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여행자 도쿄 김영하 여행자 2
김영하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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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여행자 도쿄>에 보면 여행책자에 관한 글이 나온다. 서양에 소개되는 일본책자의 표지는 주로 하얗게 분칠한 게이샤의 얼굴이나 기모노에 게다를 신고 있는 여성들의 뒷모습 등 일본의 전통적인 모습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여행책자에서 소개하는 루트를 따라가다 보면 서양인들이 바글바글 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Lonely Planet'을 들 수 있겠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정말 그렇다.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일 수도 있지만 서양의 관점에서 바라 본 일본은 동양의 옛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고색창연한 분위기의 나라인 것 같다. 

처음에는 여행자가 여행안내서를 선택한다. 그러나 한번 선택하면 그 한 권의 여행안내서가 여행자의 운명을 결정한다. 짧은 여행기간 동안 여행자는 여행안내서 한 권의 체제에 익숙해지기에도 힘이 든다. 어떤 여행안내서는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비로소 그 체제를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여행안내서들은 방대한 정보를 담고 있어 여행자들을 그 안의 일부만을 몸소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즉, 여행자는 여간해서는 자신이 선택한 책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여기서 우리는 '텍스트의 바깥은 없다'는 롤랑 바르트의 말을 다시 한 번, 이런 방식으로 떠올리게 된다.


한동안 여행을 할 때면 나 역시 두툼한 가이드 북에 절대적으로 의지 하곤 했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도시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로 선택하여 추천명소와 맛집을 따라다니다가 결국은 실패와 후회를 반복하게 하는 이상한 책인데도 말이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여행이 한 권의 책 안에 갇히고 마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세상에는 읽지 않아도 되는 책들이 훨씬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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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의 유럽 방랑
빅토르 위고 지음, 정장진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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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방랑>은 19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망명생활을 했던 빅토르 위고가 유럽의 여러 도시를 전전하며 써 내려간 편지와 일기를 엮은 것이다. 여기에 아름다운 스케치들이 첨가되어 놀랄만한 여행기로 탄생했다. 사실 작가에 대한 설명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워낙 유명한 대문호이긴 하지만 편지나 여행 일지가 주는 느낌은 당연히 그의 작품이 주는 감동과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글이 아닌 그림이다. 위고가 자신만의 시선으로 기록했던 1800년대의 유럽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누구나 그의 그림 실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위고의 스케치를 통해 또 배운다. 자연에 대한 애정과 사물에 대한 관찰력. 괜히 위대한 글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존 러스킨이 글을 쓰는 것보다 그림 그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이유를 알겠다.

오늘 아침, 새벽은 어둡고 비마저 내린다.
모두들 아직 밤이라고 말하겠지.
우리의 동행은 여명을 놓쳐버린,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르는 태양이다.
- 빅토르 위고, 유럽 방랑 (1865년 여행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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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말러인가? - 한 남자와 그가 쓴 열 편의 교향곡이 세상을 바꾼 이야기
노먼 레브레히트 지음, 이석호 옮김 / 모요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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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러를 늦게 접했다. 2009년 뉴욕 링컨 센터에서 베르나르트 하이팅크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의 교향곡 5번이 내가 처음 만난 말러이다. 원래 계획에 없었지만 당일에 티켓을 사고 발코니에 별 기대 없이 앉아 있다가 이상한 경험을 했다. 시작부터 '쿵'하고 내 마음을 휘젓더니 4악장에서는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음악이 모두 끝나자 마치 내가 고된 여정을 끝낸 것처럼 후련하고 감동적이었다. 아직까지도 1악장이 시작하는 트럼펫 팡파르를 들으면 그날의 내 자리와 분위기가 생각난다. 어쩌면 혼자여서 더 집중했던 것일 수도 있다. 노먼 레브레히트의 조언대로라면.


말러, 말러, 오래전부터 숱하게 그의 명성을 말과 글로 접하다가 그의 음악을 알게 된 이후로 나의 취향은 조금씩 변했다. 이후 겨울이면 어김없이 말러의 교향곡을 1번부터 차례로 듣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말러가 궁금해졌다. 그때쯤 음악 잡지에서 종종 보았던 신랄한 비평가, 노먼 레브레히트의 책이 출판되었다. <왜 말러인가?: 한 남자와 그가 쓴 열 편의 교향곡이 세상을 바꾼 이야기>. 말러의 열성적인 팬이기도 한 레브레히트는 굉장히 집요하게 말러의 삶과 음악을 파고들면서, 생각보다 쉽고 재미있게 말러를 이야기해 준다. 서두에서 말러를 감상하는 법만 읽어봐도 그의 음악이 궁금해질 것이다. 책과 말러의 교향곡을 번갈아가면서 읽고, 듣고를 반복했었다. 그 순간만큼은 내 인생이 말러로 꽉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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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열린책들 세계문학 20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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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치오는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읽으며 줄곧 이런 생각을 했었다. 혹자는 동성애적인 작품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예술과 아름다움, 그리고 죽음에 관한 소설이다. 이를 영화로 만든 루치노 비스콘티 감독은 나의 상상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소년을 타치오로 캐스팅했다.(대학 때 재미있게 읽었던 책 <보이 Boy>의표지가 이 소년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심지어 저자가 저메인 그리어란 사실도.) 영화가 유독 좋았던 이유는 말러의 교향곡-중에서 가장 아름다운-5번 4악장 아다지에토가 자주 흘러나오기 때문이었다. 책에서는 주인공이 작가이지만 영화에서는 작곡가로 바뀌었다. 당연히 말러를 상상할 수밖에 없다. 토마스 만은 말러를 모델로 구스타프 폰 아센바흐를 창조했다. 이 부분을 읽고 말러의 사진을 찾아보라.


구스타프 폰 아센바흐는 중키가 조금 못 되고 갈색 피부를 지닌, 면도를 말끔히 하는 남자였다. 아담하다고 할 수 있는 그의 체격과 비교할 때 그의 머리는 좀 크다는 느낌이 들었다. 뒤쪽으로 빗어 넘긴 그의 머리칼은 정수리 부근에는 숱이 듬성듬성하고, 관자놀이엔 무성하며 확연히 희끗희끗 해지고 있었다. 머리카락에 둘러싸인 훤한 이마는 주름이 깊이 패어 있어 마치 흉터가 생긴 것처럼 보였다. 알에 테두리가 없는 금테 안경의 둥근 코걸이 부분은 고상하게 휘어진 뭉툭한 코의 윗부분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큼지막한 입은 때로는 맥없이 풀려 있다가, 때로는 갑작스럽게 오므라지며 긴장하기도 하였다. 뺨은 여위어 고랑이 패어 있었고, 잘생긴 턱은 부드럽게 갈라져 있었다. 보통의 경우는 힘들고 파란만장한 삶이 한 사람의 인상을 만들어 주지만, 그의 경우에는 예술이 그러한 일을 담당했다.




예술은 고양된 삶이다. 예술은 보다 깊은 즐거움을 안겨주고, 신속하게 기력을 갉아먹는다. 예술은 그것에 봉사하는 사람의 얼굴에 공상적이고 지적인 모험의 흔적을 각인해 준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엔 수도원에서처럼 조용하게 생활한다 하더라도, 결국에 가서 예술은 방탕한 열정과 향락으로 가득 찬 삶조차 낳을 수 없을 것 같은 까다로운 취향, 지나친 섬세함, 피로와 신경질적인 호기심을 낳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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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쏜살 문고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이민경 추천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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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oman must have money and a room of her own if she is to write fiction.

- Virginia Woolf, A Room of One's Own(1928)


사람마다 내용은 다를지라도 결과적으로 버지니아 울프가 제시한 ‘자기만의 방’과 ‘돈’은 한 개인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매우 현실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울프도 이 요소들이 비교적 잘 충족되었기 때문에 좋은 작품을 많이 남길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울프는 이전 시대의 여류 작가들(예를 들면 울프가 언급했던 에밀리 브론테, 제인 오스틴 등)에 비해 “글 쓰기” 좋은, 한마디로 지적인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울프는 학교에 가지 않고 대부분의 교과과정을 가정교사와 부모로부터 배웠다. 아마도 문학비평가인 아버지(레슬리 스티븐)의 서재에서 어린 울프는 작가의 꿈을 품었을 것이다.


어느 성(性)에게나 삶은 힘들고 어려운 영속적인 투쟁입니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용기와 힘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우리같이 환상을 지닌 피조물에겐 그것은 아마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필요로 할 겁니다. 자신감이 없다면 우리는 요람에 누운 아기와 마찬가지이지요. 이 측정할 수 없이 가벼운, 그러나 무한한 가치가 있는 자질을 어떻게 해야 가장 신속하게 획득할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함으로써 가능하겠지요.… 그러므로 통치해야 하고 정복해야 할 가장에게 있어서 다수의 사람들, 사실 인류의 절반이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느끼는 것은 막대한 중요성을 가질 겁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보다 더 자주 언급되는 <자기만의 방>은 그가 1928년 뉴넘 대학과 거턴 대학에서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던 내용을 보완한 에세이이다. 울프는 한 여성이자 직업 작가로서 인생의 성숙기를 맞고 있던 마흔일곱 살에 이 작품을 발표했다. 페미니즘과 문학론의 관점에서 소개되는 경우가 잦아서 그동안 나는 소설을 쓰고자 하는 여성작가들을 위한 책이라 여겼는데 요즘 들어 인생을 꾸려나가는 누구나에게 해당하는 글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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