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끝낫고 세상은 여전히 복잡하기만 하다. 미국과 같은 제국주의적 국가의 억압과 불의한 전쟁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그런 가운데 국내의 복잡한 정치 현실 속에서 유독 기독교의 모습이 더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불의에 대한 교회의 이름모를 침묵과 그것을 넘어 불의에 대한 지지 때문인지 아니면 나 자신의 소극적인 모습 때문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마 둘 다 일듯 싶지만... 월터 윙크의 이 책은 나에게는 생소한 비폭력 저항에 대해 다루고 있다. 비폭력 저항이란 불의에 대한 침묵과 굴복의 방식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왔다. 다른 의미로는 소극적이면서 수동적인 대응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이런 나의 생각은 책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여지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책의 표지에 적혀있던 제 3의 길은 나로서는 다소 충격이었다. 저자는 폭력에 직접 폭력으로 대항하거나 침묵하면서 불의를 참는 두 가지 길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지적한 제 3의 길이 있으며 그것이 비폭력 저항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의 초반부에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아무래도 다음 성경말씀에 대한 해석일 것이다. ( 마5:38~42 )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 하고 이른 것을, 너희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너를 걸어 고소하여 네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 네게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네게 꾸려고 하는 사람을 물리치지 말아라." 이 말씀은 주로 악한 사람에 대한 수동적인 대응 또는 침묵 그리고 용납이라는 메시지로, 때로는 단지 믿음으로 모든 것을 참고 베풀라는 메시지로 이해되어왔지만 저자는 이 말씀은 전혀 다른 의미로 예수가 말하는 제3의 길 비폭력 저항의 방식을 설명해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주장은 십분 타당해 보인다. 이 성경 말씀에 대한 그의 해석은 그의 비폭력 저항에 대한 입장에 대해 내가 동조할 수 있게 해준 중요한 부분이며 아마 다른 이들에게도 설득력있게 다가올 것이다. 나는 기독교인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사회속에서 억압받는 이들이 가득하지만 침묵하는 교회를 향해 저자의 외침이 얼마나 필요한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저자는 책을 통해 한가지를 더 중요하게 강조한다. 그것은 단지 그런 비폭력 저항에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필요하며 우리 스스로도 상대만이 악한자이고 우리는 선하다는 자만을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비폭력은 수동적이거나 소극적인 방식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하는 또 다른 길이며, 상대가 변화할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우리와 상대 모두 기쁨을 누리는 길이라고 저자는 믿는다. 그렇기에 단지 상대를 악한 자들이라고 믿고 그들이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또한 믿는 것은 예수의 길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은 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악한 적을 단지 쓰러뜨리기 위한 대상이 아니라 함께 변화할 인격체로 받아들이면서 불법을 통한 대응이 아니라 비폭력을 통한 저항을 하는 것은 수동적이거나 불의에 순응하는 왜곡된 입장도 아니고 폭력에 의거한 불법적인 입장도 아닌 평화적인 방법이라고 나의 생각은 바뀌어 갔다. 이 책은 최근에 출판된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최근에 출판된 좀더 완성도 있는 저자의 책을 통해 좀더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에 대한 찬사와 수상 내용을 볼 때 기대되는 책이기도 하다. 특히 혼란스러운 폭력의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