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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임 머신 - 수치심이 탄생시킨 혐오 시대, 그 이면의 거대 산업 생태계
캐시 오닐 지음, 김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4월
평점 :
각 사회와 문화에는 여러 가지 가치가 존재합니다. 외모, 부, 도덕 등 그 주제가 다르긴 하지만 각각은 기준을 갖고 있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인 압박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이 정도의 외모는 되어야지', '이 정도 재산은 갖고 있어야지', '이 정도의 직장에는 다녀야지', '이런 사람이어야지' 등과 같이요. 문제는 이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사회 구성원이 느끼는 '수치심'입니다. '창피함, 내 탓이라는 괴로움, 내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 등의 자기혐오는 개인을 괴롭게 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것은 몇몇 산업의 유지와 성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셰임 머신>의 저자는 수치심이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넘어 그 자체로 어떤 산업에서의 핵심으로 작용한다고 말합니다.
<셰임 머신>의 저자인 캐시 오닐은 데이터 과학자로, 상업, 금융, 교육, 치안 분야의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연구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공정하고 객관적이라고 알려진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사실은 편향적이며 취약계층에 불이익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동시에 어려서부터 겪어온 비만으로 인한 수치심과 자책을 '기능'이라는 관점에서 짚어보기 시작하면서, 수치심이 개인적인 경험일 뿐만 아니라 인간사 내에서 억압, 이윤, 통제의 도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저자가 대표적으로 꼽는 수치심 비즈니스의 핵심 산업인 비만, 약물 중독, 빈곤, 외모 관련 산업은 사람들에게 스스로에 대한 불만을 찾아내고 해당 산업을 통해 자기혐오가 줄어들 수 있다는 광고를 통해 사업을 발전시키고 유지합니다. 특히 수치심 산업에서는 '피해자가 실패를 초래했다'는 전제를 통해 사람들을 수치심 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들기도 하구요. 그런데 다른 감정들과는 달리 수치심은 타인에게 공유되기 힘듭니다. 존엄성이 부정당한 느낌, 존재가치의 의심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이 감정은, 이를 발설하는 것 자체를 꺼리게 만들죠. 그래서 수치심 산업은 발전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간의 유대를 힘들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수치심의 단계를 통해 수치심 산업을 다른 방향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수치심으로 인해 상처를 받고, 이를 부정하는 단계를 지나 수치심을 '수용'할 수 있다면, 즉 '그래, 그런데 뭐 어쩌라고?'와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있다면 평온함과 안도감을 얻을 뿐 아니라 수치심을 정치적, 산업적으로 활용하는 시스템인 '수치심 머신'을 무력화할 수 있다구요. 이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공동체로 초점을 옮긴다면 이는 수치심 머신을 해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수치심을 이용해 코로나 시기에 마스크를 착용하게 하거나 사회적 불의에 대해 유용한 역할을 하게 할 수도 있구요. 쉽게 말해 공익을 지키는데 유용한 역할을 하는 것, 그것이 수치심의 역할이자 수치심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말합니다.
이 책의 내용이 시작되도록 만들어 준 '수치심을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기'는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 안에 갇혀 나만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과 좀 더 넓은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은 문제 자체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게 해주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거든요. 쉽지 않겠지만 내가 가진 여러 고민에 대해 이 방법을 적용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수치심과 나, 그리고 주변인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수치심의 주요 목적인 '순응하기를 강제하는 것'은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집단의 관습이 잘못된 것일 때도 작용됩니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듯 우리는 누구나 수치심의 영역에서 피해자일뿐만 아니라 가해자일 수 있기 때문에 수치심이라는 무기는 신중하게 사용되어야겠지요.
저는 이 책을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한 번쯤 읽어보았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수치심과 사회적 상황의 관계를 아는 것이 당장의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한다 해도, 적어도 앞으로의 나의 소비나 선택에는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 그 영향력은 더 커질테니까요.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 받았으며, 내용에 대한 요구 없이 저의 견해가 담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