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쓸 만한 인생
윤혜연 지음 / 달먹는토끼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제법 쓸 만한 인생』 · 윤혜연


꼭 꽃이 되고 나무가 되어야 잘 살아온 인생일까?


예순여섯에 첫 책을 낸 작가님은 아버지를 부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린 시절 자신의 동시를 보고 시인이 될 거라던 아버지. 오랜 시간이 흘러 책을 내면서도 부끄럽고 두렵다는 고백에 마음이 간다. 이 나이에도 무언가를 처음 내보이는 일은 여전히 떨리는 법이다.


이 책은 일상의 이야기를 따라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에세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자매들과 서로 기대어 살아온 날들, 남편과 티격태격하며 가족을 돌본 시간이 담겨 있다. 말맛이 살아 있는 대화에 웃다가도, 그 뒤에 놓인 수고와 서러움 앞에서는 잠시 멈추게 된다.


「파평 윤씨네 딸들」을 읽으며 생각했다. 이 글에도 내가 있네. 작가는 네 자매 중 둘째이고 나는 맏딸이지만, 저마다 제 말이 맞다며 다투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가까워서 부딪치고, 또 가까워서 기댈 수 있는 사이. 책 속 자매들을 보다가 우리 네 자매를 떠올렸다.


“나는 그날 남편이 시키는 대로 전파사에 연락해 전구를 갈아 끼웠어야 했을까?” (88쪽)


전구 하나를 갈아 끼운 일이 집안의 온갖 일을 맡게 된 시작이었다니 웃음이 났다. 그런데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어 한 일이 어느새 당연한 내 몫이 되는 순간들. 할 줄 안다는 것이 늘 혼자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닌데. 나도 가끔은 “내가 할게”라는 말을 듣고 싶다.


“오늘처럼 비가 오던 그날들이 이 아침 사무치게 그립다.” (131쪽)


장화 신고 지렁이를 찾던 어린 날에는 부엌에 어머니가 계셨고, 골프에 재미를 붙였던 시절에는 비가 반갑지 않았다. 함께 어울리던 이들의 다툼에 피곤했던 날들마저 지나고 나니 그리움이 된다.


그때는 서운했고 벗어나고 싶었던 순간도, 세월이 흐르면 그 시절의 나와 함께 그리워지는 걸까. 사람도 그립지만 무언가에 마음을 쏟고, 작은 일에도 웃고 속상해하던 내가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책 속 빗소리에 오래전 내 기억이 섞인다.


엄마 음식에 관한 이야기에도 마음이 머물렀다. 엄마는 바빠서 대충 해먹였다고 미안해하지만, 아이는 그 음식을 다시 먹고 싶어 한다. 해준 사람의 아쉬움과 먹었던 사람의 기억이 이렇게 다르다. 부족했다고 여긴 한 끼에도 누군가에게는 오래 남을 따뜻함이 있었던 것이다.


「나잇값」에서는 조금 뜨끔했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너그러워지고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다. 예순 중반에 와 있는 나도 여전히 말 한마디에 서운하고, 가까운 관계 앞에서 마음이 작아지기도 한다. 내 마음에는 이런저런 사정이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나이에 맞는 모습을 바라지는 않았을까.


“이 가을, 어머니가 절절히 그립습니다만 너무 빨리 어머니를 만나 뵙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저는 제 딸 곁에 오래오래 있고 싶습니다.” (204쪽)


「어머니에게 쓰는 편지」에는 보고 싶은 마음과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나란히 놓여 있다. 엄마가 보고 싶으면서도 내 아이 곁에는 오래 남고 싶은 마음. 딸로서는 그립고, 엄마로서는 더 살아 함께하고 싶다. 아이가 자라는 순간마다 곁을 지켜주고 싶은 이 마음을, 우리 엄마도 품고 계셨겠지.


“오래오래 그곳에 있다 천천히 오거라 타이르실 겁니다.” (206쪽)


나이가 들수록 엄마에게 여쭙고 싶은 것이 많아진다. 나 이렇게 살았다고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도 쌓인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편지에서, 딸이 오래 살아주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대답까지 들려오는 듯했다.


이 책의 매력은 평범한 일상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솔직함과 말맛에 있다. 가족 사이의 서운함도, 자신의 모난 모습도 감추지 않아 가까이 느껴진다. 자매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오며 내 마음을 뒤로 미뤘던 독자라면 자신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살아온 만큼 다 알게 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헤아려지는 마음도 있다. 웃으며 읽기 시작했는데, 책을 덮을 때는 내 곁의 사람들과 지나온 나를 조금 더 찬찬히 바라보고 싶어졌다.


“하늘나라 가서 어머니 다시 만나면

그때 우리 어머니,

잘했다 내 새끼들 하실 것이다.

장하다 내 새끼들 하실 것이다.” (19쪽)


📚 도서제공

달먹는토끼 출판사(@hwangsomediagroup)로부터 『제법 쓸 만한 인생』을 제공받아 읽고, 제 생각을 담아 작성했습니다.


이야기꾼 윤혜원작가님 응원합니다


66년 넘는 세월을 사는 동안 한 줌 빛도 들지 않는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이야기와 가족 친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놓은 보잘것없는 글줄을 읽고 누군가 이 할머니 인 생 제법 쓸만하게 살아내었네 한다거나 내가 이 할머니보다 는 낫네 하는 마음이 들었다거나 우리 엄마는 잘 계시나? 전화 기를 든다면 그리고 아주 잠깐이라도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겠습니다. 더없이 큰 기쁨으로 삼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