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인들 - 내 안의 어린아이를 잃어버린 어른들에게
오설자 지음 / 푸른향기 / 2022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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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동심을 건드립니다.

아기자기한 학교 이야기가 가득한 은퇴하신 초등 교사의 에세이입 니다.

학부모를 위한 책이 될 수도 있고, 초등학교 선생님들을 위한 책이 될 수도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초등시절(혹은 국민학교)을 거쳐간 모두에게 알알이 박힐 이야기들이 숨어 있어요. '나의 어린 시인들'의 이야기인 거죠.

세상은 아직도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이런 선생님의 사랑과 관심이 존재하는 한 아이들의 사각지대란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드는 시 같기도, 노래 같기도, 명언집 같기도 한 책이었답니다.

35년 교직 생활 동안 있었던 제자들과의 에피소드를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처럼 생생하게 전해줍니다.

다양하고 맛깔나는 어휘의 사용은 읽는 재미를 톡톡히 해줍니다.


조용히 공부하는 1학년 교실에 지나던 바람이 구경하려고 들릅니다.

그 바람에 커튼이 날려 배가 불룩해지더니 커튼이 날아가 희진이 얼굴에 닿았습니다.

갑자기 희진이가 깔깔거립니다.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들더니 웃음이 터집니다.

웃는 아이들 따라 영문도 모르고 배꼽 잡고 웃습니다.

조용하던 교실은 금세 웃음바다가 됩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팝콘이 터지는 것과 닮았습니다.

표정 없이 단단하게 있다가 어느 순간 팡팡 터지는 웃음소리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수류탄이 옥수수 곳간에 터지면서 하늘 가득 내려오던 팝콘을 닮았습니다.

참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본문 중

선생님의 시선이 너무도 곱고 순수하다는 게 느껴집니다.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이런 묘사에서 충분히 전해지다보니 표현도 아기자기한 사랑의 언어 모음집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바닥에 오글오글 콩벌레를 올려놓고 초승달처럼 웃던 준영이 얼굴이 떠오릅니다.

콩벌레를 사랑한 그 아이. 지금쯤 대학생이 되었을 텐데.... 혹시 생물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을까요.

무엇을 전공했든지 살아 있는 작은 것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멋진 청년이 되었을 거라고 믿어요.

지금쯤 군대에 갔을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군대가서도 총 들고서 하라는 보초 임무는 잊은 채, 쪼그려 앉아 콩벌레는 줍고 있지는 않겠지요?

본문 중

선생님의 기억이 너무도 선명합니다.

제자의 어렸을 적 모습을 떠올리며 지금의 모습까지 유추해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제자들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겠지요?

관찰은 공부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사랑을 하는 방법 중 하나도 관찰임을 알게 해줍니다.

아침마다 아이들은 지난밤 집에서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이르느라 내 책상에 모여 턱을 고입니다.

현준이가 인사를 하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밉니다.

껍질은 벗겨지고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먼지 보푸라기가 달라붙은 감자 한 알이네요.

찐 햇감자를 먹다가 선생님이 생각이 났다고 하네요.

주머니에 넣고 온기를 지키려 조몰락거리다 맨몸이 된 감자.

주머니 속에서 식지 않으려고 몸부림쳤는지도요.

아이는 자랑스럽게 그것을 내 손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아이들은 모두 나에게 눈을 모으고 맛나게 먹을 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본문 중

아이가 선생님을 위한 따끈한 감자를 호주머니에 넣고 찾아온 모습을 매우 정감있게 표현했어요.

선생님을 생각하며 집에서 챙겨왔을 아이의 마음과 선생님의 입에 닿기도 전에 식으면 안 될 감자의 오롯한 형태가 상상이 되면서 살포시 미소가 지어집니다.

이렇게 애틋한 사제 간의 정 나눔을 지금에는 찾아볼 수나 있을까요?

어느 날, 개구쟁이 승민이가 해정이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승민이는 몸을 부산하게 움직이는 아이입니다.

해정이는 자기표현이 아주 분명한 아이입니다.

그날 집에 가서 승민이가 가슴을 만졌다는 말을 부모님께 했습니다.

아이 아빠는 예민하게 반응하였고, 다음날 무척 흥분한 상태로 전화를 했습니다.

어느 부모가 그런 일에 가만있겠어요?

학부모의 말을 듣고 충분히 공감하고 면밀히 조사한 후에 처리하겠노라 했습니다.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니 승민이가 장난감을 잡으려 몸을 굽혔다 일어나 돌아서려는데,

주변에 서 있던 해정이 가슴을 스쳤나 봅니다.

승민이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었지만, 해정이 기분이 상했기 때문에 일단 사과하게 했습니다.

물론 부모님께 일에 대한 자초지종을 알려드렸고 오해는 풀렸습니다.

본문 중

지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순조로운 해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의 학폭위가 열리는 실상을 들여다보면 아주 사소한 일이나 아주 친한 사이에서 생각지도 않게 학부모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일들로 번지면서 확대가 되는 일이 종종 일어남을 목격합니다.

선생님들의 권위도 매우 떨어진 세태에 직접 중재에 나서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닌 요즘의 상황과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에서

'아!! 옛날이여~~'를 외치게 됩니다.

"아이들은 맞기도, 때리기도 하면서 크는 거야!!" 라는 말은 아주 옛말이 되었지요.

폴 빌리어드의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에 나오는 [이해의 선물]은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주려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어른의 이야기입니다. 엄마가 물건을 살 때마다 무엇인가를 내미는 것을 본 폴은 사탕을 사고 싶어 체리 씨를 가져갑니다.

위그든 씨는 은박지로 잘 싼 체리 씨 여섯 알을 받고 잠시 생각에 잠깁니다.

"모자라나요?"

"아니다, 돈이 조금 남는구나. 거스름돈을 내주마."

손바닥에 사탕과 거스름돈으로 2센트를 내어줍니다.

-중략-

'체리 씨를 가져간 아이의 마음'을 온전히 지켜 줄 수 있는 '위그든 씨'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의 많은 어린이들은 체리 씨는 가져간 마음에 상처받지 않고 오래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어른이 되면서 옅어진 동심의 그 자리에 '2센트의 이해심'이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본문 중

아주 유명한 얘기입니다.

체리 씨를 화폐로 가치 전도를 해줄 어른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물질만능주의의 시대에 아이의 동심을 파괴하지 않고 거스름돈을 건네 줄 어른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우리가 위그든 씨가 될 수 있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되묻게 됩니다.

저자의 표현대로 어른이 되면서 옅어진 동심의 그 자리에 2센트의 이해심이 가득한 시간이 자주 생기면 좋겠습니다.

"교육이란 어린이들에게 옳은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플라톤이 한 말입니다. 강석이는 옳은 것에서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본문 중

아무리 거칠고 난폭한 행동을 하는 아이일지라도 반드시 그에게는 옳음이라는 가치가 내재되어 있을 텐데, 사람들은 피해를 주는 존재로만 인식을 하여 가르치기 이전에 선을 긋고 지적을 하게 되지요.

저자의 제자 강석이는 껄렁한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학교에서 관리하는 대상으로 지목받으며 말썽꾸러기 집단의 '복도파' 일원이 됩니다.

공부는 뒷전이고 힘자랑만 하며 문제를 일으키지만 선생님의 관심으로 그 무리에서 벗어나 축구 중학교를 가며 모범적인 생활을 해 나갑니다.

선생님께 잘 가르쳐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말이죠.

플라톤의 말처럼 교육이란 아이의 바르지 못한 부분을 들춰내며 응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을 잘 살펴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게 맞다는 걸 확인시켜 줍니다.

올해도 스승의 날이 어김없이 돌아왔습니다.

학교에 있을 때 이 날이 가장 싫었습니다.

어린이들이 나를 앞에 세워 놓고 꽃을 달아 주며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노래를 부를 때, 나는 몸이 오그라들곤 했습니다.

'스승'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어색하고 쑥스러웠습니다.

아직 '스승'이 되지 못해서 그랬습니다.

그렇게 오래 선생을 했거만, 스승이 되기에는 멀어만 보였습니다.

현직에서 물러난 지 4년이 되어가지만 나는 아직도 '스승'이라는 말, '하늘 같다는 말'도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스승이라는 의미가 너무 크고 깊어서일 것입니다.

본문 중

실제로 저자를 찾는 제자는 많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선생님을 만나 고마움을 전하고 자신의 꿈을 향해 전진하는 학부모들이 되어 선생님의 자리를 빛내주었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울까요?

'스승'이라는 말이 어색하다고 하지만 이런 분께 어울리는 말이 '스승님'이라는 말 외에 더 어울리는 게 있을까요?

아이들에에 대한 끊임 없는 관심과 애정이 수업 시간 안에서,, 밖에서 꽃을 다루듯 조심스럽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다보니 가난한 아이도 우울한 아이도 마음이 기울어진 아이도 금세 하나가 되어 선생님의 사랑을 전달받을 수 있었습니다.

교실에 넣어준 초코파이 간식이나 용돈을 찔러주던 마음의 씀씀이, 불안한 가정사에 얽힌 아이들의 불안한 심기도 널리 헤아려주셨던 저자의 젊은 날, 교사 시절은 한 편의 영화 같기도 합니다.

어느덧 종이 울리고 알림장을 쓸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 못 고친 것은 다음 기회에 치료하기로 합니다.

앞으로 책을 조심히 읽고 물건을 아끼는 마음이 부쩍 커졌기를 바랍니다.

찢어지고 뜯긴 것을 고치며 연민을 체험한 날입니다.

'주변의 물건을 소중히 다루고 고쳐 쓰는 태도를 가진다.'가 수업목표였는데 덩달아 책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얻을 수 있었으니 수업목표는 이백 프로 달성입니다.

책 치료하는 날.

어린이들이 책을 돌보는 모습을 보며 내 안의 어수선한 마음, 갈라진 마음, 더러워진 마음도 고쳐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가끔씩 수선하는 날을 만들어 우리의 마음을, 행동을 돌아보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본문 중

어지러진 책을 다시 예쁘게 단장하는 시간들이 마치 사람 대하듯 조심스럽고 정갈합니다.

그리고 연민을 체험한 날이라는 표현에 공감을 하게 됩니다.

책은 우리의 길잡이가 되어줌에 충분한데 많이 해지면 마음이 짠하지요.

그러다보니 그런 책을 대하고 만지다보면 연민의 정이 도사릴 수밖에 없습니다.

책을 돌보듯 우리의 마음도 수선해보는 것은 어떨까? 라는 저자의 제안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봄'이라는 계절을 글로 선물받은 듯했어요.

사랑의 향기가 가득했고, 벚꽃잎이 날리듯 아이들 마음 곳곳에 은은한 온정을 흩뿌리는 선생님의 애틋한 마음이 시종일관 전해졌답니다.

이렇게 한 권의 책이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따듯할 수 있구나!!를 느낄 수 있는 멜로디가 정겨운 봄의 노랫말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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