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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황금종이 1~2 세트 - 전2권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3년 11월
평점 :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을 읽은 사람이라면 조정래라는 이름에 존경이 담기게 됩니다. 한국 현대사 3부작 시리즈를 관통했던 혜안이 현재를 사는 사람들과 돈을 어떻게 풀어냈을지 기대가 컸어요. 출판사의 대대적인 홍보에 힘입어 이 책이 내게로 왔습니다. 감사할 따름이죠. 작가의 말을 통해서 만나는 황금 종이, 곧 돈은 신에 가깝습니다. 돈 신과 함께 잘 사는 법을 알고 싶어 마음이 급해요. 돈 신이 연출한 막장 드라마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작가 조정래는 1943년 전라남도 승주군 선암사에서 태어나 광주 서 중학교, 서울 보성고등학교를 거쳐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작가정신의 승리’라 불릴 만큼 온 생애를 문학에 바쳐온 조정래 작가는 한국문학뿐 아니라 세계문학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뛰어난 작품 활동을 해 오고 있어요. ‘20세기 한국 현대사 3부작’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은 경이적인 1천5백만 부가 팔리면서 한국 출판 사상 초유의 기록을 수립했죠.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고, 장편 소설 <천년의 질문>, <풀꽃도 꽃이다>, <정글만리>, <허수아비춤>, <사람의 탈>, <인간 연습>, <비탈진 음지>, <황토>, <불놀이>, <대장경>이 있고 중단편 집과 산문집과 청소년을 위한 위인전도 있습니다. 각종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어요. 또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등으로 세계 곳곳에서 번역 출간되었으며, 영화, 오페라, 뮤지컬, 만화로 만들어지고, tv 드라마 등으로 제작되고 있죠.
책은 총 2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작가의 말을 통해 책의 내용을 조금은 유추해 볼 수 있어요. 황금종이는 돈을 의미합니다. 돈이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서 어떤 칼춤을 추고 있는지 사실적이고, 정확하게 그리고 있어요. 첫 시작은 돈 때문에 어머니에게 소송을 건 딸의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이모의 사연을 들고 고등학교 친구인 변호사 이태하를 찾아오면서부터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요. 돈 앞에는 어머니도 없다는 비정함보다는 너무 자주 일어나서 새삼스럽지도 충격적이도 않은 이야기 속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봅니다.
“당연하지. 민사고 형사고 가리지 않고 돈 때문에 벌어진 사건들이 99퍼센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P17)
두 권의 책을 읽고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을 고르기가 힘듭니다. 배울 내용도 많았고,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 같은 이야기도 많았어요. 하지만 이 문장을 고른 것은, 이 말이 이 책을 거의 요약하는 것이 아닐까 해서입니다. 이후에 펼쳐지는 어떤 이야기도 돈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 같은 말이기 때문이죠. 변호사 이태하는 운동권 출신 민변 소속 변호사입니다. 뛰어난 머리로 검사가 되어 총망 받는 검사 시절을 보냈지만, 재벌 수사에 소신을 꺾지 않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죠. 완전히 찍히는 바람에 동창들의 변변찮은 사건들을 수임하며 근근이 변호사 생활을 이어오죠. 오늘도 의리의 고등학교 동창이 찾아와 사건을 의뢰합니다. 홀어머니를 딸이 고소한 사건이죠.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조금이라도 있다면 누구라도 피해 가기 쉽지 않습니다. 돈에 관한 갈등과 싸움, 소송을요.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다짐했어요. 어머니가 혹시나 조금이라도 남기신다면 장녀인 내가 깨끗하게 포기하자고요. 물론 돈이 없으니 그런 마음이 쉽게 들었는지 모르지만, 그 마음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은행은 표정이 없었다. 인정도 없었다. 분명 사람이 움직이는 조직인데 사람의 냄새도, 사람의 향기도 없었다. 거침없이 돌아가는 거대한 기계와 다름이 없었다. 종이에 적힌 대로 가차 없이 행동에 돌입했다. (p37, 2권)
부모들에게 물려받은 돈으로 카지노를 들락거리다가 재산을 모두 날려 먹은 두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으니 더 쉽게 쓰게 되죠. 갑자기 돈이 생긴 것처럼 허황된 꿈으로 돈을 더 불리기 위해 로또를 사거나 경매를 하거나 카지노에도 중독됩니다. 돈은 소유한 사람의 인격을 닮거나 욕망을 부풀리는 돋보기 같습니다. 돈이 없을 때 성실하고 착한 사람들이 돈을 조금이라도 손에 쥐게 되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것은 굳이 소설이 아니라도 차고 넘치죠. 카지노를 전전하던 배승우는 결국 은행의 참모습을 경험하게 됩니다. 표정도 인정도 없는 은행을요. 사람이 움직이지만 사람의 냄새도 향기도 나지 않는 은행을 말입니다. 대출이자를 갚아야 할 때 시간은 가속도를 붙여 움직여요. 이자를 내고 돌아서면 또 그 날짜입니다. 월급날은 느리게만 오는데, 대출이자 내는 날은 어쩌면 그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하루의 사정도 용납하지 않아요. 피치 못할 사정 같은 것은 은행에 없습니다. 다만 하루치의 이자가 있을 뿐이죠. 인정사정 다 봐주면 돈을 벌수 없다는 말이 상식처럼 통용됩니다. 정말 그런 것일까? 순진하게 이태하 변호사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터무니없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돈 때문에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 돈 때문에 자신을 배신한 애인에게 철저하게 복수하고 자살한 청년, 어머니를 고소한 딸, 혼자 남은 아버지의 재산을 탐내는 자식들, 자식들에게 돈을 물려주기 싫어서 자신의 가족이라고 여기는 강아지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아버지, 3류 대학 출신으로 16번이나 서류 전형에서 떨어지고 입주 간병인으로 들어간 여성 청년, 망나니 재벌 3세에게 성추행과 폭행을 당하고도 내색하지 못했던 햇병아리 여성 변호사 이야기까지 정말 다양하게 나옵니다. 다양하게 나와도 결국은 모든 것의 원인은 돈입니다. 돈 때문에 범죄까지 저지르고 돈이라면 부정이나 부패도 쉬운 세상에서 이태하 변호사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삽니다. 어려운 이웃들을 무료로 변론해 주고, 분에 넘치는 수임료는 거절하면서요. 대학생 시절 운동권에 참여했던 순수한 열정과 초심을 잃지 않고 변호사라는 직업과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삽니다. 그가 그렇게 순수하게 초심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동지인 선배 한지섭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같이 운동권이었고, 잠시 정치를 했으나 현실 정치의 한계를 처절하게 배우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농부가 된 한지섭 선배. 그는 농업을 통해서 자신의 대학생 시절의 꿈을 하나하나 실현해 나가고자 합니다. 이주 노동자들의 숙소를 자신의 집과 똑같이 짓고, 협동조합을 통해 판로 개척과 협력을 이어나가죠. 드디지만 자신이 꿈꾸었던 일들을 살아내는 사람입니다. 이태하와 한지섭은 서로를 존중하는 동지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죠. 세상이 쉽게 바꾸지 않는다고 체념할 때가 있어요. 분명 잘못되어 가고 있는데, 내 힘은 약하기만 하고, 내 얘기는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요. 그래서 그냥 편하게 살자 싶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얘기하면 큰 사회 운동이라도 하는 것 같지만, 사람들을 조건 없이 사랑하고 섬기며 살고 싶은 마음이 전부입니다. 이런 마음에도 좋아해 주면 뭘 줄 거냐는 식으로 다가오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기도 하고요. 그러면 편하게 남들처럼 주고받고, 그렇게 살까 싶은 생각이 들죠. 하지만 누군가는 이태하 변호사나 한 지섭 선배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을 겁니다. 분명히. 내가 잘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이지, 분명히 많이 있을 겁니다. 직업이나 내가 처한 상황과 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내가 있는 곳에서 돈을 신으로 섬기기보다 사람을 우선으로 하는 삶을 살아내면 당신은 당신이 선 곳에서 한지섭 선배처럼 살아내면 될 거예요. 그러다 가끔씩 서로 격려하면서요. 마지막 질문을 던지면서 소설은 끝납니다. 마지막 질문에서 부디 이태하 변호사가 이전과 다른 선택을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내가 여기서 이태하로 살아내면 많은 한지섭이 생길 거라 믿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돈에 미쳤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희망을 부여잡고 여기를 지켜보겠습니다. 작지만 단단하게 사람으로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