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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구에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가장 우연하고 경이로운 지적 탐구 ㅣ 서가명강 시리즈 37
천명선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6월
평점 :
우리는 지구에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 천명선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좋은지 아닌지를 따졌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좋은 것들에도 무수히 많은 요인이 있고, 반대로 좋지 않은 것에도 이유는 여러 갈래로 쪼개진다. 그렇게 자잘한 이유는 차치하고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단순하게는 ‘불통’과 크게는 ‘이질감’이리라. 소통이라는 것이 비단 ‘언어’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비언어적 몸짓이나 눈빛, 또는 감정을 드러냄으로 서로 오가는 정보 또는 교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특유의 감각과 더 정교한 방법으로 그들과 소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다른 것에서 오는 이질감도 이유 중 하나이다. ‘인간도 동물’이라는 범주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하게 인간과 동물은 다르다(다르다는 표현이 조심스럽지만, 일단은 쓰겠다)는 것에 의심이 없다.
그럼 여기에서 또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해서 그들의 존재까지 싫으냐, 그건 절대 아니다. 책에서도 나왔지만 몇 해 전 호주 산불 때도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야생 동물들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동물이 구조의 손길을 받지 못하고 그대로 스러지겠구나. 그로 인해 인간도 피해를 봤지만 정작 수치를 알 수 없을 만큼 많은 동물은 다 어디로 갔을까나. 아이들과 야영지를 갈 때도 마찬가지다. 시커먼 풍뎅이가 날아 들어와 어서 잡으라 악다구니 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확하게 이야기한다. 여기는 이 친구들이 사는 곳이라 우리가 신세를 지고 있으니 이들을 잡지도, 죽이지도 말아야 한다고, 산 채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이 책은 인간과 동물의 ‘공존’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단순하게 반려동물에서부터 지구를 공유하는 모든 동물에 관한 이야기다. 서두에서 말한 그들과 내가 다르다는 이질감에 대해 저자는 결코 다르지 않다 이야기한다. 생김새가 다른 것이라면 온 세계 사람 모두를 합쳐도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듯이 겉모습이나 습성이 다른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다만, 인간보다 늘 열등한 존재로 그들을 대하는 우리는 과연 그들보다 우등한가? 되묻는다.
재작년부터 기후나 환경에 관한 책을 보면 으레 드는 생각이, 인간에 대한 혐오다. 그래 혐오다. 인간은 당최 어떻게 생겨먹어서 이렇게까지 잔인하고 욕심 많은 존재인가? 열등과 우등을 넘어 우리 인간이 동물을 제대로나 이해할 수 있나 말이다. 우리와는 다른 영역으로 소통하고 살아가는 동물의 다양하고도 특수한 능력을 우리가 무슨 수로 설명하고 이해한다 말할 수 있는가?
사람보다 낫다는 말도 그렇다. 그 말의 전제는 사람보다 못한데 어쩌다 한 둘의 동물은 사람보다 낫다는 뜻이 아닐까? 인간을 구조하고, 인간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인간에게 이로운 동물에게서 우리가 흔히 느끼는, 그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동물. 왜 우리는 동물에게 인간다움을 필요로 하는가!
무슨 복을 타고나서 호모 사피엔스가 여태까지 살아남아 마치 지구, 아니 전 우주가 자신들의 것인 양 설파하지만, 그저 인간도 이 우주를 구성하는 여러 개체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한 번 더 강조하게 된다. 동물을 좋아한다고 해서, 즉 애호가들에게만 동물의 생존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취향이나 선호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닌 존재 자체로서 보호받고,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동물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기까지 얼마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그 말은 마치 나는 아이를 싫어해, 나는 보수당을 싫어해, 나는 목소리가 큰 사람을 싫어해 와 같이 소신과 가치가 드러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말 할 수 있었던 건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도 동물의 삶을 생각하고, 이해하고, 그들이 가진 권리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이야기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애호가만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만이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인류세, 홀로세와 함께 툴루세라는 용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인간과 비인간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만들기 위해 함께 번성하고 협력하는 태도와 방식이 필요’한 지금, 새로운 친족 형성으로 비인간 존재와 ‘함께’ 환경에 대한 책임을 높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