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흄세 에세이 1
알베르 카뮈 지음, 박해현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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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이름을 너무 대충대충 들었다. 물론 이방인을 읽기는 했지만 어려웠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몇 날을 고민하다가 던져 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랬으면 이 책을 선택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욕심이 화를 불렀다. 작고 얇고 예쁜 책이 일주일 내내 나를 괴롭힌다. 젊은 날의 카뮈의 생각 속으로 겁도 없이 들어섰다.



카뮈는 1913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동부의 소도시 몽도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하고 어머니랑 가난하고 힘든 유년기를 보낸다. 고학으로 철학을 전공했으며 고교 졸업반에 만난 철학자 장 그르니에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저서로는 <결혼, 여름>과 <이방인>, <패스트>, <안가 겉>, <시시포스의 신화>등이 있다.

옮긴이 박혜현은 조선일보에서 파리 특파원을 지냈으며 젊은 시절 읽은 카뮈 문학에 매료되어 프랑스어를 배웠다. <결혼>, <여름>을 번역했다.

책은 4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카뮈는 스탕달의 문장을 대문 삼는다. 문장은 4개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줄기가 된다. 티파사에서 결혼, 제밀라의 바람, 알제의 여름, 사막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분량은 많지 않으나 화려하고 자세한 묘사로 티파사와 알제, 제밀라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다. 하지만 이국 땅, 한 번도 가본적 없는 곳을 문자로만 따라가기에는 숨이 찼다. 신발 끈을 단단히 묶는 심정으로 카뮈의 호흡을 따라가 본다.



나를 송두리째 휘어잡는 것은 저 자연과 바다의 위대하고 자유분방한 사랑이다. 이러한 폐허와 봄의 결혼 속에서 폐허의 잔해들은 다시 돌이 되어 인간의 손길이 낸 광택을 지워버리면서 자연으로 회귀했다. (p13 티파사의 결혼)

결혼이라는 통상적인 관념을 갖고 있던 나는 이 이야기에서 오래 헤맨다. 길이 없는 미로처럼 펼쳐지는 카뮈의 문장 속에서 길을 잃었다. 어디서 결혼이라는 단서를 찾아서 이 미로를 빠져나간단 말인가? 아무리 그래도 2번 정도 읽으면 길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2번을 읽어도 미로다. 여전히 희미하고 뿌였다. 단지 느낌만 전해진다. 티파사가 아름다운 곳이며, 카뮈는 젊음의 표현을 수영과 몸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아름다운 티파사에서 봄의 자연들은 결혼을 한다. 식물들은 아름다운 사랑을 피워 내고 하나로 결합하여 결혼을 완성시킨다. 폐허와 봄의 결혼 속에서 폐허의 잔해 들은 다시 돌이 되어 인간의 흔적을 지운다. 세월의 흐름을 자연과 함께 나란히 두는 느낌이다. 폐허가 된 유적지를 돌면서 함께 느끼고 보는 느낌이지만 분명하게 눈에 보이듯이 이해되지는 않는다. 다만 싱그러움으로 죽은 듯 있던 식물들이 생명력을 피워내던 봄에 대한 느낌은 강렬하게 와닿았다. 느낌들을 말로 찾지 못해 멍하니 감탄만 하던 봄이 이국의 티파사에서 카뮈의 시선으로 되살아났다. 탁월하지만 어렵다.


나는 끝까지 환하게 깨어 있고 싶고, 내가 지닌 질투와 공포가 넘쳐 나는 가운데 나의 최후를 응시하고 싶다. (p36 제밀라의 바람)

스탕달의 문장을 인용한 카뮈는 제밀라의 바람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말한다. 사형집행인이 매단 줄은 추기경을 한 번에 죽음으로 이르게 하지 못했다. 두 번이나 묶었지만 추기경은 사형집행인에게 “굳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스탕달의 문장. 굳이라는 것은 죽음을 똑바로 바라보는 당당함이라고 해설 편에서 말한다. 그 문장을 책의 대문에 걸었던 이유를 보여주는 위문장이다. 제밀라의 고대 유적지에서 부는 바람을 느끼며 카뮈는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의 뿌리는 삶에 대한 질투’라는 것을 깨달은 카뮈는 질투와 공포 가운데 자신의 최후를 응시하고 싶다고 한다. 자신의 최후를 젊음이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스물넷에 고민한 것이다. 죽음을 늘 생각하기에 삶을 잘 살아내는 삶의 본을 보인 것인가? 그의 사유의 폭에 머리가 어지럽다. 바람이 불어오는 계곡에서 그 바람을 따라 생각이 끝도 없이 달려 죽음까지 이른 것이다. 질병에 대한 생각도 나오는데, 질병은 죽음을 대응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죽음 실습 코스를 연다고 한다. 죽음의 실습 코스를 잘 지나가야 할 텐데... 그래서 카뮈처럼 환하게 깨어서 질투와 공포가 넘쳐나는 가운데 최후를 응시할 수 있기를 감히 바라 본다.


'쓴맛을 주지 않는 진실은 없다, 젊음이란 무엇보다도 마구 방출되는 듯한 삶의 서두름이다, 일생은 쌓아가는 게 아니라 불태우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사실은 사랑 그 자체를 회피하려고 삶을 사랑하는 척한다' 등의 문장은 카뮈를 단순한 소설가를 넘어서는 철학가로 만드는 문장이다. 아주 부끄럽고 쓸데없지만 생각해 본다. 나의 20대에 어떤 생각들을 했던가? 그냥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들이 삶을 이끌어 갔던 20대. 이후로도 그보다 나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30대, 40대. 삶의 자리를 크게 떠나 본적도 없고, 경험도 지식도 부족한 나에게 카뮈의 20대는 경외의 수준이다. 그 경외라는 것이 지금은 탁월한 문장 몇 개에 불과하지만 그를 조금 더 알고 싶다는 의욕이 생긴다. 제밀라의 바람을 느껴보고 싶고, 알제의 여름과 티파사의 봄을 느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굳이 여행을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던 나에게 카뮈는 낯선 땅에 대한 질투를 심었다. 낯섦과 두려움, 그 사이 아름다움을 넣으며 그가 느꼈던 봄의 결혼을 좁은 머릿속에 넣어 본다. 옮긴이는 청춘의 때에 읽어야 한다고 했는데, 청춘의 때에 부디 카뮈를 만나기를 바란다. 카뮈의 미로 같은 문자들 속에서 고민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멋진 일이 될 테니까. 쉽게 읽히면 스스로 뿌듯해하고, 쉽지 읽히지 않아도 실망하지 마시길. 두 번을 읽고도 길을 잃은 사람이 있으니... 시간을 두고 세 번째 도전을 해 봐야겠다. 기어이 카뮈의 매력을 발견하고 말리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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