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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음 / 웨일북 / 2023년 10월
평점 :
품절

강렬한 제목과 화려한 추천인 명단이 저를 붙잡았습니다. 신형철 작가님이 추천하신 거라면 무조건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쉽게 읽으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한 방울의 눈물 같기도 하고, 눈동자 같기도 한 표지를 한참을 바라봅니다.
저자 김인정은 광주 MBC 보도국에서 주로 사회부 기자로 일하며 10년 동안 사건 사고, 범죄, 지해 등을 취재했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고통의 규모와 수치뿐만 아니라, 사건의 감춰진 맥락을 복원하는데 집중해 왔죠. 법조 비리와 기업 부패를 고발 기사 등으로 방송기자상을 네 차례나 수상했어요. 인권의 의미를 확산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제앰네스티 언론상을, 왜곡된 역사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5.18 언론 상을 받았습니다. 전 세계를 연결하는 저널리즘 꿈꾸며 UC 버클리 저널리즘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고, 현재는 미국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다양한 언론사와 협력하여 취재와 집필 활동을 하고 있어요.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은 새롭고 특별한 고통에 대해 말하면서 현재 우리의 뉴스 소비 형태에 대해 씁니다. 2장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이라는 제목으로 날씨의 공평성이 거짓말이라는 것과 재해의 문화, 아픔이 혐오가 되는 일, 이름을 갖지 못하는 어떤 일들에 대해 말하죠. 3장은 나와 닮지 않은 이들의 아픔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를 둘러싼 알고리즘과 트리거 워닝, 현지화된 고통, 만들어진 젠더 갈등에 대해 말합니다. 4장은 세계의 뒷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라는 제목으로 뉴스거리로 끝나는 많은 일들을 시작으로 연민, 언어, 계급, 인종을 넘어서는 보편적 언어에 대해 말하고, 사적 애도를 위한 공적 애도로 마무리하고 있어요.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는 고통을 보여주는 자신의 일에 대해 말해요. 그냥 고통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오래도록 했다고요. 뉴스를 어떻게 보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책이 엄청 부담스러워졌습니다. 읽고 나서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될까 봐.

공포의 근원은 이걸 찍어서 보여준 뒤에도 내가, 이걸 본 뒤에도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거나 못할 수도 있다는 데 있다. (P28)
10.29 참사에 대한 구경 하는 시선으로 촬영된 많은 영상물을 이야기하면서 책은 시작합니다. 누군가가 바로 눈앞에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며 찍은 듯한 영상들이 넘쳐나던 초기 SNS를 말해요. 저는 그때 다행히 일찍 잠들어서 초기 영상들을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저와는 달리 아직 잠을 자지 않고 SNS를 탐색하던 딸아이는 그날 잠을 자지 못했죠. 영상이 너무 충격적이라 악몽을 꿀까 봐 잠을 아예 자지 않았습니다. 딸아이의 말을 듣고 제가 보인 반응은 첫 번째로 그 영상들을 찾아보는 것이었죠. 얼마나 충격적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생생하게 담겼는지 궁금했으니까요. 누군가의 가족이었을 피해자들이 죽음 이후에도 보호받지 못하는 영상들을 궁금해했던 겁니다. 저라는 사람은. 그러면서도 죄책감이나 미안함을 전혀 느끼지 않고, 반복되는 고통의 영상들을 뉴스를 통해 봤습니다. 뉴스에 나오는 사건 사고들도 그냥 뉴스로만 봤어요. 누군가의 가족이라던가, 피해자의 아픔 같은 것들은 순식간에 잊혔고, 뉴스에는 당연히 그런 이야기들만 나오는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와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고, 거의 처음 목격자가 되는 기자는 말합니다. 늘 공포를 느꼈다고요. 그 공포의 근원은 고통을 본 자신과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못할 것이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반복적으로 보면서 무디어져서 뉴스로 소비하고 있는 제 모습이 비로소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누군가의 불행과 고통을 영화 보듯이 관람하는 저를 발견했어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전혀 문제라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 채여. 이제는 뉴스를 보는 것이 전처럼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외면하라는 말은 아닐 텐데, 저도 고민이 깊어집니다.
노동자들 역시 언론 인터뷰에 대응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곤 한다. 동료의 죽음이나 부상을 눈앞에서 목격한 그들은 사고 현장만 간신히 가려둔 일터에서 충격에 싸인 채로, 조용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p92)
산업재해 현장에서 목격자들에게 다가가 사고 경위를 묻는 일은 난감합니다. 회사의 지시에 따라 노동자들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달려간 현장은 폴리스 라인만 쳐진 채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죠. 그 옆에서 동료 노동자들은 조용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산업재해는 인재라고 합니다. 경제적 비용과 사람 목숨을 비교하듯이 위험하고 어려운 일일수록 하청에 재하청이 이루어지죠. 내가 만약 재하청의 노동자라면 어떤 심정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사는 일이, 돈을 버는 일보다 하찮게 느껴질 것 같아요. 돈을 벌어야만 생계를 꾸릴 수 있고,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일 위험한 현장으로 나갑니다. 오늘은 동료의 사고가 내일은 내 사고가 될 수 있다는 위험을 알면서요. 동료의 죽음과 부상을 목격한 노동자들에게는 어떤 배려를 할까요? 우리 사회와 사람들이. 뉴스에 한 줄로 밖에 나가지 못하는 사람의 목숨도 똑같이 중요할 텐데, 그들을 향해선 트라우마라는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우월한 눈으로 뉴스를 시청하죠. 더 열심히 공부하던가, 출세를 했어야지 하는 마음으로요. 공평하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그들을 마치 실패자로 보는 시선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나 또한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어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책에서는 어느 한 부분도 가볍게 읽어 넘기기 어렵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소비하듯이 시청하는 사람인 내게는 힘들어서 외면하고 싶은 내용들이 많았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고 착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부분이나, 타인의 고통을 나와 닮은 어떤 것으로 바꾸거나 나로 생각해 봐도 쉽게 공감이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누군가의 억울한 죽음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픈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회의가 몰려왔어요. 다른 분들은 아니겠지만, 저는 그랬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수학여행을 간 자녀가 죽음으로 돌아왔을 부모들의 아픔을 저는 깊이 공감하지 못했어요. 자꾸만 무디어지고, 지겹기까지 했죠. 하지만 내 아이의 감기나, 시험 성적이 좋지 못한 것은 아팠습니다. 어쩔 줄 몰라 했고, 답답했어요. 사람을 몇 명 죽인 것은 이제 별로 큰 사건으로 여겨지지도 않는 뉴스 속 사건 사고들도 무감하게 봤습니다. 공간을 가득 채운 소리로만 들려올 뿐, 저자가 말한 것처럼 설거지를 하다 돌아서는 일은 거의 없었지요. 정말 자극적인 큰 사건이 아니고서는 설거지물 소리에 흘려가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너무 잘 느껴도 살기 쉽지 않겠지만, 너무 무디어져도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싶습니다. 내 것이 되지 못하는 타인의 고통에 더 공감하고 구경하는 것을 넘어서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요? 언론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예측한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것이 첫 번째 목표입니다. 그리고 저자의 말처럼, 근본적인 공포를 극복하고 무엇이라도 움직이고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그다음 목표입니다. 이렇게 좋은 책을 읽고 이 정도 밖에 쓰지 못하는 저라서 답답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구경하듯 소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 우리가 되는 날을 꿈꿉니다.
“고통과 상실을 겪어낸 한 사람이 잔해 속에서 부러진 나뭇가지를 집어 들어 같은 이름의 다른 고통을 막을 수 있는 길을 가리킨다. 슬픔과 우울, 기억의 혼돈 속에서 그들은 뒷이야기를 쓰려 한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사적인 애도를 겪어내는 이들을 위해 사회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이다.”--(p212)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