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의 햇빛 일기
이해인 지음 / 열림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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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부제는 작은 위로가 필요한 아픈 이들을 위하여입니다. 아픈 사람들은 작은 위로가 필요합니다. 삶을 뒤바꿀 커다란 위로가 아니라 소소하고 작은 위로를 가지고, 한순간의 고통을 넘고, 하루의 삶을 이어가야 하니까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웃으면서 작은 선물들을 준비하신 이해인 수녀님의 초대에 응해 봅니다.


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몸담고 있으며 1968년에 첫 서원을, 1976년에 종신 서원을 하신 수녀님입니다. 첫 시집 <민들레 영도>를 펴낸 이래 수도자로서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사색을 조화시키며, 기도와 시로써 따뜻한 사랑과 희망을 전하고 있죠. 필리핀 세인트루이스 대학교 영문학과,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했고, 제9회 <새싹문학상>, 제2회 <여성동아 대상>, 제6회 <부산여성문학상>, 제5회 <천상병 시문학상>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고, 저서로는 <민들레 영토>, <내 혼에 불을 놓아>,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시간의 얼굴>,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이해인의 시 전집 1.2> 외 다수가 있습니다.

책은 앞의 두 장은 새로 쓴 시들이고, 뒤에 이어지는 두 장은 전에 쓴 시들 중 아픈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골라 뽑은 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픈 주위 지인들에게 자신의 시를 적어 보낸 것들을 출판사에서 묶어 책이 되었다고 해요. 위로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새로운 시부터, 자신이 아픔을 겪는 환자로서 공감하는 시들이 실려 있습니다. 꽃수를 놓듯이 아름다운 문장들이 책에 새겨져 있어요. 어느 페이지, 어떤 시를 읽어도 따뜻하게 전해지는 마음이 있는 시입니다. 어디부터 읽어 볼까요? 유난히 맑은 가을 날이니 어느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약이 내게 와서

열심히 설명서를 읽다가

스르르 잠이 든 나

아침에 일어나

예쁘고 단아한 빛깔로 엎디어 있는

나의 약들에게 말한다

지금 다시 나를 기다리는 거지?

고맙게 먹어줄게

부디 내 몸 안의 길을

잘 찾아가서

부작용이 없기를 부탁할게

나를 살리는 일에

보탬이 되어 고마운데

때로는 찡그리고

먹기 싫다고 투정해 미안하다. (약이 내게 와서 중 일부-p32)

저도 매일 시간까지 맞춰서 먹는 약이 있습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몰라도 빈 껍질의 약만이 내 시간을 말해 주는 약이요. 5년은 기본적으로 먹어야 하고, 호르몬 계열이라 시간까지 맞춰서 먹는 약입니다. 누구는 지독한 부작용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먹기를 중단하기도 하고, 누구는 부작용으로 인해 다른 약을 먹기도 하는 작지만 위력이 뛰어난 녀석이죠. 그것 말고는 이 약의 부작용으로 보인다는 위산 역류 약을 아침저녁으로 먹습니다. 약을 너무 많이 먹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들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약을 먹으면서 기도해요. 부작용이 없이 약효가 잘 들어서 재발이나 전이가 없게 해달라고요. 시를 읽으면서 약을 먹는 마음은 다 비슷하구나 하고 위로를 받습니다. 부작용이 무섭고, 약효가 잘 들어서 더는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거기에 더해 이제는 고마워하면서 먹기로 합니다. 내 몸속 어딘가에 있는 나쁜 것들, 놔두면 암이 될지도 모를 것들을 약이 잘 물리쳐 주기를 바라면서요. 그리고 수녀님처럼 약을 향해 말해 봅니다. “때로는 찡그리고 먹기 싫다고 투정해서 미안해.”라고요.


좀 어떠세요?

누군가 내게 묻는

이 평범한 인사에 담긴

사랑의 말이

새삼 따뜻하여

되새김하게 되네

좀 어떠세요?

내가 나에게 물으며

대답하는 말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평온하네요’

좀 어떠세요?

내가 다른 이에게

인사할 때에는

사랑을 많이 담아

이 말을 건네리라

다짐하고 연습하며

빙그레 웃어보는 오늘

살아서 주고받는

인사말 한마디에

큰 바다가 출렁이네. (p153~154)

아파보면 알게 됩니다. 상대의 좀 어떠세요라는 말이 사랑을 담은 조심스럽고 따뜻한 말이라는 것을요. 밥은 좀 먹느냐, 아픈 것은 나아졌느냐, 몸은 좋아지고 있느냐라는 많은 궁금증과 말들을 삼키고 묻는 안부입니다. 좀 어떠세요라고. 아플 때일수록 감각은 예민해지고, 사랑이 담긴 말들과 행동들, 배려들을 더 잘 알아차리게 됩니다. 안부를 묻는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묻는지를 알게 되죠. 조심스럽지만, 내가 당신을 걱정하고 염려하며 회복되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담은 안부라는 것을요. 수술을 하고 집에 돌아온 나를 향해 사람들은 묻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너무 조심스러웠을 수도 있지만, 저는 그게 또 서운했어요. 괜찮냐고, 어떠냐고 물어보는 것이 그렇게 힘든가 싶어서 마음이 상했죠. 아프면 정상적인 생각이 힘듭니다.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들이 상처가 되기도 하고, 자신의 존재가 한없이 작고 약해 보이기도 하죠. 그럴 때 수녀님처럼 사랑을 많이 담은 좀 어떠세요는 아픈 사람의 마음에 가닿습니다. 온전한 사랑의 말로 가닿아 위로가 되고, 몸을 회복시키는 힘이 됩니다.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부 인사에 담긴 사랑이 아픈 사람에게 얼마나 위로와 힘이 되는지를 알아요. 그래서 저도 수녀님처럼 사랑을 많이 담아 안부 인사를 건네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좀 어떠세요라고.


책을 펼치면 수녀님의 따뜻한 사랑이 햇살처럼 묻어납니다. 책장을 넘기는 손에도, 읽는 눈에도, 가만가만 마음에도 햇살이 묻습니다. 따뜻하고 포근하게. 시와 수도자로 모두 유명한 수녀님이시지만, 아픈 사람일 때는 그냥 사람입니다. 아파서 힘들 때는 시도 안되고, 가까이 간병하는 사람에게도 고운 눈길이 가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그냥 사람이죠. 저는 읽으면서 그게 또 좋아서 밑줄을 긋습니다. 수도자이지만, 고통을 느끼고 힘들어하는 한 사람인 수녀님이 좋습니다. 너무 이상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로 아플 땐 기도하세요라고 말하지 않아서 좋아요. 수녀님도 아플 땐 기도가 잘 안된다고 고백하십니다. 몸이 아프면, 마음까지도 함께 약해지고 알고 있지만, 기도가 쉽지 않아요. 그런 마음들을 모두 헤아리고 괜찮다고 웃으면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픈 사람들에게 햇빛 한 줌이 얼마나 큰 위안이고 위로인지 수녀님은 아시는 거죠. 내 말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햇빛 한 줌처럼 따뜻하기를 바라봅니다. 많이 부족하고 서툴지만, 진심을 담아 좀 어떠냐고 물어보면서요. 주위의 사물들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줘야겠습니다. 꽃이 피어나느라고 수고했다고 인사할 수 있을 정도로요. 꽃도 피느라 수고하는데, 우리는 얼마나 자기 자리에서 수고할까요? 그 마음으로 햇살 같은 미소와 말로 주위를 따뜻하게 해 볼게요. 우리 조금 더 따뜻해져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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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음 / 웨일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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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타인의 고통을 공감한다는 것은 인간의 착각입니다. 나와 닮은 고통만이 어렴풋이 느껴질 뿐입니다. 뉴스를 통해 재난과 사건 사고를 관람하는 독자였던 자신을 깨닫습니다. 뉴스가 뉴스를 뛰어넘는 힘을 발위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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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음 / 웨일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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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제목과 화려한 추천인 명단이 저를 붙잡았습니다. 신형철 작가님이 추천하신 거라면 무조건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쉽게 읽으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한 방울의 눈물 같기도 하고, 눈동자 같기도 한 표지를 한참을 바라봅니다.


저자 김인정은 광주 MBC 보도국에서 주로 사회부 기자로 일하며 10년 동안 사건 사고, 범죄, 지해 등을 취재했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고통의 규모와 수치뿐만 아니라, 사건의 감춰진 맥락을 복원하는데 집중해 왔죠. 법조 비리와 기업 부패를 고발 기사 등으로 방송기자상을 네 차례나 수상했어요. 인권의 의미를 확산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제앰네스티 언론상을, 왜곡된 역사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5.18 언론 상을 받았습니다. 전 세계를 연결하는 저널리즘 꿈꾸며 UC 버클리 저널리즘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고, 현재는 미국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다양한 언론사와 협력하여 취재와 집필 활동을 하고 있어요.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은 새롭고 특별한 고통에 대해 말하면서 현재 우리의 뉴스 소비 형태에 대해 씁니다. 2장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이라는 제목으로 날씨의 공평성이 거짓말이라는 것과 재해의 문화, 아픔이 혐오가 되는 일, 이름을 갖지 못하는 어떤 일들에 대해 말하죠. 3장은 나와 닮지 않은 이들의 아픔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를 둘러싼 알고리즘과 트리거 워닝, 현지화된 고통, 만들어진 젠더 갈등에 대해 말합니다. 4장은 세계의 뒷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라는 제목으로 뉴스거리로 끝나는 많은 일들을 시작으로 연민, 언어, 계급, 인종을 넘어서는 보편적 언어에 대해 말하고, 사적 애도를 위한 공적 애도로 마무리하고 있어요.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는 고통을 보여주는 자신의 일에 대해 말해요. 그냥 고통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오래도록 했다고요. 뉴스를 어떻게 보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책이 엄청 부담스러워졌습니다. 읽고 나서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될까 봐.


공포의 근원은 이걸 찍어서 보여준 뒤에도 내가, 이걸 본 뒤에도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거나 못할 수도 있다는 데 있다. (P28)

10.29 참사에 대한 구경 하는 시선으로 촬영된 많은 영상물을 이야기하면서 책은 시작합니다. 누군가가 바로 눈앞에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며 찍은 듯한 영상들이 넘쳐나던 초기 SNS를 말해요. 저는 그때 다행히 일찍 잠들어서 초기 영상들을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저와는 달리 아직 잠을 자지 않고 SNS를 탐색하던 딸아이는 그날 잠을 자지 못했죠. 영상이 너무 충격적이라 악몽을 꿀까 봐 잠을 아예 자지 않았습니다. 딸아이의 말을 듣고 제가 보인 반응은 첫 번째로 그 영상들을 찾아보는 것이었죠. 얼마나 충격적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생생하게 담겼는지 궁금했으니까요. 누군가의 가족이었을 피해자들이 죽음 이후에도 보호받지 못하는 영상들을 궁금해했던 겁니다. 저라는 사람은. 그러면서도 죄책감이나 미안함을 전혀 느끼지 않고, 반복되는 고통의 영상들을 뉴스를 통해 봤습니다. 뉴스에 나오는 사건 사고들도 그냥 뉴스로만 봤어요. 누군가의 가족이라던가, 피해자의 아픔 같은 것들은 순식간에 잊혔고, 뉴스에는 당연히 그런 이야기들만 나오는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와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고, 거의 처음 목격자가 되는 기자는 말합니다. 늘 공포를 느꼈다고요. 그 공포의 근원은 고통을 본 자신과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못할 것이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반복적으로 보면서 무디어져서 뉴스로 소비하고 있는 제 모습이 비로소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누군가의 불행과 고통을 영화 보듯이 관람하는 저를 발견했어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전혀 문제라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 채여. 이제는 뉴스를 보는 것이 전처럼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외면하라는 말은 아닐 텐데, 저도 고민이 깊어집니다.


노동자들 역시 언론 인터뷰에 대응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곤 한다. 동료의 죽음이나 부상을 눈앞에서 목격한 그들은 사고 현장만 간신히 가려둔 일터에서 충격에 싸인 채로, 조용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p92)

산업재해 현장에서 목격자들에게 다가가 사고 경위를 묻는 일은 난감합니다. 회사의 지시에 따라 노동자들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달려간 현장은 폴리스 라인만 쳐진 채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죠. 그 옆에서 동료 노동자들은 조용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산업재해는 인재라고 합니다. 경제적 비용과 사람 목숨을 비교하듯이 위험하고 어려운 일일수록 하청에 재하청이 이루어지죠. 내가 만약 재하청의 노동자라면 어떤 심정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사는 일이, 돈을 버는 일보다 하찮게 느껴질 것 같아요. 돈을 벌어야만 생계를 꾸릴 수 있고,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일 위험한 현장으로 나갑니다. 오늘은 동료의 사고가 내일은 내 사고가 될 수 있다는 위험을 알면서요. 동료의 죽음과 부상을 목격한 노동자들에게는 어떤 배려를 할까요? 우리 사회와 사람들이. 뉴스에 한 줄로 밖에 나가지 못하는 사람의 목숨도 똑같이 중요할 텐데, 그들을 향해선 트라우마라는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우월한 눈으로 뉴스를 시청하죠. 더 열심히 공부하던가, 출세를 했어야지 하는 마음으로요. 공평하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그들을 마치 실패자로 보는 시선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나 또한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어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책에서는 어느 한 부분도 가볍게 읽어 넘기기 어렵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소비하듯이 시청하는 사람인 내게는 힘들어서 외면하고 싶은 내용들이 많았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고 착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부분이나, 타인의 고통을 나와 닮은 어떤 것으로 바꾸거나 나로 생각해 봐도 쉽게 공감이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누군가의 억울한 죽음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픈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회의가 몰려왔어요. 다른 분들은 아니겠지만, 저는 그랬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수학여행을 간 자녀가 죽음으로 돌아왔을 부모들의 아픔을 저는 깊이 공감하지 못했어요. 자꾸만 무디어지고, 지겹기까지 했죠. 하지만 내 아이의 감기나, 시험 성적이 좋지 못한 것은 아팠습니다. 어쩔 줄 몰라 했고, 답답했어요. 사람을 몇 명 죽인 것은 이제 별로 큰 사건으로 여겨지지도 않는 뉴스 속 사건 사고들도 무감하게 봤습니다. 공간을 가득 채운 소리로만 들려올 뿐, 저자가 말한 것처럼 설거지를 하다 돌아서는 일은 거의 없었지요. 정말 자극적인 큰 사건이 아니고서는 설거지물 소리에 흘려가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너무 잘 느껴도 살기 쉽지 않겠지만, 너무 무디어져도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싶습니다. 내 것이 되지 못하는 타인의 고통에 더 공감하고 구경하는 것을 넘어서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요? 언론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예측한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것이 첫 번째 목표입니다. 그리고 저자의 말처럼, 근본적인 공포를 극복하고 무엇이라도 움직이고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그다음 목표입니다. 이렇게 좋은 책을 읽고 이 정도 밖에 쓰지 못하는 저라서 답답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구경하듯 소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 우리가 되는 날을 꿈꿉니다.


“고통과 상실을 겪어낸 한 사람이 잔해 속에서 부러진 나뭇가지를 집어 들어 같은 이름의 다른 고통을 막을 수 있는 길을 가리킨다. 슬픔과 우울, 기억의 혼돈 속에서 그들은 뒷이야기를 쓰려 한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사적인 애도를 겪어내는 이들을 위해 사회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이다.”--(p212)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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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인생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던가요 - 삶을 관통하는 여덟 가지 주제에 관한 스승과 제자의 대화
이근후.이서원 지음 / 샘터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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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정신과 의사로 상담하고 가르친 스승과 30년 경력의 상담 전문가 제자의 즉문즉답을 담은 책.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을 하나 하나 풀어가는 짧지만 지혜가 가득한 책이다. 특히 잘 읽히고 쉬운 말로 되어 있어 어디서나 읽고 도움 받기에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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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인생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던가요 - 삶을 관통하는 여덟 가지 주제에 관한 스승과 제자의 대화
이근후.이서원 지음 / 샘터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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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고른 키워드는 50년 경력의 정신과 전문의 스승과 30년 경력의 상담 전문가 제자의 대화라는 것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소홀히 대하며 살다가 인생의 반쯤을 지나오면 알게 됩니다. 결코 가볍지도 쓸모없지도 않은 마음과 상처에 대해서요. 자신만의 관점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책장을 넘깁니다.


저자 이근후는 이화여대 명예교수이며, 정신과 전문의로 50여 년간 환자를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퇴임 후 아내와 함께 사단법인 가족 아카데메이아를 설립하여 청소년 성 상담, 부모 교육, 노년을 위한 준비 교육 등의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죠. 특히 76세의 나이에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학과를 최고령으로 졸업했고, 30년 넘게 네팔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라면>,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이 있어요.

제자 이서원은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 박사입니다. 일상의 감정을 요리하는 ‘감정 식당’의 세프죠. ‘나 우리 가족 상담소’소장으로 부부 및 가족 상담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TV프로그램에도 다수 출연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마음 사이>, <마음대로 안되는 게 인생이라면>, <아픔에서 더 배우고 성장한다>, <나를 살리는 말들>, <감정 식당>, <보이는 마음>등이 있습니다.

책은 유튜브 채널에서 즉문즉답을 통해 나눈 스승과 제자의 말을 간단하게 핵심만 정리하듯이 짧게 정리한 내용입니다. 특히 요즘 MZ 세대에 맞게 감각적이며, 가볍고 짧습니다. 그렇다고 내용이 가볍지는 않아요. 고수는 그 일을 할 때 힘 안 들이고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두 상담 전문가는 고수답게 자연스럽고 이해되기 쉽게 인생의 8가지 주제를 풀어놔요. 그 여덟 가지는 자존으로 시작해서 관계, 위기, 욕망, 확신, 비움, 성장, 행복입니다. 짧지만 임팩트 있는 스승과 제자의 인생 나눔 속으로 초대합니다.


열등감은 나보다 잘난 사람이 있어서 생기는 것 같지만, 실은 내 속에 내가 없어서 생긴다. (P26)

아들러 심리학을 다룬 책 <미움받을 용기>에서도 열등감에 대해 말합니다. 스승님의 정의와 비슷하죠. 아들러 심리학을 토대로 일본 철학자가 쓴 책이라 설명이 조금 어렵게 다가왔었는데, 이 문장은 쉽지만 핵심을 바로 찌르고 있어요. 열등감의 본질은 내 속에 내가 없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이어지는 제자의 부연 설명 같은 글에는 우리나라 부모들에 대해 잠깐 나옵니다. 지인이 중국에 있는데, 자녀를 국제 학교에 보냈답니다. 국제 학교 교사들은 한국 학부모들이 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고 해요. ‘당신의 아이가 이번 수학 시험을 70점 받았다. 지난번보다 10점이나 점수가 올랐다. 축한다.’ 이렇게 말하면 꼭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반에서 몇 등이냐고요. 등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난번 시험 보다 올랐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도 부모들은 또 질문을 한답니다. 등수를 얘기해 줄 수 없으면 반평균이라도 말해 달라고요. 이 부분을 읽고 약간 뜨끔했습니다. 늘 제가 딸아이의 성적표를 보면서 하는 말이거든요. 저도 제 속에 제가 없어서 기준을 남에게 두고 맞추고 하느라 열등감에 시달렸던 모양입니다. 내 속에 나로 가득 차는 일. 무엇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나 자신을 갖는 일. 자존은 그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스승이란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이 알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P52)

50년간 환자를 보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스승은 정년퇴임식에서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 자신은 학생으로 돌아간다고. 묻는 것이 분별없고 어리석더라도 성의 있게 대답해 달라고 부탁하면서요.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았으니 76세에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끝낼 수 있었겠죠. 배움에는 늦은 때라는 없다는 것은 듣기 좋은 말이 아니에요. 실제로 살아낸 사람만이 그 말의 힘을 경험합니다. 더 많이 배우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 더 많이 알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 스승으로 살아야겠습니다.


모진 말은 바늘과 같다. 바늘은 작아도 삼킬 수 없다. 모진 말을 계속 듣는 것은 바늘방석을 목에 걸고 사는 것과 같다. (P99)

모진 말을 잘 하지 않습니다. 정말 화가 나서 싸우는 상황에서도요. 그 말이 얼마나 상대를 아프게 하고 오래 남는지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해서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 이 말을 읽자 지난 제 말들을 떠올려 봤습니다. 남편과 관계가 좋지 못할 때 유독 남편을 닮은 부분이 많았던 큰아이에게 모진 말들을 많이 했어요. ‘제 아빠 닮아 이 모양이라고.’ 그 말이 얼마나 오래 남아 아이를 괴롭힐지는 생각지도 못하고, 내 감정으로 만요. 그런 실수들을 반복하고, 상대의 모진 말에 내게 바늘처럼 남는 경험을 자주 하면서 모진 말들을 삼킵니다. 모진 말들이 쉽게 소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잘 아니까요.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모진 말일지라도 한 번 더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바늘이 작아도 삼킬 수 없는 것처럼 내가 한 모진 말들이 상대를 오래 힘들게 할 수 있으니까요.

책은 정말 읽기 쉽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음먹고 앉은 자리에서 후루룩 다 읽을 수 있을 만큼 잘 읽히고 분량도 짧아요. 하지만 읽고 난 후 한참을 곱씹게 되는 말들이 많아요. 부부 싸움을 다른 부분이라든가, 부모님을 바라보는 관점이라든가, 덕분에라는 말로 넘기는 위기 같은 것들요. 주위에 닮고 싶은 스승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도 말해주죠. 스승님을 만나서 30년 제자로 살면서 스승님처럼 되고 싶다는 욕심이 자신을 성장하고 성숙하게 했다고 말합니다. 저는 주위에 닮고 싶은 어른이 있는지를 생각해 봤어요. 어릴 땐 가족 말고는 학교 선생님 정도가 만나는 어른의 전부입니다. 그 어른들 중에 딱히 닮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가 결단합니다. 이제는 나도 어른이니까 누군가에게 닮고 싶은 어른이 되자고요. 아이들에게 엄마로서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도 닮고 싶은 사람이 되자고 다짐합니다. 내 속에 나를 가득 채워 열등감을 몰아내고 더 많이 알려는 마음을 가진 스승으로서요. 그리고 이 책을 20대 초반인 큰 아이에게 권해 주고 싶습니다. 시간이 없다고 긴 호흡의 책을 잘 읽지 못하는 딸아이에게 인생의 전반에 대한 귀한 길잡이가 될 것 같아요. 힘을 뺀 자연스러운 대화가 부담 없이 다가올 것 같습니다. 인생에 대해 너무 무겁거나 진지하지 않게 쉼표 하나 찍는 기분으로 읽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아님 조언을 구하는 심정으로요. 조언이 짧지만 현실적이라 약간은 놀라게 되실 겁니다. 스마트폰 보는 5분만 빼도 2~3개의 질문 정도는 읽을 수 있어요. 어때요? 오늘 저녁 한 번 펼쳐 보실래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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