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성스러움
줄리아 크리스테바 외 지음, 임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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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그리스, 로마 시대의 여신들을 제외하고는 ‘신’을 이야기함에 있어서는 남성이 떠오른다. 종교적 지도자도 남성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어느 순간부터 여성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듯 하다. 현대 사회로 거슬러 올라오면서 여권 신장이라는 여성 스스로 만들어온 흐름이 시작되기 전까지, 역사 속에서 여성은 누군가의 어머니, 아내로 존재했던 것 같다.

이 책은 역사 속에서 억압당해왔던 여성에게서 성스러움을 엿보고자 하는 두 여성 학자의 편지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그들의 논의는 흥미로웠지만 어려웠고, 무엇보다도 한 사회를 살아가는 엘리트로서의 관점을 견지하고 있는 듯 했다. 수많은 예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미개한 문명에 대한,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에 대한 동정심을 엿볼 수 있었다. 어쩌면 이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를 반영하는 인간의 속성상 어찌할 수 없는 바일지도 모르겠다.

억압당하는 존재인 여성, 특히 흑인 여성에게서 성스러움을 가장 쉽게 엿볼 수 있는 부분은 다름 아닌 종교 분야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프리카의 국가들에서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 도중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등의 행위를 하는 여성들, 그들이 경험했던 것은 다름 아닌 성스러움이었다. 하지만 사회는 그러한 성스러움을 히스테리로 격하시켜 왔다.

이러한 여성에 대한 비하는 비단 토속적 종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기독교의 경우, 여성을 향한 이중적인 시각은 성모 마리아를 둘러싼 논쟁 속에서 가장 부각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성경은 마리아가 동정녀임을 강조함으로써 예수가 성스러운 존재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정작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인간의 성행위에 의해 탄생한, 성스럽지 못한 존재로서 남아있게 된다. 또한 마리아는 ‘애인’ 아닌 ‘어머니’로서의 역할만이 부각되고, 더 나아가 죽지 않고 승천하는 성스러움을 지닌 존재로 이야기된다. 마치 마리아를 통해 역사 속에서 억압해온 모든 여성에 대한 보상이라도 꾀하려는 듯이 말이다.

불교의 경우, 삭발을 통하여 남성과 여성의 이원론적 구분을 없애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는 성(性)을 둘러싼 모든 논쟁에 대한 무관심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교리에서는 남녀의 평등을 명시하고 있는 이슬람교 역시도 현실의 근본주의적 흐름 속에서는 일부다처제에 대한 옹호 등, 반 여성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일원론적 신앙에 비해 다원론적 신앙의 특징을 지닌 힌두교의 경우는 이보다 조금 더 희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언급한 종교들이 성스러움과 비천함의 뚜렷한 구분을 강조했던 반면, 힌두교는 신이라면 그의 모든 것을 성스러이 여긴다. 숱한 배설물과 분비물에 대해서도 소중히 여기는 힌두교의 특징은, 타 종교에서는 금기시하는 여성의 월경혈에 대해서도 관용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남편이 죽었을 경우, 스스로 죽음을 택함으로써 신이 되고자 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그것을 성스러움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가의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여성 스스로 성스럽기 위함이기 보다는 세상의 남성적 질서가 강요한 성스러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들은 성스러움은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만, 편지 내내 동정녀 마리아를 비롯, 특정 종교에서의 여성의 역할, 위치 등을 논함으로써 그 안에서 여성의 성스러움을 읽으려고 하고 있었다. 이는 종교를 지니지 않은 이들에게 흥미를 반감시킬 수 있는 요소가 될 듯 하다.

또한, 이들은 ‘모성애’를 여성에게 본능적으로 존재하는 그 무언가로 이해하고 있는 듯 했다. 물론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과정은 여성에게 허락된 가장 신성한 영역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에게서 엿보이는 시각은 사회 생활을 하는 여성을 자신의 본능을 외면 혹은 왜곡하는 성스럽지 못한 존재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낳는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덜 비종교적이고, 조금만 더 일상적이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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