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달의 시간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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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들, 오래 지나지 않아서 잊어버린 영화 티켓들을 전시하지 않아도 나는 책을 쓰고 영화를 사랑한다. 누구의 인정도 동의도 필요로 하지 않는 고요하고 나지막한 나의 취향, 나의 삶이다. 17

이따금 언어,라는 건 무엇인가에 대해 골몰한다. 모국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어쩌면 모국어이기에 불가능한 그것을 타인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언어를 당겨와 써야 할까? 내가 알고 있는 세계 안에서 결코 한 뼘도 벗어나지 못할 고작, 그것뿐일 말들.

누군가의 말, 특히 작가들이 이야기하는 것들에 귀를 기울인다. 눈길을 열어 검은색 선들로 그려진 글자를 바라보면서 고작, 그것뿐인 나의 세계에 적지 않은 훈풍을 불어 넣는다. 희한한 것은, 눈으로 활자를 쫓는다 해서 그것이 곧 하나의 언어로 나에게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모국어지만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문자들, 그 언어들.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이 책 <낮달의 시간>은 언어로 다가오는 무수한 단상들에 대한, 운치 있는 사고의 시간을 안겨주었다. 인스타에서 우연히 본 글귀를 타고, 타고, 타고 가니 이 책이 보였다. 이 책을 쓴 저자의 화사한 모습이 담긴 사진도 보았다. 책의 표지가, 그 색감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예뻐서 꼭 손에 쥐어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책에 쓰인 글자들을 읽어보고 싶었고, 글자를 읽어내며 얻게 될 언어와 그 단상들을 느껴보고 싶었다.

짧은 글들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좁은 세계에 인생을 두고 사는 사람’이 자신이라 말하는 그녀는 ‘가차 없이 살아갈 것’을, ‘떠나야 할 때를 아는 낙화처럼 기꺼이 아름답게 스러져 갈 것’을 다짐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에서 그것들을 언어로 옮겨놓은 글은, 읽었다고 아는 것이 아닌 담고 있는 감정과 모습이 하나씩 그려져 다 읽고 난 후 하나의 전시회를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모국어라고 다 읽을 수 없고, 자국민이라 해서 나누는 말들이 다 대화가 되지 않는 세상. 우린 타인을 해석하려 애쓰고 그런 일련의 일들의 가치를 곱씹어 본다. 낮달의 시간, 홀로 남겨지지 않을 이야기들을 나누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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