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남자를 만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에바 헬러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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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남자를 만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과연 어떠한 것이 달라질 것인가. 에바 헬러의 -다른 남자를 만나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는 꽤 오래전인 87년도에 발표 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금 나온 책처럼 세련미를 풍기고 있다. 즉 흘러간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 다는 말이다. 이 말을 돌려 말하면 불행하게도 당시의 문제가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주인공 콘스탄체는 연인과 헤어졌다. 자신과 맞지 않음을 깨닫고 앞 날을 위해 헤어진 것이다. 그녀는 지성을 표방하는 영화학교 학생이고, 강사에게 연모의 정을 키우기도 한다. 독립적 자아가 확실히 확립된 진취적인 여성이길 희망하는 그녀가 생각하는 이상적 연인관계는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다. 그녀의 주위엔 갓 이혼한 여자와 결혼하길 소원하는 여자, 감상적 연애를 꿈꾸는 여자가 유형처럼 맴돈다. 그녀들은 실제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여성들인지라 아주 친근하면서도 주인공이 가지는 감정에 쉽게 이입될 수 있다.

그러나 주인공의 나이가 27세에서 28세로 넘어가는 시기임을 감안 할때 왠만한 감정은 느꼈을 것이고, 사고할 수 있음에도 겉멋, 즉 '척'하는 사람을 분간하지 못 한다는 점에서 납득가지 않았다. 게다가 사람을 쉽게 판단하는 그 방식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법 묵직한 책을 보면서 실상 별 사건이 없다는 것에 놀라웠다. 사건은 없고 단지 자기 감정에만 충실한 여자의 입담만 존재할 뿐인데도 그 수다는 즐겁기만 하다. 바로 이런 점은 에리카 종의 소설들을 생각나게 한다.

다른 남자를 만나면 모든 것이 달라질 줄 알았던 기대엔 전혀 미치지 못하게 에바 헬러는 이 새침한 주인공을 현실과 타협시키는 보수적인 결론을 보여준다. 사회 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남자들은 스스로 변하지 않는 다고 큰소리 치던 율리아의 말에 설마 했는데, 결국 다른 남자도 다를 것 없다고 평범하게 마침표를 찍찍어 버린다. 콘스탄체는 전 애인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만한 사람은 없으므로 그와 결혼 하기로 결정을 한다. 정말 최악의 결론이다. 그럴거면 대체 처음부터 왜 헤어지게 만든 것일까? 에바 헬러는 한 여자의 독립성을 완전히 무시해버렸다. 여성의 모든 문제를 제기만 해놓곤 사라져 버렸다. 여자들 있어 인생을 사는 낙이 바로 '남자'란 사실만 강력하게 주장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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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 둘러싼 모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박영 옮김 / 열림원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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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을 읽으면서 강하게 든 느낌은 관념적이라는 것이었다. 간결한 문장은 왠지 겉만 훑는 인상을 주었고, 내실은 비어 보였다. 중반을 접어들면서 하루키가 챈들러 흉내를 내나보다 싶었다. 이미 -상실의 시대-에서 인용된 우물에서 알 수 있듯이, 게다가 -상실의 시대-에서 와타나베의 순애보가 개츠비와 닮은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머릿속에선 여러 생각들이 부유하는 가운데서도 이 책을 쉽게 놓을 수 없었다.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이야기 전개에 눈을 뗄 수 없는 탓도 있었지만 읽을 수록 하루키의 작가적 힘이 살아나는 걸 느낄 수 있었고 처음 읽었을 때 미비해 보이던 시선까지 거두어 들였다.

거대한 음모론은 없는 듯 존재하는 양의 탈을 뒤집어 쓰고 개인의 삶에 침투한다. 체계화된 사회 안엔 분명 계급이 존재하고 있었고, 성실히 살아가는 개개인의 코앞까지 와 있지만 보이지 않는 탓에 노출된 개인들은 체계속에 완전 동화되어 간다. 양은 이용 가치를 알고 있다. 가치가 바닥난 사람에겐 가차 없이 떠나버린다. 버려진 사람은 양이 떠난 후유증으로 점차 소멸해 가는 것이다. 얼마나 계산적이고 정치적인 은유인가. 양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침묵할 뿐이다. 그러나 조용한 양을 풍경처럼 바라보다간 완전히 잠식당하고 말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기에 방어태세를 늦출 수 없다. 슬픈 일이지만 생존 법칙이란 바로 우리가 사는 사회에 그대로 적용되는 단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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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lue Day Book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 블루 데이 북 The Blue Day Book 시리즈
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 지음, 신현림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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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 아주 우울한 날 이책을 본다.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우울함이 어느 정도 가신다. 이 책에 대해 좋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별루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선 이 책은 가치있는 책이다. 인간을 인용한 사랑스런 동물들의 포즈가 우울함을 달래준다. 그리고 틀에 박힌 멘트를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의욕도 솟는다. 몇 백페이지를 육박하는 책들도 하기 힘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주는 요소가 이 작은 책에는 담겨져 있다. 거창하진 않지만 행복해지는 힘이 있다. 그것은 어쩌면 단순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 내가 아끼는 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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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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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노래의 제목을 뜻하는 <N.P>는 우울하고 예쁜 정서로 이루어져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소설집 -키친-에서 보여주었던 아기자기하고도 설레이는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도 남겨진 아이들이 어른으로 성장했을때 타파되지 않으면 안되는 금기들을 좀 더 자세히 깔아놓았다. 어른들이 부재한 공간에서 외롭게 금기와 맞서는 아이들은 더욱 힘겨워 지고 그 만큼 성숙해져 간다.

근친상간이라는 다소 위험수위의 소재를 요시모토 바나나식으로 최대한 살려놓은 이 소설의 또하나의 장점은 흡인력이다. 읽기 시작하면 마지막까지 막힘없이 유연하게 읽힌다. 물론 재미있기 때문이지만 이 책만의 정서는 누구나 한번쯤 느껴본 기억 너머의 것이기에 친숙한 동질감이 흐른다. 게다가 미지의 소녀를 감싸고 있는 한 소년의 순애보는 투명함 그 자체다. 마지막 그 투명함을 확신할 쯤엔 슬픔이 기묘하게 확산되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설레이면서도 우울한 이 모순된 교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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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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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상실의 시대>를 읽었을 때가 17살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열병과도 같은 방황의 시기에 접한 <상실의 시대>는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곤혹스러웠다. 니힐니즘은 극단까지 이르렀고, 이상하게 찾아오던 울적함에 완전히 점령되었다. 그렇게 10대 후반을 앓고 나서 어느덧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집어든 상실의 시대. 당시 느꼈던 씁쓸한 향내가 어렴풋이 감돌았다.

그러나 하루키가 상당히 관념적인 작가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확실히 상실의 시대는 중독성이 있는 책이지만 이책에 고루 퍼져 있는 관념적인 시각은 오히려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랑이야기에 앞서 성장 이야기이고, 성장이야기에 앞서 실존에 관한 소설 상실의 시대. 상실의 시대에 살았고 아직도 그러한 와타나베처럼 나도 길고 긴 외롭고 고독한 터널 속에 아직 그대로 있다. 관념을 무시해야만 생존 할 수 있는 현실이 두려운 인간은 와타나베와 같은 물음을 던진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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