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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인생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던가요 - 삶을 관통하는 여덟 가지 주제에 관한 스승과 제자의 대화
이근후.이서원 지음 / 샘터사 / 2023년 10월
평점 :

이 책을 고른 키워드는 50년 경력의 정신과 전문의 스승과 30년 경력의 상담 전문가 제자의 대화라는 것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소홀히 대하며 살다가 인생의 반쯤을 지나오면 알게 됩니다. 결코 가볍지도 쓸모없지도 않은 마음과 상처에 대해서요. 자신만의 관점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책장을 넘깁니다.
저자 이근후는 이화여대 명예교수이며, 정신과 전문의로 50여 년간 환자를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퇴임 후 아내와 함께 사단법인 가족 아카데메이아를 설립하여 청소년 성 상담, 부모 교육, 노년을 위한 준비 교육 등의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죠. 특히 76세의 나이에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학과를 최고령으로 졸업했고, 30년 넘게 네팔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라면>,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이 있어요.
제자 이서원은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 박사입니다. 일상의 감정을 요리하는 ‘감정 식당’의 세프죠. ‘나 우리 가족 상담소’소장으로 부부 및 가족 상담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TV프로그램에도 다수 출연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마음 사이>, <마음대로 안되는 게 인생이라면>, <아픔에서 더 배우고 성장한다>, <나를 살리는 말들>, <감정 식당>, <보이는 마음>등이 있습니다.
책은 유튜브 채널에서 즉문즉답을 통해 나눈 스승과 제자의 말을 간단하게 핵심만 정리하듯이 짧게 정리한 내용입니다. 특히 요즘 MZ 세대에 맞게 감각적이며, 가볍고 짧습니다. 그렇다고 내용이 가볍지는 않아요. 고수는 그 일을 할 때 힘 안 들이고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두 상담 전문가는 고수답게 자연스럽고 이해되기 쉽게 인생의 8가지 주제를 풀어놔요. 그 여덟 가지는 자존으로 시작해서 관계, 위기, 욕망, 확신, 비움, 성장, 행복입니다. 짧지만 임팩트 있는 스승과 제자의 인생 나눔 속으로 초대합니다.

열등감은 나보다 잘난 사람이 있어서 생기는 것 같지만, 실은 내 속에 내가 없어서 생긴다. (P26)
아들러 심리학을 다룬 책 <미움받을 용기>에서도 열등감에 대해 말합니다. 스승님의 정의와 비슷하죠. 아들러 심리학을 토대로 일본 철학자가 쓴 책이라 설명이 조금 어렵게 다가왔었는데, 이 문장은 쉽지만 핵심을 바로 찌르고 있어요. 열등감의 본질은 내 속에 내가 없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이어지는 제자의 부연 설명 같은 글에는 우리나라 부모들에 대해 잠깐 나옵니다. 지인이 중국에 있는데, 자녀를 국제 학교에 보냈답니다. 국제 학교 교사들은 한국 학부모들이 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고 해요. ‘당신의 아이가 이번 수학 시험을 70점 받았다. 지난번보다 10점이나 점수가 올랐다. 축한다.’ 이렇게 말하면 꼭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반에서 몇 등이냐고요. 등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난번 시험 보다 올랐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도 부모들은 또 질문을 한답니다. 등수를 얘기해 줄 수 없으면 반평균이라도 말해 달라고요. 이 부분을 읽고 약간 뜨끔했습니다. 늘 제가 딸아이의 성적표를 보면서 하는 말이거든요. 저도 제 속에 제가 없어서 기준을 남에게 두고 맞추고 하느라 열등감에 시달렸던 모양입니다. 내 속에 나로 가득 차는 일. 무엇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나 자신을 갖는 일. 자존은 그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스승이란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이 알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P52)
50년간 환자를 보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스승은 정년퇴임식에서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 자신은 학생으로 돌아간다고. 묻는 것이 분별없고 어리석더라도 성의 있게 대답해 달라고 부탁하면서요.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았으니 76세에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끝낼 수 있었겠죠. 배움에는 늦은 때라는 없다는 것은 듣기 좋은 말이 아니에요. 실제로 살아낸 사람만이 그 말의 힘을 경험합니다. 더 많이 배우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 더 많이 알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 스승으로 살아야겠습니다.

모진 말은 바늘과 같다. 바늘은 작아도 삼킬 수 없다. 모진 말을 계속 듣는 것은 바늘방석을 목에 걸고 사는 것과 같다. (P99)
모진 말을 잘 하지 않습니다. 정말 화가 나서 싸우는 상황에서도요. 그 말이 얼마나 상대를 아프게 하고 오래 남는지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해서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 이 말을 읽자 지난 제 말들을 떠올려 봤습니다. 남편과 관계가 좋지 못할 때 유독 남편을 닮은 부분이 많았던 큰아이에게 모진 말들을 많이 했어요. ‘제 아빠 닮아 이 모양이라고.’ 그 말이 얼마나 오래 남아 아이를 괴롭힐지는 생각지도 못하고, 내 감정으로 만요. 그런 실수들을 반복하고, 상대의 모진 말에 내게 바늘처럼 남는 경험을 자주 하면서 모진 말들을 삼킵니다. 모진 말들이 쉽게 소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잘 아니까요.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모진 말일지라도 한 번 더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바늘이 작아도 삼킬 수 없는 것처럼 내가 한 모진 말들이 상대를 오래 힘들게 할 수 있으니까요.
책은 정말 읽기 쉽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음먹고 앉은 자리에서 후루룩 다 읽을 수 있을 만큼 잘 읽히고 분량도 짧아요. 하지만 읽고 난 후 한참을 곱씹게 되는 말들이 많아요. 부부 싸움을 다른 부분이라든가, 부모님을 바라보는 관점이라든가, 덕분에라는 말로 넘기는 위기 같은 것들요. 주위에 닮고 싶은 스승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도 말해주죠. 스승님을 만나서 30년 제자로 살면서 스승님처럼 되고 싶다는 욕심이 자신을 성장하고 성숙하게 했다고 말합니다. 저는 주위에 닮고 싶은 어른이 있는지를 생각해 봤어요. 어릴 땐 가족 말고는 학교 선생님 정도가 만나는 어른의 전부입니다. 그 어른들 중에 딱히 닮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가 결단합니다. 이제는 나도 어른이니까 누군가에게 닮고 싶은 어른이 되자고요. 아이들에게 엄마로서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도 닮고 싶은 사람이 되자고 다짐합니다. 내 속에 나를 가득 채워 열등감을 몰아내고 더 많이 알려는 마음을 가진 스승으로서요. 그리고 이 책을 20대 초반인 큰 아이에게 권해 주고 싶습니다. 시간이 없다고 긴 호흡의 책을 잘 읽지 못하는 딸아이에게 인생의 전반에 대한 귀한 길잡이가 될 것 같아요. 힘을 뺀 자연스러운 대화가 부담 없이 다가올 것 같습니다. 인생에 대해 너무 무겁거나 진지하지 않게 쉼표 하나 찍는 기분으로 읽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아님 조언을 구하는 심정으로요. 조언이 짧지만 현실적이라 약간은 놀라게 되실 겁니다. 스마트폰 보는 5분만 빼도 2~3개의 질문 정도는 읽을 수 있어요. 어때요? 오늘 저녁 한 번 펼쳐 보실래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