소리가 큰 사람을 싫어해 와 같이 소신과 가치가 드러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말 할 수 있었던 건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도 동물의 삶을 생각하고, 이해하고, 그들이 가진 권리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이야기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애호가만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만이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인류세, 홀로세와 함께 툴루세라는 용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인간과 비인간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만들기 위해 함께 번성하고 협력하는 태도와 방식이 필요한 지금, 새로운 친족 형성으로 비인간 존재와 함께환경에 대한 책임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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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달의 시간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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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들, 오래 지나지 않아서 잊어버린 영화 티켓들을 전시하지 않아도 나는 책을 쓰고 영화를 사랑한다. 누구의 인정도 동의도 필요로 하지 않는 고요하고 나지막한 나의 취향, 나의 삶이다. 17

이따금 언어,라는 건 무엇인가에 대해 골몰한다. 모국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어쩌면 모국어이기에 불가능한 그것을 타인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언어를 당겨와 써야 할까? 내가 알고 있는 세계 안에서 결코 한 뼘도 벗어나지 못할 고작, 그것뿐일 말들.

누군가의 말, 특히 작가들이 이야기하는 것들에 귀를 기울인다. 눈길을 열어 검은색 선들로 그려진 글자를 바라보면서 고작, 그것뿐인 나의 세계에 적지 않은 훈풍을 불어 넣는다. 희한한 것은, 눈으로 활자를 쫓는다 해서 그것이 곧 하나의 언어로 나에게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모국어지만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문자들, 그 언어들.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이 책 <낮달의 시간>은 언어로 다가오는 무수한 단상들에 대한, 운치 있는 사고의 시간을 안겨주었다. 인스타에서 우연히 본 글귀를 타고, 타고, 타고 가니 이 책이 보였다. 이 책을 쓴 저자의 화사한 모습이 담긴 사진도 보았다. 책의 표지가, 그 색감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예뻐서 꼭 손에 쥐어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책에 쓰인 글자들을 읽어보고 싶었고, 글자를 읽어내며 얻게 될 언어와 그 단상들을 느껴보고 싶었다.

짧은 글들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좁은 세계에 인생을 두고 사는 사람’이 자신이라 말하는 그녀는 ‘가차 없이 살아갈 것’을, ‘떠나야 할 때를 아는 낙화처럼 기꺼이 아름답게 스러져 갈 것’을 다짐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에서 그것들을 언어로 옮겨놓은 글은, 읽었다고 아는 것이 아닌 담고 있는 감정과 모습이 하나씩 그려져 다 읽고 난 후 하나의 전시회를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모국어라고 다 읽을 수 없고, 자국민이라 해서 나누는 말들이 다 대화가 되지 않는 세상. 우린 타인을 해석하려 애쓰고 그런 일련의 일들의 가치를 곱씹어 본다. 낮달의 시간, 홀로 남겨지지 않을 이야기들을 나누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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