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흄세 에세이 1
알베르 카뮈 지음, 박해현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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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력 있는 봄과 젊음의 아름다운 묘사, 죽음과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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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흄세 에세이 1
알베르 카뮈 지음, 박해현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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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이름을 너무 대충대충 들었다. 물론 이방인을 읽기는 했지만 어려웠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몇 날을 고민하다가 던져 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랬으면 이 책을 선택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욕심이 화를 불렀다. 작고 얇고 예쁜 책이 일주일 내내 나를 괴롭힌다. 젊은 날의 카뮈의 생각 속으로 겁도 없이 들어섰다.



카뮈는 1913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동부의 소도시 몽도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하고 어머니랑 가난하고 힘든 유년기를 보낸다. 고학으로 철학을 전공했으며 고교 졸업반에 만난 철학자 장 그르니에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저서로는 <결혼, 여름>과 <이방인>, <패스트>, <안가 겉>, <시시포스의 신화>등이 있다.

옮긴이 박혜현은 조선일보에서 파리 특파원을 지냈으며 젊은 시절 읽은 카뮈 문학에 매료되어 프랑스어를 배웠다. <결혼>, <여름>을 번역했다.

책은 4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카뮈는 스탕달의 문장을 대문 삼는다. 문장은 4개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줄기가 된다. 티파사에서 결혼, 제밀라의 바람, 알제의 여름, 사막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분량은 많지 않으나 화려하고 자세한 묘사로 티파사와 알제, 제밀라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다. 하지만 이국 땅, 한 번도 가본적 없는 곳을 문자로만 따라가기에는 숨이 찼다. 신발 끈을 단단히 묶는 심정으로 카뮈의 호흡을 따라가 본다.



나를 송두리째 휘어잡는 것은 저 자연과 바다의 위대하고 자유분방한 사랑이다. 이러한 폐허와 봄의 결혼 속에서 폐허의 잔해들은 다시 돌이 되어 인간의 손길이 낸 광택을 지워버리면서 자연으로 회귀했다. (p13 티파사의 결혼)

결혼이라는 통상적인 관념을 갖고 있던 나는 이 이야기에서 오래 헤맨다. 길이 없는 미로처럼 펼쳐지는 카뮈의 문장 속에서 길을 잃었다. 어디서 결혼이라는 단서를 찾아서 이 미로를 빠져나간단 말인가? 아무리 그래도 2번 정도 읽으면 길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2번을 읽어도 미로다. 여전히 희미하고 뿌였다. 단지 느낌만 전해진다. 티파사가 아름다운 곳이며, 카뮈는 젊음의 표현을 수영과 몸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아름다운 티파사에서 봄의 자연들은 결혼을 한다. 식물들은 아름다운 사랑을 피워 내고 하나로 결합하여 결혼을 완성시킨다. 폐허와 봄의 결혼 속에서 폐허의 잔해 들은 다시 돌이 되어 인간의 흔적을 지운다. 세월의 흐름을 자연과 함께 나란히 두는 느낌이다. 폐허가 된 유적지를 돌면서 함께 느끼고 보는 느낌이지만 분명하게 눈에 보이듯이 이해되지는 않는다. 다만 싱그러움으로 죽은 듯 있던 식물들이 생명력을 피워내던 봄에 대한 느낌은 강렬하게 와닿았다. 느낌들을 말로 찾지 못해 멍하니 감탄만 하던 봄이 이국의 티파사에서 카뮈의 시선으로 되살아났다. 탁월하지만 어렵다.


나는 끝까지 환하게 깨어 있고 싶고, 내가 지닌 질투와 공포가 넘쳐 나는 가운데 나의 최후를 응시하고 싶다. (p36 제밀라의 바람)

스탕달의 문장을 인용한 카뮈는 제밀라의 바람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말한다. 사형집행인이 매단 줄은 추기경을 한 번에 죽음으로 이르게 하지 못했다. 두 번이나 묶었지만 추기경은 사형집행인에게 “굳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스탕달의 문장. 굳이라는 것은 죽음을 똑바로 바라보는 당당함이라고 해설 편에서 말한다. 그 문장을 책의 대문에 걸었던 이유를 보여주는 위문장이다. 제밀라의 고대 유적지에서 부는 바람을 느끼며 카뮈는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의 뿌리는 삶에 대한 질투’라는 것을 깨달은 카뮈는 질투와 공포 가운데 자신의 최후를 응시하고 싶다고 한다. 자신의 최후를 젊음이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스물넷에 고민한 것이다. 죽음을 늘 생각하기에 삶을 잘 살아내는 삶의 본을 보인 것인가? 그의 사유의 폭에 머리가 어지럽다. 바람이 불어오는 계곡에서 그 바람을 따라 생각이 끝도 없이 달려 죽음까지 이른 것이다. 질병에 대한 생각도 나오는데, 질병은 죽음을 대응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죽음 실습 코스를 연다고 한다. 죽음의 실습 코스를 잘 지나가야 할 텐데... 그래서 카뮈처럼 환하게 깨어서 질투와 공포가 넘쳐나는 가운데 최후를 응시할 수 있기를 감히 바라 본다.


'쓴맛을 주지 않는 진실은 없다, 젊음이란 무엇보다도 마구 방출되는 듯한 삶의 서두름이다, 일생은 쌓아가는 게 아니라 불태우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사실은 사랑 그 자체를 회피하려고 삶을 사랑하는 척한다' 등의 문장은 카뮈를 단순한 소설가를 넘어서는 철학가로 만드는 문장이다. 아주 부끄럽고 쓸데없지만 생각해 본다. 나의 20대에 어떤 생각들을 했던가? 그냥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들이 삶을 이끌어 갔던 20대. 이후로도 그보다 나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30대, 40대. 삶의 자리를 크게 떠나 본적도 없고, 경험도 지식도 부족한 나에게 카뮈의 20대는 경외의 수준이다. 그 경외라는 것이 지금은 탁월한 문장 몇 개에 불과하지만 그를 조금 더 알고 싶다는 의욕이 생긴다. 제밀라의 바람을 느껴보고 싶고, 알제의 여름과 티파사의 봄을 느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굳이 여행을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던 나에게 카뮈는 낯선 땅에 대한 질투를 심었다. 낯섦과 두려움, 그 사이 아름다움을 넣으며 그가 느꼈던 봄의 결혼을 좁은 머릿속에 넣어 본다. 옮긴이는 청춘의 때에 읽어야 한다고 했는데, 청춘의 때에 부디 카뮈를 만나기를 바란다. 카뮈의 미로 같은 문자들 속에서 고민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멋진 일이 될 테니까. 쉽게 읽히면 스스로 뿌듯해하고, 쉽지 읽히지 않아도 실망하지 마시길. 두 번을 읽고도 길을 잃은 사람이 있으니... 시간을 두고 세 번째 도전을 해 봐야겠다. 기어이 카뮈의 매력을 발견하고 말리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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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맥베스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공민희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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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게 풀어써서 읽기 편하면서도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그대로 느낄수 있다. 또한 인간의 욕망과 거짓말, 갈등에 대해 깊이 있게 느낄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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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맥베스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공민희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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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씩은 셰익스피어를 읽어야 한다던 괴테. 굳이 괴테의 말이 아니더라도 셰익스피어는 읽어야만 하는 작가이다. 그의 4대 비극 중 가장 나중에 쓰였다고 하는 멕베스를 이제야 읽는 부끄러움을 감수한다. 그 부끄러움은 잠깐이므로.

세계문학 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최고의 극작가 셰익스피어. 평생 37편의 희곡과 154편의 소네트, 2편의 이야기를 집필했다. 그의 작품 말고 사생활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옮긴이 공민희는 영국에서 미술관과 박물관 문화유산 관리를 공부했고, 현재는 번역 에이전시에서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책은 시작 부분에 인물 관계도 및 등장인물이 나오고, 5막의 구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완전한 희곡체의 글을 읽는 즐거움과 낯섦을 동시에 선사하고 있다. 황량한 들판에서 천둥 가운데 마녀들로부터 시작되는 내용은 맥베스보다 마녀들의 비중을 더 두는 느낌도 든다. 천둥이 치고 마녀들이 모이는 황량한 들을 지켜보는 관객의 자리에 앉으며 책 속 역할로 들어가 본다.


별들이여 그 빛을 가려라

내 음흉하고 깊은 욕망이 드러나지 못하도록.

손이 하는 일을 눈이 보지 않아야 해.

그러면 나중엔 보고도 두려워 모른 척하겠지.(p28)

노르웨이 반역 군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는 멕베스에게 3명의 마녀가 나타나다. 그녀들은 맥베스가 영주가 될 것이며, 왕이 된다고 말한다. 또한 같이 있던 뱅쿼에게는 아들이 왕이 된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맥베스는 혼란스러워진다. 그 혼란은 욕망의 옷을 입기 시작하고, 이어 전령으로부터 자신이 영주가 되었음을 듣자 그 욕망은 맥베스를 집어삼킨다. 충성스럽고 용맹했으며 신의 있던 장군 맥베스는 왕을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될 것을 결심한다. 그 결심들은 위의 대사처럼 감추고 태연하게 왕을 맞이한다. 그러나 별들이 빛을 가린다고 하더라도 맥베스 자신은 알지 않은가? 자신의 음흉하고 깊은 욕망을. 그 깊은 욕망은 앞으로 맥베스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 흥미가 생기고, 긴장감이 몰려온다.

밤이면 끔찍한 악몽에 뒤척이겠지. 그럴 바엔 차라리 죽음과 함께 하는 쪽이 나아. 적어도 안식과 평화를 얻을 테니까. 끝없는 무아지경 속에서 거짓말을 해야 하는 마음속 고문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야. (p79)

욕망은 있으나 왕을 차마 죽이지 못하겠다는 맥베스를 그의 아내가 부추긴다. 아내는 자신의 성을 방문한 왕의 시종들에게 술에 수면제를 타서 먹인다.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맥베스를 부추겨 결국 왕을 살해한다. 왕의 죽음을 본 맥베스는 뒤처리를 깔끔하게 하지 못하고, 돌아서 나온다. 그의 아내는 살해 현장으로 들어가 피 묻은 단검을 수면제에 취해 잠든 시종들의 손에 쥐어 놓고 나온다. 이후 사건은 맥 배수아 아내의 계획대로 진행되고, 맥베스는 빠르게 왕의 자리에 앉게 된다. 하지만 맥베스는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면서, 죽음이 차라리 나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마음속에 전갈들이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하면서.

거짓말은 마음속에 고문이 될 수 있을까? 거짓말의 정도와 크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맥베스처럼 왕을 죽인 것이라면 엄청난 고문이 될 수도 있다. 명예와 신의를 저버릴 정도의 욕망이었다면 맥베스는 왕위에 앉았을 때 기뻐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이 가진 왕위보다 자신의 행위와 잘못 앞에 더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맥베스는 그 정도로 왕위를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왕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는 없었을까? 옳지 않은 방법으로 권력을 잡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그렇게 보면 맥베스는 심성이 여리고 착한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터무니없는 생각을 해본다.

이후 맥베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아내는? 정확한 것은 책을 통해 하나하나 따라가보면 좋겠다. 그의 마음속 전갈들도 느껴보고, 마녀들의 예언이 이후에 어떻게 펼쳐지는지도.

부당한 방법으로 욕망을 채운 사람의 심적 갈등과 아픔이 주된 내용인 걸까? 가족들을 남겨두고 떠났던 맥더프의 선택이 옳았던 것일까? 문득 살아가는 이야기에는 옳고 그른 것이 명확하게 몇 개나 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맥베스의 선택은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선택이지만 이후에도 그는 그런 선택들을 연속적으로 하면서 괴로워한다. 어느 순간, 어느 자리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모양이다.

4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현재까지 읽히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이런 생명력 때문이지 않을까? 그 인물들 속에 내가 있고, 주위의 사람들이 있는 그런 관계와 일들이 생소하지도 낯설지도 않다. 누구나 맥베스가 될 수 있으며, 그의 아내도 될 수 있고, 억울하게 죽어간 덩컨 왕이 될 수 있다. 맥베스의 고뇌가 서늘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인간으로서 좀 더 나은 선택으로 자신의 삶에 전갈을 제거하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런 선택과 일들로 자신의 삶을 망친 맥베스라는 사람도 있었다고 경계하면서 오늘을 좀 더 사람답게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자신의 욕망을 여과 없이 바라보며 그 욕망에 먹이를 주지 않는 용기를 갖게 될 테니. 맥베스 장군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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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말들 - 인생에 질문이 찾아온 순간, 그림이 들려준 이야기
태지원 지음 / 클랩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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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북스의 블로그 이웃인 나는 이 책의 제목 선정부터 관심을 갖고 참여해 왔다. 제목을 정하고 책이 출간되기까지 거의 2달 정도가 걸린 것 같다. 시를 읽고 아름다운 것에 관심이 많아져서 그림에 도전해 보리라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 시작이 이 책의 서평단에 응모하는 것이었고, 운 좋게도 선정이 되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낯설지만 좋은 친구를 소개받는 자리에 나가는 설렘으로 책을 맞는다.

 

저자 태지원은 10년간 중고등학교에서 경제, 사회문화, 역사 등의 과목을 가르치다가 남편을 따라 5년간 중동에서 살다가 귀국했다.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고 지식의 부스러기를 모아 글로 엮어내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온라인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서 명화를 주제로 연재한 매거진이 대상을 받아 첫 책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을 출간했다.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장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알아야 할 것들’에서는 그림을 통해 인생을 더 다채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담았고, 2장 ‘나 자신과 잘 지내고 싶다면’에서는 명화를 통해 나를 이해하고, 내 마음을 돌보는 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3장 ‘적당한 거리가 관계를 아름답게 만든다’에서는 사람 사이에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를 풀어가는 해법을 찾아본다. 4장 ‘지치고 힘들어도 다시 일어나는 법’에서는 인생의 힘겨운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를 다독여 다시 일어나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풀리지 않는 질문들이 숨 막히게 할 때 내게도 그림이 걸어오는 말들이 들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냥 봐도 명화 같은 표지의 그림으로 시선을 주며 책 속으로 들어가 본다.

 

재능을 의심받던 시기도 있었으나, 단순히 주변의 평판에 굴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재능을 구현하며 살아간 예술가였다.(p23 알폰스 무하)

1860년에 모라비아(현재의 체코 동쪽에 있는 지역)에서 태어나 스물일곱 살에 프라하 조형예술 아카데미에 지원했으나 돈을 벌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보라는 말과 함께 불합격한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극장 무대배경 그리기, 초상화나 장식 미술 작업을 계속 이어나간다. 그러던 중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일이 파리의 유명 배우가 공연하는 <지스몽다>의 포스트를 그리게 된다. 이 그림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포스터를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그의 삶을 통해 보면 처음 아카데미에서 불합격했을 때 일반 사람들처럼 좌절하고 포기했더라면 그의 작품은 나올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창작이라는 것에 마음을 두는 사람들은 재능이라는 부분에 대해 고민을 해 봤을 것이다. ‘내게는 정말 티끌만 한 재능도 없는 것일까?, 이건 그만두고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운 창작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나 또한 내 생각을 글로 쓰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바램을 갖고 있지만, 재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정말 티끌만 한 재능이라도 있다면 계속하게 해달라고 아무도 모르게 기도할 때도 많다. 그런 질문들 속에서 만난 알폰스 무하의 그림은 많은 의미를 담고 다가왔다. 밝고 따뜻하면서도 신비한 느낌을 주는 슬라브 서사시 연작 No.20:슬라브 찬가, 인류를 위한 슬라브인들>을 보면 그가 단순히 재능이 없다는 평가를 뛰어넘은 것에서 그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재능 그 이상, 자신만의 미술 세계를 창조해 낸 것이다. 재능을 하나의 잣대로 규정하거나 담을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당당하게 답하는 알폰스 무하의 그림이 호감 가는 첫인상으로 눈인사를 보내는 경험을 한다.


 

한 인간이 특정한 욕구에 진정으로 연연하지 않는다면, 대게 그 대상을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다른 생각에 몰두해 있거나 관심이 없다면, 그것을 떠올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p159 쿠엔틴 마시스)

쿠엔틴 마시스가 활동하던 안트베르펜은 국제무역이 번성한 도시였으며, 유럽 여러 나라 상인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문제는 그 상인들이 자국의 화폐로 물건값을 지불하는 바람에 환전 상이 꼭 필요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환전 상이나 돈에 관계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천대 시 하는 풍조가 강했다. 성경의 세리를 사람들이 사람 취급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런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마시스는 자신의 그림<대부업자와 그의 아내>라는 그림을 통해 질문을 던진다. 마음속 욕구와 이를 경계하는 이성 사이의 간극이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그림에는 남편은 돈을 들여다보고 있고, 아내는 기도서를 펼쳐 놓고 다른 손과 눈은 남편이 만지고 있는 돈을 보고 있다. 이 상반된 행위를 통해 욕구와 이성의 간극을 말하면서 모순적인 사람들에게 작가만의 풍자를 던지고 있다. 고상하게 이성으로 욕구를 감추고 있지만, 인간은 모두 속물적인 욕망이 있다는 듯이.

이 그림을 보여 주면서 저자는 자신이 원고료를 받기 위해 애썼던 경험 하나를 이야기한다. 돈에 별로 관심 없다고 자주 말하는 사람은 실은 돈에 아주 관심이 많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위의 이야기를 한다. 그러고 보니 나 자신도 솔직하다는 것을 가장하면서 돈에 관심 없다는 말을 자주 했던 것 같다. 그때는 왜 이런 식의 생각을 해보지 못했을까? 정작 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마는 이 그림을 통해 솔직히 돈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인간은 모순투성이고, 감추고 숨겨서 자신을 멋지게 포장하고 싶어 하니까.


 

행복과 설렘이 비축되어야 새로운 일을 시작할 의지도 용기도 솟아나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볼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p268 조지 프레드릭 와츠)

자신의 삶이 구차하다고 느껴질 때 보는 그림으로 조지 프레드릭 와츠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제목은 희망이지만 그림은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소녀의 모습이 정말 희망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그림의 설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찬찬히 그림을 본다. 그러다 간신히 깨닫는다. 희망은 절박함 가운데 빛나는 단 하나의 빛 같은 것이라고. 소녀의 눈을 가린 팔에는 줄이 끊어진 하프가 들려 있다. 자세히 보면 하프의 한 줄만이 이어져 있다. 그 한 줄을 통해 희망을 보고 삶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우리 삶이지 않을까? 너무 쉽게 많이 노출된 타인의 삶 속에서 그들은 화려하게 빛난다. sns 속의 타인의 삶은 아름답고 행복하게 연출된 그림처럼 생경하지만 그래서 더 내 삶을 비참하게 만든다. 사회 분위기와 문화가 과장되게 연출된 좋은 장면만을 보여주는 상황에서 지리멸렬하게 이어지는 내 일상이 구차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하기에 한 줄의 끊어지지 않은 하프 줄 같은 희망을 붙들고 오늘도 나를 일으켜 세운다. 내게만 유독 가혹한 현실이 아님을 그림을 통해 본다. 그 시대에 살던 작가도 이 그림을 희망이라 이름 지었으니.

작가에게는 한 줄의 끊어지지 않는 하프 줄이 희망이 되었던 것처럼 나의 끊어지지 않은 하프 줄 같은 희망은 무엇인가? 그림은 나만의 희망을 찾아보라고 조용히 말하는 것 같다.


 

모르는 그림들이 거의 대부분이지만 시를 읽을 때 뻔뻔하리만치 나만의 느낌을 따랐던 나는 그 경험으로 그림들도 두려움이나 어려움 없이 마주했다. 간혹 자신의 무지함이 크게 덮치듯이 몰려왔지만 시작이니 괜찮다고 다독이며 읽었다. 그림의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를 절묘하게 연결시키는 저자의 글 솜씨가 부러웠고, 작가들의 삶과 생활들을 알고 보는 그림은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현재에 충실하라는 메시지의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할 수 있을 때 장미 봉오리를 모으라>는 여성들의 아름다움과 하늘거리는 원피스의 느낌도 아름답게 다가왔다. 가면 화가라 불리는 엔소르의 <가면에 둘러싸인 자화상>에서는 그림 속 작가의 시선이 많은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지독한 비평에 시달렸던 페레 보렐 델 카소의 <비평으로부터의 탈출>은 급박함이 느껴지는 소년의 역동성이 저자의 고뇌를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예술이라는 틀을 깬 마르셀 뒤샹의 변기도 기억에 남는다. 디에고 디베라의 민중들의 삶의 고뇌와 고통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꽃을 파는 여자>는 노란 카라의 화려함이 더 꽃바구니를 메고 있는 여자를 돋보이게 한다. 조르주 드 라투르의 <카드놀이 사기꾼>은 그림을 통해 그 상황을 묘사한 탁월함으로 인해 웃음 짓게 해주었다. 많은 작가들의 그림과 설명, 저자의 경험들과 이야기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는 책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과는 전혀 친하지 않았지만 늦게라도 그림과 친구할 수 있는 좋은 길라잡이를 만난 느낌이다. 또 그림을 보면서 잘 모르더라도 오래 보면 예쁘다던 시처럼 자주 오래 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림과 나 친하지 않았던 시간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비하는 시간들을 천천히 주고 사귀면 저자가 느낀 것처럼 그림들이 각자의 말들을 내게 들려줄 것이라는 한 줄의 끊어지지 않는 하프 줄 같은 희망도 품어 보았다. 삶에서 많은 말들과 관계들에 지칠 때, 누군가의 위로의 말조차도 힘이 들 때 조용히 침묵으로 말을 건네며 위로하는 그림을 만나 보길 권한다. 비록 바로 마음을 열고 친해지지는 않을지라도 오래 두고 깊은 관계를 이어가는 좋은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지금 바로 반짝이며 당신을 기다리는 그림들 속으로 떠나보자.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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