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보다 불행한 아이 ㅣ 문지 푸른 문학
유니게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1월
평점 :
나보다 불행한 아이 - 유니게
이 책은 버림받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닌 뜻밖의 행운으로 다가온 어른들의 이야기이다.
만들어 놓긴 했는데 정작 갓난 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자 모두가 눈사람처럼 얼어붙는다. 섣불리 나설 수 없었을 때, 이제 갓 교회의 교인이 된 젊은 여자가 베이비 박스 안 아이를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그녀는 그 순간, 무엇을 가늠하고 또 무엇을 준비하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우리의 무언가가 외부로 뻗어 나가는 데에는 사실 많은 것이 필요치 않은 것 같다. 그저, 덤덤한 용기와 호들갑스럽지 않은 호의 정도면 족하다.
찬아, 너는 엄마가 널 ‘필요’로 해서 데리고 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가 잘해서 엄마 아빠가 널 사랑해 주는 거라고 생각한 거야? 아줌마가 생각하는 부모는 절대 그렇지 않아. 아무도 손을 들지 않을 때 네 엄마가 손을 들어 널 안아든 건 네가 어떻게 해서가 아니라, 그냥 너이기 때문에. 다른 이유는 필요 없이 그저 너이기에 너를 받아들인 거야. 그걸 모르는 네가 이 아줌마는 무척 아팠는데, 앞으론 절대로 잊지 마. 네가 어떤 사람이건 간에 어느 누구도 널 괴롭힐 수 있는 이유가 결코 없다는 것과, 부모는 자식이 잘해서, 그게 뭐든 잘하고 잘나서 자식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거. 꼭 기억하고 살아! 너를 안온한 그 공간에 부풀리거나 줄이지 말고 그대로 온전히 들어차 있길 바라.
누워 있는 것도 하루 이틀, 우울증으로 빵 부스러기처럼 바스러진 엄마가 그래도 ‘살아’ 있길 바라는 아이는, 이제 갓 태어난 조그만 이복동생을 살뜰히 챙긴다. 하지만 신발을 새하얗게 빨아 신고 다니면서도 자신에게 덕지 덕지 붙었을 오물 같은 외로움과 불안감을 끝내 감추지 못하는 중학생 아이는 그저 ‘아이’일뿐이다. 그런 아이들 곁에 옆집 아줌마는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그 아이들을 돌보고, 껴안고, 입 맞추고 사랑해 주는 것일까? 자신이 떠나며 복지센터에 신고해 아이들의 신변안전을 걱정해 준 옆집 아줌마는 달이의 말처럼 과연 ‘자기가 편하자고’ 그렇게 한 것일까?
달아, 이 아줌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어른들은 말이야. 자신이 직접 해주지 못하더라도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이란다. 옆집 아줌마가 그저 동정심이 많아서? 연민이 많아서 너희들을 돌봐줬다고 생각하지? 아니야. 이 아줌마도 그런 줄 알고 여태 살았는데 마흔이 넘어가고 보니 알겠더라. 사람이 사람을 구원하는 건, 들여다봐 주는 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알맞은 온도의 애정을 지속적으로 부어주는 건 단순히 긍휼히 여기는 마음만은 아니라는 것. 가르쳐 주는 거야.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자랄까 봐, 가르쳐 주는 거. 그래서 달이가 아주 잘 배운 것 같아. 그런 너를 이 아줌마도 꼭 한번 만나보고 싶네.
아, 할머니 얘기를 안 할 수 없지. ‘세렌디피타스’ 무슨 뜻인지 궁금했는데 라틴어로 ‘뜻밖의 행운’이라는 뜻이더라고. 할머니 빌라 이름이 왜 세렌디피타스였는지, 그제야 눈이 번쩍 떠지더라. 달아. 이제 알겠지? 할머니도 네가 본 적 없는 너의 아버지도 그렇게 네 삶 속에서 별똥별처럼 떨어져 안기는 행운들이라는 걸 말이야. 그러니 아무리 지치고 힘든 시간들이 닥쳐와도 잊지 말아. 다 태워먹은 할머니의 요리도, 다시 쓰기 시작한 할머니의 소설도 너의 자리에서 달고 또 감사하게 받아 주길 바라. 세렌디피타스! 너의 모든 날들에 기도를 보낼게. 잘 지내!
@moonji_books
#도서지원 #문학과지성사 #나보다불행한아이 #책벗뜰 #책사애24171 #서평단 #유니게 #청소년문학 #장편소설 #소설추천 #청소년소설 #베이비박스 #미혼모 #상처 #치유 #양산독서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