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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의 코 -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동물들의 신비한 생존전략!
크누트 슈미트 닐센 지음, 이한중 옮김 / 솔출판사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추천사를 쓴 최재천씨의 말에 의하면, 이 책의 저자인 크누트 슈미트-닐센은 동물 생리학 분야에서 거의 전설적인 학자라고 한다. 닐센은 노르웨이 출신의 생리학자로, 270편 이상의 논문과 다섯 권의 책을 저술했고 생물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국제 생물학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하였으며 영국왕립학회 회원, 미국 국립보건원의 평생연구원 자격을 가지고 있다 한다. 책의 제일 마지막 장인 ‘명예로운 나날’에서, 그는 스웨덴의 룬드대학교에서 라틴어로 진행되었던 명예박사학위식, 뉴턴과 챨스 다윈이 서명한 바로 그 명부(송아지 가죽으로 된)에 이름을 썼던 영국 왕립학회 입회식, 그리고 일본천황부부 앞에서의 국제생물학상 수상 등이 얼마나 감격스런 일이었나를 그리고 있다.
닐센은 스스로를, (아마도 할아버지로부터) 호기심 유전자를 물려받고, 환경도 좋았고, 자기가 단순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운좋은 학자였다고 간단하게 정리하게 있다. 하지만 그 ‘단순했기 때문에’라는 말이야말로, 자신의 과제에 온 힘을 집중하고 나머지 어려움들을 의연히 물리쳐버린, 그리고 결과물을 좋게 만들려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계속 업그레이드 해온 그의 노력을 너무나 겸손하게 표현한 말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 누구나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는 일평생을 ‘동물들은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왔다. 물고기들은 짠 바닷물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체액은 그만큼 짜지 않은데 왜 절여지지 않을까?) 사막 동물들은 그 뜨거운 열기를 어떻게 견디고, 오랜 시간 동안을(6개월 이상을) 물 안 먹고 어떻게 살아갈까? 얼음물 속에 다리를 담그고 사는 새들은 그 추위를 어떻게 견딜까? 등등. 물론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제는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대답은 단지 지식일 뿐 ‘신기하고도 재미있는 과학’이 아니다. 왜냐하면, 답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알아내느냐가 바로 과학이고, 이미 있는 매뉴얼을 보고 따라하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맨 땅에서 연구를 시작해서 어려움을 이겨내며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얻어내는 과정이야말로 ‘신기하고 신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학술논문에서 낙타의 체온과 날숨 속 수증기량 등을 그래프나 표로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측정했을까, 왜 하필 그 데이터를 측정했을까 하는 것이 더 궁금한 법. 이 책에는 바로 그런 과정들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낙타를 연구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가는 과정, 낙타를 사면서 사기당했던 일, 길들이는 과정, 낙타 무게를 재기 위한 저울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날숨 속의 수증기량은 어떻게 측정하는지 하는. 또, 40도가 넘는 아프리카에서 잠은 어떻게 자는지, 무엇을 먹는지, 살 수 없는 연구용 동물을 어떻게 잡는지, 도대체 그런 돈은 어떻게 마련하는지 등, 논문에선 볼 수 없는 정말로 궁금한 것들을 저자는 일기쓰듯 그리고 있다. 그리고 물론, 그가 얻어낸 대답도 당연 들어있다.
-새들이 바닷물의 염분을 제거하는 방법은 오줌이 아니라 머릿속에 있는 ‘염류샘’이라는 데서 염분이 많은 액체를 만들어 그것이 부리를 타고 밖으로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고래와 물개는 콩팥에서 농도 높은 오줌을 만듦으로써 해결한다)
-캥거루쥐가 6개월동안 물을 안 먹고도 수분평형을 유지하는 이유는, 먹이가 분해될 때 나오는 수분 때문이다. 또 야행성인 캥거루쥐의 굴 속은 (낮에) 바깥보다 습도가 더 높은 데다가, 농축된 오줌을 만들고 수분이 적은 똥을 다시 먹어서 더욱 바싹 마른 똥을 누는 것도 도움을 준다.
-낙타는 체온이 41도까지 올라갈 때도 땀을 흘리지 않는다(그래서 수분 손실이 더 적다), 밤에 체온이 정상이하로 떨어지면 다음 날 낮에 열을 더 많이 견딜 수 있다(즉, 열을 마이너스로 저장할 수 있다), 게다가 털이 단열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털을 밀어버리면 수분 사용이 50%나 증가한다), 사람이나 개는 체내 수분의 12%만 잃어도 목숨이 위험하지만 낙타는 최대 25%까지도 견딜 수 있다. 또 물을 엄청나게 많이 들이킬 수 있다(몇 분 만에 자기 체중의 30%만큼의 물을 마실 수 있다), 하지만 물을 ‘저장’하지는 않는다. 낙타가 호흡할 때 날숨은 체온보다 훨씬 낮아서 수분을 덜 포함한다. 또 며칠동안 물을 마시지 못하면 날숨의 습도가 50%가 안된다. (매우 건조할 땐 코에서 나온 분비물이 말라버리면서 코의 표면에 건조한 점막층과 세포찌꺼기를 만드는데, 그 건조한 분비물이 습한 공기로부터 수증기를 빨아들인다. 숨을 들이쉴 때 건조한 바깥 공기가 코 표면을 지나며 코를 말려버린다)
(중간 생략)
시금치가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는 걸 밝혀 낸 사람도 바로 닐센이었다. 시금치에는 옥살산이 많은데, 이 옥살산은 칼슘과 결합하기를 좋아한다. 즉, 시금치를 많이 먹으면 뼈 속의 칼슘이 옥살산과 결합하면서 빠져나가버린다. 그렇게 생긴 옥살산칼슘은 신장결석을 일으킬 수 있다. (쥐 실험으로 확인함) 그러니 신장결석이 잘 생기는 사람은 시금치를 먹지 말아야 하며, 정상인 사람들도 장기간 지속적으로 먹지는 말아야 한다.
그는 연구를 위해 세계의 여러 곳에서 살아봤기 때문에, 다양한 환경에서 먹고 자고 사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특히 아프리카에서의 경험들이 눈길을 끌었다. 신발을 신기 전에는 속에 전갈이 있나 없나를 확인해야 하고, 샤워를 하기 전에는 하수구에 전갈이 있나 없나를 확인해야한단다. 집 밖에는 방울뱀이 돌아다니고, 더워서 지붕에서 자고 있노라면 파리가 입과 코로 달려든단다. 바지주머니에서 사막여우를 기르고, 애완용 고슴도치는 뭐든지 먹어치우는 진공청소기 역할을 한단다. 야자수잎으로 만든 집이 홍수를 맞기도 한다.
덴마크에 살던 그도 2차대전의 파도를 피해가진 못했다. 덴마크가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덜하긴 했어도, 돈을 털어 지하소식지를 만들고 동료들의 탈출을 도와주는 일 등은 일상적이었다. 미국에 망명해서도 호위를 받으며 가명을 사용해야 했지만 어처구니없는 실수(가방에 본명을 커다랗게 쓰고 다니기)를 하기도 했다는 이야기, 닐스 보어가 머리가 커서 헬멧을 쓰지 못하고 있었느데, 덕분에 산소마스크 착용하라는 말을 못 들어 기절했다는 이야기, 수많은 과학자들의 괴짜스럽고 때론 무모하기도 한 행동들, 재치있는 말과 장난들, 감동적인 위로와 격려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또한 이 책에 들어있다.
그는 과학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도 결코 평범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 자신이 유능하고 유명한 과학자였으면서도 부인에 대해 느끼는 콤플렉스, 이혼, 딸 또래 여성과의 사랑과 재혼, 딸의 죽음, 절친했던 이들의 죽음, 자전거 사고-. 하지만 그는, 절망의 순간이든 희망의 순간이든 어떤 때라도 늘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끝없는 호기심을 해결하려고 했던 학문적 열정, 그리고 일상적인 부분에서의 삶을 밀도 있고 감성적으로 살아가는 열정, 이 둘을 다 갖고 있는 경우가 그리 흔치는 않으리라.
학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충고는 특히나 귀중할 터인데,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하는 교류다. 동료 과학자들의 작업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야말로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효율적이면서도 지적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원천이라고 강조한다. 또 쉽게, 짧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실례를 들어보이기까지 한다. 프리젠테이션을 잘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다; 구구절절 보여주지 말고, 임펙트 강한 그림 몇 장으로 승부하라. 얼마 전에 최재천 교수의 프리젠테이션을 보고 참 훌륭하다고 감탄한 적이 있었는데, 닐센은 거기에 유머까지 넣는 것 같다.
그는 또 넓은 시야와 새로운 관점의 중요성도 보여준다. 각각의 동물들에 대해 설명하는 대신, 스케일, 외부를 인지하는 몇 가지 방법, 경계면, 이런 식으로 보면 또 다른 아이디어와 문제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저자의 전공이 비교생리학이기에 특히 그러기도 했겠지만, 다른 과학자와의 교류를 강조하는 저자는 요즘 유행하는 ‘통섭’을 벌써부터 실천하고 있었다. 직접 기계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 학생들에게 생물학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전문화․세분화 시대의 과학자들이 손쉽게 다른 분야의 지식(바로 옆 방부터)을 알기 위해 필요한 잡지의 필요성과 그걸 만든 과정 등, 추상적이고 현학적인 말 대신, 생물학의 대가가 직접 경험으로 보여주는 모든 정보가 다 값지다.
최재천씨도 말한 것처럼, 이렇게 평생의 사건들을 아주 세세한 것까지 다 기억하고 있는 건 아마 그가 일기를 썼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다양한 정보와 배울거리들을 아주 재밌게 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대가의 일기만큼 좋은 건 없을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도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기를 쓰려면, 하루에 아주 작은 한 가지라도 뭔가 가치있거나 즐거운 일을 하려고 노력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