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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사회학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김영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7월
평점 :
영화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대도시의 으슥한 뒷골목은 적어도 번듯한 직장인이나 자영업자가 사는 곳은 아닙니다. 여기서 ‘번듯하다’는 의미는 ‘합법적이다’라는 말과 상통합니다. 뒷골목에 위치한 빈민들의 보금자리가 더러울수록 그리고, 빈민가를 비추는 불빛이 어두울수록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탈법의 정도도 더해갑니다. 그러한 탈법이 그 곳 주민들의 의지이건 아니건 말입니다.
80년대 후반 풋내기 대학원생이던 저자는 좀 더 색다른 연구 방법을 체험하고 싶어 굳이 빈민가에 뛰어듭니다. 맨땅에 헤딩하듯 그렇게 시작한 빈민가 연구가 순조로울 리가 없지요. 갱단의 보스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거짓말을 하여 그 곳 갱단 보스와 친분을 쌓으면서, 그의 보호를 받으며 10여 년을 그 곳 사람들과 생활하게 됩니다.
그 곳은 법이 미치지 않습니다. 경찰도 오지 않습니다. 심지어 위급한 사람이 있어 구급차를 불러도 오지 않습니다. 저자는 법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도 나름의 질서가 있음을 목격합니다.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곳에는 힘 센 이들이 만든 또 다른 종류의 법이 존재합니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더 이상 정부의 법에 의해서는 보호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탈법의 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이방인이 됩니다. 당연히 힘이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입법자가 되고 사법자가 됩니다. 힘있는 그들도 무턱대고 사람들을 갈취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치안을 유지하고, 세금을 걷고, 농구대회도 개최하고, 심지어 동네사람들을 위해 흥겨운 파티까지 엽니다. 물론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지만 말입니다.
저자는 10여 년의 기간 동안 빈민가의 사람들이 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그들이 빈곤에서 탈피하는 방법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당시 30대의 젊은이는 자신과 인터뷰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스에게 이야기하여 인터뷰한 모든 사람들을 궁지에 처하게 하는 우도 범하지요. 저자도 이 책에서 빈민가에서 생활하는 이들을 위해 획기적인 복지 정책을 내놓지는 못하고, 복지 정책의 무력함을 담담히 서술합니다. 그만큼 복지정책이 단순한 문제는 아니라는 반증일 겁니다.
빈민을 대상으로 벌이는 복지정책은 법의 테두리 밖에 있는 그들을 법의 테두리 안으로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단순히 적선을 베푸는 정책은 그들을 영원히 거지로 취급하는 것이고, 끝내 그들을 합법의 울타리 안으로 불러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복지 정책은 안하니만 못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냥 우리를 가만히 놔버려두라”고.
이 책은 비록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진 나라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특성상 부익부 빈익빈과 같은 부의 양극화 현상을 막을 수는 없기에,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한 일이 얼어날 지 모릅니다. 한 가지 깊이 생각해야 할 점은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는 이들에게 '생존권'을 어떤 방식으로 얼마만큼 인정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중심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상을 참고로 복지 정책이 보다 실질적으로 도움되는 방향으로 입안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