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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의 햇빛 일기
이해인 지음 / 열림원 / 2023년 10월
평점 :

책의 부제는 작은 위로가 필요한 아픈 이들을 위하여입니다. 아픈 사람들은 작은 위로가 필요합니다. 삶을 뒤바꿀 커다란 위로가 아니라 소소하고 작은 위로를 가지고, 한순간의 고통을 넘고, 하루의 삶을 이어가야 하니까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웃으면서 작은 선물들을 준비하신 이해인 수녀님의 초대에 응해 봅니다.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몸담고 있으며 1968년에 첫 서원을, 1976년에 종신 서원을 하신 수녀님입니다. 첫 시집 <민들레 영도>를 펴낸 이래 수도자로서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사색을 조화시키며, 기도와 시로써 따뜻한 사랑과 희망을 전하고 있죠. 필리핀 세인트루이스 대학교 영문학과,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했고, 제9회 <새싹문학상>, 제2회 <여성동아 대상>, 제6회 <부산여성문학상>, 제5회 <천상병 시문학상>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고, 저서로는 <민들레 영토>, <내 혼에 불을 놓아>,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시간의 얼굴>,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이해인의 시 전집 1.2> 외 다수가 있습니다.
책은 앞의 두 장은 새로 쓴 시들이고, 뒤에 이어지는 두 장은 전에 쓴 시들 중 아픈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골라 뽑은 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픈 주위 지인들에게 자신의 시를 적어 보낸 것들을 출판사에서 묶어 책이 되었다고 해요. 위로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새로운 시부터, 자신이 아픔을 겪는 환자로서 공감하는 시들이 실려 있습니다. 꽃수를 놓듯이 아름다운 문장들이 책에 새겨져 있어요. 어느 페이지, 어떤 시를 읽어도 따뜻하게 전해지는 마음이 있는 시입니다. 어디부터 읽어 볼까요? 유난히 맑은 가을 날이니 어느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약이 내게 와서
열심히 설명서를 읽다가
스르르 잠이 든 나
아침에 일어나
예쁘고 단아한 빛깔로 엎디어 있는
나의 약들에게 말한다
지금 다시 나를 기다리는 거지?
고맙게 먹어줄게
부디 내 몸 안의 길을
잘 찾아가서
부작용이 없기를 부탁할게
나를 살리는 일에
보탬이 되어 고마운데
때로는 찡그리고
먹기 싫다고 투정해 미안하다. (약이 내게 와서 중 일부-p32)
저도 매일 시간까지 맞춰서 먹는 약이 있습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몰라도 빈 껍질의 약만이 내 시간을 말해 주는 약이요. 5년은 기본적으로 먹어야 하고, 호르몬 계열이라 시간까지 맞춰서 먹는 약입니다. 누구는 지독한 부작용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먹기를 중단하기도 하고, 누구는 부작용으로 인해 다른 약을 먹기도 하는 작지만 위력이 뛰어난 녀석이죠. 그것 말고는 이 약의 부작용으로 보인다는 위산 역류 약을 아침저녁으로 먹습니다. 약을 너무 많이 먹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들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약을 먹으면서 기도해요. 부작용이 없이 약효가 잘 들어서 재발이나 전이가 없게 해달라고요. 시를 읽으면서 약을 먹는 마음은 다 비슷하구나 하고 위로를 받습니다. 부작용이 무섭고, 약효가 잘 들어서 더는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거기에 더해 이제는 고마워하면서 먹기로 합니다. 내 몸속 어딘가에 있는 나쁜 것들, 놔두면 암이 될지도 모를 것들을 약이 잘 물리쳐 주기를 바라면서요. 그리고 수녀님처럼 약을 향해 말해 봅니다. “때로는 찡그리고 먹기 싫다고 투정해서 미안해.”라고요.
좀 어떠세요?
누군가 내게 묻는
이 평범한 인사에 담긴
사랑의 말이
새삼 따뜻하여
되새김하게 되네
좀 어떠세요?
내가 나에게 물으며
대답하는 말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평온하네요’
좀 어떠세요?
내가 다른 이에게
인사할 때에는
사랑을 많이 담아
이 말을 건네리라
다짐하고 연습하며
빙그레 웃어보는 오늘
살아서 주고받는
인사말 한마디에
큰 바다가 출렁이네. (p153~154)
아파보면 알게 됩니다. 상대의 좀 어떠세요라는 말이 사랑을 담은 조심스럽고 따뜻한 말이라는 것을요. 밥은 좀 먹느냐, 아픈 것은 나아졌느냐, 몸은 좋아지고 있느냐라는 많은 궁금증과 말들을 삼키고 묻는 안부입니다. 좀 어떠세요라고. 아플 때일수록 감각은 예민해지고, 사랑이 담긴 말들과 행동들, 배려들을 더 잘 알아차리게 됩니다. 안부를 묻는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묻는지를 알게 되죠. 조심스럽지만, 내가 당신을 걱정하고 염려하며 회복되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담은 안부라는 것을요. 수술을 하고 집에 돌아온 나를 향해 사람들은 묻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너무 조심스러웠을 수도 있지만, 저는 그게 또 서운했어요. 괜찮냐고, 어떠냐고 물어보는 것이 그렇게 힘든가 싶어서 마음이 상했죠. 아프면 정상적인 생각이 힘듭니다.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들이 상처가 되기도 하고, 자신의 존재가 한없이 작고 약해 보이기도 하죠. 그럴 때 수녀님처럼 사랑을 많이 담은 좀 어떠세요는 아픈 사람의 마음에 가닿습니다. 온전한 사랑의 말로 가닿아 위로가 되고, 몸을 회복시키는 힘이 됩니다.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부 인사에 담긴 사랑이 아픈 사람에게 얼마나 위로와 힘이 되는지를 알아요. 그래서 저도 수녀님처럼 사랑을 많이 담아 안부 인사를 건네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좀 어떠세요라고.

책을 펼치면 수녀님의 따뜻한 사랑이 햇살처럼 묻어납니다. 책장을 넘기는 손에도, 읽는 눈에도, 가만가만 마음에도 햇살이 묻습니다. 따뜻하고 포근하게. 시와 수도자로 모두 유명한 수녀님이시지만, 아픈 사람일 때는 그냥 사람입니다. 아파서 힘들 때는 시도 안되고, 가까이 간병하는 사람에게도 고운 눈길이 가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그냥 사람이죠. 저는 읽으면서 그게 또 좋아서 밑줄을 긋습니다. 수도자이지만, 고통을 느끼고 힘들어하는 한 사람인 수녀님이 좋습니다. 너무 이상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로 아플 땐 기도하세요라고 말하지 않아서 좋아요. 수녀님도 아플 땐 기도가 잘 안된다고 고백하십니다. 몸이 아프면, 마음까지도 함께 약해지고 알고 있지만, 기도가 쉽지 않아요. 그런 마음들을 모두 헤아리고 괜찮다고 웃으면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픈 사람들에게 햇빛 한 줌이 얼마나 큰 위안이고 위로인지 수녀님은 아시는 거죠. 내 말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햇빛 한 줌처럼 따뜻하기를 바라봅니다. 많이 부족하고 서툴지만, 진심을 담아 좀 어떠냐고 물어보면서요. 주위의 사물들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줘야겠습니다. 꽃이 피어나느라고 수고했다고 인사할 수 있을 정도로요. 꽃도 피느라 수고하는데, 우리는 얼마나 자기 자리에서 수고할까요? 그 마음으로 햇살 같은 미소와 말로 주위를 따뜻하게 해 볼게요. 우리 조금 더 따뜻해져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