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력의 배신 - 원치 않는 집중을 끊어내는 몰입 혁명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23
한덕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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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서평마감일이라 아이를 재우고 거실로 나와 남은 책을 마저 다 읽었다. 맨 뒷장을 덮으며, 어? 이 책은 육아서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책의 표지를 꼼꼼히 들여다봤다. 분류번호는 300번으로 사회과학서로만 분류되어 있고, 그 어디에도 ‘자녀’라는 말은 없다. 타깃 독자층이 구체적으로 누구였을지 궁금한 책이라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책을 뒤적였다.

그러다 갈증이 일어 뭔가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까 초저녁 마지막 하나 남은 맥주를 털어 넣은지라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맥주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 몰라 냉장고를 열였는데 시원한 콜라와 탄산수는 버젓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만, 맥주가 없었던 거다. 순간 고민했다. 나 지금, 맥주 먹어얄것 같은데? 남편이 봤으면 아마 한마디 했을거다. “어지간히 해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카디건을 걸치고 지갑을 손에 쥐고는 도어록 손잡이를 밀어 현관문을 연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순간, 퍼뜩 떠오르는 생각. 나 혹시 중독인가?

4개에 9천 원인 세계맥주 4캔을 사들고 와서는 다시 식탁에 앉아 그중 하나인 블랑 맥주 330밀리리터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한 모금만으로도 충분하던 캔맥주는 우연히 한 캔을 다 비워내며 야릇한 쾌감을 느꼈고, 그렇게 1여 년을 마시고 나니 500밀리리터 캔도 모자라 한 캔을 더 까고 있는 나. 책에서처럼 ‘내성’이 생긴 건 아닌가? 수동적 내성과 충동적 갈망이 결합된 술에 대한 현저성이 높아진 상태는 아닌지…

이 책을 육아서에 가깝다고 표현한 건 바로 책 속 내용들이다. 메시지로만 이해하면 육아서에 국한되지 않으나 제시된 예들이 대부분 게임 중독이고, 게임 중독에 따른 폐해들을 자세히 열거하고 있어 자녀의 게임 과몰입으로 고민 중인 부모에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들이 그득했다. 특히나 재미있었던 부분은 게임 폐인과 프로 게이머를 비교한 부분이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게임 중독과 프로 게이머에 대한 얄팍한 지식과 이해가 통째로 드러난 부분이었다. 조절력을 상실한 게임 폐인이 게임을 이어갈 때의 뇌 모습과, 일종의 훈련으로서 게임을 이어가며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게이머의 뇌는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게임’ 자체에만 매몰되어 보지 못하는 지점들을 뇌의 각 부위를 예로 들어 자세하게 설명한다.

흔히들 집중력이란 한 가지 일을 꾸준히, 꽤 오랜 시간 지속시키는 능력이라 착각하기 쉬운데 여기서의 방점은 그 ‘한 가지 일’에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밤새도록 하면서 집중하는 건 집중력이 높은 것이 아니다. 하기 싫은 일이지만 본인에게 필요한 일을 집중해 처리하는 능력이 진정한 집중력이고 그것을 높이기 위해서는 멀티태스킹이라 해, 일의 전반적인 흐름과 속도를 컨트롤하고 지속시키는 힘이 바로 집중력이다.

책은 몰입과 중독의 차이를 명징하게 그려내며 결국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한 끗 차이이긴 하지만 명백히 다른 두 집중에 대해 한 번쯤은 고민해 봄직을 제시한다. 또, 중요하게 짚고 갈 부분은 바로 ‘공존질환’. 언제고 읽었던 중독에 관한 책에서도 언급한 부분인데 말 그대로 두 가지 이상이 공존하는 질환을 의미한다. 중독 증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바로 이 공존질환으로 인한 중독 증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아이가 게임을 밤새도록 해서 성적이 떨어지고 건강이 악화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반대로 건강이 악화되어 할 수 있는 건 게임밖에 없어 게임을 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중독 그 자체에만 가려져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문제점들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핸드폰을 하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길고 깊다면 한 번쯤은 다른 각도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쟨 왜 저렇게 핸드폰을 손에서 못 놔? 가 아니라 핸드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할 만큼 불안한 이유가 뭐지?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도둑맞은 집중력>과 결이 같지만 조금 더 뇌과학 쪽으로 기우는 책 <집중력의 배신>, 혹 게임중독과 관련한 정보가 필요하다면 1독을 권한다.

@jiinpill21

#도서지원 #책벗뜰 #책사애 #21세기북스 #몰입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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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아이 2 죽이고 싶은 아이 (무선) 2
이꽃님 지음 / 우리학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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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아이 2 - 이꽃님




얼마 전 있었던 일이다. 아침마다 등교하는 아이가 현관을 나서면 함께 따라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현관문을 열어 놓고 아이와 몇 마디 주고 받는다. 차조심해라, 물 많이 마셔라, 물건 잘 챙겨라… 부러 입에 쟈크를 채우지 않으면 하나마나한 말들이 잔소리처럼 튀어나올까 매 순간 입술을 오물거리며 아이를 배웅한다.

아이가 탄 엘리베이터가 1층을 내려간 걸 확인하면현관을 닫고 전실로 들어와 전실 창을 연다. 대략 5초~10초 후에 아이가 공동현관 앞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10층인 전실창에서 손을 흔들면 아이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 귀찮다는 듯 손을 흔들어준다. 대개는 그렇게 아이와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등교 일정을 마무리하는데, 그날은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간 아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순간, 10층에 선 엘리베이터에 누군가 타고 있었다는 게 상기되며 마음이 쿵하고 주저 앉았다.

하필이면 전실창에 고개를 내밀어 아이를 보는 동안 흰색 트럭이 무언가를 싣는듯 퉁탕거리는 소리를 냈고, 마치 그 소리는 아이가 그 트럭안으로 실려지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빌어먹을 말도 안되는 상상이 떠올랐다. 지아야! 지아야! 단지 안으로 울려퍼지는 쇠된 소리. 하의 실종에 노브라였던 옷매무새를 돌아볼 겨를 없이 현관문을 발칵 열었다. 당장이라도 1층으로 내려가 잠긴 트럭문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실제로 내가 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그럴지도 모른다는 정황 뿐, 정황만으로도 지옥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쳤고, 마음에서는 이미 일어난 ’사건‘이 되어버렸다. 지금이야 말하면서 조금 부끄럽기까지한 날구지지만 그 순간은 정말로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날의 나를 자꾸만 떠올렸다. 나는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끔찍한 망상을 했으며, 사람과 트럭, 아이의 부재를 왜 그런식으로 해석한건지 조금 의아스럽기도 하다. 여기 책 속에서도 주연이는 전연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주연이가 친구를 죽였는지 따위는 아무에게도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저,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고, 또 설령 직접 죽이지 않았다 해도(누명을 쓴거라 해도) 결국 죽게 만든것 아니냐는 도를 넘은 공격에 더이상의 진실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안타까운 마음도 잠시,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봉착했다. 어떤 사건을 접할 때 우리는 얼만큼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까? 나는 얼만큼 그것을 투명하게 받아들일 수 있나?

아직, 책을 끝까지 다 보지 못했다. 오늘이 서평 마감날이라 읽은데 까지의 단상을 써본다. 다 읽은 후 갈무리 된 감상은 댓글로 남길 생각이다. 혹, <죽이고 싶은 아이 1>을 읽지 않은 분들이라면 꼭 한번 그 책을 읽어보길 강권하고 작가의 책임감으로 쓰인 이 책 2권도 바로 이어서 읽어보길 권한다.

아, 그날의 뒷이야기를 마저 해야겠다. 다급히 현관을 열고 튀어나가려는 찰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들고 나간 우산이 고장나 우산을 바꾸려고 다시 올라온 아이의 유유자적한 모습에 어안이 벙벙. 다른 우산을 건네며 온 몸에 힘이 빠진 난 속으로 되낸다. 아이고, 내 팔자야!

@woori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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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구에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가장 우연하고 경이로운 지적 탐구 서가명강 시리즈 37
천명선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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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구에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천명선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좋은지 아닌지를 따졌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좋은 것들에도 무수히 많은 요인이 있고, 반대로 좋지 않은 것에도 이유는 여러 갈래로 쪼개진다. 그렇게 자잘한 이유는 차치하고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단순하게는 불통과 크게는 이질감이리라. 소통이라는 것이 비단 언어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비언어적 몸짓이나 눈빛, 또는 감정을 드러냄으로 서로 오가는 정보 또는 교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특유의 감각과 더 정교한 방법으로 그들과 소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다른 것에서 오는 이질감도 이유 중 하나이다. ‘인간도 동물이라는 범주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하게 인간과 동물은 다르다(다르다는 표현이 조심스럽지만, 일단은 쓰겠다)는 것에 의심이 없다.

 

그럼 여기에서 또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해서 그들의 존재까지 싫으냐, 그건 절대 아니다. 책에서도 나왔지만 몇 해 전 호주 산불 때도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야생 동물들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동물이 구조의 손길을 받지 못하고 그대로 스러지겠구나. 그로 인해 인간도 피해를 봤지만 정작 수치를 알 수 없을 만큼 많은 동물은 다 어디로 갔을까나. 아이들과 야영지를 갈 때도 마찬가지다. 시커먼 풍뎅이가 날아 들어와 어서 잡으라 악다구니 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확하게 이야기한다. 여기는 이 친구들이 사는 곳이라 우리가 신세를 지고 있으니 이들을 잡지도, 죽이지도 말아야 한다고, 산 채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이 책은 인간과 동물의 공존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단순하게 반려동물에서부터 지구를 공유하는 모든 동물에 관한 이야기다. 서두에서 말한 그들과 내가 다르다는 이질감에 대해 저자는 결코 다르지 않다 이야기한다. 생김새가 다른 것이라면 온 세계 사람 모두를 합쳐도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듯이 겉모습이나 습성이 다른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다만, 인간보다 늘 열등한 존재로 그들을 대하는 우리는 과연 그들보다 우등한가? 되묻는다.

 

재작년부터 기후나 환경에 관한 책을 보면 으레 드는 생각이, 인간에 대한 혐오다. 그래 혐오다. 인간은 당최 어떻게 생겨먹어서 이렇게까지 잔인하고 욕심 많은 존재인가? 열등과 우등을 넘어 우리 인간이 동물을 제대로나 이해할 수 있나 말이다. 우리와는 다른 영역으로 소통하고 살아가는 동물의 다양하고도 특수한 능력을 우리가 무슨 수로 설명하고 이해한다 말할 수 있는가?

 

사람보다 낫다는 말도 그렇다. 그 말의 전제는 사람보다 못한데 어쩌다 한 둘의 동물은 사람보다 낫다는 뜻이 아닐까? 인간을 구조하고, 인간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인간에게 이로운 동물에게서 우리가 흔히 느끼는, 그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동물. 왜 우리는 동물에게 인간다움을 필요로 하는가!

 

무슨 복을 타고나서 호모 사피엔스가 여태까지 살아남아 마치 지구, 아니 전 우주가 자신들의 것인 양 설파하지만, 그저 인간도 이 우주를 구성하는 여러 개체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한 번 더 강조하게 된다. 동물을 좋아한다고 해서, 즉 애호가들에게만 동물의 생존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취향이나 선호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닌 존재 자체로서 보호받고,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동물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기까지 얼마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그 말은 마치 나는 아이를 싫어해, 나는 보수당을 싫어해, 나는 목소리가 큰 사람을 싫어해 와 같이 소신과 가치가 드러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말 할 수 있었던 건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도 동물의 삶을 생각하고, 이해하고, 그들이 가진 권리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이야기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애호가만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만이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인류세, 홀로세와 함께 툴루세라는 용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인간과 비인간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만들기 위해 함께 번성하고 협력하는 태도와 방식이 필요한 지금, 새로운 친족 형성으로 비인간 존재와 함께환경에 대한 책임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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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달의 시간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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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들, 오래 지나지 않아서 잊어버린 영화 티켓들을 전시하지 않아도 나는 책을 쓰고 영화를 사랑한다. 누구의 인정도 동의도 필요로 하지 않는 고요하고 나지막한 나의 취향, 나의 삶이다. 17

이따금 언어,라는 건 무엇인가에 대해 골몰한다. 모국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어쩌면 모국어이기에 불가능한 그것을 타인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언어를 당겨와 써야 할까? 내가 알고 있는 세계 안에서 결코 한 뼘도 벗어나지 못할 고작, 그것뿐일 말들.

누군가의 말, 특히 작가들이 이야기하는 것들에 귀를 기울인다. 눈길을 열어 검은색 선들로 그려진 글자를 바라보면서 고작, 그것뿐인 나의 세계에 적지 않은 훈풍을 불어 넣는다. 희한한 것은, 눈으로 활자를 쫓는다 해서 그것이 곧 하나의 언어로 나에게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모국어지만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문자들, 그 언어들.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이 책 <낮달의 시간>은 언어로 다가오는 무수한 단상들에 대한, 운치 있는 사고의 시간을 안겨주었다. 인스타에서 우연히 본 글귀를 타고, 타고, 타고 가니 이 책이 보였다. 이 책을 쓴 저자의 화사한 모습이 담긴 사진도 보았다. 책의 표지가, 그 색감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예뻐서 꼭 손에 쥐어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책에 쓰인 글자들을 읽어보고 싶었고, 글자를 읽어내며 얻게 될 언어와 그 단상들을 느껴보고 싶었다.

짧은 글들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좁은 세계에 인생을 두고 사는 사람’이 자신이라 말하는 그녀는 ‘가차 없이 살아갈 것’을, ‘떠나야 할 때를 아는 낙화처럼 기꺼이 아름답게 스러져 갈 것’을 다짐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에서 그것들을 언어로 옮겨놓은 글은, 읽었다고 아는 것이 아닌 담고 있는 감정과 모습이 하나씩 그려져 다 읽고 난 후 하나의 전시회를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모국어라고 다 읽을 수 없고, 자국민이라 해서 나누는 말들이 다 대화가 되지 않는 세상. 우린 타인을 해석하려 애쓰고 그런 일련의 일들의 가치를 곱씹어 본다. 낮달의 시간, 홀로 남겨지지 않을 이야기들을 나누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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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서은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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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 / 서은국

“아이를 보는 눈빛에 꿀이 뚝뚝 떨어지네요.”
얼마 전 중앙도서관 독서회때 등교하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갔다. 두 시간동안 진행되는 독서회, 늘 그렇듯 1층 아동자료실에 아이를 두고 2층 강의실로 갔다. 혹 무슨일이 있으면 엄마를 찾아 오라 이르고 강의실 위치를 알려줬다. 1시간 가량이 지났을 무렵 강의실 유리창 밖으로 아이의 치맛자락이 보인다. 웬만해선 찾아오지 않는 아인데 그날은 무슨 바람인지 강의실로 찾아와 입구 옆에 쪼그리고 앉아 안을 살핀다. 모임을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한다는 마음과는 다르게 자꾸만 시선이 아이에게로 갔고, 이내 참여자분들도 아이의 존재를 알아챘다. 애써 아이를 무시하고는 이어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자꾸만 아이에게로 눈길이 갔고, 그럴때마다 아이에게 곧 끝나간다는,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애절한 눈빛을 보냈다. 그걸 본 한 참여자가 말한다. 정말 좋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아이를 본다고.

나 같은 경우는 아이를 낳고 비로소 삶의 의미를 진하게 느낀 케이스다. 이전에는 없었던 생경한 감정이고 행복이다. 이따금 아이에게 말한다. 엄만 너를 만나려고 여태 살았던 것 같아. 너가 엄마 딸이라는 게 여전히 믿기지 않아.

<행복의 기원>을 이야기 하는데 왜 아이를 들먹이냐고, 나의 아이가 나에게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진화론적으로, 또는 생물학, 또는 뇌과학으로 이 ‘행복’을 설명하면 저자의 말마따나 생존과 번식일 수 있다. 재미있게도 ‘새우깡’을 예로 행복의 매커니즘을 이야기한다.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면 꼭 1독을 권한다) 새우깡 자체가 아니다. 새우깡을 먹을 때 뇌에서 유발되는 쾌감, 즉 즐거움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행복을 기원하는 이유는 생존을 위한 쾌감 또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신적 도구라 일컫는다.

여기서 나의 아이를 떠올린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아이를 기르는 일임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평생 스스로를 옭아 맸던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행복이라는 것이 물질적 풍요나 안정보다는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같은 경험을 나누는 것에 더 의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의 매 순간이 행복 그 자체였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시시한’ 즐거움들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하다못해 컵에 물을 따르는 아이의 모습에서도 행복을 느끼고(생각해보라, 내가 먹여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단 한방울의 분유도 먹지 못하던 동물이 버젓이 스스로 물을 따라 마시니 경이롭고 대단한 일이 아닌가), 식당 테이블에 조각 휴지를 깔아 수저를 올려주며 “엄마는 바닥에 놓는거 싫어하니까!”라고 말하는 순간에 거짓말 조금 보태 그 자리에서 녹아내릴 것만 같다. (단순한 친절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엄마가 혹은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본인의 사고 안에서 상대의 취향을 고려하고 배려하는 어찌보면 가장 고차원적인 인간의 태도다)

행복의 순간을 강도가 아닌 빈도로 바라보면 아이가 눈을 뜬 아침부터 눈을 감는 밤까지 매 순간이 행복이다. 그저 저 아이가 ‘살아’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차고 넘칠만큼 행복하다. 내외향형 성향이나 긍부정적 성격을 이야기하며 인간은 결국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의 질이 결정된다 이야기한다. 외향형인 사람이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다름 아닌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 때문. 현대인의 총체적인 사망 요인은 사고나 암이 아니라 외로움이라는 오랜 연구 결과가 쉽게 간과되지 않는 이유다. 아이를 출산함으로 인해 내 곁에 누구보다 뜨거운 사람을 둘 수 있게 되었다. 물리적으로 밀착되지 않아도 나에게 하나의 의미이자 존재인 누군가를 그것도 나로 인해 세상에 놓아둘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만으로 가슴이 뻐근하다.

오늘 아이와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했다. 에어컨 바람에 아이가 추워했다. 따로 가디건을 챙겨가지 않아 당황했는데 그것도 잠시, 중간 팔걸이를 올리고 아이에게 다가가 두 팔로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잠시 뒤 아이가 말한다. “엄마가 안아주는 게 제일 따뜻해.” 허리가 아픈것도, 다리가 저린것도 중요치 않을만큼 아이와 나누는 그 온기에 자꾸만 눈물이 났다. 영화를 보느라 우는 줄 알았겠지만 아이와 나눈 그 뜨거운 시간에 감사함이 밀려왔다. 극장에서 나와 식당으로 이동하는데 아이가 내 손을 잡았다. 인도가 따로 없어 앞뒤로 차가 오는지 확인하느라 바빴는데 그런 내가 정신 없어 보였는지 아이는 내 손을 잡고 “엄마도 이 쪽으로 와” 걱정한다. 식당에 앉아 잠시 핸드폰을 보며 메시지를 확인하는데 아이가 일어나 셀프 반찬대로 가 야무지게 반찬을 덜고 오고, 테이블에 휴지를 깔아 수저를 놓아준다. 그저 ‘잘컸다’는 말로는 한없이 부족한,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한 사람으로서 앞에 앉은 아이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책의 마지막 문구에서 오늘 그 식당에서의 우리 모습이 떠올랐다.

행복의 핵심을 사진 한 장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의 내용과 지금까지의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총체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람. 191

나의 행복 압정들을 온 사방에 흩뿌려 둔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오랜 책벗들과의 책모임, 카페에 앉아 글쓰기, 늦은 저녁 베란다에 앉아 아이와 간식 먹으며 영화보기, 아침에 일어난 아이 헝클어진 머리 뒤로 쓸어 넘겨주기, 밤비랑 카페에서 세시간씩 수다 떨기, 희망이랑 요가하기, 남편이 만들어주는 요리먹기, 커피 나누기에서 아포카토 먹기, 새벽에 일어나 거실로 나왔는데 열린 창으로 새소리 듣기등. 나만의 행복압정을 구체적으로 떠올려보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행복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조금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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