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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주부 명랑제주 유배기
김보리 지음 / 푸른향기 / 2022년 3월
평점 :
오십 살을 맞아 떠난 제주 한달살기의 주인공 이야기입니다.
이 제주에세이는 김밥과 막걸리를 연료 삼아 걷는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서른 날, 비건을 실천하며 황량함과 슬픔이 배인 시간들을 용서하듯 유배의 시간을 보냅니다.
오종종 붙어 있는 좋은 습관을 더 단단하게, 부끄러우면서 나쁜 습관을 홀가분하게 털어내는 과정이라 읽히는 여행에세이입니다.
저자가 언급한 본문 중의 내용은 마치 예전의 저를, 마치 다가올 저를, 마치 스쳐가며 일부분이 되려다 만 저를 보는 듯 볼 뜨거운 시간이 되어 울림이 남습니다. 지금 새벽, 그 공기 이상으로 속이 채워집니다. 더 살아갈 이유를 찾게 됩니다. 유배기 같은 여행기라서 더욱 그렇습니다.
여행이 무진장 잘 먹고, 잘 보고, 잘 쉬어야지만이 여행다운 여행이라 할 수 없는 것처럼 요렇게 김밥과 막걸리로 경치를 자본 삼아 자신의 여행 시그니처를 만들어가는 매력 발산에 방랑이 아니라 방점을 찍는 용기가 느껴지네요.
친구와 어그러진 몇 년 전의 일로 결국 죽음의 날까지 그 맘을 풀지 못하고 이별을 해야 했던 작가님의 그 허물이 지금은 후진게 아니라 후한 맘으로 세상을 관조하듯 살아갈 수 있는 전환점이 되었으면 하네요. 여행, 그 추억의 단단함으로, 그래서 생긴 근육으로 ......
처음부터 '유배'라는 네이밍을 통해 가난하고도 가난한 여정을, 하찮고도 허접한, 그렇지만 내가 보이는, 나를 찾아야 하는 오름을 선택해 완벽이 아닌 덜어내면서 상실했던 것들을 주어담는 완성의 여정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님은 한 달 살기가 아니고 한 달 떠돌기라고 농담처럼 말했었는데, 제대로 떠돌았다고 해요.
돌고도는 인생, 여행이 떠돌기 위한 시간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알지요.
저 또한 떠돌기 위한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이유가 제가 돌고돌았던 이제까지의 시간을 제대로 유배하듯 검소하게 간결하게 방랑하고 싶기 때문이니까요.
오름은 운동화 끈을 고쳐매고 오르면 됩니다.
집까지, 목적지까지 주욱 뻗은 올랫길은 가고 오는 길에 돌담과, 식물과 대화하듯 발걸음을 옮기면 됩니다.
제주에서나 가능한 일이지요.
시작이 어려웠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작가님의 불량스러웠다고 고백하듯 달려온 곳이 명랑한 제주였고, 그곳에서 청렴하고도 착한 비건을 실천하며 유배기를 보낸 그 하루하루의 소박한 소중함을 이렇게나마 볼 수 있게 되어 감동입니다.
나이 오십에 뭐라도 버젓한 것 없이 허접함을 느끼신다면 그게 허접이 아니라 불사르듯 살아 내 자신이 재가 된 듯 가벼워지는 좋은 징조라 여기실 수 있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얻어갑니다.
관계에 많은 부침이 있으셨다면, 그 부침이 허무한 게 아니라 잘 버티고 잘 버무리면서 내게 붙어있을 것과 떨어져 나갈 것을 고르는 과정이었음을 알 수 있어요.
이 책이 말해 주네요.
엄마, 아빠, 친구~~ 여행을 통해서 소환해 보세요. 집에서 안 되던 감정이입이 여행지의 사물, 자연, 음식, 사람에게서 가능합니다.
이 책이 주는 맛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