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기술 - 고객을 내 편으로 만드는 프로페셔널 법칙
데이비드 마이스터 외 지음, 정성묵 옮김, 김승종 감수 / 해냄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원제는 “Trusted advisor”입니다. 번역자의 단어로 표현하자면 “신뢰받는 조언가” 정도가 되겠네요. 이 책은 경영이나 IT 컨설턴트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적용 가능한 분야를 찾아보노라면 법률, 금융, 부동산 등 조언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는 존재하는 모든 분야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좀더 응용을 한다면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들도 대상이 될 수 있겠습니다만, 그 경우에는 활용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 될 듯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뢰가 쌓이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한가요? 이 책을 쓴 3명의 저자들은 신뢰를 구성하는 요소로 믿음, 친근감 그리고, 자기중심성을 듭니다. 믿음은 다시 크레디빌리티(credibility)와 릴라이어빌리티(reliability)로 나뉘어 집니다. 유능한 이들이 대개 그러하듯 저자들도 각각의 요소들에 대해 정량화를 시도합니다.


(※ 하지만, 신뢰의 방정식이 조금 틀렸습니다. T=(C+R+I)/S가 되어야 합니다.)

  저자들이 제시한 신뢰 방정식에 따르면 신규 고객은 믿음, 친근감이 낮은 반면, 자기 중심성이 높기 때문에 신뢰 점수가 낮고, 기존 고객은 믿음, 친근감이 높고, 자기 중심성이 낮기 때문에 신뢰 점수가 높습니다. 정량화가 저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제공되고 있습니다만, 각 점수를 어떻게 매겨야 한다는 기준은 없습니다. “이러저러한 상황이니, 이 정도가 될 것이다.” 정도의 신뢰도인 셈입니다.
 

  상호간에 신뢰를 형성하는데는 '관여하기-경청하기-윤곽잡기-비전세우기-투신하기' 등 총 다섯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저자들이 얘기하는 신뢰 구축의 단계를 들여다보면, 일을 시작하는 이전 단계부터 일이 모두 끝나는 모든 단계를 '신뢰 구축'의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잠재 고객과 일단 만나면 그 때부터 신뢰를 구축하는 단계로 들어가는 간다고 봐야 하고, 일을 완벽히 마무리를 해야 신뢰 구축 역시 올바르게 형성이 됩니다. 따라서, 저자들에 의하면 신뢰 구축은 고객과 일하기에 다름아닙니다.

  저자들은 각 단계의 가치가 모두 평등하고 모두 중요하다가 말합니다만, 개인적으로 경청하기에 눈이 많이 갑니다. 저자는 경청하기를 ‘관여하기’를 위한 권한을 가지는 단계라고 합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입니다. 조언을 받고 싶어하는 이가 아무리 뛰어나도 자신의 입장에 공감하고 충분히 이해하는 사람과 같이 일하고 싶을 겁니다. 하물며 갑의 입장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실무에서는 이슈를 새롭게 규명하는 '윤곽잡기'와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는 '비전세우기'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실무에 임하는 진지한 자세는 '경청하기'에 따라 많이 좌지우지 될 겁니다.

  여기서 잠시 이 책을 실제 응용할 수 있는 IT 업계의 현실을 잠시 엿볼까합니다. '을'의 입장에서 IT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후배의 글을 싣습니다. 이 글을 보노라면, 우리나라 현실은 이 책대로 하기에는 아직 덜 성숙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을'의 입장에서 IT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후배의 글을 싣습니다. 

   
  작년에 테XXX전이랑 일하면서 돈 안 주고 일 시키려는 거 보면서 정말 막장 회사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 C&C랑 프로젝트를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회사도 있구나 싶다. 한국의 SI 판에 대해서 정말 뼈저리게 실감하게 되었다고 할까? 8년 전 처음 SI를 했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다음은 얼마 전 C&C의 PM이랑 싸우다가 내가 들은 말들이다.

* 이 인간이 위 아래도 모르고
*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설치는구나
* 너 오늘 일 반드시 책임지게 만들겠다
* 학생들 장난하는 건 줄 아냐?

반말 찍찍 해대면서 저런 말들을 내뱉었다. 나도 저런 말 들으면서 일할 생각은 없었다. 이미 오픈도 다 했고 돈 받는 일만 남았지만 이런 말 들으면 나도 참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나도 그럼 설치한 소스 다 빼고 우리 철수하겠다고, 소송 걸 테면 걸라고 했다. 결국 중재에 나선 건 중간에 낀 인력 업체. 사실 곤란한 건 중간에 낀 업체다. 우리야 **랑 직접 계약한 게 아니니까 **가 우리에게 책임을 물을 방법은 없다. 결국 중간 업체에 책임을 묻는 수 밖에 없으니 제일 피해를 보는 것은 중간에 낀 업체다. 결국 중간 업체의 이사까지 나서서 그 사람이랑 협상이 되었는지 그 쪽이 한 발 물러섰다.
(중략)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재수없게 ** C&C에서 이상한 인간을 만난 게 아니고 이게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바닥의 회사들이 다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갑의 입장이 되면 을은 마음대로 부려먹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위 아래 같은 발언이 나오는 것이다. 돈 주고 부리는 건데 시키면 시키는대로 해야지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다. 그러다보면 결과물보다 을이 자기 말을 듣느냐 아니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을이 자기 말을 안 듣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게 결과게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는 생각할 필요도 없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건 중간 업체도 마찬가지였다. 거기 담당자도 자기들이 우리한테는 갑이니까 우리가 자기들 시키는 걸 다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로 한달 전까지만 해도 매일같이 싸웠다. 하지만 걔네들이 하라는대로 하면 프로젝트가 제대로 될 리가 없으니 우리는 대부분 거부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중간 업체도 어차피 우리가 말을 안 듣는 상황에서 싸워봐야 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도 결과는 보여주니 우리 방식을 수용했다. 하지만 SK C&C의 PM은 결과가 나오든 안 나오든 우리가 자기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행동한 것일 테고.

그나마도 ** C&C가 SI 대기업 중에 나은 편이라고 하니 SDS나 CNS는 어느 정도일까 싶기도 하다. 태근이가 이야기해준 CNS의 이야기도 정말 어이 없었고, SDS가 중소기업 여럿 망하게 만든 스토리도 이미 유명하다. 도대체 우리 나라의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왜 이 모양일까?
 
   

  신뢰는 개인적입니다. 신뢰받는 조언자로서의 컨설턴트들은 자신과 접촉하는 담당자 간의 이성적인 면과 감성적인 면은 물론 심지어 그가 회사에서 처해있는 정치적인 입장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래도 결과가 아닐런지요. 아무리 신뢰 관계가 구축되었다 하더라도 실적이 나쁘면 모든 단계는 모래성일 뿐입니다. 반면 실력이 탁월한 컨설턴트라면 인격에 커다란 흠이 없는 한, 신뢰가 이미 절반은 형성된 겁니다. 어쩌면, 실력이 있는 ‘갑’ 같은 을이라면 굳이 신뢰를 쌓는데 들이는 노력을 자신의 역량을 쌓는 데 들이는 편이 더 생산적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이 필요로 하는 모든 '신뢰받는 조언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들이 ‘갑’같은 을이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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