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상실의 시대>를 읽었을 때가 17살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열병과도 같은 방황의 시기에 접한 <상실의 시대>는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곤혹스러웠다. 니힐니즘은 극단까지 이르렀고, 이상하게 찾아오던 울적함에 완전히 점령되었다. 그렇게 10대 후반을 앓고 나서 어느덧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집어든 상실의 시대. 당시 느꼈던 씁쓸한 향내가 어렴풋이 감돌았다. 그러나 하루키가 상당히 관념적인 작가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확실히 상실의 시대는 중독성이 있는 책이지만 이책에 고루 퍼져 있는 관념적인 시각은 오히려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랑이야기에 앞서 성장 이야기이고, 성장이야기에 앞서 실존에 관한 소설 상실의 시대. 상실의 시대에 살았고 아직도 그러한 와타나베처럼 나도 길고 긴 외롭고 고독한 터널 속에 아직 그대로 있다. 관념을 무시해야만 생존 할 수 있는 현실이 두려운 인간은 와타나베와 같은 물음을 던진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