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최근에 나온 책들: 에피소드(3)

매주 각 일간지 서평담당자의 책상에는 200-300권의 신간이 올라온다고 한다. 그 중에서 지면에 단평이라도 오르는 책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프랑코 모레티가 문학사의 비유로 든 '도살장'의 사례를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는 셈이다. 이름하여 '도서 도살장'이라고나 할까? '최근에 나온 책들'이란 걸 연재(?)하면서, 나도 덩달아 그 도살업자 대열에 끼게 된 것 같아 우쭐하기도 하고 겸연쩍기도 하다. 우쭐하다는 것은, 내가 평가/판단의 주체이기 때문이다(권력은 그렇게 영혼을 잠식한다!).

 

 

 



하여간에 책들은 쏟아져나온다. 출판평론가라면 지난주에 두어 일간지 프런트에 오른 이태원의 <현산어보를 찾아서>(청어람미디어) 같은 책에 눈길을 주어 마땅하다. 정약전의 <자산어보>(<현산어보>라고 해야 맞다고 한다)를 다시 번역하고 그것을 오늘의 관점에서 보완하고 있는 책이라는데, 몇몇 서평을 읽은 감으로는 '올해의 책'으로도 손색이 없다. 한 30대 고교 생물교사가 그 저자라는 것도 놀랍고, 7년의 준비기간을 거쳤다는 그 노력도 경탄스럽다. 물론 그런 저자를 발굴하고 책으로 만들어낸 기획력도 치하할 만하다. 5권짜리 중 3권이 먼저 출간되었고, 2권은 내년에 나온다고 하는데, 어찌됐든 장서용으로 꽂아둘 만하다(*책은 2003년 11월에 완간되었다). 하지만 이 물고기책들을 사들고 가는 건 나에겐 아직 모험에 가까운 일이다. 돈벼락을 맞기 전까지는...

 

 

 

 

두어 주쯤 됐지만, 최근에 나온 책 중에서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건 피에르 클라스트르의 <폭력의 고고학>(울력)이다. 그의 이름을 처음 본 건, <오늘의 프랑스 사상가들>(문예출판사,1998)이란 책에서인데, 거기서 소개된 프랑스 사상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생소한' 이름이었다(국내에 번역된 책이 없기 때문에). 그런데, 바로 그 클라스트르의 이름을 일간지에 신간소개도 나기 전에 교보의 신간코너에서 처음 발견했을 때 반갑고 신기했다. 물론 바로 책을 사지는 않았지만(나는 가급적 인터넷 할인서점을 이용한다), 곧바로 르네 지라르의 <폭력과 성스러움>(민음사, 1997; 진중권이 <폭력과 상스러움>이라고 패러디한 책이다)과 같이 읽을 책의 목록에 올렸다. 나에게 클라스트르는 지라르의 짝패인데, 그 둘이 어떻게 다른지는 읽어본 다음에 말하도록 하겠다(<폭력의 고고학>은 현재 주문중이다).(*책은 바로 샀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클라스트르의 책으론 작년에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가 마저 출간됐다. 이건 구입했던가? 대신에 <폭력과 상스러움>을 다 읽은 기억이 있다.)

  

 

 



<폭력의 고고학>만 아니었다면 가장 먼저 언급되었을 책은 <카프카의 편지>(솔출판사)이다. 990쪽의 만만찮은 분량인데(*2004년에 후속으로나온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는 더 두껍다!), 사실 나는 이 책이 언제나 번역되나 고대하던 참이었다. 올해 나온 편지로는 서중식의 <옥중서한>(야간비행)과 쌍벽을 이룰 만하다. 그 책도 831쪽짜리이다.

 

 

 

 

카프카의 편지에 대해서 내가 관심을 갖게 된 건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문학과지성사, 1999) 덕분이다(*국역본은 3종이 나와 있다). 언젠가 서평에서도 썼지만, 그 편지들에는 카프카 문학의 비밀이 고스란히 숨겨져 있다(아니 드러나 있다!). 그래서 그의 편지들을 찾았는데, 영역본으로는 두꺼운 펭귄북이 있었다. 하지만, 펭귄북을 제본한다는 게 얼마나 속쓰린 일인가 하는 건 아는 사람은 안다! 그래서, 다 읽을 수도 없고, 제본할 수도 없이 망설이다가 그냥 우리말 번역본이 나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는데, 이번에 드디어 책이 나온 것.

책을 자세히 뒤적거리진 못했는데, 카프카는 약혼녀인 펠리체 바우어 말고 밀레나에게 보낸 편지들도 포함돼 있는지 모르겠다. 빠져 있다면 그마저 번역돼야 할 테고, 더불어 그의 방대한 일기들도 번역 소개되어야 할 것이다. 카프카 전집이 언제 완간될지는 모르겠지만(한국카프카학회원들도 모를 것이다) 완간의 그날까지 다들 좀더 노력해주었으면...(사실 아직 괴테 전집도 다 나오지 않았다.)

 

 

 



인터넷 서점을 검색하다가 뜻밖에 발견한 책이 마이클 루스의 <다윈주의자가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가?>(청년정신)이다. 내가 '발견'이라고 한 건 책이 아니라 저자이다. 마이클 루스는 저명한 생물철학자로서 나도 그의 원서 몇 권을 갖고 있다(나는 생물학도 좋아하고 철학도 좋아한다). 때문에 그의 책이라면 일단 사서 읽을 만한 준비가 돼 있는 터였는데, 우연찮게 <다윈주의자...>를 발견한 것. 주문을 해놓고 아직 만지지도 못한 책이지만, 기다려지는 책이다. 참고로 생물철학 입문서로는 데이비드 헐의 <생명과학철학>(민음사, 1994)가 있고, 한스 요나스의 <생명의 원리>(아카넷, 2001)도 '철학적 생물학을 위한 접근'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루스의 책으론 2003년에 <생물학의 철학적 문제들>이 더 출간됐다. 엘리엇 소버의 <생물학의 철학>도 2004년에 나온 이 분야의 책으로 소장할 만하다.) 

 

 

 



김동춘 외 3인의 인터뷰 <인텔리겐차>(푸른역사)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소개돼 있어서 더 언급하지 않겠다. 나는 대담이나 인터뷰들을 좋아하는데, 특히 지식인들에게 접근하는 가장 유용한 통로는 사실 '글'이 아니라 '말'이다. 우리 출판계에서 이런 인터뷰 기획이 많아지고 있는 건 작년에 나온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민음사) 덕분이다. 그 책의 (기획의) 성공 때문에 이러한 유사 기획이 탄력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우리는 더 많이 대화하고 더 많이 소통할 필요가 있다. 지식과 교양은 그러한 과정에서 자극을 받으며 성장한다. 이종영의 <내면성의 형식들>(새물결)이 출간됐다. 그의 전작 2권(<지배와 그 양식들>, <성적 지배와 그 양식들>)도 사두고는 있지만, 아직 읽지 않은 나로서는 뭐라 말할 수 없다. 다만, 자신의 이론적 기획을 성실하게 밀고 나가는 추진력만큼은 높이 사고 싶다.

 

 

 

 

그와 함께 두 권의 주석서도 기록해 두고 싶다. 하나는 이진경의 <노마디즘1,2>((휴머니스트). 전체 15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들뢰즈의 <천 개의 고원>(혹은 <천의 고원>) 주석서이다. 사실 <천 개의 고원>도 방대하지만, 이 주석서는 한술 더 뜬다. 아마 영미나 프랑스에도 이만한 주석서가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는 <천 개의 고원>은 커녕 아직 <안티 오이디푸스>도 읽지 못했지만(후자가 전자보다 어렵다), 때문에 당분간은 <노마디즘>과 대면할 시간이 없을 터이지만, 두꺼운 책들은 하여간에 나를 즐겁게 한다(!?) 다만, 다른 고전들의 주석서들은 왜 그리 굼뜬 것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재미있는 건 <노마디즘>이 지난주 한겨레와 조선일보 서평에서 모두 1면에 올랐다는 사실. 한겨레의 것은 고명섭 기자가 썼고, 조선일보의 것은 들뢰즈 전공자인 서동욱씨가 썼다. 그런데, 과연 조선일보는 들뢰즈를 지지하는 것인지?(조선일보의 얄팍한 지식인-대중주의가 읽히는 대목인데) 문제는 '아무생각없이' 그런 지면에 서평을 쓰고 하는 행태이다. 들뢰즈라면 조선일보에 기고했을까?(이종영의 말대로 파시스트라면 그랬겠지.) 그런데, 왜 들뢰즈 연구자라는 사람(들)은 아무런 고민없이 조선일보에 글을 쓰는가? 부르디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부르디외라면 조선일보에 기고했을까? 그런데, 부르디외 전공자라는 한 교수는 조선일보에 칼럼까지 연재하곤 했다. 분명 사상은 유행과 구별되어야 한다. 체 게바라 티를 입고 다닌다고 체게바라주의자 혹은 혁명가가 되는 것이 아니듯이, 들뢰즈를 들먹이고 다닌다고 들뢰즈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며, 노마드가 되는 것도 아니다(노마디스트는 될지 모르겠다). 유능한 연구자가 생각없이 행동하는 것은 보기에 거슬린다.

 

 

 



또 한권의 주석서는 김동식 교수의 <로티-철학과 자연의 거울>(울산대출판부)이다. 소리소문없이 나온 이 책을 나는 구내서점에서 구입했는데(인터넷서점에도 없다), 현재 미국의 가장 흥미로운 철학자인 리차드 로티의 출세작 <철학과 자연의 거울>을 쉽게 소개한 책이다. 그 책은 <철학 그리고 자연의 거울>(까치글방, 1998)로 이미 번역돼 있다(우리말로 어색하게 '그리고'가 제목에 들어간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중의성을 피하려고 한 거 같은데, 생각이 얕다.).

물론 두툼한 책이고 초보자가 읽기엔 어려운 책이다. 하지만, 이 정도 수준까지는 교양서 범주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따라서 이번 주석서를 참고서삼아 좀더 많은 사람들이 한번 도전해 보시기를 권한다. 김동식 교수의 <로티와 신실용주의>(철학과현실사, 1994)가 분량은 좀 많지만(532쪽) 로티 철학 전반에 대한 친절한 해설서이다.(*로티 입문서로는 2003년에 나온 이유선 교수의 <리처드 로티>도 추천할 만하다.)

 

 

 



끝으로, 존 롤즈. 알마전에 <정의론>의 저자 존 롤즈 하버드대 교수가 타계했다. 철학에 조금이라고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1971년에 처음 출간된 그의 <정의론>은 미국 분석철학에 일대 방향전환를 가져왔다고 평가를 받을 만큼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물론 그 책은 일찌감치(1979년) 우리말로 번역됐지만, 고전답게 거의 읽히지 않는 책이다. 나도 원서는 갖고 있지만, 번역서 구입은 미루다가 아직도 사지 못했다. 그 사이에 4,000원하던 책값은(내가 대학 1학년때) 지금 19,000원으로까지 뛰었다. 어쨌든 조만간 <정의론>(서광사)과 <공정으로서의 정의>(서광사)를 구입할 예정이다(*<정의론>만 구입한 것 같다).

다행히도 롤즈의 다른 주저들인 <정치적 자유주의>(동명사, 1999)와 <만민법>(이끌리오, 2000)가 모두 번역돼 있고, 단행본 연구서도 하나 나와 있다. 때문에 롤즈는 기다릴 필요없이 그냥 읽기 '시작'하면 된다. 롤즈와 관련한 연구서로 스테판 뮬홀 등이 쓴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한울, 2001)이 권할 만하다. 이 책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논쟁의 중심에 존 롤즈가 있기 때문에 그의 이론이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저자인 뮬홀은 하이데거와 스탠리 카벨 연구서를 갖고 있는 소장 학자이다.(*롤즈에 관한 연구서들은 기억에 두세 권쯤 된다. 엄수균의 <롤즈의 민주적 자유주의>는 그 중 한 권이다.) 



하여간에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의 목록은 끝이 없다. 말이 나온 김에 라캉의 <에크리> 새 영역본이 출가됐다는 소식을 전한다. 역자는 예고된 대로 브루스 핑크이고, 지난 11월에 선을 보였다(*핑크는 <에크리>의 선역본과 완역본을 잇따라 선보였다. 몇달 전에 구한 두툼한 영역본이 지금은 서가에 꽂혀 있다). 인터넷 교보를 통해서 다른 책 몇 권과 함께 주문을 했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쉐리단의 번역보다 훨씬 읽기가 수월하기를 기대한다. 더불어 계속 유예되고 있는 <에크리>의 국역본도 빨리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라캉의 재탄생'은 제비 몇 마리가 떠들어댄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런 식으론 풍문만이 늘어갈 뿐이다. 라캉의 '실체'와 맞대면하는 것이 최선이다. 라캉주의자들의 분발을 촉구한다(물론 분발해야 할 사람들이 어디 라캉주의자들 뿐이랴!)...

2002. 12. 10.

 

 

 

 

P.S. 저명한 탈식민주의 이론가인 호미 바바의 <문화의 위치>도 이맘때 출간된 책이지만, 다른 분들의 소개가 있어서 생략했었다. 탈식민주의와 바바의 입문서로서는 바트 무어-길버트의 <탈식민주의! 저항에서 유희로>(한길사, 2001)가 좋은 평을 얻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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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雨裝愚齋 > 쑤퉁은 왜 잠재력 있는 작가인가?
이혼 지침서 (양장)
쑤퉁 지음, 김택규 옮김 / 아고라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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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처음 소개되는 쑤퉁의 소설을 유려한 문장으로 읽는다--중국어가 지닌 맛을 느끼면서--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역자가 번역한 '연인아, 연인아''영국여인'죽은 불 다시 살아나'를 읽었던 경험에 비추어 볼 때......어제 새벽에는 지방만 휩쓸고 지나가는 장맛비가 서울에 쏟아붓는 것 같았다. 베란다에 들이치는 빗소리가 오히려 반갑다는 느낌을 주었다..그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자자한 명성만 듣고 있었던 작품을 직접 읽는다는 행복한 책읽기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리라. 과연 그 명성에 걸맞는 작품을 날이 밝아올 때까지 다 읽었다. 그리고 아쉬웠다. 그러나 어찌하리...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수밖에....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쌀'이라는 작품이 나올 때까지는.....애인을 기다리듯이 기다리는 수밖에....

이혼 지침서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세 편의 작품...妻妾成郡, 離婚指南, 三盞燈은 중국어(간체와 번체) 뿐만 아니라 불어, 이태리어, 네덜란드어, 일어로 번역될 정도로 이미 작품성을 널리 인정받은 작품이다. 특히 처첩성군은 쑤퉁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널리 인구에 회자될 정도이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왜 2001년 중국의 대학생들이 선정한 '가장 잠재력 있는 작가'로 선정되었는가? 여러기지 이유가 있겠지만, 쑤퉁의 작품들은 북방의 언어와 발음을 토대로 한 중국 현대문학을 남방의 언어와 발음으로 그 문학의 중심을 전환시킨데 있다고 한다. 심하게 말하면 중국 문학의 꽃이라고 할 수도 있는 唐詩, 宋詞, 元曲 속에 유유히 흐르는, 상형문자가 드러내는 한 폭의 이미지 서사를 복권시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국의 현대문학에서 북방의 문학이 남방의 문학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루쉰으로 대표되는 계몽적 서사(시간의 서사)가 이미지 서사(공간 서사)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쑤퉁의 소설 작품은 하나의 나침반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쑤퉁의 소설은 원인과 결과를 토대로 한 서구적 서사 전통(소설)을 이미지와 서정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 전통의 문학(詩詞)적 복권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리라. 특히 '처첩성군'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 볼 때, 시간의 서사(이성의서사/진보의 서사)가 봄,여름,가을, 겨울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 쑹렌(頌蓮)이 천(陳)씨 집에 첩으로 온 초여름으로부터 가을, 겨울로 이행된다는 것은 바로 쑹렌이 기운찬 시절에서 쇠퇴함으로, 그리고 기운이 다하여 발광하는 단계로 주인공의 운명을 묘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둘째, 셋째 첩인 줘윈(卓云)이나 메이산(梅珊)의 운명도 모두 이 세 계절과 대응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 그리고 다시  다섯번 째 첩인 원주(文竹: 원주는 바로 새로운 쑹렌이다)가 다음 해 봄에 천씨 집으로 들어오는 이러한 소설적 구성은 쑤퉁이 생각하고 있는 문학관이 기존의 것과는 많은 차이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비록 그의 역사관념이 매우 전통적일 뿐만 아니라 퇴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하더라도....또한 '처첩성군'에서 묘사하고 있는 여름철의 해당화, 가을날의 자등, 쓸쓸한 빗소리, 스산하게 내리는 눈 등의 이미지 묘사는 書畵同源이라는 중국 고대 문인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한다. 바로 이러한 묘사가 드러내는 특징...즉 관념없는 이미지의 세계는 쑤퉁 소설의 최대 장점이자 그만이 갖고 있는 특징이라고 한다.

하여, 쑤퉁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닌 이 땅의 당대 소설을 읽는데도 하나의 나침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이혼지남이 바로 이혼의 나침반이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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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첩 동문선 문예신서 271
질 들뢰즈 지음, 허희정 옮김 / 동문선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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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두 개의 텍스트를 포개어 겹쳐 읽으라는 의미에서 <중첩>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포함된 두 텍스트 중 하나는 베네의 연극 <리차드 3세>이고 다른 하나는 들뢰즈의 <마이너 선언>이다.

들뢰즈의 <마이너 선언>은 카르멜로 베네라는 한 뛰어난 이탈리아 극작가의 연극 작품에 대한 비평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사실상 이를 통해 자신의 광범위한 사상을 명료하게 정리하여 보여준다. 이 책에서 들뢰즈는 그동안 골몰해왔던 이슈들을 예술, 문학, 특히 연극에 대한 논제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어김없이 이 책에서도 들뢰즈가 좋아하는 여러 작가들--클라이스트, 베케트, 카프카, 멜빌, 아르토, 라포르그, 버지니아 울프--이 언급되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부류의 소수 작가들을 들뢰즈가 아주 명료하게 정의 내리고 마이너리티 문학의 의미를 정치적인 맥락에서 분명하게 제시하여 준다는 점이다.

들뢰즈의 카프카론이 카프카에 대한 비평을 넘어서 들뢰즈의 문학적 입장을 밝혀주는 글이었던 것처럼, 이 책 역시 베네론의 형식을 취하지만 그 형식을 넘어 마이너 문학론-마이너 예술론-마이너 삶론으로 확대된다. 그리고 마침내는 문학(연극)이 어떻게 혁명적이 될 수 있는지를 논하는 마지막 파트 '연극과 연극의 정치학' 부분을 보면 왜 제목이 <마이너 선언>인지에 대한 감이 어렴풋이 오게된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나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을 읽었을 때의 느낌처럼 강하고 센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들뢰즈의 철학서가 딱딱하게 여겨졌던 사람들에게, 혹은 들뢰즈의 문학론에 더욱 흥미를 갖고 있던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마이너 작가란 무엇인가, 마이너 작품이란 무엇인가, 마이너 언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부터, 들뢰즈의 기본 컨셉 중 하나인 되기-생성의 문제(그 유명한 여자들도 '여성-되기'가 필요하다거나 혁명이 중요한 게 아니라 '혁명적으로 되는 것'이 중요하다거나 하는 말들의 의미), 왜 시작과 끝이 아닌 중간-한복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가에 대한 것, 지속적인 변이란 게 구체적으로 뭔가에 대한 것 등이 구체적인 텍스트 분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인지 더 이해하기 쉽게 씌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다른 책들에 비해 짧아서 더 이해하기 쉽다고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

이 책의 의의나 중요성과 관련해 역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들뢰즈의 글은 이탈리아 작가 겸 배우 베네의 연극 작품《리처드 3세》에 대한 비평서의 형식을 취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 독자는 베네의 연극을 입구로 삼아 들뢰즈 자신의 철학적, 미학적, 정치학적, 언어학적 입장과 선언 내부로 깊숙이 들어오게 된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나 브르통의《초현실주의 선언》처럼《마이너 선언》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이 붙은 이 글에서 들뢰즈는 그 동안 골몰해왔던 문제들을 선언적으로 명료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텍스트가 들뢰즈를 이해하는 데 쉽고 분명한 길잡이의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이 텍스트는 연극에 대한 들뢰즈의 유일한 담론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비록 들뢰즈가 특수하게 베네와 그의 연극 작품을 예로 삼아 담론을 전개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글은 연극 장르 일반에 대한 들뢰즈의 입장을 파악하는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텍스트는 들뢰즈의 영화 이론(이미지와 운동의 개념을 통해 영화에 대한 입장을 방대하게 전개한 씨네마론)과 텔레비전 극에 대한 이론(베케트가 텔레비전 방영을 위해 만든 작은 작품들에 주해를 다는 형식으로 씌어진 베케트론)과 함께 연극영화 극 장르에 관련된 들뢰즈 이론의 중요한 한 축을 형성한다. " 

베네의 <리차드 3세>도 흥미롭다. 들뢰즈에 따르면, 베네는 독특하게도 셰익스피어의 <리차드 3세>에서 뭔가를 빼내는 방식으로 이 작품을 구성했다. 이름하야 '빼기의 방식', '마이너스의 방식'. 작년 말에 한국 최고의 명배우라고들 하는 안석환씨의 명연기로 예술의 전당에서 <리차드 3세>가 무대에 올랐다고 하는데, 그 연기를 보지 못해 안타깝다.

연극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점은, 베네의 연극 방식이 브레히트의 민중극 이론과 차별을 두면서 진정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고 진정으로 혁명적으로 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준다고 들뢰즈가 설명하는 부분이다. 또한 베네의 연극은 독특한데, 그 독특함은 아방가르드 실험 연극하고도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 하니... 베네의 실제 연극이 상연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면 하는 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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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내이름은김삼순 > 매력적인 책,,
블링크 - 첫 2초의 힘
말콤 글래드웰 지음, 이무열 옮김, 황상민 감수 / 21세기북스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학교 도서관에 갔다가 수많은 책들 사이로 유독 한 권의 책에 시선이 바로 꽂혔다,,망설임없이 책을 꺼내 들어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자리를 잡아 책을 읽을 준비를 했다,,빳빳하고 깨끗한 하얀 표지 위로 마치 우리의 태극전사를 연상케 하는 빨간 글씨체로 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블링크>가 바로 이 책의 제목이었다,,

"블링크??블링크가 뭐지??" 다소 생소한 단어에 잠시 멈칫했지만 첫장을 읽어내려가며 얼마있어 이 단어의 숨겨진 뜻을 발견했다,,여기서 내가 말하는 첫장이란 앞표지와 연결된 바로 뒷면,,어릴적에는 어쩔 땐 그냥 대충 훑어보았던 이 첫장을 점점 시간이 흐르고 책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면서 작가의 작은 사진과 짧은 소개글을 한 자도 놓치지 않게 되었다,,책을 읽는 독자들에겐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 책 한권을 완성하기까지의 작가에 대한 이력을 알게 됨은 물론이고 작가에 대한 배려,,일종의 존경심을 표시할 수도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이 첫장의 맨 하단에는 나처럼 처음 듣는 생소한 단어를 궁금해 하는 독자들을 위해 친철하게 뜻이 풀이되어 있었다,,

블링크란,,,무의식적으로 눈을 깜박이다, 깜박거림,반짝임,,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나 긴급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결정으 내려야 할때, 첫 2초동안 우리의 무의식에서 섬광처럼 일어나는 순간적인 판단을 뜻한다,,

이제 나는 말콤 클래드웰이 말하는 블링크,,ㅡ 첫 2초의 힘,,그 세계로 빠져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일상적인 우리들의 이야기,,평범하면서도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경험할 수도 있음직한 우리들의 이야기,,실제로 2초의 판단력이 가져다 준 수많은 사례들과 블링크를 분석하고 접목시키는 연구결과에 이르기까지,,작가의 능수능란한 글솜씨 덕분에 그다지 어렵지 않게 아주 명쾌하고 흥미진진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1983년 9월의 어느 날, 한 미술상이 가져온 2000년전의 쿠로스 상이라 추정되는 석상을 폴게티 박물관은 1년 2개월에 걸친 신중한 조사와 분석을 통해서 진품이라 결론내리지만 몇명을 통해서 비로소 모조품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이들은 모두 불과 몇 초 사이에 직관적인 판단,,뇌리를 스쳐가는 그 무언가에 이끌려 석상을 보자마자 '새것'이라는 단어를 입밖에 내뱉기도 한다,,1년 2개월동안 수많은 시간을 투자해 얻어낸 잘못된 판단과 단 2초의 시간에 진실을 알라챈 이 블링크의 힘이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블링크는 방금 사례처럼 올바른 판단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예외일때도 어김없이 존재한다,,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첫 2초의 힘에 대한 흥미를 유발 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그걸 깨닫기까지의 우리의 경험과 순간적인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 가르쳐준다,,이 책에 소개되었던 실제 사례 하나 하나가 너무 인상적으로 기억된다,,

'얇게 조각내어 관찰하기' 는 한 심리학자가 어느 한 부부의 15분동안 대화를 통해서 그들의 결혼생활을 빠르고 신속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판단한다,,그 대화 속에서 감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어떤 사람의 많은 행동과 말을 통해서도 판단하기란 그리 결코 쉬운 일이 아닐텐데 겨우 이 짧은 몇 분 사이에 한 단면적인 부분을 통해 그 전체르 파악하기란 얼마나 통찰력과 세심함이 필요한지,,,,,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례 하나는 50대의 자동차 비지니스맨 골롬은 겉보기와 달리 한달 평균 20대의 차를 파는 놀라운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그는 이 '얇게 조각내기'를 통해서 대리점 문으 열고 들어오는 남녀노소 ㅡ 인종이나 행색을 가리지 않고 모든 손님들에게 최고의 웃는 얼굴로 '고객을 소중히 대하라! 고객을 소중히 대하라! 고객을 소중히 대하라!' 이것이 바로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세가지 단순한 규칙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카고 법학교수인 이안에이어스는 한가지 실험에 돌입한다,,30대 중반이고 평균정도의 매력을 지닌 비슷하게 치장한 백인 남녀,흑인 남녀, 이렇게 38명의 팀을 짜서 시카고 일대의 총 242개 자동차 대리점을 찾아가도록 한다,,에이어스는 한가지 문제에 초점을 두었는데 그건 모든요소들이 절대적으로 같을때 피부색과 남녀차이가 세일즈매니 제시하는 가격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가이다,,그 결과는 모두가 놀라워 할 것이다,,백인남자는 딜러의 송장보다 725달러, 백인여자는 935달러, 흑인여자는 1195달러, 흑인남자는 1687달러나 높은 가격을 제시받은 것이다,,이러니 모든 고개들에게 평등을 유지하고 고객을 왕으로 생각하는 골롬이 성공할 수 밖에 없으리라,,,

세계적으로 단연 우뚝 서있는 코카콜라와 이에 대한 펩시의 도전으로 코카콜라가 새롭게 출시한 뉴코크의실패,, 이른바 펩시 첼린지는 코카콜라 애호가들에게 두 잔에 각각 Q와M마크를 찌고 한 모금씩 마시게 요청한것,, 그들은 M마크를 선호했는데 예상을 깨고 바로 펩시였던 것이다,,하지만 이에는 한 모금의 차이와 한캔,,지속적으로 많은 양을 마실때와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이를 통해 시장조사가 얼마나 신뢰 할 수있을까를 나타내고 제품의 전문가와 그렇지 않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이들의 차이점도 설명해 준다,,

블링크,,순간적인 판단이 앞에서도 말했듯이 항상 정확하고 신기하게 들어맞는 경우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무서운 사례로 1999년 미국에서는 디알로라는 한 흑인청년이 밤중에 집앞에서 범죄자로 오해를 받아 4명의 경찰관들에게 마흔한발이라는 엄청난 총알을 맞고 그 자리에서 숨진 사건이 있었다,, 그들의 잘못된 판단이 눈 깜짝할 사이에 죄 없는 한 남자를 처참하고 끔찍하게 죽음의 길로 데려가 버린 것이다,,,과연,이는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착오들은 우리 주변,일상속에서도 일어나는 일이기에 그냥 지나쳐버려서는 안될 문제이다,,

그 밖에도 첫인상과 편견에 사로잡힌 이야기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미국의 제 29대 대통령 워렌 하딩은 취임 2년 3개월만에 돌연 급사한다,,그의 잘생긴 외모덕분에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되었지만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힌다고 한다,, 이렇듯,사람에게는 첫인상이 중요하게 인식되는데 그 첫인상이란게 사람의 내면적인 어떤 깊은 모습보다는 외모나 느껴지는 풍채로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기가 쉽상이다,,,그래서 하딩의 단정하고 신사적인 잘생긴 외모에 속아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지만 그는 사실은 술과 도박과 여자를 좋아하는 음란하고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여자이기 때문에 뛰어난 연주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막 오디션을 통해 놀라울 정도로 인정받지만 막이 오르자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아이러니 하게도 온갖 편견을 가졌던 사람들,,,외모만으로 사람의 모든 것을 판단하거나 남자 혹은 여자,,흑인 혹은 백인이기 때문에 갖는 차별과 편견들이 잘못된 사고로 인한 충돌을 불러 일으킨다,,

우리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다변화 되어가면서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 정곡을 찌르는 순산적이고 직관적인 판단력은 중요 할 수밖에 없다,,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순수한 2초를 신중하게 잡아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성공의 길이 비로소 열리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벌써 블링크의 매력에 빠져 마음의 문과 넓은 시야가 트이는 것만 같다,,내가 도서관에서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아니,그 느낌만으로 이 책을 꺼내 들어 그 자리에서 여느때와는 달리 날갯짓을 하지 않고도 이 책을 가슴에 품은 2초의 순간,,나의 선택도 '블링크'를 위한 '블링크'라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을 덮고 나서도 책 표지의 수십개의 "blink"라는 영어 단어처럼 내 머릿속에서도 "블링크,,블링크,,"하고 수없이 떠돌아 다닌다,,내가 만약 지금 당장 눈 깜빡거릴 단 몇 초의 시간에 어떤 긴급한 상황에 판단을 내려야 한다면,,,,,,,,나는 과연 저자의 지침대로 가치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을가? 단언할수는 없지만 이 책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그렇게 되기를 원하고 나의 경험과 노력으로 2초의 힘을 신뢰해야겠다,,지금 이 순간부터 이 첫 2초의 힘을 기억하고, 평생동안 내 마음속에 "블링크" 한권의 책을 품고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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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성스러움
줄리아 크리스테바 외 지음, 임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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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생각해보면 그리스, 로마 시대의 여신들을 제외하고는 ‘신’을 이야기함에 있어서는 남성이 떠오른다. 종교적 지도자도 남성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어느 순간부터 여성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듯 하다. 현대 사회로 거슬러 올라오면서 여권 신장이라는 여성 스스로 만들어온 흐름이 시작되기 전까지, 역사 속에서 여성은 누군가의 어머니, 아내로 존재했던 것 같다.

이 책은 역사 속에서 억압당해왔던 여성에게서 성스러움을 엿보고자 하는 두 여성 학자의 편지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그들의 논의는 흥미로웠지만 어려웠고, 무엇보다도 한 사회를 살아가는 엘리트로서의 관점을 견지하고 있는 듯 했다. 수많은 예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미개한 문명에 대한,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에 대한 동정심을 엿볼 수 있었다. 어쩌면 이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를 반영하는 인간의 속성상 어찌할 수 없는 바일지도 모르겠다.

억압당하는 존재인 여성, 특히 흑인 여성에게서 성스러움을 가장 쉽게 엿볼 수 있는 부분은 다름 아닌 종교 분야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프리카의 국가들에서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 도중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등의 행위를 하는 여성들, 그들이 경험했던 것은 다름 아닌 성스러움이었다. 하지만 사회는 그러한 성스러움을 히스테리로 격하시켜 왔다.

이러한 여성에 대한 비하는 비단 토속적 종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기독교의 경우, 여성을 향한 이중적인 시각은 성모 마리아를 둘러싼 논쟁 속에서 가장 부각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성경은 마리아가 동정녀임을 강조함으로써 예수가 성스러운 존재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정작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인간의 성행위에 의해 탄생한, 성스럽지 못한 존재로서 남아있게 된다. 또한 마리아는 ‘애인’ 아닌 ‘어머니’로서의 역할만이 부각되고, 더 나아가 죽지 않고 승천하는 성스러움을 지닌 존재로 이야기된다. 마치 마리아를 통해 역사 속에서 억압해온 모든 여성에 대한 보상이라도 꾀하려는 듯이 말이다.

불교의 경우, 삭발을 통하여 남성과 여성의 이원론적 구분을 없애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는 성(性)을 둘러싼 모든 논쟁에 대한 무관심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교리에서는 남녀의 평등을 명시하고 있는 이슬람교 역시도 현실의 근본주의적 흐름 속에서는 일부다처제에 대한 옹호 등, 반 여성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일원론적 신앙에 비해 다원론적 신앙의 특징을 지닌 힌두교의 경우는 이보다 조금 더 희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언급한 종교들이 성스러움과 비천함의 뚜렷한 구분을 강조했던 반면, 힌두교는 신이라면 그의 모든 것을 성스러이 여긴다. 숱한 배설물과 분비물에 대해서도 소중히 여기는 힌두교의 특징은, 타 종교에서는 금기시하는 여성의 월경혈에 대해서도 관용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남편이 죽었을 경우, 스스로 죽음을 택함으로써 신이 되고자 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그것을 성스러움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가의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여성 스스로 성스럽기 위함이기 보다는 세상의 남성적 질서가 강요한 성스러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들은 성스러움은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만, 편지 내내 동정녀 마리아를 비롯, 특정 종교에서의 여성의 역할, 위치 등을 논함으로써 그 안에서 여성의 성스러움을 읽으려고 하고 있었다. 이는 종교를 지니지 않은 이들에게 흥미를 반감시킬 수 있는 요소가 될 듯 하다.

또한, 이들은 ‘모성애’를 여성에게 본능적으로 존재하는 그 무언가로 이해하고 있는 듯 했다. 물론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과정은 여성에게 허락된 가장 신성한 영역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에게서 엿보이는 시각은 사회 생활을 하는 여성을 자신의 본능을 외면 혹은 왜곡하는 성스럽지 못한 존재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낳는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덜 비종교적이고, 조금만 더 일상적이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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