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
레슬리 뉴비긴 지음, 허성식 옮김 / IVP / 1998년 8월
평점 :
절판


뉴비긴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저자 중 한 명이다. 그의 글은 결코 쉽지 않지만 언제나 진보적이며, 깊은 사색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본 책은 20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다원주의적이다. '다원주의적이다' 라는 말은 다음과 의미이다. '오늘날의 사회는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다양한 문화와 종교 그리고 다양한 삶의 양식에 의해서 사실상 다원적(plural)일뿐 아니라, 이런 다원성(plurality)이 사람들에 의해 인정되고 신봉되는 것들로 반겨진다는 의미에서 다원주의적(pluralist)이다.(p.15)'. 이와 같은 사회가 기독교인들에게 왜 문제가 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책을 읽어가면서 그것이 왜 문제인지를 알게 될 것이며, 그런 문제 속에서 복음을 복음답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우리는 다원주의 사회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같이 다원주의 사회는 곧 개인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사회이다. 이와 같은 사회에서는 개인적인 선택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기독교와 같은 종교를 절대화 시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선택을 방해하는 악한 것이며, 독선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면서 각자가 독립적인 것, 얼핏보기엔 평등하면서 독립적인 사회상으로 보인다. 그런 사회에서 기독교만이 절대 진리라고 주장한다면 다른 비기독교인들이 보기에 그것은 참 독선적이며, 배타적인 종교적 행태라고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잘못된 것인가? 또 우리는 그러한 다원주의 사회를 원했는가?

그것은 우리가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이미 도래했다. 이제 우리가 접하게 되는 현실은 '하나의 진리가 아닌 여러 진리들 속에 살아가면서 오히려 진정한 진리를 찾기 어려운 시대에 살게 되는 불행'이 가득한 현실이다.우리 기독교인들은 다원주의적인가? 부분적으로는 그렇고 부분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다원주의의 기본적인 의미에 대해 살펴본다면 이 대답은 명확해진다. 기독교인들은 유별난 사람들이 아니다. 비기독교인들은 모든 이들이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을 모두 거부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비기독교인들이 보기에 우리가 그런 이상한 사람들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가치와 사실의 혼동으로 인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가치'라고 부르는 세계와 '사실'이라고 부르는 세계를 뚜렷하게 구분하는 것은 우리 문화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고, 앞으로 우리가 상당히 깊이 검토해야 할 특성이다. 전자의 세계에서 우리는 다원주의자들이다. 왜냐하면 가치는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후자에서 우리는 다원주의자들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실은 좋든 싫든 사실이기 때문이다.(p.25)' 우리에게 있어서 기독교 신앙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선택의 문제였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던져 우리의 이웃을 향하여 나갈 필요가 없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선택을 우리의 뜻에 따라 강요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선택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비기독교인들과 생각이 다른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와 같은 생각의 차이들을 만드는 기본적인 요소들에 대해서 파악해야만 한다. 그와 같은 파악을 위해 뉴비긴은 마이클 폴라니의 철학을 기초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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