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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 경계의 시간, 이름 없는 시절의 이야기
허태준 지음 / 호밀밭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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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평>

졸업과 취업, 그 내면을 들여다보다

 

 

1. 학생들, 교문을 나서다

나는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20여 년 간 밥벌이를 하면서 여러 아이들을 만났다. 나는 오래 눌러 앉아 있으나 아이들은 3년을 다니고 좋든 싫든 학교를 떠난다. 졸업한 아이들은 간간이 소식을 전해온다. 사회나 대학에 적응이 끝나면 뜸해진다. 연락이 닿지 않게 되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셈인데, 교사들의 관심도 거기까지이다. 간혹 그렇지 않아서 십 수 년이 지나도록 소식을 주고받는 아이들이 있지만 성공(?)하였거나 여전히 힘들거나 한 아이들 몇몇이 그럴 뿐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렇게 잊혀지고,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게 된다. 사회의 변화를 가늠하면서 세상 속으로 나아 간 아이들의 속사정들을 다만 짐작할 뿐이다.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들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과 달리 특성화 고등학교 학생들은 절반이 취업을 하고 절반은 진학을 한다. 최근에는 취업하려는 학생들이 훨씬 많으나 그들을 모두 수용할 만한 현실적 사회적 환경과 여건은 여전히 충분하지가 않다. 적성과 재능, 장래의 희망, 성적, 집안 사정 등 학생들의 진로 결정 앞에 놓인 선택지는 고려해야 할 요인들이 다양하다. 특별히 정해진 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성공하기도 하고 더러 실패하기도 해서 선택과 결정의 순간 그 명암은 서로 엇갈린다. 먼 장래를 두고 보면 어떤 결정이 옳은 것인지 예단하기 힘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람의 일을 운발이라 말할 수는 없다. 학생은 학생대로, 교사는 교사대로 최선을 다한다. 학생은 목표한 곳에 지원할 자격을 갖추기 위해 오래 공들이며 노력하고, 보다 나은 조건의 취업처를 찾아 지원하고, 몇 차례의 시험과 면접을 준비한다. 교사도 늘 거기 함께 있다.

어떻든 학생들은 교문을 나서고, 더러 교복 대신 작업복을 입고 그들의 세상과 삶을 맞이하게 된다. 가르치는 일에는 한결같았을지 모르나, 그것으로 교사가 할 도리를 다했다고 하면 학교를 나서는 아이들은 기댈 데가 줄어들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미주알고주알 간섭할 수도 없다. 그래서 다만 아이가 나서는 바깥의 사정은 어떠한지, 그곳의 환경과 인식은 사람이 사람답게 노동할 만한 곳인지 살피는 것을 외면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2. 마이스터고 졸업생의 자전적 에세이,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우리가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그 말과 행위에 주목한다.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사람의 말과 행위가 성실하였는가, 진실하였는가를 따져보게 된다. 성실성은 게으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진실성의 문제도 단순한 거짓의 반의어가 아니다. 성실함과 진실함에는 진정성이 뒤따른다. 진정성은 어떠한 타율적 규범이나 질서가 강요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내면의 온 정성이 그가 이루고자 한 일에 고스란히 스며있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나아가 그 언행이 개인의 성취뿐만 아니라 사회의 가치 실현에도 기여하고 있는가를 따져보게 된다.

사람이 쓴 글을 평가하는 것도 이러한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체험과 사유가 녹아있는 자전적 에세이를 마주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의 삶이 성실하였는지, 진실하게 세상을 살았는지 보게 된다. 그리고 말하고자 하는 것의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 자기 환경을 해석하고 대응하며 삶이 어떠한 굴곡과 변화를 겪었는지, 대안적 삶은 어떻게 설계하였는지, 반성적 성찰이 우리시대의 주류적 흐름과 모색에 닿아 있는지 등을 살펴보게 된다.

허태준은 마이스터고를 다녔다. 학교를 다니면서 현장실습을 하고, 졸업하고 산업체기능요원으로 복무했다. 그의 목소리는 앳되지만 현장에서 성실하게 일했고, 정직하게 자기 삶을 감당하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경계의 시간, 이름 없는 시절의 이야기(호밀밭, 2020)는 그가 쓴 자전적 에세이다. 책 속에는 현장에서 일한 경험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현장실습생으로서 겪은 혼란과 학창시절의 추억, 불안했던 정서들, 산업기능요원으로 회사에서 겪었던 크고 작은 사건과 갈등, 타인과의 관계, 차별과 편견, 또 다른 삶에 대한 꿈등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은 21세기 한국 사회 청년 노동자의 삶을 들여다볼까 한다.

우리 시대를 사는 아이들은 어느 지점에서 열의를 쏟고 보람을 느끼는지, 또 어느 지점에서 힘들어하며 머뭇거리는지를 한번 살펴보려 한다. 우리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어떠한 점에 관심을 갖고 집중해야 하는지, 아이들을 담는 사회는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려고 한다.

 

3. 현장실습과 산업체 기능요원 근무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여름까지 프로 선수를 꿈꾸며 야구를 했다. 백일장에 입상한 경험도 있어서 문예창작과가 있는 예술고에 진학하고 싶어 했다. 작은형이 대학을 가서 집안의 학비 부담을 들려고 마이스터고에 진학을 한다. 가정 형편으로 자기 의지와는 거리가 먼 진로를 결정한, 우리 주위의 흔한 친구 중 한 명이다. “기능부나 운동부처럼 교실을 벗어난 아이들을 더 이상 교육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불편한 기억을 가진 학생이다.

학교에서 수업하는 동안, 가끔 실습하면서 고개를 들었을 때 굉장히 낯선 기분들과 마주하곤 하면서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었다고 술회한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아쉬운 대로 여전히 시를 보면 가슴이 뛰고, 공책 빈자리에 수많은 문장들을 적어 두기도 하면서 편안하고 괜찮은 학교생활을 이어간다. 그의 주위에는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인문계에서 대학 가기에는 성적이 애매해서 대기업 취업을 희망하며 진학해 온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재학 내내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했고, 5개의 기능사 자격증, 다수의 입상 경력이 있었으나 토익 점수만큼은 형편없었다. 대기업에 취업하지 못하고, 3학년 9월에 중소기업에 나가 현장실습을 한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일을 하고, 방송대학 프라임칼리지 강의를 듣고, 동창들이 다니는 대학의 독서 모임 등에도 참가한다. 현장실습이 끝나자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된다. 열아홉 살부터 일을 시작하여 소집해제까지 37개월 간 근무한다. 일하는 청(), 대학생이 아닌 이십대, 군인이 아닌 군 복무자, 어느 한쪽으로도 완전히 넘어가지 못한 채 경계 위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는 그의 술회 속에 산업기능요원의 위치가 드러난다.

그러나 근무하는 동안 힘들기는 했지만 기댈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고 했다. 회사에 다니며 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 매달 들어오는 월급,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친구들,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독립적인 감각, 홀로 글을 쓰는 긴 새벽의 시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게 많다는 믿음을 그는 갖고 있었다. 그가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하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듣는 것이, 그의 자전적 에세이를 읽어 내려가는 문법이다.

 

4. 취업과 일, 업무일지와 불안들

그의 취업 초기 기록은 이러하다. “학교에 다닐 때는 시험기간에 요약노트 만들기를 했다. 나름 효율적인 공부법으로 묵묵히, 교과서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흩어진 정보를 압축하고, 최대한 짧고 간단하게, 단어나 핵심 위주로, 쓸데없는 정보를 걷어내면서 정리해나가면 안심이 되었다. 회사에서도 불안한 마음이 크면 클수록, 나는 더 끈질기게 무언가를 기록했다. 처음 회사에 출근했을 때도 그랬다. 조명 사이로 피어오르는 먼지와 심장을 죄는 기계음. 열아홉의 나는 긴장감에 계속 마른침을 삼켰다. 학창시절의 부드러운 여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날카롭고 뜨거운 것, 자칫 나를 상처 입힐 것만 같은 낯선 형상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작업복을 걸쳤을 뿐 공부하듯이 업무를 처리하고, 학교에서 배운 방식대로 자기 일을 놓치지 않고 야무지게 하려는 이 청년은 긴장을 통해 자기 불안을 관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의 스트레스는 여느 숙련 노동자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구든 처음에는 다 그런 것이라 말할 수 있지만 직업 사회로 진입하는 아이들의 감당하기 힘든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몇 마디 말 속에는 그의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는 회사의 공무팀에서 근무했다. 공무팀은 정해진 업무 대신 공장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부서로, 제품을 만드는 일과는 다른 업무였다. 공장에는 수많은 기계가 있고, 그 기계들은 필연적으로 여러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이었다. 기계가 멈춘다는 건 작업이 멈춘다는 이야기고, 그러면 생산성과 매출에 지장이 생기게 되니 공무팀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며 공장이 계속 돌아갈 수 있도록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 팀이었다. 알아야 하는 지식도, 다루어야 하는 기계도 다른 부서에 비해 훨씬 많았다. 그는 기계 사용법, 공구 위치, 주의해야 할 점, 말썽을 자주 일으키는 기계와 대처 방법, 강조해야 할 점과 조심해야 할 부분 등 흩어진 말들을 주워 모아 수첩에 적고 퇴근 후 다시 공책에 옮겨 적는 일을 반복했고, 그가 겪어 온 불편함과 개선점을 기록했다고 한다. 거기엔 과하다 싶을 만큼 온갖 사소한 내용도 수첩 여백을 채우고 있었다고 한다.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는 지식이, 열아홉의 그에게는 낯선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소중한 조각이었다. 무서우니까. 의지할 곳조차 마땅치 않기에 자꾸만 돌아보고, 되묻게 되고. 사람이 불안하면 무엇이든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써내려 간 업무일지는 그의 불안을 상쇄시켜 준 훌륭한 동료였던 셈이다. 적어도 그에게 첫 직장은 즐거운 곳이 되진 못했던 것 같다. 그는 현장실습에서 시작하여 37개월 동안 같은 회사에서 근무했다. 기계 설비를 고치고, 하루 10시간씩 이어지는 노동을 했다고 한다. “다시 철을 깎고, 기계를 고쳐야 한다. 용접할 일도 산더미였다고 하는 한 문장이 그의 고단함을 짐작하게 해 준다.

친구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는 그들의 노동 강도는 만만치가 않다. 그의 친구는, 선임 작업자가 그만두자 곧바로 금형 기계를 전담하며 아침에 일을 시작해서 새벽에 퇴근하기도 하였다는데, 월급 명세서에 잔업 200시간이 찍혀있었다고 한다. 최저 임금으로 월급을 300만 원 가까이 받는다고. 일반 노동자가 아니므로 퇴사나 이직이 쉽지 않으니 회사는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한다. 그 친구의 가족들도 그에게 그 정도는 버틸 만하다고 했다는데, 출발한 열차에서 내리기가 수월찮듯이 주위의 정황들은 사슬처럼 엮여 있는 법이다. 한번 발 들여 놓은 직장이라는 곳은 쉽게 벗어날 수가 없는 곳이기도 하다. 52시간 근무제(법정근로 40시간, 연장 근로 12시간)에서도 한참 더 나아 간 잔업 200시간을 한다는 것은 공분을 살 만하며, 지금도 이러한 일이 현장에서 일어나며 실제 가능하다는 것이 다만 놀라울 뿐이다.

그의 또 다른 문장을 보자. “취업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두근거리는 마음, 기대, 가능성은 하나둘 사라지고, 해야만 하는 일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나름대로 깊이 고민하고 선택한 회사도 다니다 보면 아쉬운 점이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선택은 성취가 아니라 상실인지 모른다. 손에 넣지 못한 미래가 어느새 닿지 않는 먼 곳으로 떠내려가는 것이다. 생각보다 더 힘들었고, 생각보다 더 억울했고, 생각보다 더 부족했다. 정신 차려보면 도망갈 곳조차 마땅치 않은 자신을 마주해야 했다. 가끔은 정말 숨이 막혔다.”

선택을 성취가 아니라 상실이라 말하는 데서 가슴이 아프다. 누구든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꿈꾸며 살아가지만 현실에서는 무엇인가를 시작한다는 것이 꿈꾸어 온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는 일이라는 평범한 이 말이 다소 서글프기까지 하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며, 미래의 꿈이 현재의 선택에서 일그러지는 경험을 교복을 벗고 작업복을 입은 첫 직장에서 마주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참 가슴이 아픈 것이다.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가 열려 있고, 과정도 공정하며, 결과도 정의롭다고 하지만 실상 그러한지 의문일 때도 있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상실에 관한 통찰을 인간 세상은 비켜갈 수 없으니 안타까운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첫 직장에서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너무 많이 겪은 것 같다는 그의 진술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5.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배려, 갈등, 수치심들

기업은 일을 하는 공간이다. 일 중심으로 사람이 준비된다. 경력과 숙련 정도에 따라 업무의 경중이 나눠지고 그 효율을 따져 배치된다. 나머지 사정들은 부수적이고 후순위 고려 대상이다. 적어도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생산성의 노예일 수밖에 없다. 이익을 내는 것이 기업 경영의 궁극적 목적이니 이러한 대전제는 언제나 옳다. 그러나 직장을 바라보는 관점은 좀 다를 수 있다. 이익을 내는 것이 경영의 관점이라 한다면, 직원의 복리 등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그 반대편의 입장이다. 기업의 가치 창출이 투자 자본과 경영 전략에 달려있다고 하는 주장이 존중받으려면 그것을 지지하고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인간의 노동이라는 전제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직장은 고유한 분위기를 갖고 있고, 그것이 직원들의 심리 상태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노동하는 사람들의 인간관계도 그 영향 아래에 놓인다.

산업기능요원은 병무청에서 지정한 산업체에서 210개월 간 근무하면 현역 입대를 하지 않아도 군 복무를 이행할 수 있는 대체복무 제도이다. 공기업이나 규모가 큰 기업은 지정 업체에서 제외되고 중소기업이 주로 이들 지정 산업체에 해당한다. 취업하는 이들은 대부분, 조건이 다소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군 문제를 해결한 후 이직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산업기능요원 복무를 희망한다고 한다. 육군 병장의 복무가 16개월인 걸 감안하면 긴 시간이지만, 회사에서 일한 경력을 인정받으며 적지 않은 돈까지 벌 수 있으니 군대에 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조건이기도 하다.

저자가 근무하는 직장은 보람된 공간이면서 불편한 곳이기도 하다. 다른 부서와의 갈등, 선배의 일방적 언사와 그에게서 느낀 모욕감, 회식 자리에서의 욕설과 멱살잡이 등 숱한 일들이 지나간다. 외부 기관에서 방문하여 근무 실태조사를 하면서 폭행이나 폭언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하고 넘어가겠다고 할 때 그가 어떠한 종류의 수치심을 느꼈다고 하는 것은 상처에 관한 은유적 표현으로 읽힌다. 근무하는 회사를 의심하고 이런 저런 조건을 확인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할, 부정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기숙사에 유령이 산다는 그의 표현도 마찬가지다. 투명인간처럼 기숙사 방에 갇혀 있는 듯한 그는 끊임없이 질문한다. 왜 열아홉 살부터 일을 했을까, 왜 돈을 벌어야 했을까.

그는 불안을 이야기하지만 낙천적인 데가 있다. 일 처리가 서툰 후배의 어깨를 두드린다. 함께 일하는 동안 누구도 다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업무의 뒤편에 여전히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의 기록을 보자. “나는,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독서모임을 하고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나는, 한 번도 구속된 적이 없었다. 하루 12시간을 공장에 있으면서도,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쓰면서도, 세 명이서 지내는 여섯 평 남짓한 기숙사 방에서도, 나는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훈련소에서도 계속해서 책을 읽고, 끊임없이 뭔가를 썼던 것처럼. 사건과 대립하는 자아가 아니라, 사건이 지나가는 통로로써 자신을 인식하는 순간, ‘는 사건으로부터 독립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젊은 영혼의 목소리가 자유를 말하는 것은 늘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그 무엇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그들의 특권일 것이므로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는 아이들이 모두 이러한 생각으로 자기 삶을 살기를 기대한다. 사건이 생길 때마다 예민해지다보면 그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지 않겠는가. 이것 또한 지나가는 것이며, 다만 그 통로에 내가 서있는 것이라는 인식은 얼마나 놀랍고 신선한 것인가.

 

6. 돈과 가족, 그리고 소외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아이들이 특성화 마이스터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경향이 있다. 성적도 그만그만해서, 대학을 가더라도 수많은 대학생들의 틈바구니에서 다시 취업을 준비해야 하고, 빚을 내어 기회비용을 들이더라도 좋은 직장을 구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기 취업을 해서 돈을 모으고,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겠다는 아이들의 생각은 대견하고,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젊은 시절에 부지런히 일하고, 알뜰하게 모아서 자수성가한다는 것이 한국사회에서는 오히려 익숙한 이야기다. 자기 노동을 통해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꿈을 꾸고, 실제로 목표를 성취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모든 것이 꿈꾸는 대로 이루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겠는가.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현장실습일 때는 기본수당과 정부보조금을 합쳐 130만 원 정도의 급여를 받았다. 월급 통장과 카드는 어머니가 관리했고, 한 달에 20만 원의 생활비를 받았다. 그 돈으로 휴대전화 통신 요금을 내고,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서 책을 사고, 주말에 가끔 친구를 만나 영화를 보고 커피를 마셨다. 학교를 졸업하고 잔업을 하니 들어오는 돈이 더 많았다. 100만 원은 적금으로 넣고, 생활비를 제외하고 남은 돈은 다른 통장에 모았고, 그 돈으로 노트북을 사고, 일본어 학원에 다니고, 방송통신대학교 등록금을 내고, 서울에 올라가고, 주변 사람들한테 가끔 술 한 잔 정도는 살 수 있었다. 내가 모은 돈인데도 통장으로 들어온 금액을 환산하니 놀라웠다. 성취감만큼이나 잘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좋았다. 하지만 그런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집에서 돈을 보내줄 수 있냐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빚이 있는데, 이자를 너한테 주는 게 낫지 않겠나, 매달 얼마씩 갚으면 어떨까. 더 묻지 않고 예금을 깼다. 다음 해에는 한 번 더 돈을 보냈다. 1년 만기 적금에, 생활비를 아껴가며 모은 돈까지 전부 보냈다. ATM의 이체 한도는 600만 원이어서, 몇 번이나 같은 계좌의 비밀번호를 반복해서 입력해야 했다. 돈을 다 보내니 명세표 3장이 남았다.”

일하는 그의 주변 젊은 친구들은 대부분 집에 돈을 보내고 있었다. 대단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돈이 전부가 아니니까. 하지만 열아홉 살부터 일을 시작한 젊은 청년이 이러한 현실을 잘 이겨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로부터 빨리 돈을 벌어서 좋겠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그로 인해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했다고 한다. “시간을 지식으로도, 경험으로도, 새로운 기회로도 온전히 치환하지 못한 채 돈을 빼면 뭐가 남는 것일까,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공허한 마음으로 2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것일까하는 탄식을 한다. 그들의 부모가 뭐 때문에 필요했다, 어디다 썼다, 고마웠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그 돈들을 모두 가져갔을 때, 그들 젊은 청년들의 좌절과 탄식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성취감은 흩어지고, 불안 속에서 키워왔던 안도감도 일순간 사라져버리지 않았겠는가. 이때도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은 그들의 영혼에 어떤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 등장하는 그레고르가 불현듯 떠오른다. 그는 파산한 아버지의 채무를 온전히 자기 힘으로 해결해 가면서 가족을 부양해가는 청년 가장이었고 여동생의 학업까지 챙긴, 성실하고 모범적인 노동자였다. 벌레로 변신하기 전까지 그는 일벌레로 살았다. 한 가족의 생계가 그에게 달려있었고, 가족의 화목과 연대와 배려가 모두 그의 경제적 능력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자기희생적이었던 그레고르는 가족으로부터도 구원받지 못했다. 버림받다시피 했다. 역설적이게도 소설 속 그레고르는 경제적 이해관계 속에 매몰되어 버린, 현대사회의 소외된 인간 화석 정도로 발견될 뿐이다.

몇 해 전, 내 수업을 듣던 어느 학생이 <변신>의 독후감에 이런 생각을 적은 적이 있다. 그레고르가 벌레인 채로 죽자 잠자 부부의 눈에는 딸의 모습이 그들의 새로운 꿈과 아름다운 계획을 다짐해주는 확증처럼 보였다. 도무지 이해하기조차 힘든 가족인 것 같다. 새로운 꿈, 아름다운 계획, 왜 그것을 딸의 모습에서 찾을까? 자신들의 힘으로 해도 얼마든지 노력하면 가능할 것 같은데, 어떻게 딸에게 그것을 바라는지. 잠자 부부가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 (……) 이 책을 읽고 다시 한 번 돈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커서 부모님께 돈을 가져다 줄 때가 되었을 때, 우리 부모님도 나를 돈으로 생각할까 걱정도 많이 되지만 자식을 돈으로만 생각하는 잠자 부부처럼 저렇게 심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가 응시하는 또 다른 곳을 인용해 보자. ‘52시간 근무제’, 혹은 저녁이 있는 삶과 같이 더러 제도를 바꾸고 인식을 전환하려 하지만 현실의 경제적 효용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돈은 힘이 세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정서적 밴드는 이기적으로 회피할 수 있는,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느슨하지가 않다. 사람을 분발하게도 하지만 한없이 옭아매기도 한다.

잔업 없는 한 달. 시급제가 기본인 현장에서 잔업이 없으면 월급에 차이가 컸다. 누군가에게는 몸이 힘들고 시간이 없어도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지켜야 하는 가정이, 키워야 하는 아이가 있었다. 현장실습생으로 입사해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한 이들 중에는, 마음 한편으로 회사를 거쳐 가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직원들은 아니었다. 나이가 많을수록,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을수록, 회사를 그만두거나 옮기는 선택을 쉽게 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회사는 환승역이 아닌 도착지였다. 통근버스에는 얼마나 많은 삶의 무게가 쌓여 있는 걸까.

삶을 기차 여행에 비유하며 간이역이나 환승역이나 종착역과 같이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그것을 회사나 직장에 관한 것으로 대치하여 두고 보면 조금 서글퍼지는 데가 있다.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누군가에게는 소진되다시피 했을 테니 도착역이라는 비유는 사뭇 의미심장하다.

 

7. 고졸 취업에 대한 정부 정책의 전환, 여전한 사회적 편견들

특성화고 학생들의 취업과 진학률의 변화 추이는 중요하다. 이들 자료는 진로 지도의 방향을 알려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국 사회와 한국 경제의 현재와 미래가 여기에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무적 판단까지 개입되면 한층 복잡해지고 심각해진다.

2001년에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자의 취업률은 61.9%, 진학률이 30% 안팎이었다고 한다. 2010년에는 서울지역 특성화 고등학교의 취업률이 19.1%, 진학률은 71%였다고 한다.(2010년도 서울교육통계 분석 자료집 참조) 10년 사이에 취업률이 심각하게 무너져 내리고, 대기업의 비인기 생산직종이나 중소기업 현장의 인력난은 심화되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으나 대체로 고졸자에 대한 차별대우, 열악한 노동 환경과 지나친 노동 강도, 외국인 노동자의 증가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2011년이었다. 당시 정부는 이러한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친서민 친기업을 표방하면서 고등학교 직업교육정책의 일대 변화를 단행한 바 있다. 취업률 50% 이상 달성을 목표로 마이스터고의 확대, 특성화고의 구조 조정과 장학금 지원, 특성화고 특별전형의 폐지와 재직자 특별전형(선취업 후진학)의 확대 등 굵직한 정책을 도입하였다. 특히 교육과학기술부는 고등교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특성화고 졸업생의 주된 진학 방식인 정원외 동일계 특별전형은 폐지하고 대신 정원외 재직자 특별전형을 단계적으로 확대하여 특성화고 진로 정책에 획기적인 변화를 도모하고자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산업체에서 3년 이상 일을 하고, 그것을 경력으로 대학을 가는 정책으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대학에 진학하려는 상당수의 인력을 기업의 생산 현장으로 안정적으로 제공하려는 이 정책은 청년실업 해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및 인력난 해소, 왜곡된 교육과정의 정상화라는 목표로 추진되었다. 마이스터고는 삼성전자 등 대기업에 인력을 공급하고, 특성화고는 중소기업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뒤를 이어 기업 지원 정책과 특성화고 등에 대한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포함한 다양한 신사업들이 고용노동부와 중소기업청, 교육부를 중심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정책은 일시적인 취업률의 상승효과를 가져오긴 했으나 현장에서 각종 사건과 사고를 유발하였다. 시장의 수급 원리에서 벗어난 일방적 노동력 공급 정책의 폐단 때문이었다. 2018년 하반기부터 학생들의 안전과 권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현장실습의 기준이 바뀌었고,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는 등 그 부작용에 대한 일련의 후속 보완 조치가 있었다.

이러한 정책은 국가의 인력 재배치 전략으로 고졸자가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취업하도록 하여 기업 채용 환경의 획기적인 개선을 기대한 큰 그림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고졸 취업률은 일시적 회복에 그치며 여전히 저조하고, 정부의 고졸 취업 활성화 대책들이 겉돌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중소기업은 좋은 고졸 인재를 찾지 못하고, 고졸자들도 괜찮은 중소기업을 찾지 못하는 일자리 수급 미스매칭(불일치)’ 현상이 갈수록 심화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고졸 신규인력 수급 전망치(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8년까지 고졸은 수요 대비 공급이 60만 명가량 부족한 상태라고 한다. 어느 중소기업 대표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허드렛일도 많고 적성에도 안 맞는다며 고졸 채용자의 90% 정도가 중도에 퇴사하는 경향이 있는데, 대기업으로의 이직이나 대학 진학 등이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중소기업에 5년 이상 일할 생각으로 입사하는 사례가 드물다는 것이다. 임금과 차별대우 때문이라고 한다.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고졸자의 취업 기피 원인을, 고졸과 대졸 간의 임금 격차가 커진 데서 찾는다. “고졸자는 사회적 지위나 보수 면에서 ‘2등 시민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여전하다.”는 주장은 과장이 아니다. 또 다른 원인은 현장의 열악한 환경과 감당하기 힘든 노동 강도에 있다. 젊은 나이에 수도 없는 공장 노동자들이 쓰러졌고, 사용자들은 그들을 외면하였다. 한국 사회는 경제적으로, 환경적으로 열악한 노동 현장을 방치했다. 노동에 대한 대가가 보잘 것 없었으므로 노동은 천시되었고, 그 대안으로 선택된 것이 대학 진학이라는 모순된 돌파구였던 셈이다. 기업은 기업 나름대로 고민이 있겠으나 과거의 관행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면 젊은이들로부터 계속 외면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젊은이가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학벌이 보잘 것 없더라도 기술과 능력과 노동력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을 보장하는 주체가 기업이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8. 왜 공부하려 하고, 왜 진학을 꿈꾸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졸 취업과 관련하여 정책 당국과 학교와 기업 현장은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선진한 나라의 사례들도 속속 들여와서 우여곡절을 겪고 있으나 잘해보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지점에서 다시 묻게 된다. 그런데 왜 공부하려 하는가, 왜 굳이 대학에 가려 하는가. 분명 이 물음은 오래된 것이며 낡은 것이다.

대학이 편안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하며 비교우위의 신분을 보장하는 통로로 유용하다는 것이 한국사회에 통용되던 현실 문법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여전히 유효한지는 따져보아야 한다. 대학 졸업장이, 과거 경제가 성장하던 때처럼 취업을 보장하는 자격증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학교는 남아돌고 사람은 귀해지니 대학을 진학하는 것이 특별한 일도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흔한 것이 대학생이다. 사람들은 공공연히 말들 한다. “대학은 자본과 대기업의 인간제품을 제공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한 지 오래되었으며, 졸업장과 자격증이 확실한 인간 제품을 보증하는 수단이 될지언정 인간 됨됨이를 판별하는 기준이 되지는 못한다. 본래의 대학은 죽었다고 선언되는 지경이니 그 속에 몸담은 대학생들의 삶도 이제는 녹록치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학생들은 여전히 진학을 하려고 하며,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취업 초기 그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회사를 그만두고 6개월 어학연수를 떠났다는 친구에게 그가 쓴 편지 일부다. “삶은 계속 이어지는데, 생각은 뚝하고 끊어져 우리를 황당하게 했어. 더 이상 들어야 하는 수업도, 해야만 하는 숙제도, 동아리도, 학생회도, 직접 만들기도 했던 토론회도 없었지. 대신 일이 있었어. 땀 흘려 일하고 대가를 받는 노동이 있었지. 그게 싫지 않았는데, 그것만 해도 괜찮은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어. 가만히 있으면 세상이 우리를 게으름뱅이 취급하는 것 같았지.”

아마 현장실습을 시작하던 때인 모양이다. 공부만 하던 학생들에게 교실 수업과 과제가 사라지고, 친구들과 함께하던 동아리 형태의 모임도 사라지고, 오로지 일에만 전념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는 것은 낯선 것이며, 과연 이래도 되는가 하는 불안이 그 속에 깃든다. 준비되지 않은 존재의 이전은 스스로를, 하찮은 곳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내몰기까지 한다. 일하는 자의 자세와도 거리가 있다. 무엇인가를 더 하지 않는 한 자신이 게으름뱅이 같다는 인식이 그러하다. 스스로의 삶에서 결핍을 발견하는 것이다.

대학 간 친구와의 대화에서 그가 말한 것을 더 들어보자. “너도 그렇고, 고등학교 친했던 애들은 다 서울권 대학에 갔으니까. 부러웠지. 나는 공장에 있는데, 자꾸만 뒤처지는 것 같고, 덕분에 열심히 살기는 했어. 시간이 지났을 때 친구들한테 부끄럽지 않고 싶었어. 돌아보면 다 나쁘지 않게 살았던 것 같아. 그래도 역시 부러웠던 건, 혼자서 하기 힘든 공부도 있다는 거야. 나도 철학이나 사회학 같은 거 배우고 싶었어. 나도, 공부를 더 하고 싶었어. 이 이야기를 하고 가슴이 먹먹해지더니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대학과 공장을 비교하고, 스스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지만 뒤처지는 듯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다. 철학이나 사회학을 배우고 싶다는 것을 지적 허영이라 하면 가혹하지 않겠는가. 부족하다고 여기고 스스로 교양 있는 그 무엇을 원하는 것이 잘못이라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는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누구에게는 원하기만 하면 당연히 보장되는 것들이 또 누구에게는 이렇게 간절한 것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9. 일과 공부를 함께 한다는 역설

마이스터 고등학교가 막 생기기 시작할 무렵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내세웠던 정책이 선 취업 후 진학이었다. 말하자면, 굳이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 취업을 먼저 하고, 일을 하면서 학위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취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겠다. 기업들과 MOU를 체결하고 원격수업도 지원하겠다. 경력과 학업,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도록 지원하겠다. 대략 그런 내용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하면서 공부를 했다는데,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정부와 어른들은 선 취업에는 유달리 신경을 썼지만, ‘후 진학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스물한 살이 되어서 방송대학을 다녔다. 정확히는 프라임칼리지라는, ‘선 취업 후 진학정책에 의해 생겨난 부속 기관의 학위 과정이었다. 재직자 친화형 체제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100% 온라인 강의와 시험이 이루어진 덕분에 컴퓨터만 있으면 어디서든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원하는 과정이 금융과 공학 두 가지밖에 없었다. 나는 첨단공학부 산업공학 전공이었다. 강의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첫 학기 성적도 괜찮아서, 다음 학기에는 등록금을 내지 않고 장학금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잔업이 끝나는 저녁 8시에 퇴근을 하고 샤워를 하면 금세 9시가 가까워졌다. 한두 시간 정도 공부를 하고, 가끔 과제가 있을 때는 더 늦게까지 하거나 일요일에 몰아서 해결했다. 토요일에는 일본어 학원에 갔다. 일주일짜리 시간표를 그림으로 그렸다면 아마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게 정부에서 그렇게나 큰소리치던 선 취업 후 진학인가. 그러니까 이건 기회고 나는 지원을 받고 있는 건가. 그때를 돌아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치열하게 습득한 지식이 아니라 매일 같이 나를 짓누르던 졸음이었다. 그래도 공장에서는 항상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거칠고 날카로운 기계 소음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가끔은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풀려 당황한 적도 많았다.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한 새벽에는 다음 날 출근이 겁이 났다. 지금 사고를 당하면 누구도 원망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몇 번이나 다그쳤던 밤들, 주말조차 마음 편히 쉴 수 없었던 일상 속에는 짙은 두려움이 있었다.”

졸음, 긴장, 두려움과 같은 몇 개의 단어로 그의 생활은 요약된다. 이야기를 더 들어보면서 어떻게 환경에 적응하고 자기 삶을 해석하고 있는지 보자.

지금 보면 선 취업 후 진학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인 것 같아. C와 통화하며 그렇게 말했다. ? 마이스터 고등학교라는 게 학벌주의 없애고 능력 중심 사회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세운 거잖아. 그런데 결국 사회적 의무를 개인에게 전가한 것뿐이야. 마음만 먹으면 공부할 수 있는데 왜 안 하냐는 식이지. 그렇게 힘들게 학위를 얻은 사람들은 또 고졸을 무시할 거잖아. 그래야 자기 노력에 의미가 생기니까.”

세상일들 중에는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있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들도 많다. 대신 가치 있는 것일수록 대가가 필요하다. 대가를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별 볼일 없는 것으로 취급당하는 성취들이 있다. 그는 자기가 다니는 방송대학의 프라임칼리지라는 과정이 지닌 사회적 가치를 간파하였고, 그것의 매력을 일순간 잃어버렸다. 어쩌면 한 가닥 꿈이 왔다가 사라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환승역의 딜레마인가 싶기도 하다.

수 년 전에, 한 여대생이 서울의 어느 대학을 다니다 스스로 그만두며 한 말이 있다. “오늘 저는 대학을 그만 둡니다. 진리도 우정도 정의도 없는 죽은 대학이기에라고. 무엇이든 그 대상이 본래의 모습에서 멀어지면 매력은 사라진다. 노력도 허망해진다. 눈 밝은 자가 그것을 보고 느낀다.

 

10. 삶을 성찰하다, 근본적으로

학생들이 교실에서 시험을 칠 때, 답이 보이지 않으면 오래 머뭇거린다. 마침 종을 칠 때까지 뭉개고 있으나 그런다고 정답을 반드시 맞히리란 법은 없다. 헷갈리고 답답하니 어떤 선택을 유예하고 시간이 끝내주기를 기다린다는 표현이 오히려 적확할지 모른다. 그렇다. 답을 알 수 없을 때 생각을 길게, 오래 해 보아야할 때가 있다. 그것이 풀 수 없는 문제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이며, 궁극적인 해결의 자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든 문제는 풀리지 않을 것이므로 그만 포기하라고 주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지가 않다. 해결되지 않는 일로 씨름하는 자는이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달리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반문하지 않겠는가. 읽은 책 속에서 그의 이야기를 길게 가져와 보았다.

사람들은 뭘 바라는 걸까. 나는, 도대체 뭘 바라고 그리 공부했던 걸까. 결국에는 방송대학교도 일본어 학원도 전부 그만둬버렸는데. 대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쓰고 싶은 글을 썼는데. 예전에는 분명 대학에 대한 열등감이나 질투심이 있었다. 그래서 일찍 일해서 좋다며,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더 많이 배웠다며 일부러 주변에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과장됨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옅어졌다. 내 삶에 집중할수록 다른 삶을 탓할 필요도, 비교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나는 회사에서 맡은 업무를 성실히 해 냈고, 대학과 학원을 그만 둔 후에도 방탕하게 시간을 보낸 적은 없었다. 운동을 하면 몸에 지방이 빠지듯,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며 마음의 군더더기를 걷어냈다. 더 이상 고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지도 않고, 캠퍼스 라이프에 대한 환상이나 동경도 없었다. 어쩌면 그제야 마음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 것은 아닐까. 눈에 보이는 효용과 이득에서 벗어난, 깨끗하고 맑은 부러움이 떠오른 게 아닐까. 나는 잘 모르겠다.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공부라고 부르는 것도, 그걸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목적도,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게 되는 계기도, 전혀 다른 환경에서 마주하는 똑같은 종류의 두려움도, 여전히 무엇 하나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우리도, 나는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나는 진짜 공부를 하고 싶었다. ‘진학이나 취득이나 학위가 아니라, 세상을 바르게 이해하는 언어를 배우고 싶었다. 같은 고민을 했던 이들이 마주한 진실을, 나도 조금이나마 엿보고 싶었다.”

고졸에 대한 무시, 열등감과 질투심은 서로 다른 것인 듯하지만 동전의 앞뒷면이며, 원인과 결과에 해당한다.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끝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면서 마음의 군더더기를 걷어냈다는 그의 말은 젊은이의 언어가 아닌 듯하다. 고통과 시련을 인내하고 깊은 깨달음에 도달한 이 청년이 진짜 공부를 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바른 언어를 얻고, 그래서 눈앞의 효용과 이득에서 벗어나 세상사의 진실에 도달하려는 그 희망이 가능할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어른들이 안내한 길을 착실하게 산 결과치고는 너무 비싼 값을 치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세상의 모든 일들이 자기 그릇만큼 이루어진다는 흔한 말을 맹신하지는 않으나 부정하지도 않는다. 교양 있는 노동을 꿈꾸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자존감을 지니고 자기 확신 속에서 일하고 공부하면서 세상의 일상에 참여하는 그런 사람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우리들의 희망이 아닐까 싶다. 취업이 되었든 대학 진학이 되었든 삶의 무게 중심에 자기의 목소리가 투영되어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누구의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의 결단으로 선택하고 행하는 것 말이다. 그리고 세상은 좀 변화해야 하지 않겠는가. 고졸이라 차별하지 말고, 그가 지닌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대우하는 세상으로 좀 변화해야 하지 않겠는가. 국가도 기업도 그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들도.

 

서평이랍시고 책의 내용을 요약하고 정리하는 내내 저자의 이야기를 다 들어야 하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의 이야기 중에 도드라져서 사회적 분노에 가깝거나 구조적이어서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이야기는 옮기지 않았다. 특히 노동 인권 개선이나 왜곡된 노동 정책에 대한 의견 개진 등은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이지만 지면이 감당하기에 벅찬 성격의 문제들로 다른 공간에서 얘기해야 할 것이어서 다루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다만 억압과 저항, 투쟁과 쟁취등 한때를 지배하던 이념과 구호들은 소통과 대화, 혹은 설득과 타협이라는 새로운 가치로 대체되고 있다. 이것이 마땅히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으나 이데올로기적 패러다임의 변화가 시작된 지는 오래되었다. 낡은 사회 구조와 조직들은 경직된 채로 웅크리고 있고, 그 속에서 비루한 인간 군상들은 여전히 기생(奇生)하고 있다고들 하지만 그것들은 서서히 바뀔 수밖에 없다. 그 변화가 시원찮고 느릴 뿐이다. 세상은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결국은 그 속의 구성원을 이루는 개인들이 부지런해야 하고, 창의적이어야 하고, 타자를 배려하는 등의 생산적인 모색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의 저자, 허태준 희망과 좌절이 크게 들렸다. 새로운 모색이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젊지 않은가. 청년으로서 세상 속으로 이제 막 첫발을 들여놓고 있으니 어른이 되려면 아직 한참 더 걸어 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남모를 상념과 상처가 깊을 수도 있겠으나 어쩌면 그것들이 그의 긴 여정에서 빛나는 훈장일 수 있지 않겠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에게 희망적인 말을 건네고 싶다. 환승역에 머물고 있는 그의 종착역이 아름답기를 바란다. 나의 이 말을 감상적이라고 하면 나는 또 이렇게 얘기하겠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한순간에 기적처럼 바뀌겠는가, 그럴 것 같으면 거대한 자본과 정치권력이 지배하고 부정과 부패가 판을 치는 이 세상은 아예 생겨나지도 않았을 거라고. 우리 주위의 누군가에 의해서, 누군가의 노력으로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조금씩 좋아지고 있고, 아주 조금씩 밝아지고 있다고 얘기해 주고 싶다.

<역린(逆鱗)>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를 시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으로도 알려진 정유역변을 다룬 영화다.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용상(龍床)에 앉은 정조가 노론 벽파를 비롯한 무능한 사대부들 틈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며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 속에, 정조를 섬기는 환관(宦官) 상책(尙冊, 왕의 서책에 관한 일을 맡은 내시부의 종4품 벼슬아치)의 입을 통해 인용되는 명문(明文)이 있다. ‘중용 23구절이다. 이 책의 저자가 살아가는 성실하고도 지극한 삶의 자세에서 느끼는 바가 있어 옮긴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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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류지향 - 배움을 흥정하는 아이들, 일에서 도피하는 청년들 성장 거부 세대에 대한 사회학적 통찰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옥 옮김 / 민들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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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치다 타츠루의 역저 「하류지향」(2013, 민들레)은 일본 사회의 교육과 배움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 현상을 말하는 것 같으나 훌륭하게 그 본질을 살피고 분석한 책이다. 일본이라는 사회를 교육의 관점에서, 인류의 문화사적 관점에서, 개인의 심리적 관점에서 깊이 천착한 통찰이 놀랍다. 2007년 출판되었으나 읽히지 않았는지 절판되었다가 다시 출판된 것이다. 그간의 몇 년이, 이 책이 독자로부터 복권되도록 한국사회에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예단할 수는 없다. 다만 일본보다 20여 년 정도 느린 한국사회의 교육현장에서는 소중한 지침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아래 내용은 연구회의 모임에서 발제할 것으로, 텍스트의 내용을 요약하는 수준에서 정리한 것이다. 책을 읽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움 되기를 바란다.

 

*      *    *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하류지향」이 2005년, ‘공부하지 않는 아이들과 일하지 않는 청년들’을 주제로 일본에서 행해진 강연내용임을 밝히고 있다. <글로벌자본주의> 원리와 <국민국가> 원리 사이의 주도권 다툼을 논하면서, 글로벌자본주의의 기업이 “선택과 집중, 세계 표준, 글로벌 법칙, 소수의 성공자, 단기 적합과 장기 부적합” 등의 시장 원리로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비판하고 있다. 저자의 극단적인 비유를 인용해 보면, 부부가 아이를 낳지 않을 경우 육아와 교육에 드는 비용이 절약되고 부부의 자유가 신장되어 사회적 경쟁에서 단기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 자체의 소멸을 불러올 수 있듯이, 기업이 고용 조건을 열악하게 만들면 비용 절감과 국제경쟁력에서 유리하나 노동자의 구매력이 떨어져 결국 언젠가는 시장 그 자체가 소멸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배움과 노동으로부터 아이들이 멀어지고 있는 현상이 규모와 심각성에서 차이가 날지 모르나 세계 모든 선진 국가의 공통된 현상이라 하는 점에서 ‘도피’에 대한 논의는 출발하는 듯하다. 아이의 게으름이나 교육방법의 문제로 ‘공부로부터, 혹은 노동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노동의 권리와 의무를 버리면서부터 개인도 그 권리를 포기하고 의무를 벗어던지는 사회사적·심리적 선택의 행위로 귀결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여기서 인용되는 것은 적절하다.

 

공부로부터의 도피 - 등가교환 사회의 귀결, 어린 소비주체의 분투

 

  현실은 열악하다. “공부를 혐오하는 아이들 → 맞춤법을 모르며 모르는 것을 개의치 않는 아이들 → 세계와 현실을 구멍 뚫린 상태로 인식하며 불편해하지 않고 살아가는 아이들 → 불량스러움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아이들” 저자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분석으로 들어가기 전에, ‘스와 테츠지’의 통찰을 인용하면서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학교가 오늘날의 사회를 가르치고자 ‘생활주체’나 ‘노동주체’로서의 자립을 설명하기도 전에 이미 아이들은 어엿한 ‘소비주체’로서 자기를 확립하고 있다. 이미 경제적인 주체인데 학교에 들어가면 새삼스레 교육의 ‘객체’가 된다는 것은 아이들 입장에서 내키지 않는 일일 것이다.(49쪽)

 

  불편함을 모르고, 부족함이 없는 아이들은 가사노동으로부터 소외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 길들여진다. 오로지 돈의 투명성과 전능성을 경험하며 어엿한 한 사람의 선수로 시장에 참가한다. 가치와 유용성을 유일한 판단의 기준이라 생각하는 소비주체로 성장한다. 가정에서, 현대의 샐러리맨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아이들은 불편함을 견디는 대가를 보고 배우면서 등가교환을 체득한다. 학교도 어린 소비주체에게는 흥정의 대상이 된다. 아이들은 배움의 가치와 유용성에 대해서 묻는다. 아이들의 질문은 모국어를 배우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특히 교육이 어느 정도 진행될 때까지, 심지어 교육과정이 끝날 때까지도 알 수 없는 교육이 제공하는 이익을 학생들이 등가교환(갇힌 공간, 편의점을 상상해 보라)의 방법으로 얻는 것이란 불가능하며 계량하기도 힘들다. 등가교환은 공간모델이면서 무시간 개념이다. 배움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으나 시장 경제와 등가교환의 원리는 최근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길들여버렸다. 등가교환의 현장에 선 아이들은 소비주체로서 변해서도 안 되고 가치관을 바꿔서도 안 되는, 시장의 금기사항과 규칙에 복종하면서 그 흐름과 힘에 온 힘을 다해 저항한다. 그 저항의 일부가, ‘백화점 전문 클레이머’와 다름없는 ‘교실 클레이머’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아이들에게 ‘아무 것도 안 하기’는 가장 성실하게, 가장 근면하게 세상을 사는 힘이 된다.

  더러 ‘자기 찾기, 나를 찾는 여행’의 방식 등을 통해 개인은 내면을 탐구하면서 개별적 흥미와 관심을 소중하게 여긴다.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받는 가치라고 하더라도 지극히 주관적으로 그 유용성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으면 포기한다. 자기중심적 가치매기기가 그 원인이다. 그러므로 학생들을 교육 소비자로, 소비 주체로 인정하면 배울 거리(교육과정)의 의미와 가치를 결정하는 권리도 아이들의 손에 맡겨지게 된다. 그 손에는 세상의 모든 것을 측량할 수 있다고 믿는, 이를테면 30센티미터 자가 들려 있다. 최근의 수요자중심교육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지점이다.

 

리스크 사회의 약자들 - 도피의 다른 이름 고립, 하류를 긍정하다.

 

  사막 상인들의 긴 대열에서 무리의 속도를 결정짓는 것은 가장 느린 낙타라는 말이 있다. 상인의 입장에서는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고, 힘든 사막의 힘든 길 위에서 채찍을 무리하게 가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현대 국가의 관리자는 사막의 상인과 같지 않다. 저자는 일본에서 호송선단방식은 끝났다고 말한다. 강자는 승리하고 약자는 먹힌다. 이것이 세계화이며, 시대적 공평성이다. 필요하면 구조개혁을 한다. 모든 것은 집단에서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기결정이며 자기책임이다. 능력주의다. 야마다 마사히로의 “리스크”와 “양극화”가 여기에서 등장한다.

  양극화는 필연이다. 작은 투입의 차이가 거대한 산출 차이를 낳는다. 계층별로 학력에 대한 신뢰의 차이, 노력에 대한 동기부여의 차이가 크다. 공부해도 필요 없다고 공언하는 계층의 부모는 자신의 노력부족으로 낮은 계층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부모의 아이들은 노력이 보상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노력할 동기를 잃어간다. 이러한 피더백이 아주 짧은 시간 일본 사회를 계층화 한 원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능력주의는 공정함을 생명으로 한다. 그러나 현대의 능력주의는 이기고 있는 사람이 계속 이기는 것을 정당화하는 시스템이다. 리스크 헤지는 두 사람 이상이 필요하다. 사회 상층부는 효과적으로 리스크 헤지를 하고 있다. 무수한 후원자, 전관예우, 관료들의 공기업 낙하산 등 그 상부상조의 연대 축은 강력하다. 그러나 하층은 전혀 헤지가 되어있지 않다. 하층에게는 소위 ‘자기결정․자기책임’이 강조되는데, 이는 벌거벗은 개인이 고립무원인 사회에 맞서는 방식이며, 리스크 사회가 약자에게 강요하는 죽음의 방식이다. 고립되고, 병적인 형태가 된다. ‘공부로부터의 도피’도 고립의 초기 증상일 수 있다.

 

  고립된 아이가 혼자서 학교라는 시스템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자기 가치관을 학교 시스템에 대등한 것으로 대치시킨다. “이것을 왜 배워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들이댄다. 스스로 배울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지 못하면 아이는 배움을 거부한다. 이것이 자기결정이다. 배우지 않음으로써 초래되는 리스크를 당당하게 받아들인다.(…) 이렇게 아이들은 계층 하강의 리스크를 순순히 받아들인다.(115쪽)

 

  계층 하강을 자기결정에 대한 책임으로 받아들이면서 아이들은 나름의 만족감과 높은 자기평가를 내린다. 미래보다 지금을 즐기는 방식으로 자신감을 획득하게 되는 이러한 사고의 방식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지배적 가치관에 동조하고 순응하면서 계층은 급속도로 폐쇄적으로 변화한다. 적극적으로 문화자본을 거부하고, 나쁜 성적이 인간의 가치를 높인다는 반학교 신화. 학습포기와 공부로부터의 도피가 나태와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미래보다 현재에 집중함으로써 자신감을 높이고 자기를 긍정하는 기술을 익힌, 적극적 노력의 결과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는 것이다.

 

노동으로부터의 도피 - 변화와 성장을 거부하는 소비주체의 욕망과 무지

 

  자기결정은 자존감을 고양시킨다. 잘못된 선택지가 초래하는 심신의 손상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유용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자기결정이 국가의 정책으로 권장되고 이데올로기로 아이들에게 타율적으로 주입되고 있다고 한다.

 

  “모두가 자기결정을 하는 시대이니 너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기를 결정하라”고 명령하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을 보통의 지성을 지닌 사람들이라면 알아챌 텐데 아이들은 (어리기 때문에) 깨닫지 못한다. 선택을 강제하면서 선택한 것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것을 강요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조리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특별히 부조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부조리를 받아들이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이 있기 때문이다. 부조리가 현실에 있고, 일정 정도 이상의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으면 그것은 더 이상 부조리로 보이지 않는다. ‘세상은 다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128쪽)

 

  이러한 현실과 맥락에서 일본형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가 태아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노동을 하고 낮은 임금을 받는 ‘불쾌함’보다, 노동하지 않고 부모의 잔소리를 듣고 주위 사람의 눈치를 보는 정도의 ‘불쾌함’이 더 경미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니트라는 삶을 선택한다.) 일본형 니트는 약자가 자신의 사회적 입장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기 위해 자기 의사로 지식과 기술을 익힐 기회를 거부하고 자진해서 차별적 구조를 강화하는 데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회의 제한에서 비롯되어 계층화의 증상이라 말해지는 유럽의 니트와는 분명히 구분되고 다른 것이다.

  일본의 학생들은 교육을 권리가 아니라 의무로 생각하며, 고역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므로 배움으로부터의 도피를 성취감이나 자기만족으로 여기고 있다. 도착은 이렇게 설명된다.

 

  “교육의 ‘권리’를 ‘의무’로 바꿔서 읽는 도착 행위가 일어나는 이유는 경제적 합리성이 사회 구석구석까지 침투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성숙의 최초 단계에서 자신을 ‘소비주체’로 내세우게 된 일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단순히 생활이 풍족해졌다거나 물질적 욕망이 커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이전의 문제로, 아이들이 ‘시간’과 ‘변화’에 대해 스스로를 가두듯이 어릴 적에 자기 형성을 이미 완료해버렸기 때문이다.(133쪽)

 

  직장인들은 이직을 반복하면서 ‘파랑새’를 찾아 ‘여기와는 다른 장소’를 찾아 헤매면서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할 것’을 거부하는 동안 도저히 운신할 수 없을 정도로 곤궁한 상황에 빠지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니트 역시 기대보다 낮은 임금, 보잘 것 없는 노동윤리, 불확실한 등가교환 등의 인식 속에서 형성된다.

  환금성이 빠른 실용학문을 지향하고 실러버스(직무기술서)가 강의 전에 무시간 모델로 제공된다. 교육을 ‘고역과 성과’, ‘화폐와 상품’, ‘투자와 회수’라는 비즈니스 모델로 바라보며 소비주체는 변화하기를 거부한다. 변화와 성숙을 금지당하고, 공부로부터, 노동으로부터 도피하며 자신의 무지에 고착하는 욕망이 배움 속에 깃들게 된다. 시간의 흐름과인간의 변화, 자질의 향상과 성장, 노동과 인식의 변화, 교육은 이러한 개념을 두루 포함하지만 아이들도, 졸업생을 맞이하는 사회도 배움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어떻게 도울 것인가 - 소제목을 옮기는 것으로 대신하다.

 

미국식 모델의 종언 - 무시간 모델과 합리성의 종언, 교환을 통해 우회적으로 실현되는 것에 주목하고 신뢰관계와 다양한 인간적 가치창출에 관심을 가지먀 전통적 노동관을 회복해야 한다.

자식이라는 ‘제품’을 속성재배하려는 부모 - 육아를 등가교환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습관 버려야 한다. 사춘기의 메시지를 제품의 소음쯤으로 생각하지 말라.

배움, 소음을 신호로 변환하기 - 커뮤니케이션은 시간적 현상이다. 미래까지 가지 않으면 과거를 확정할 수 없고, 과거가 확정되지 않으면 미래는 성립하지 않는다. 경외심과 인내심을 가지고 조용히 귀 기울이라. 제품은 노래하지 않지만 아이들은 노래한다.

결코 세계화 될 수 없는 영역 - 무시간 모델은 우리를 기분 좋게 하지만 그것이 끝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사회의 기반이 되는 일은 아득할 정도로 긴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사제관계의 조건 - 스승의 조건은, 그 스승 또한 누군가의 제자였다는 점이다. 스승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하면 성장은 멈추고 문은 닫힌다. 자기완결의 오류다.

교육자에게 필요한 조건 - 스승을 가져라.

누군가를 존경한다는 것 - 무한한 존경은 사제관계의 본질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행동을 뒤에 올 세대가 모방한다.

항의하러 달려오는 부모 - 교사 집단은 균질성이 높다. 먼저 사과하라.

문화자본과 계층화 - 문화자본은 교양이다. 소속계층을 표시하는 문화자본이 명함을 대신한다. 문화자본이 사회계층의 기호화되고 있다. 문화자본을 갖추라.

가족과 새로운 친밀권 - 해외에서 결혼식 하는 사람, 장례식에 아이를 데려가지 않는 사람이 늘고 있다. 상호부조의 네트워크를 가져라. 고립되면 약자가 된다.

니트의 미래 - 니트는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희생자이다. 사회문화적 존재다.

우리가 니트를 책임져야 하는 까닭 - 니트는 가정문제가 아니다.

주제넘은 커뮤니케이션이 사람을 키운다 - 피부로 느끼고 삶의 밑바닥을 보아야 한다.

균질성과 다양성 - 일본의 니트는 균질성의 산물이다. 균질성을 직시해야 한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 - 듣고 싶은 것만 듣지 말라. 거짓의 전제를 넘어라.(이를테면 수업이란 무엇인가,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물어보라.)

시간성의 회복 - 도시화와 근대화는 시간성을 잃어버리도록 했다. 등가교환에 대한 집착이 지나치다. 다시, 저녁에 비가 오면 아이들은 우산을 들고 역에 아버지를 마중 나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꾸다.

신체성의 교육 - 내가 이 광대한 우주의 다른 곳도 아닌 여기에, 바로 이 순간에, 바로 이 사람과 함께 있다는 사실에 ‘무언가 위대한 존재’의 뜻을 감지할 수 있으면 인간은 아주 풍요롭고 여유로운 마음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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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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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테판 에셀의 저작 <분노하라>(돌베개)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이 뜨겁다. 언론에서도 주목하고 있다.(관련기사 - 시민들의 참여야말로 평화롭게 저항하는 노하우) 그는 반나치 레지스탕스 운동가였으며, 세계 인권선언문의 초안 작업에 참여한 외교관이었고,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사형을 선고받기까지 한 인물이기도 하다. 아흔 네 살의 그는 저항과 진보에 관한 살아있는 전설로 다가오기도 하고, 짧은 진술들이 진실하고 명징하다.  

  그의 이야기는, “불의에 대한 분노, 자기 삶과 사회에 대한 책임감, 무관심을 넘어 현실에 대한 참여, 이웃과 타지에 대한 연민, 비폭력과 평화적 봉기”로 요약된다. 얇은 책 속에 흩어져 있는 그의 문장은 탁월한 성찰이기도 하지만, 일생을 올곧게 살았으며, 지금도 여전히 세계의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현재형의 인간이라는 점에서 그 감동이 더해지는 것인가도 싶다. 사실 우리의 근현대사에 이만한 역량을 가진 인물이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야기가 나와 주변, 나와 이웃, 나와 나의 국가를 성찰해 볼 때 어긋난 것 없이 일치함을 알게 되고, 그래서 놀랍기까지 한 것이다. 

  극빈층과 최상위 부유층 사이에 가로놓인 격차, 국가에 의한 공공연한 인권의 유린, 폭력적 국가 권력의 홍보매체나 다름없는 언론들 …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목도해 오고 있다. 스테판 에셀은 이러한 것에 분노하라고 말한다. 관심을 가지고, 선거에 참여하고,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저항하라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도 쉽고 분명한 사실을 앞에 놓고 그의 문장을 옮기면서 조금 생각을 더듬어 보았다. 그의 문장은 훨씬 현실적이고 풍부한 것으로 다가왔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기 바란다. 이건 소중한 일이다. (…) 자유란 여우가 닭장 속의 여우가 제멋대로 누리는 무제한의 자유가 아니다.” 

  그는 개인에게 분노할 것을 권면한다. 사람들 속에 분노의 동기가 실종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희승은 시 「세상이 달라졌다 」에서 이렇게 노래하였다. “세상이 달라졌다/저항은 영원히 우리들의 몫인 줄 알았는데/이제는 가진 자들이 저항을 하고 있다/세상이 많이 달라져서/저항은 어떤 이들에겐 밥이 되었고/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권력이 되었지만/우리 같은 얼간이들은 저항마저 빼앗겼다/세상은 확실히 달라졌다/이제는 벗들도 말수가 적어졌고/개들이 뼈다귀를 물고 나무 그늘로 사라진/뜨거운 여름 낮의 한때처럼/세상은 한결 고요해졌다”고. 한때의 투사(?)들은 보잘것없는 뼈다귀를 물고 개들처럼 권력의 그늘 속으로 진입하고, 뜨거웠던 저항의 시간들이 고요로 대체되는 역사를 우리는 반복해왔다. 대학을 다닐 때 학내민주화투쟁이니 등록금 인하 투쟁, 혹은 호헌철폐니 독재타도니 하면서 긴 스크럼을 만들고 집회에서 뜨겁게 외쳐대었던 그들은 이제 분노 대신 자족하며 안락을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를테면 권력의 주변에서, 혹은 직장에서 개과의 여우가 되어 교활하거나 약은 채로 사람들을 닦달하고 있을 터이니…  

  “샤르트르는 우리에게, 스스로를 향해 이렇게 말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당신은 개인으로서 책임이 있다’고. (…) 어떤 권력에도, 어떤 신에게도 굴복할 수 없는 인간의 책임. 권력이나 신의 이름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이라는 이름을 걸고 참여해야 한다.” 

  책임이라는 것은 원래 그 누구의 것도 아닌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성찰하며 인간이고자 한다면, 우리는 비로소 책임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나 소유에 관한 욕망과 비겁한 굴종이 지배적 내면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 현실에서 우리는 어떠한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책임으로부터의 자유는 선천적인 것도 아니고 스스로 발굴한 것도 아니다. 세상 속으로 발 들여 놓은 이래로 수많은 경쟁과 갈등 속에서 체득한 삶의 원리이다. 경쟁에서의 승리, 승자의 독식 논리에 길들여져 있으므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유전자의 확대재생산이 신자유주의에 가장 적합한 인간형으로 정착되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인간관계가 무너지고, 이웃과의 덕목은 사라지고, 오로지 적들이 내 앞에 펼쳐지게 되는데 국가는 이 무수한 경쟁을 조장하고 지속적으로 주입한다. 책임이라는 것은 폐기되어야 할 대상이며 낡은 그 무엇이다. 아닌 게 아니라 사육(飼育)의 결과라 할 만하다. 그러므로 신에게도 굴복할 수 없는, 나를 향한 질주와 이기와 욕망이 들끓을 뿐이다. 광적인 열정이 진정한 신앙을 질식시켜버리듯 자기 안에 갇혀 허우적거릴 뿐이다. 책임이 없다.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 이렇게 행동하면 당신들은 인간을 이루는 기본 요소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무관심으로 살아간다. 오래 전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교사들 중 몇몇은 아주 쉽게(나는 고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치열하였겠으나 자기 행위가 야기하게 될 어떠한 현상도 예상하지 않은 채) 몸담았던 조직에서 탈퇴해버렸다. 그들 중 누구도 강요에 의해 가입하지 않았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였는지 유유히 떠났으며, 그것도 무리를 지어 떠났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잘 지낸다. 여전히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회식 자리에서 웃고 떠들며 술 마시고 노래한다. 한때 그들이 머물렀던 조직의 현재가 어떠한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필요에 의해 선택해야 했던 과거의 곤궁했던 상태로부터 이미 벗어나 확고하게 기득권을 소유했기 때문에. 그들은 분노할 힘도 잃어 버렸고, 참여의 기회도 잃어버렸다. 사실 분노한 적도 없으며 참여한 적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궁색한 변명이 그들의 우수 근방을 배회할 뿐, 착한 교사도 아니고 나쁜 교사도 아닌 채로 그저 이 무수한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 “자기가 모르는, 한 번도 만나보거나 접촉한 적이 없는 이들에 대한 추상적인 사랑은 없다.”고 한다. 영영 기회를 잃어버린 채, 쓸모없는 일에 변죽을 울리면서.  

  “가자 지구, 그곳은 150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창살 없는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어쩔 수 없이 강요된 모든 결핍 상황에서 그들이 어찌나 지혜롭게 대처하던지 우리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우리는 우리 앞에 펼쳐지는 가난과 비극을 목도한다. “최저 임금 4,320원, 상위 20퍼센트가 부의 80퍼센트를 소유”하는 현실에 살고 있다. 반면에 가진 자는 은행을 “사금고”처럼 이용하며 세상은 재벌 삼성의 왕국이 되어 있다. 세상은 창살 높은 감옥이며, 사람들은 여우의 먹잇감이다. 마음대로 해고하고 마음대로 철거하고 마음대로 잡아들이므로 결핍으로 연명해 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대로 지혜를 발휘할 수밖에, 내핍할 수밖에. 우리에게 슬픔이나 연민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낯설어졌다. 송경동 시인의 “희망버스”는 얼마나 눈물겨운 것인가. 담을 넘어가는 저 연대의 노래가 목숨 걸고 고공을 버티어 온 이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는가. 아름다운 분노의 번짐이다. 

  “샤르트르는 1980년 3월, 임종을 3주 앞두고 이런 말을 했다. ‘끔찍한 지금의 세계가 기나긴 역사의 발전 속에서 보면 그저 한순간일 뿐인 이유를, 숱한 혁명과 봉기를 이끈 주도적인 힘의 하나는 언제나 희망이었음을, 내가 미래를 생각하면서 여전히 그래도 미래는 희망이라고 보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폭력보다는 희망을, 비폭력의 희망을 택해야 한다.” 

  세상의 유언은 인간의 진실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샤르트르의 저 말 속에서 우리는 희망을 만나게 된다. 철학자의 눈으로 꿰뚫은 세계의 기나긴 역사와 우주의 운행 원리는 비폭력이다. 거기에 희망을 걸어 두었다. 스테판 에셀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우리가 만나는 것은, 여전히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의 일상화다. “폭력을 멈추게 하는 유일한 수단 또한 폭력”이라 한 언명을 샤르트르 스스로 폐기하였는지 확인할 수 없으나, 이 잔인함들 앞에서 맨손으로 맞서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이 “분노하라”고 하는 호소를 낳은 것이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분노는 폭력을 부르는 또 다른 방식이 아니라 분개와 다르고 성냄과도 달라서 폭력을 종식하는 방식이며, 그러므로 그 속에는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낙관주의자의 “격렬한 희망”이 걸리게 된다. 진보에 관한 믿음이며 세계에 관한 사랑이다. 나는 이러한 깨달음이 늙은 투사의 외침이어서 더 깊게 다가온다. 그의 확신이 오류가 아닐 것이라 믿게 된다. 

  “‘항상 더 많이’라고 외치며 앞으로만 질주하는 태도와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오로지 대량 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輕視,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만을 앞날의 지평으로 제시하는 언론매체에 맞서는 진정한 평화적 봉기를. (…)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분노를 잊은 이유들은 많고 많다. 우리를 길들여 온 삶의 방식에 관한 것인데, 그것은 “더 많이”와 관련된다. 비교우위에 대한 선망, 속도에 대한 맹신, 소비의 탐닉, 약자에 대한 무시와 잔인한 야만성, 천박함과 무지, 과거의 망각과 현재에 대한 맹목적 믿음과 같은 것들이 정확하게 작동하는 세상에 우리는 갇혀 있다. 언론의 유착과 왜곡은 분노할 줄 모르는 우리들의 삶에 덕지덕지 기생한다.  

  스테판 에셀은 인터뷰에서 ‘시를 읽고 암송하라’고 권한다. 그는 인간의 자기발전가능성을 신뢰한다고 했다. 어느 때 주워들은 ‘마르틴 뇌밀러’의 시를 인용한다. 분노, 혹은 격렬한 희망을 위해.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 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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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에 깃들다 - 학교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어느 선생님의 귀촌일기
박계해 지음 / 민들레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빈집에 깃든 영혼의 일기

나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 할아버지의 말씀을 귓등으로 듣고 말았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 여기니, 선산이 있고 아직 논밭이 흩어져 있으니 농사를 짓는 것이 어떠냐 하는 말씀을 하셨다. 할아버지는 일제 때 영천의 농림학교를 졸업하고, 군청에서 오래 근무하였으나 그 생활을 버리고 농사를 지으신 분이었다. 나는 그때 새겨듣지 않았었다. 도시에서 정착하고 교직을 시작하고 정신없이 달려왔으나 나는 늘 마음이 무겁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Helena Norberg Hodge)가 “교육은 라다크 사람들을 서로서로에게서, 그리고 땅으로부터 유리시켰고, 그들을 세계경제라는 사다리의 제일 아래 칸에 자리 잡게 하였다.”고 한 것처럼 나는 대학을 마치고 고향을 버렸고 땅을 버렸고 도시의 계층사다리에서 조금 더 위에 기어오르려 발버둥을 쳐왔다.  

직장에서는, 몇 되지 않는 저 아이들을 붙잡고 매일 나의 생계를 호소하는 수없는 교사들, 나도 그 속에 있다. 우리들의 호소는 가끔 거룩한 사명의식 같은 것으로 포장되지만 그것이 공공연해질수록 교사의 자위는 뻔뻔해진다는 것을 나는 깨달을 때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와 이 질서와 구조가 영원하리라 예상하며 이곳에서 버틸 것을 바란다. 가끔은 내 삶이, 혹은 내 자식들의 삶이 ‘지금 여기’에서보다 조금 나아지리라는 희망으로 숱한 거짓을 양산한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짓뭉개고 들까불면서, 오래 마음 아파오며 오래 헐벗은 아이들을 괴롭히는 이 나쁜 짓을 언제 그만두게 될지 늘 교문 앞에서 교실 앞에서 나는 부끄럽다.

리 호이나키(Lee Hoinacki)는 ‘헤나시’의 사상과 삶을 논하면서 ‘한 사람의 혁명(one-man revolution)’을 말한 적이 있다. “만약 내게 용기가 있다면, 사람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 오늘 당장 살기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사회가 바뀔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방법은 자기 자신의 변화를 위한 시도이다. 이것이 ‘한 사람의 혁명’이다. (…) 자기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 전통은 살아있다는 것을 상기하게 되는 것은 흐뭇한 일이다. ‘거룩한 바보들’이 아직 우리들 사이에 존재하고, 그들의 연기(演技) 때문에 우리가 세계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 모두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고 하였었다. 우리 주위는 너무 많은 천재와 너무 많은 교양들이 범람한다. 아무도 거룩해지려 하지 않고, 바보가 되려하지 않은 요즘이다. 그러므로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거룩한 바보’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

아름다운 책을 읽었다. 박계해의 귀촌일기, <빈집에 깃들다>(민들레)를 읽었다. 열여덟 해의 교직을 버리고 귀농하여 그녀의 남편 승희 씨와 빈집에 살면서 기록한 귀농 이야기다. 문경 가은의 모래실, 그곳 사람들의 애환을 따뜻한 시선으로 들려주는 그녀는 바보 같으며 거룩한,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스토리텔러이다. 그녀가 책을 닫으며 “기록되지 않은 일은 일어나지 않은 일과 마찬가지다.”하고 돋을새김해 둔 버지니아 울프의 언명은 우리시대에도 여전히 적확한 말로 유효함을 보여준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수많은 이웃들이 등장한다. “주인집 형수 아주머니, 아들 진수 씨, 봄이 아빠, 덕배 씨, 진호 씨, 윤영권 어른, 발발이 아주머니, 오동나무집 아주머니, 홀쭉이 할아버지, 콩산 할머니, 의성이 아빠, 치실 할머니, 홍문정 이장님, 순순이 아주머니, 샘물 할머니와 영분 할머니, 서울 할머니, 갑구 씨, 그 어머니와 아내 미뚱, 치실 할머니, 새벽 아빠, 대나무집 아주머니, 막달레나, 베드로 씨, 미스 광, 영분 할머니, 길 건너 할머니, 욱이네, 이장댁, 단감나무댁 아주머니, 범이 엄마 ….” 사람들은 하늘의 별만큼 많으시다. 사람들이 사는 그곳에는 “온순한 개들과 무심한 듯 여물을 씹는 외양간의 소들, 장닭과 토끼, 원앙, 도마뱀, 낭만새, 콩새와 불나방, 나무와 풀과 별들 ….”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이웃이어서 삶의 일부이며, 전부이다. 그러므로 빈집에 깃든 이야기는 이웃과 살아가는 사람 사는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모래실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를 읽으며 몇 번이나 눈시울이 뜨거웠었다. 발발이 아주머니가 토란을 까며, 벌기만 하고 써보지도 못하고 간 남편에 대한 서러움으로 울먹일 때, 꼿꼿하려고 애를 쓰며 걸으셨으나 혼절하여 끝내 돌아오지 못한 샘물 할머니, 욱이네의 상에 얼굴을 비추지 못하였던 이장댁의 눈에 담긴 그 쓸쓸함들… 전깃줄에 앉아 고스란히 비를 맞는 ‘낭만새’, 아홉 마리 새끼를 낳고 스스로를 건사해 낸 돌순이의 삶도 인간의 그것보다 뒤지지 않는 치열함을 지니고 있었다. 모두 그녀가 그윽하게 보아 온 까닭이다. 기록하지 않았으면 모두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다.

눈시울을 붉힌 것만이 아니다. 그 속에 깃든 삶의 지혜란 또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이를테면, “원래 돌밭에는 뭐든 잘 돼. 돌이 말이지 오줌을 싼대, 그러니 거름이 좋겠지?”라는 서울 할머니의 말은 웅숭깊은 승희 씨에 의해서 완벽하게 해석되어 우리에게 전달된다. “돌이 습기를 머금고 있다가 필요할 때 수분을 조금씩 내주는 거겠지.”도토리나무가 들판의 벼들을 굽어보고 있다가 흉년에는 구휼을 해야 하니 도토리를 많이 단다고 한 새벽 아빠의 말은 경이로운 것이다. 도토리 나무의 마음이 그러한지 알 수 없으나 세상과 자연을 이렇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새벽 아빠, 그의 삶에 예수님의 향기가 깃든 까닭이 아니겠는가. 누구나 흉내 낼 수 있는 그러한 시선이 아니다.

귀농한 사람들이 마을 사람들의 주종관계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샘물할머니 댁으로 겨울 땔감을 해 나르는 봄이 아빠와 승희 씨는 분명히 우리 눈에는 바보들이다. 그 바보들의 이야기가 우리들에게는 가슴 뭉클한 그 무엇이 된다. 그러나 늘 아름다운 이야기만 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귀농한 사람들을 끈질기게 괴롭히는 것이 있기 마련이어서 ‘편리함과 속도와 관습에 대한 집착’은 괴로운 것이다. “늙은 풀이 잘 안 죽는다”고 투덜대는 노인의 말은 오래된 반어이며 역설이다. 반복해서 “마당의 풀”로 상징되는 집착과 또 다른 집착의 견고함, 나는 그녀가 이러한 집착으로부터 많이 나아가기를 원하며 책을 읽었었다. ‘인간에 의해 버려진, 버려도 버려도 제 살붙이가 누구인가를 묻는’ 잡초에 대한 그녀의 인용이 지지받기를 기대하였었다.
 

박계해는 통장의 잔고로 말해지는 궁핍과 불안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간다. “내비둬, 다 알아서 해.”로 일관하는 남편 승희 씨와 달리 혼자 걱정한다. 그녀의 딸 “나라”와 아들 “한이”에 대한 양육의 괴로움을 외면하지 않는다. 먼 곳에서 자취하는 아이들 집 문을 닫으면서, 작은 상자 속에 아이들을 담아 뚜껑을 꼭 닫는 느낌에 마음이 아팠다고 하는 이 괴로움은, 그녀의 자녀관이 우리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를테면 그녀가 눈 내린 산길에 찍힌 산짐승의 흔적을 보며 “너희들처럼, 걸친 것 없이, 쌓아 둔 것 없이도 언제나 자유롭기를….”이라 한 것은 특별한 것이다. “장롱도 없이 흙이 흘러내리는 바람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점점 눈을 감는 아버지”를 생각하는 모습은 자발적 가난에 닿아있는, 성속의 경계에 서 있는 인간의 성찰이 아닌가 한다. 그러므로 나는 원한다.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저 기도들을 누군가 경청하기를 소망한다.

살아온 것을 버리지 않고 어린것들과의 연극이나, 혹은 노인 대학으로 열린 그 영혼의 겸허함을 나는 본다. 단정함을 만난다. 그녀와 함께 ‘작은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잠시 생각해 본다. 그 어딘가에서 “누구나 꽃”이 피어나길 기대한다.

어느 새벽, 그녀의 깨달음을 들어보자.    

   
  어쩌면 우린, 매일 한 생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매일 아침 태어나고 죽는. 윤회란 이미 우리의 일상에서 보여지고 있으며, 진실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음을 잊고 찾아 헤매다 한 생을 마감하고 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라. 우리는 얼마나 많은 윤회를 살고 있는가. 직장에서 사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만나고, 하루하루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해마다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고, 몇 년 후에는 다시 이별하고 … 언젠가 이것마저 끝날 테이지만 나는 이것이 내 삶의 전부라 믿고 싶지 않을 뿐, 나는 늘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내 떠나는 그 자리에 누군가는 다시 와서 또 나의 지루한 삶을 반복할 터이니 개별의 나는 다르나 우주의 눈으로 보면, 저 단순한 우주의 눈으로 보면, 첫 새벽의 눈으로 보면 얼마나 우리들의 삶의 윤회는 얼마나 깊은 것이며, 또 절실한 것인지. 늘 나에 대한 불만과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살아간다. 밖으로 나와서 밥을 벌어먹은 이래로 나는 이 숱한 진실들은 모른 채 여전히 살아간다.

오래 전, 나는 내가 살 아파트를 분양받아 두고, 기초를 다지고 골조와 기둥을 올리는 동안 몇 번이나 그곳을 기웃거렸었다. 입주할 때는 오히려 그 외관과 내부가 낯익은 곳이 되어 있었다. 한때 집의 소유에 관한 나의 간절한 소망이었던 셈인데, “집을 갖지 않겠다”는 그녀의 남편 승희 씨의 선언이나, “두 다리를 마음껏 뻗고 몇 바퀴쯤 데굴데굴 구를 수도 있는 방”을 꿈꾸는 그녀의 소박한 소망은 집 가진 나를 부끄럽게 한다. 

나는 책을 덮으며 이런 생각을 하였다. 왜 빈집의 박계해는 이야기를 하는 대신 ‘시’를 통해 이야기를 받아내지 않았을까. 시적인 이야기가 곳곳에 흩어져 있으니 나는 그런 생각을 하였었다. 그리고 E. F. 슈마허가 인용한 구절도 생각하였었다. “우리는 관념 없이는 인간답게 살 수 없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이 관념에 따라 결정된다. 산다는 것은 다른 일 대신에 어떤 일을 한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교육이란 “무의미한 비극이나 내면적인 수치, 그 이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관념을 전달해 주는 것이다. 스카프에 물들이는 일을 반복하고, 어린것들과 그들의 삶의 진실한 연기(演技)에 생을 열어두고 있는 이야기가 계속되기를 나는 바란다. 시적인 것을 꿈꾸지 않으나 너무나 시적인 저 삶이 계속되기를 나는 바란다.

또 다른 거룩한 바보 박계해를 만나려면 우리는 한참을 기다려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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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새 2011-06-10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생님, 한겨레에 댓글남겼는데요....
책에선 없는 뭉클함, 고맙습니다.

영화처럼 2011-06-22 16:26   좋아요 0 | URL
여기에도 오셨네요. 늘 건강하시기를 ...

2011-06-10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화처럼 2011-06-22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에 계셨네요. 무탈하시지요.
시인이시니, 좋은 시를 많이 쓰시길 바랍니다.
 
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 산월기(山月記) / 이능(李陵)
나카지마 아츠시 지음, 명진숙 옮김, 이철수 그림, 신영복 추천.감역 / 다섯수레 / 199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늦기 전의 ‘성찰’에 관하여 - <산월기山月記>

“인생은 아무것도 이루지 않기에는 너무도 길지만 무언가를 이루기에는 너무도 짧은 것이다.” 어딘가에서 만났음직한 이 문장은 단편 <산월기山月記>에 등장하는 ‘이징(李徵)’의 목소리다. 그는 탄식한다. “나는 시(詩)로 명성을 얻으려 하면서도 스승을 찾아가려고도, 친구들과 어울려 절차탁마(切磋琢磨)에 힘쓰려고도 하지 않았다네. … 내가 구슬이 아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애써 노력해 닦으려고 하지도 않았고, 또 내가 구슬임을 어느 정도 믿었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들과 어울리지도 못하였다.” 겁 많은 자존심과 존대한 수치심 때문에 “나를 망가뜨리고, 아내를 괴롭히고, 친구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결국 맹수가 되었으며, 비겁한 두려움과 고심(苦心)을 싫어한 게으름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탄식은 소설 속의 인물 ‘이징’의 것이다. 그는 남과 타협하지 못하는 성격인 데다 자신의 실력에 비해 너무 낮은 관직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 때문에 앙앙불락(怏怏不樂)한 인물이었다. 관직을 버리고 은거하며 오로지 시 짓는 일에만 심혈을 기울였다. 문명(文名)을 얻는 것이 쉽지 않았으며 궁핍을 못 이겨 다시 출사하였다. 그러나 예전에 우습게 여겨 상대하지 않던 자들이 내리는 위로부터의 명령을 견디지 못한다. 자존심의 상처를 다스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어느 날 발광하고 만다.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그의 탄식은, 어느 날 같은 해에 진사시에 급제했던 친구를 조우하여 털어 놓은, 시인이 되지 못해 호랑이가 되어버린 가련한 사내의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불화는 깊은 것이다. 층위에 관계없이 불화의 결과는 타자를 향할 때가 많다. 맹수의 발톱처럼 날을 세우고, 말에도 각(角)을 세운다. 상처를 입힌다. 나의 불화와 불안을 상쇄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다소의 위안 끝에 자위(自慰)한다. 반복은 습관이 되고 굳어져서 타성(惰性)이 된다. 타성은 나의 것이기도 하지만 타자에 관한 것이기도 하여 세상은 삭막하여지고 소통은 사라지게 된다. 모두 우리 안에 꿈틀대는 내부의 짐승 때문이다. <산월기>는 우리에게 성찰(省察)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그리고 또 말하기를 “너무 늦지 않게”를 주문하고 있다. 욕망과 불만, 수치와 분노의 그 어느 지점에서, 너무 늦기 전에 성찰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아츠시는 나이 열여섯에 세 번째의 엄마를 만나고, 천식을 안고 살았다. 서른세 살에 요절하였다. 그의 불우와 신열과 불면이, 인간과 인간의 절망과 또 다른 희망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낳았다. 큰 것을 꿈꾸거나 절망한 적이 있는 사람은 아츠시의 단편들로부터 성찰의 끈을 잡을 수 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을 누군가에게 호소하고 싶거나 산꼭대기 바위에 올라가 인적 드문 계곡을 향해 울부짖고 싶을 때 아츠시의 단편 안에 있는 맹수, 이징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만하다. “우리는 누군가의 스승이고 동시에 누군가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서문에 얹힌 신영복 선생의 말이다.

 

 

정진(精進) 끝에 다다른 목우(木偶)의 경지 - <명인전名人傳>

<명인전名人傳>의 이야기는 탄식과 성찰의 목소리와는 사뭇 다르다. 줄거리가 이러하다.
  조나라의 도읍 한단 땅에‘기창(紀昌)’이라는 이가 살았다. 천하제일 궁시(弓矢)의 명인이 되려는 야심을 품고 궁술의 진수를 배우기 전에 활의 명수 ‘비위(飛衛)’의 문하에 들어가나 자기 정진의 세월이 필요하였다. 마침내 그는 눈썹과 눈썹 사이에 거미가 집을 지어도 미동치 않으며 말이 산처럼 크게 보이는 감각을 터득한다. 5년이 걸렸다. 화살 1백 자루를 쏘는데, 첫 화살이 과녁에 적중하자 다음 화살은 먼저 번 화살의 오늬를 꽂고 그것을 반복하여 단 한 자루의 화살을 길게 일직선으로 연결시키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그의 스승으로부터 “우리들의 기(技)는 어린아이의 놀음에 불과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의 자존심이 더 큰 스승을 찾아가게 한다.  

 

산의 정상에서 만난 ‘감승(甘蠅)’이라는 노인은 눈이 양처럼 부드럽고 온화하며 수염 긴 늙은이였다. 의기충천한 기창이 화살을 메겨 날아가는 큰 철새 다섯 마리를 떨어뜨렸다. 감승은 그를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의 기암 위로 데려간다. 기창은 다리가 후들거리고 발뒤꿈치에서는 땀이 흘러내려 시위를 당기지도 못하고 암반 위에 엎드리고 만다. 맨손의 감승은 “사(射)를 보여주겠네.” 하며 보이지 않는 활에 보이지 않는 화살을 메기고 보이지 않는 시위를 만월 모양이 되기까지 당겨 쏘았다. 깨알만큼 작게 하늘을 날던 매가 공중에서 떨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기창은 등골이 오싹하였다. 예도(藝道)의 심연을 본 것이었다. 불사지사(不射之射)의 경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기창은 노명인의 곁에서 9년을 있다 산을 내려왔는데 남에게 지기 싫어하던 예전의 예리한 표정은 자취를 감추고 목우(木偶)처럼 어수룩한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스승 비위는 천하의 명인이 되어 돌아 온 제자를 알아보았고 세상은 눈앞에 펼쳐질 묘기를 기대하며 들끓었다. “지위(至爲)는 행하지 않는 것이고, 지언(至言)은 말하지 않는 것이고, 지사(至射)는 쏘지 않는 것이다.”하는 말을 남긴 기창은 일체 활을 손에 쥐지 않았다. 그러나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구름처럼 퍼져나갔다. 사심을 품은 자들은 기창의 집에서 사방 10정보(町步)를 떨어져 돌아다녔고, 현명한 철새는 그의 집 상공을 지나지 않았다. 명성 속에 그는 늙어갔다. 활의 명인은 활을 잊은 채, 감승 곁을 떠나온 지 40년이 지나 연기처럼 세상을 떠났다. 그 후 한단 땅에서는 당분간 화가는 붓을 멈추고 악사는 비파의 현을 끊고 장인은 줄과 자를 손에 쥐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천하제일 궁시(弓矢)의 명인이 이룬 예도(藝道)의 완성에 대한 예의였던 것이다.

‘기창’은 머뭇거리고 주저하였던 ‘이징’의 모습이 아니다. 나아간 것이다. 게으름을 벗은 영혼의 모색이 치열하다. 꿈꾸고 실천하여 벽을 넘어 이룬 것이다. 다만 성취한 그 어느 지점에서 거듭 나아가지 않고 물러난다. 인간의 것이나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그가 꿈꾸고 실천하면서 집요와 오만과 뜨거움을 보여 주나 도달한 그 어느 지점에서는 모든 것의 경계를 벗어버린다. 속인(俗人)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명인전>의‘기창’을 따라가면 개인의 노력이 도달할 수 있는, 인간적 성취의 최대치와 그것의 무의미함 사이에 우리는 놓이게 된다. 우리는 더러‘감승’, 혹은 ‘기창’의 모습을 갈구한다. 연기처럼 조용히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이 본질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범접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모습이 두려움과 외경(畏敬)으로 다가오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일상에 다소의 지혜를 얹어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본다면 인간은 삼가는 마음으로 들어설 수 있다. 잠시 붓을 들고 머뭇거리거나 흰 백묵 한 자루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높고 외롭고 쓸쓸한 것은 결과이다.


 

보라! 군자는 관을 바로하고 죽는 것이다. - <제자弟子>

<제자弟子>는 ‘자로(子路)’의 이야기다. 그는 13년간의 공자의 주유(周遊)를 호위한 고난의 동행자였다. 친구이기도 하고 비판자이기도 했다는 평이 있으나 공자가 “도가 행하여지지 않아 뗏목을 타고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해도 나를 따를 자는 자로뿐이다.”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애제자였다. 그러나 자로의 삶은 그 성격만큼이나 순탄하지 않았다. 고전 주석이 빼곡한 소설의 이야기는 대체로 인간 자로의 삶과 일치하는 것 같다. 오래 스승의 곁에 있으면서 가장 치열한 모색으로 뜨거웠던 그는 공가(孔家)의 집사로서 위나라의 박 땅을 다스렸으나 그의 주인에 해당하는 ‘공회’가 묶여 위협을 받자 불 속으로 뛰어든다. 군중 속에서 “정의파는 망하지 않는다. 불을 질러라, 불을!” 하면서 격렬하게 싸운다. 적의 창끝이 뺨을 스치고 관의 끈이 끊어지면서 땅에 떨어진다. 그의 어깻죽지에 또 다른 칼이 박히고 피가 솟구쳤다. 쓰러지며 손을 뻗어 관을 줍고 머리에 쓰고는 재빨리 끈을 묶는다. 선혈을 뒤집어 쓴 자로는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다해 절규한다. “보라! 군자는 관을 바로 하고 죽는 것이다!”그의 전신은 생선회같이 찢겨 죽었다. 그의 사체가 소금절임이 되었다는 말을 들은 공자는 저립명목(佇立暝目)하고 집안의 젓갈류를 내다 버리고 이후 일절 식탁에 올리지 않았다 한다.

자로의 뜨거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사실(史實)에 무지하므로 소설만을 따라가면 자로는 본디 유협의 야인이었으나 문에 든 이후에 ‘한 마리의 소 구실’을 다하는 외곬성의 방패였다. 사(邪)가 번창해 정(正)이 무시당하는 뻔한 사실 앞에서 그는 비분을 누르지 못한다. “하늘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선한 사람이 궁극적으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는 예는, 먼 옛날에는 모르지만 요즘 세상에는 들은 기억이 없다. 왜 그런가? 선을 이룬 데에 대한 보답은 결국, 선을 이루었다는 만족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인가?” 스승의 불운과 방랑의 운명에 대한 불만은 세속적 수고와 오욕을 모두 자신의 몸으로 감당하고 말겠다는 신념이 된다. 그러므로 공자의 탄식은 천하창생을 위한 것이나 자로가 흘린 눈물은 공자 한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평생 공자 한 사람을 지키는 개노릇만으로 끝난다고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결심을 한다. 그의 스승이 그의 순수함을 두고 “언제까지나 전혀 나이를 먹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라 하며 우스꽝스럽게 생각하거나 한편으로는 안타깝게 생각하기까지 한다. 그의 뜨거움은 성정의 순수와 슬픔의 강도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스승을 몰라보는 시정을 향한 그의 아픔은 이러한 것이다. “소위 군자라는 사람이 나만큼의 분노를 느끼고도 그것을 억누를 수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훌륭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분노를 나만큼 강하게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스스로 억누를 수 있을 만큼 분노를 약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틀림없이…”

그의 불만을 들어보면, 다른 제자와 그는 다르다. 진나라의 영공(靈公)이 신하의 아내와 통정하고 그녀의 속옷을 입고 조정에 나아가 이를 모두에게 자랑해 보이자 설야(泄冶)라는 신하가 간언했다가 죽임을 당한 일이 있었다 한다. 한 제자의 질문에 답하여 공자가 설야를 두고, “설야는 영공과 혈연관계도 아니고, 또 지위도 일개 대부에 불과하지 않은가? 군주가 올바르지 않고 나라가 올바르지 않으면 깨끗하게 물러나야 하는데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구구한 몸으로 일국의 어지러움을 바르게 하려 하다니, 이는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함부로 버린 게야. 인은커녕 소동에 불과한 게지.” 질문한 제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으나 자로가 그것을 잘라 말할 수 없지 않느냐는 투로 따지는데 공자는 이렇게 답한다. “유, 그대는 소의(小義) 속에 있는 훌륭함만을  보고 그 이상을 보지 못하는가? 옛 사대부들은 나라에 질서가 있으면 충성을 다해 왔으나, 나라에 도가 없으면 물러나 피했다네. 자네는 아직 출처진퇴(出處進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군.” 자로가 세상에서 중요한 것이 일신의 안전을 꾀하는 것인가, 몸을 버려 의를 세우는 것인가를 재차 묻자 스승은 “서둘러 죽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거든.” 하고 타이른다. 자로는 다른 제자들이 본능적으로 인정하고 마는, 스승의 말 속에 번지는, 명철보신(明哲保身)을 최상이라 생각하는 경향을 납득하지 못한다. 그가 찌푸린 표정으로 자리를 뜨자 스승이 말한다. “나라에 질서가 있을 때에도 곧기가 대쪽 같더니 나라에 질서가 없을 때에도 역시 곧기가 대쪽 같으니, 저 아이도 위나라의 사어(史魚) 같은 부류의 인물이군, 어쩌면 심상치 않은 죽음을 당할지도 몰라.” 자로는 천하 만대의 목탁(木鐸)인 스승의 예언대로 죽고 말았다. 여전히 규각(圭角)을 가졌으나 인간의 관록을 보이기 시작한 자로가, 형식을 숭상하는 듯한 스승의 실행력에 불만족하며 그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서 죽고 말았다. 노나라에서 위나라의 정변 소식을 들은 스승은 “유(由)는 죽을 것이다.” 하였으며 그의 말대로 된 것을 알았을 때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의 스승이 그에게 부린 말을 물러난 자, 혹은 현실주의자의 말이라고 하면 속되다 할 것이다. 나는 가끔 <필통>에서 살아있는 자로들을 만난다. 그들의 숨결은 뜨겁고 가슴은 뛰고 있으며 눈은 한없이 맑아서 목소리에도 타협할 줄 모르는 투명함이 쟁쟁하다.(그렇다고 하여 그들의 삶이 그 어디의 불행한 곳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 뜨거움과 순수와 슬픔에 대하여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자로의 삶은 우리시대에도 여전히 감당하기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주유하던 그들 스승과 제자는 은둔자로부터 “보아하니 손발로 수고하지 않으며 사실을 좇지 않고 공리공론으로 날을 세우는 사람 같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었다. “도가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도 도를 외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라고 말하는 자로의 음성은 소설 안의 이야기면서 우리시대의 것이기도 하여 여전히 외롭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단편 안의 인물들은 낱낱으로 존재한다. 개별적 이야기처럼 들린다. 게으름과 소통, 신독과 의미 있는 성찰, 정직과 순수를 살다간 사람들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두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츠시의 단편들은 사람들을 종횡으로 엮으며 장편이 된다. 역사 속에서 걸어 나온 사람들의 파노라마이며, 서사이며 역사다.

나는 아츠시의 책에 실린 마지막 단편 <이능李陵>에 관한 것은 미뤄둘까 한다. 그 안의 이야기는 좀 더 기다렸다 하고 싶다. ‘기마 없는 북정(北征)’에서 고군분투하다 적국 흉노에서 늙어 간 이능(李陵), 그를 변호하다 궁형(宮刑)의 치욕을 당하고 통분과 번민 속에서 최후의 울분을 자기 자신에게 쏟으려 했던, 그래서 기쁨도 흥분도 없이 그저 일의 완성에 대한 의지만으로 자신을 채찍질하며 ‘술이부작(述而不作)’의 경지에 다다른 사마천(司馬遷), 상상을 뛰어넘는 곤궁과 결핍, 혹은 고독을 통해 이룩한 처참하고도 장대한 의지 소무(蘇武)의 이야기는 쉽게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늘은 역시 보고 있었구나” 하는 이능의 늦은 탄식은 우리에게도 여전히 두려운 것이다. 지식인의 변명과 저항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의미있는 사실(史實)이며 전사(前史)를 이루는 것이다.

루카치는 그의 <역사소설론>에서 월터 스코트를 논하면서 시간과 공간의 역사적 형상화, 즉 역사적인 ‘여기 그리고 지금’은 자못 심원한 어떤 것이라 전제하면서 역사소설에서 “역사상 중요한 인물들을 낭만적으로 기념비화 하거나 심리적이고 사적인 자질구레한 일들의 나락에 빠뜨리지 않는 수단을 발견했다.”고 하였다. 어찌 그것이 역사소설만의 이야기일까. 우리시대의 모든 것이, 만약 우리가 우리의 과거를 망각하지만 않는다면 그 가치는 굴곡을 지나 온전하게 계승되고 유지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질구레해지지 않으려면 여기, 지금을 사는 것이 문제가 될 뿐이다.

네루가 딸에게 준 감옥에서의 마지막 편지에서 인용하는 롤랑의 말, “행동은 사상의 종점이다.”, 혹은 “행동을 동반하지 않는 사상은 모두가 미숙아이며 변절이다. 만약 우리가 사상의 주인이 되려고 한다면 우리는 행동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진리에 근접한 것이다. 여전히 두려움이 틈입하고 회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의 말처럼 우리가 그 무엇인가를 무릅쓰게 된다면 높은 산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실 것이다. 그렇게 용기를 내지 못한다면 오래 서리나 안개가 감도는 축축한 의식의 골짜기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언제 열릴지 모르나, 세상의 문을 열기 전의 나는 여전히 어두워하며 다만 읽은 것을 옮겨보고 싶었다.  

 

원문이 있는 곳 : http://blog.hani.co.kr/sanmoon/25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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