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버리, 몰입하는 글쓰기 - 머나먼 우주를 노래한 SF 거장, 레이 브래드버리가 쓰는 법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김보은 옮김 / 비아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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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버리가 누군지도 모르고 글쓰기에 꽂혀서 선택한 책입니다. 5명이라는 숫자로 인해 서평단 발표날까지 매일 카페를 들락거리며 마음을 졸였죠. 다행히 선정되었고, 바로 다음날 책이 배송되었습니다. 분량이 짧아 좋았고, 내용도 기대되었어요. 몰입하는 글쓰기라는 제목에 딱 맞는 붓그림 표지가 인상적입니다. 굵은 붓끝에 먹이 묻어 있고, 하나의 점으로 모아지는 붓끝이 몰입하는 글쓰기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몰입하는 글쓰기로 떠나실 준비되셨나요?


저자 브래드버리는 1920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났어요. 2012년 6월 5일 91세의 나이로 타계하기 전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수백 편의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특히 단편을 300여 편을 남기며 ‘단편의 제왕’이라는 수식어를 얻었어요. 서정적인 문체와 섬세한 감수성, 놀라운 상상력으로 ‘환상문학의 음유 시인’이라 불리며 SF 문학의 거장으로 자리 잡았죠. 1939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신문 판매원으로 일하던 중 첫 단편 소설 <흘러보첸의 딜레마>를 발표했고, 이후로 단편 소설들을 발표하면서 작가가 되었습니다. 특히 <화성 연대기>, <일러스트레이터 더 맨>, <화씨 451>, <민들레 와인>으로 독보적인 작가가 되었죠. 소설뿐만 아니라 희곡과 영화의 각본 등 거의 모든 장르의 글을 썼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08년 미국 SF 시인협회로부터 그랜드 마스터 칭호를 받았고, 휴고상, 브램스토커상, 프로메테우스 상, 에미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어요. 미국 과학소설 작가협회에서는 매년 그해 최고의 SF 각본가에게 수여하는 상을 ‘레이브래드버리상’이라고 명명하여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이 책은 긴 시간을 두고 그가 자신의 소설과 글, 글쓰기에 관해 쓴 에세이입니다. 어린 시절 자신의 추억들로 책은 시작됩니다. 그가 아홉 살 때 만화책을 친구들의 비웃음으로 버렸다가 마음의 병을 얻고 다시 모으는 이야기가 나와요. 책과 영화를 좋아하던 소년은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청년이 됩니다. 하나하나의 에세이를 따로 읽어도 좋고, 순서에 따라 읽어도 좋아요. 아홉 살에 만화책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깨달았다는 그의 이야기 속으로 호기심을 가득 품고 따라가 봐요.


가장 사실일 것 같지 않은 소설이라도, 독자가 자신의 감각을 통해 사건 한가운데에 있다고 느끼게 할 수 있다면 사실인 것처럼 만들 수 있다. (P55)

예술가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는 뮤즈를 곁에 두는 방법에 관해 말하면서 나오는 문장입니다. 뮤즈는 예술을 계속할 힘과 아이디어의 원천이죠. 그 뮤즈에게 주는 음식으로 시와 에세이를 읽을 것을 말합니다. 독서할 때도 오감을 자극하는 책을 읽으라고 하죠. 그 이유는 위의 문장과 같습니다. 정말 터무니없는 내용이라고 할지라도 독자가 그곳에 있다고 믿도록 만들기 위해 색, 소리, 맛, 질감을 이용해 각각의 감각을 자극해서 독자가 느끼게 해야 한다고 말해요. 그러면 이긴 것이라고. 글쓰기 책을 조금이라도 읽어보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물을 자세하게 사진 찍는 것처럼 글로 묘사를 해보라고요. 오감으로 글을 써야 한다고요. 말은 쉽지만 눈앞에서 늘 보던 사물도 글로 묘사를 하려고 하면 쉽지 않아요. 평범하고 뻔한 단어들을 더듬거리듯이 나열하는 모습을 경험합니다. 연습이 중요한 것을 깨닫지만, 연습은 말 그대로 연습이라 재미도 없고, 실력이 금방 나아지지 않으니 시들해져요. 하지만 가장 사실 일 것 같지 않은 소설도 사실로 만들려면 묘사가 절대적입니다. 그 공간 안에, 혹은 그 사건 안에 독자를 두는 글쓰기. 나를 설득하고 독자를 설득할 수 있는 글이 되려면 오감을 자극해야 합니다. 지금 이 글은 어떤가요? 어이없는 웃음이 나네요. 갈 길이 멀었습니다.


10년 동안 일주일에 단편 소설을 적어도 한 편씩 쓰면서, 언젠가는 나 자신이 진정 방해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글이 써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P81)

글을 잘 쓰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닐까 잔뜩 기대하고 펼쳤는데,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그의 글처럼 기발하고 색다른 방법은 없어요. 다만 꾸준하게 열심히 포기하지 않고 계속 쓰는 것뿐입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작가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즐긴다는 거죠. 열정적으로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글을 쓰는 자신을 좋아하는 거죠. 이렇게 되기까지, 자신의 글을 자신만의 문체로 만들기까지 적어도 10년 동안 하루에 1,000단어씩 글을 썼다고 해요. 1,000단어가 실감되지 않습니다. A4용지 몇 매, 원고지 몇 매가 아니라 쉽게 실감되지 않지만 엄청난 양인 것은 사실이죠. 이렇게 연습하고 습작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글이 자신을 이끌어 가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통제로 글이 방해받지 않은 경지까지 이르게 된 것이죠. 늘 그렇게 글을 쓰기 때문에 글쓰기의 괴로움은 느껴지지 않아요. 자신 안에서 뛰어나오고 싶어 안달하는 글들을 풀어 놓기만 하면 되는 느낌입니다. 10년간의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영광은 누리고 싶은 얄팍한 욕망을 봐요. 성과를 내고 싶되 노력은 하기 싫은 참 못된 심보입니다. 작가 소개에 언급된 그 많은 상들이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는 말. 독자들로부터 받았던 호평이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는 말.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일단 뭐라고 써봐야 합니다. 글쓰기에 대한 글만을 읽을 것이 아니라!


작가는 돈이 되지 않았던 시절에도 글을 쓰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합니다. 지금은 생소한 타자기로 글을 쓰기 위해 도서관 지하에 타이핑 룸에서 글을 쓰기도 하고(목욕탕 드라이기처럼 동전을 넣으면 일정한 시간 동안 타자기를 쓸 수 있다고 합니다.) 가명으로 출판사나 잡지사에 소설을 보내기도 합니다. 타이핑 룸에서는 10센트 짜리 동전을 넣으면 시계가 미친 듯이 째깍거리는데, 30분 안에 글을 끝내기 위해서 격렬하게 자판을 쳐야 했다고 해요. 돈이 없는데, 돈을 넣고 글을 쓰고 있으니 얼마나 절박하고 간절했겠어요. 그렇게 훈련되어서 그런지 작가는 글을 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은 아닙니다. 자기 안에 있던 이야기들이 스스로 튀어나와 이야기가 된다고 하죠. 지나면서 본 풍경과 사람들, 자신의 어린 시절들이 자연스럽게 소설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말하죠. 글을 내가 통제하고 계획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이 글을 이끌고 가고, 주인공을 데리고 오고, 그 주인공이 다른 이야기를 끌고 나온다고 합니다. 이렇게만 써진다면 글 쓰는 것이 어려울 것도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깨닫죠. 10년간 매일 천단어씩을 쓰는 훈련이 필수라고. 너무 많이 생각만 하지 말고, 뭐라도 써봐야 합니다. 김영하 작가는 말했어요. 한 문장을 쓰고, 그 문장이 말이 되게 이어가는 것이 소설이라고요. 일단 뭐라도 써보고(한 문장이라도) 그 문장이 말이 되게 자꾸만 써보는 겁니다. 그러면 브래드배리처럼은 아니더라도 손가락이, 기억이 조금은 움직여 글을 데리고 오지 않을까 기대해 봐요. 어떠신가요? 몰입하는 글쓰기 참 쉽죠? 뭐라도 쓰고, 말이 되게 계속 쓰고, 또 쓰다 보면 뮤즈가 찾아올지도 몰라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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