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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우리의 자화상
임석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10월
평점 :
어떠한 압력이나 힘, 혹은 흐름에 의해 썩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상황이란 것이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기에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은 역시 그만큼 바람직하지 못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러면 상황이 이렇게되기까지의 잘잘못을 따질 때, 이러한 상황을 만든 사람과 그 상황에 맞춰진 사람 중 누구에게 잘못을 물어야 하나요?
저자는 건축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바라보려 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19가지 건축 유형에 대해 이야기하며 동업에 종사하고 있는 건축관련 종사자들과 그들의 행위에 장단을 맞추고 있는 우리들을 비판합니다. 고속철 역사, 관공서, 교회, 영화관, 백화점, 모텔, 모델하우스, 아파트, 초고층아파트, 대형 의류매장, 신림동, 테헤란로 등 그가 비판하는 대상은 크고 화려합니다. 그러나, 상황을 연출한 건축계에 대한 비판보다는 대안 없이 상황에 처해 있는 이들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더 셉니다. 비판 대상의 주객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창문도 제대로 열리지 않는 초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산소가 제대로 공급이 되지 않는 수족관에서 숨을 쉬려고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금붕어같다고 조롱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소비 행태와 사고 방식과 교육 행위까지 싸잡아 잘못됐다고 비판합니다. 비자연친화적이고, 비사회적인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배금적인 생각에 젖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인 듯 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인격이 사는 공간에 따라 좌우된다는 생각에는 찬성할 수가 없습니다.
저자는 덧붙입니다.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애들은 부유층 자녀가 다수이다. 돈은 이미 부모가 충분히 벌어놓았다. 자식들까지 돈 벌려고 버둥거릴 필요 없다. 돈은 부모한테서 물려받으면 되고 그렇다면 남은 것은 그 돈을 권력화하는 일이다. 고시에 합격해서 권력을 꿰차는 것이 그 지름길이다.”
하지만, 저자가 재직하고 있는 명문 이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등록금으로 인해 서울대보다 더 많은 비율의 강남 사람들의 자제로 채워집니다. 저자의 논리대로라면 명문 이대를 나온 사람들은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생각을 하며 저자가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행태들을 할 확률이 더 높을 겁니다. 저자가 격렬하게 비판하는 대상이 정작 자기에게 생활비를 주고, 자기가 몸담고 있는 학교의 부모와 학생들이라니 퍽 아이러니합니다. 설마 저자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이 학교에 취직하러 원서를 제출하지는 않았겠지요. 역시 생각과 생활은 현실에서 구분이 되어야 하나 봅니다.
아파트의 단점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은 이해가 가고, 공감이 가는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만, 아파트가 가지고 있는 장점에 대해 외면하는 저자의 시각은 한쪽으로 편중되었다는 느낌을 많이 줍니다. 전상인 서울대 교수는 아파트에 대해 “양성평등이란 시대적 대세와 함께 여성의 경제적 결정권 강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아파트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던 시절 수많은 사람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했으며, 남녀 공간의 평등화와 중산층 문화의 형성 같은 변화들을 이끌어내는 등 순기능의 역할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장점에 눈감아 버리는 저자의 시각이 아쉽습니다. 저자가 이를 몰랐다면 놀라운 일이지요.
저자의 주장대로 하늘을 향해 치솟는 아파트를 싹뚝 잘라 한국의 전통적인 능선을 살리면서 외국의 사례대로 단독주택 내지는 저층의 아름다운 미관을 가진 아파트로 전국토를 리모델링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환경이 이루어지고 부동산은 투기 대상이란 오명을 씻을 수 있을까요?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저자는 책에서 실율(室率, 實率)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실율은 사적 영역의 비율입니다. 실율이 높을수록 닭장 같은 건물이 되고, 실율이 낮을수록 공간적 여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실율이 낮아지면 평당 임대료 등은 더 올라갑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실율이 높은 초고층 아파트에서 실율이 낮은 저층 아파트로 전환하더라도 서민층에게 돌아오는 실익은 별로 없고, 오히려 땅값은 더 오를 수도 있겠습니다. 노년층에게는 고층 아파트가 알맞은 주거 형태라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말이죠.
저자는 돈 버는 수단의 한가운데에 건축이 있다는 사실에 매우 가슴 아파합니다. 책 내용들에는 이러한 그의 기본적인 생각이 배어 있습니다. 그의 기본적인 생각과 이 시대에 지켜야 할 것으로 제시한 ‘꽃가게, 거리의 책상, 골목길’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부분이 퍽 많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나 경제적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현재의 시각으로 그 시대 행위의 도덕적인 부분을 부각시키는 반면, 대안은 제시하지 않는 저자의 이야기 전개 방식에 불편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저자가 소장하고 있는 슬라이드 필름이 20만장이나 된다죠? 그 많은 필름 중에서 대안으로 삼을 만한 '꺼리'를 몇 가지 만이라도 제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 시대, 그 어느 것이 도덕적인 기준만을 가지고 들이댔을 때 떳떳할 수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이 책의 아쉬운 점에 대해 한 마디 하겠습니다. 문단의 첫 머리는 한 칸 띄어야 하는 기본적인 글쓰기 양식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저자의 주장 때문인지, 출판사의 실수인지, 어떤 건축적 내지는 미적인 심오한 뜻이 숨어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만, 썩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실율은 대단한 높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책을 읽는 기분이 퍽 쾌적하지는 않았습니다. 장수를 부풀리려는 자본의 논리가 배여있는 외형으로 인해 허황된 외형을 비판하는 좋은 내용이 원래의 의도대로 전달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