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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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에스터는 여전히 그의 남자였던 라요스에게 운명처럼 이끌린다. 그 이끌림은 풋풋한 젊은 날의 설레임도 아니고 목숨을 바칠 정도로 서로를 열렬히 원하는 애절함도 아니다. 모든 것에 무던할 수 있는 마흔 중반의 여자. 그녀는 한시도 잊을 수 없는 그의 존재를 숙명처럼 느끼고 받아들인다. 과거의 형부이자 자신의 남자인 라요스가 설사 인간 말종이라 하더라도. 라요스는 젊은 날부터 야비한 협잡꾼에 지나지 않는다. 삶이 거짓일 수밖에 없는 남자. 겉은 번지르 해 보이고 처음 만난 사람들의 마음을 녹일 줄 알면서도 그저 말 뿐인 남자. 그가 이십년 만에 에스터(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으로 -유언-은 시작된다. 소박하지만 기쁨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에스터는 시간이 흐른 만큼 그가 변했을 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으로 (협잡꾼의 모습이 아니라 빚을 갚고 사죄를 하려는 모습) 설레인다. 그러나 설레임도 잠시 그녀는 청년기 어디선가 성장을 멈춘 듯한 철없는 그를 다시 한번 맞이한다.

헝가리의 문호인 산도르 마라이의 -유언-은 익숙한 동시에 내밀한 관계에 대한 작품이다. 그러나 에스터가 마지막까지 그런 인간에게 희생한다는 대목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쉽게도 보이는 대로만 읽어나갔지만, 분명 다른 방식으로도 읽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가슴 속에 시린 상처들로 가득한 여자의 고백을 듣자니 괜히 우울해 진다. 아마도 어느 그룹에서건 꼭 들어 있는 라요스와 같은 인간형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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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금이 있던 자리
신경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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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그 기억으로 들어가는 내면을 아름답게, 절절히 아름답게 표현할 줄 아는 작가. 신경숙의 두 번째 소설집으로 알려져 있는 -풍금이 있는 자리-는 작가의 장기를 고스란히 읽을 수 있는 작품집이다. 물론 읽으면서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도 몇 있었지만 초기작 축에 속하는 이 창작집에서 신경숙은 여러 가지를 소설 작법을 실험해 본 것 같다. 편지체와 동물의 시점, 이인칭의 소설도 있다. 특히 이인칭의 소설 (해변의 의자)은 -육체에 새겨지다-와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었다. ‘나’가 ‘너’를 향해 말하는, ‘너’는 묘연한 인물이고 현재 없지만 ‘나’는 '너‘를 추억하고 사랑하는 부분, 그리고 아름다운 이미지 역시 닮아 있었다. 편지체로 쓰여진 (풍금이 있던 자리)는 심리가 뛰어난, 자신의 위치에 대한 어쩔 수 없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저쪽 언덕)도 그렇고 (그 여자의 이미지)도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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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
레이몬드 카버 지음, 안종설 옮김 / 집사재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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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선 번역본으로 읽은 게 아쉽다. 이 책의 해설을(일본판 번역을 한) 맡은 하루키가 말하는 카버의 그 간략하면서도 욕심없는 문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단편 소설의 대가 카버를 알게 된 건 로버트 알트만의 영화 <숏 컷>때문이었다. 카버의 단편들을 모아서 만들었다고 알려진 이 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놀랐던지. 치밀한 구성과 삶을 비틀어 놓은 시각. 그 시각의 출발점인 카버. 고유의 문체까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의 냉소적인 시각은 느낄 수 있었다. 이 책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는 11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11편 중 어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작품이다. 순간의 사사로운 것들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가는 과정은 흥미를 유발시키기에 충분하다. 한 작품이 좋다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작품이 소중하다. 이런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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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이안 맥완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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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금기시 되는 것들이 저곳에선 합법화 된다는 것은 그만큼 삶의 양면적 성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어떤 것도 ‘반드시’란 존재 하지 않는 다는 것. 예를 하나 들자면 안락사 같은 것 말이다. 본인이 원하는 한 죽음을 다른 이에게 부탁하는 것은 아직도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 -암스테르담-만은 예외처럼 보인다. 이안 맥완 이라는 작가가 가진 색깔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암스테르담-은 몰리라는 한 여자에서부터 출발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몰리의 죽음으로 인해 모여든 그녀의 과거 애인들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녀의 최후 남편과 애인들은 서로가 미워하면서도 질기게 엮어져 있다. 이들은 서로의 꼬리를 물기 원하고 물리면서 파멸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암스테르담-은 굉장히 낯설고 이상한 도시로 마지막에 등장한다. 소위 상류층에 해당하는 네 남자. 사회가 인정한 그들은 강박적인 내면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외부로부터 보여 지는 모습과는 상이한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이와 다름없이 약해 빠졌다. 이런 그들의 정신적 뮤즈로 등장하는 몰리란 캐릭터가 자못 신비롭다. 몰리는 그들의 기억 속에 어렴풋이 존재할 뿐이지만 그들의 전체 즉 소설의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이것은 이안 맥완의 전작 -시멘트 가든-에서의 죽은 어머니와 유사한 것이다. 거기서 남겨진 아이들은 -암스테르담-에선 나약한 엘리트로 변모한다. 그리고 그들은 어느새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슬프게도 그들의 어머니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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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리포트 필립 K. 딕의 SF걸작선 1
필립 K. 딕 외 지음, 이지선 옮김 / 집사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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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모노레일 위로 날아다니는 사람들은 머리카락이 없다. 오염된 공기 때문에 맨 살을 내 놓고 다니는 것은 상상조차 못할 행위이다.(물거미) 인간은 엄청난 전쟁으로 여러 방법을 모색한 결과 하나의 체제만 가진다면 전쟁이 일어날리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해서 발명된 스위블은 반체제를 이루는 인간을 볼 경우 즉시 잡아먹어 버린다.(스위블) 화성으로 날아간 우주인들은 금의환향은 커녕 스스로도 모르게 복제된 채 지구로 돌아오기만 하면 만신창이가 되버린다.(우리라구요!)

인간들의 전쟁은 지구를 벗어나 이제 외계인들과도 분쟁하게 되고 (그래 블로벨이 되는 거야!) 그 결과 더 이상 지상에 살지 못한다. 먼지 오염을 피해 지하에서 생활하는 인간은 화성인들이 넘쳐나도록 던져주는 구호물품 때문에 할 일을 상실한다. 그래서 전전의 삶을 모방한 인형 놀이에 열을 올린다.(퍼키 펫의 전성시대) 지능적인 기계는 결국 인간을 잠식하고 대통령까지도 로봇이 되는 사회가 되고 그 로봇이 고장 날 때만 대신하는 인간이 있다.(완벽한 대통령) 이미 이 사회에선 결과가 앞서며 완전히 결과에 지배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혼란을 느낀 인간들은 정신 분석의에게 의지하지만(고소공포증에 시달리는 사나이, 그래 블로벨이 되는 거야!)방법을 찾지 못하고 예지자에게 손을 벌린다.(마이너리티 리포트) 그리고 그 예지자들은 다름 아닌 과거의 SF작가들이다.(물거미)

그 예지자중의 한 명. 바로 필립 K 딕이다. 위에서 말한 대로 필립 K 딕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으로 일관하고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실린 단편들 거의는 전후의 상황을 보여준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과 끝없이 이어지는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상실된 인간성을 작가는 예의 주시하고 있다. 확신하는 듯 끝임 없이 반복되는 미래의 모습 속에서 날카로운 위험을 느낀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물론 우울한 상황만 반복되는 게 아니다. 그의 작품을 몇 번 본 사람이라면 소설들이 다른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구조의 반복 때문이다. 필립 K 딕은 비슷한 틀을 만든다. 이것은 앞서 말한 대로 작가가 그려내는 세계관이 변치 않다는 것에 대한 두 번째 보기처럼 보인다.

이처럼 필립 K딕은 단순한 SF작가는 아니다. 그는 사고를 담아내는 힘이 있고 한 없이 어두운 주관이 있으며 미쳐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경고한다. 그의 세계가 실제가 될까 두려워서 일까 그동안 한국에서 꼭꼭 잠겨져 있던 그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구경했다는 의미에서 나는 행운아 일 것이다. 영화에 맞추어 나오긴 했지만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필립 K 딕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다르다. 어느것이 낫다는 유치한 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다. 필립 K딕을 나는 정말로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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