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말들 - 인생에 질문이 찾아온 순간, 그림이 들려준 이야기
태지원 지음 / 클랩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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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북스의 블로그 이웃인 나는 이 책의 제목 선정부터 관심을 갖고 참여해 왔다. 제목을 정하고 책이 출간되기까지 거의 2달 정도가 걸린 것 같다. 시를 읽고 아름다운 것에 관심이 많아져서 그림에 도전해 보리라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 시작이 이 책의 서평단에 응모하는 것이었고, 운 좋게도 선정이 되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낯설지만 좋은 친구를 소개받는 자리에 나가는 설렘으로 책을 맞는다.

 

저자 태지원은 10년간 중고등학교에서 경제, 사회문화, 역사 등의 과목을 가르치다가 남편을 따라 5년간 중동에서 살다가 귀국했다.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고 지식의 부스러기를 모아 글로 엮어내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온라인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서 명화를 주제로 연재한 매거진이 대상을 받아 첫 책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을 출간했다.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장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알아야 할 것들’에서는 그림을 통해 인생을 더 다채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담았고, 2장 ‘나 자신과 잘 지내고 싶다면’에서는 명화를 통해 나를 이해하고, 내 마음을 돌보는 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3장 ‘적당한 거리가 관계를 아름답게 만든다’에서는 사람 사이에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를 풀어가는 해법을 찾아본다. 4장 ‘지치고 힘들어도 다시 일어나는 법’에서는 인생의 힘겨운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를 다독여 다시 일어나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풀리지 않는 질문들이 숨 막히게 할 때 내게도 그림이 걸어오는 말들이 들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냥 봐도 명화 같은 표지의 그림으로 시선을 주며 책 속으로 들어가 본다.

 

재능을 의심받던 시기도 있었으나, 단순히 주변의 평판에 굴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재능을 구현하며 살아간 예술가였다.(p23 알폰스 무하)

1860년에 모라비아(현재의 체코 동쪽에 있는 지역)에서 태어나 스물일곱 살에 프라하 조형예술 아카데미에 지원했으나 돈을 벌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보라는 말과 함께 불합격한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극장 무대배경 그리기, 초상화나 장식 미술 작업을 계속 이어나간다. 그러던 중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일이 파리의 유명 배우가 공연하는 <지스몽다>의 포스트를 그리게 된다. 이 그림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포스터를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그의 삶을 통해 보면 처음 아카데미에서 불합격했을 때 일반 사람들처럼 좌절하고 포기했더라면 그의 작품은 나올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창작이라는 것에 마음을 두는 사람들은 재능이라는 부분에 대해 고민을 해 봤을 것이다. ‘내게는 정말 티끌만 한 재능도 없는 것일까?, 이건 그만두고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운 창작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나 또한 내 생각을 글로 쓰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바램을 갖고 있지만, 재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정말 티끌만 한 재능이라도 있다면 계속하게 해달라고 아무도 모르게 기도할 때도 많다. 그런 질문들 속에서 만난 알폰스 무하의 그림은 많은 의미를 담고 다가왔다. 밝고 따뜻하면서도 신비한 느낌을 주는 슬라브 서사시 연작 No.20:슬라브 찬가, 인류를 위한 슬라브인들>을 보면 그가 단순히 재능이 없다는 평가를 뛰어넘은 것에서 그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재능 그 이상, 자신만의 미술 세계를 창조해 낸 것이다. 재능을 하나의 잣대로 규정하거나 담을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당당하게 답하는 알폰스 무하의 그림이 호감 가는 첫인상으로 눈인사를 보내는 경험을 한다.


 

한 인간이 특정한 욕구에 진정으로 연연하지 않는다면, 대게 그 대상을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다른 생각에 몰두해 있거나 관심이 없다면, 그것을 떠올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p159 쿠엔틴 마시스)

쿠엔틴 마시스가 활동하던 안트베르펜은 국제무역이 번성한 도시였으며, 유럽 여러 나라 상인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문제는 그 상인들이 자국의 화폐로 물건값을 지불하는 바람에 환전 상이 꼭 필요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환전 상이나 돈에 관계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천대 시 하는 풍조가 강했다. 성경의 세리를 사람들이 사람 취급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런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마시스는 자신의 그림<대부업자와 그의 아내>라는 그림을 통해 질문을 던진다. 마음속 욕구와 이를 경계하는 이성 사이의 간극이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그림에는 남편은 돈을 들여다보고 있고, 아내는 기도서를 펼쳐 놓고 다른 손과 눈은 남편이 만지고 있는 돈을 보고 있다. 이 상반된 행위를 통해 욕구와 이성의 간극을 말하면서 모순적인 사람들에게 작가만의 풍자를 던지고 있다. 고상하게 이성으로 욕구를 감추고 있지만, 인간은 모두 속물적인 욕망이 있다는 듯이.

이 그림을 보여 주면서 저자는 자신이 원고료를 받기 위해 애썼던 경험 하나를 이야기한다. 돈에 별로 관심 없다고 자주 말하는 사람은 실은 돈에 아주 관심이 많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위의 이야기를 한다. 그러고 보니 나 자신도 솔직하다는 것을 가장하면서 돈에 관심 없다는 말을 자주 했던 것 같다. 그때는 왜 이런 식의 생각을 해보지 못했을까? 정작 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마는 이 그림을 통해 솔직히 돈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인간은 모순투성이고, 감추고 숨겨서 자신을 멋지게 포장하고 싶어 하니까.


 

행복과 설렘이 비축되어야 새로운 일을 시작할 의지도 용기도 솟아나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볼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p268 조지 프레드릭 와츠)

자신의 삶이 구차하다고 느껴질 때 보는 그림으로 조지 프레드릭 와츠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제목은 희망이지만 그림은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소녀의 모습이 정말 희망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그림의 설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찬찬히 그림을 본다. 그러다 간신히 깨닫는다. 희망은 절박함 가운데 빛나는 단 하나의 빛 같은 것이라고. 소녀의 눈을 가린 팔에는 줄이 끊어진 하프가 들려 있다. 자세히 보면 하프의 한 줄만이 이어져 있다. 그 한 줄을 통해 희망을 보고 삶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우리 삶이지 않을까? 너무 쉽게 많이 노출된 타인의 삶 속에서 그들은 화려하게 빛난다. sns 속의 타인의 삶은 아름답고 행복하게 연출된 그림처럼 생경하지만 그래서 더 내 삶을 비참하게 만든다. 사회 분위기와 문화가 과장되게 연출된 좋은 장면만을 보여주는 상황에서 지리멸렬하게 이어지는 내 일상이 구차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하기에 한 줄의 끊어지지 않은 하프 줄 같은 희망을 붙들고 오늘도 나를 일으켜 세운다. 내게만 유독 가혹한 현실이 아님을 그림을 통해 본다. 그 시대에 살던 작가도 이 그림을 희망이라 이름 지었으니.

작가에게는 한 줄의 끊어지지 않는 하프 줄이 희망이 되었던 것처럼 나의 끊어지지 않은 하프 줄 같은 희망은 무엇인가? 그림은 나만의 희망을 찾아보라고 조용히 말하는 것 같다.


 

모르는 그림들이 거의 대부분이지만 시를 읽을 때 뻔뻔하리만치 나만의 느낌을 따랐던 나는 그 경험으로 그림들도 두려움이나 어려움 없이 마주했다. 간혹 자신의 무지함이 크게 덮치듯이 몰려왔지만 시작이니 괜찮다고 다독이며 읽었다. 그림의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를 절묘하게 연결시키는 저자의 글 솜씨가 부러웠고, 작가들의 삶과 생활들을 알고 보는 그림은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현재에 충실하라는 메시지의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할 수 있을 때 장미 봉오리를 모으라>는 여성들의 아름다움과 하늘거리는 원피스의 느낌도 아름답게 다가왔다. 가면 화가라 불리는 엔소르의 <가면에 둘러싸인 자화상>에서는 그림 속 작가의 시선이 많은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지독한 비평에 시달렸던 페레 보렐 델 카소의 <비평으로부터의 탈출>은 급박함이 느껴지는 소년의 역동성이 저자의 고뇌를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예술이라는 틀을 깬 마르셀 뒤샹의 변기도 기억에 남는다. 디에고 디베라의 민중들의 삶의 고뇌와 고통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꽃을 파는 여자>는 노란 카라의 화려함이 더 꽃바구니를 메고 있는 여자를 돋보이게 한다. 조르주 드 라투르의 <카드놀이 사기꾼>은 그림을 통해 그 상황을 묘사한 탁월함으로 인해 웃음 짓게 해주었다. 많은 작가들의 그림과 설명, 저자의 경험들과 이야기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는 책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과는 전혀 친하지 않았지만 늦게라도 그림과 친구할 수 있는 좋은 길라잡이를 만난 느낌이다. 또 그림을 보면서 잘 모르더라도 오래 보면 예쁘다던 시처럼 자주 오래 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림과 나 친하지 않았던 시간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비하는 시간들을 천천히 주고 사귀면 저자가 느낀 것처럼 그림들이 각자의 말들을 내게 들려줄 것이라는 한 줄의 끊어지지 않는 하프 줄 같은 희망도 품어 보았다. 삶에서 많은 말들과 관계들에 지칠 때, 누군가의 위로의 말조차도 힘이 들 때 조용히 침묵으로 말을 건네며 위로하는 그림을 만나 보길 권한다. 비록 바로 마음을 열고 친해지지는 않을지라도 오래 두고 깊은 관계를 이어가는 좋은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지금 바로 반짝이며 당신을 기다리는 그림들 속으로 떠나보자.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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