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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1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3 ㅣ 골든아워 1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이국종 교수님의 이야기, 아니 저자가 알리고 싶어했을 단어로 표현하자면 우리나라의 '중증외상센터'와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몇 해 전 다큐멘터리를 보고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영상으로 보았고 이번엔 활자로 접했는데, 환자의 사고 상황을 비롯해 '짓이겨진 몸, 쏟아져나오는 핏물' 등 사실 그대로가 묘사된 덕분인지 눈앞에 그려지는 듯이 보였고, 영상보다 더욱 생생하게 와닿는 느낌입니다.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눈을 질끈 감았고, 깊은 한숨과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눈물이 나왔습니다.
석해균 선장의 아덴만 작전을 통해 대중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한 '중증외상센터'는 이전에도 있었고,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져가고 있지만 사정은 그리 크게 나아지지 않은 듯합니다. '생명이 위독할 수 있는 외상(몸에 가해진 물리적 충격에 의해 손상된 것)'을 뜻하는 '중증 외상'은 사고의 특성상 많은 의료인들의 협업과 목숨을 유지하고 집중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값비싼 장비들과 중환자실, 헬리콥터 등 수많은 의료 자원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헌신하는 소수의 의료진과, 치료에만 집중해도 힘들 그들이 어렵고 힘들게 겨우 얻어내는 장비나 병실로 간신히 유지되어 오고 있는 현실입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를 이렇게 살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도 그것이었구요. 그는 사명이나 소명 같은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밥벌이를 위해서, 그리고 함께하는 팀을 위해서, 자신의 업의 본질인 '사람을 살리는 것'을 지키며 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것만으로 타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놓는 그의 삶은 아직도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더구나 그런 사람에게 쏟아지는 비난이나 질책, 억울한 소문들은, 무엇을 주어도 다 보상받지 못할 그의 생에 어울리지 않는 말들입니다. '생명'을 살리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은 사람이 책 곳곳에서 말하는 '자신의 생의 의지'에 대한 표현들을 볼 때, 감히 그가 겪었을 상황들과 마음고생이 어땠을지는 짐작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이국종 교수님의 삶의 모습을 접할 때마다 '무엇을 가치있게 여기며 어떻게 살 것인가'의 질문은 마음 깊이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힘든 일을 버티는 힘 중에 하나는 '희망'일지도 모릅니다. 일 자체의 즐거움과 보람이 힘이 될 때도 있지만 일을 하며 부딪히는 수많은 어려움들과 고뇌에도 불구하고 일을 지속하게 하는 힘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중증외상 의료시스템이 구축되는 일이 자신의 세대에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한마디로 '희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계속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언젠가는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이 길을 갈지도 모를 이를 위해 이 기록을 남긴다는 말을 읽고 보자, 책 앞머리에 쓰여진 그의 후배 의사이자 팀원인 '정경원에게'의 무게는 표현하기 힘든 여러가지 감정으로 다가옵니다.
그가 말하듯 의사, 간호사, 응급구조사, 의료인들, 소방대원들 등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업의 본질을 지키며 사는 이들 덕분에 대한민국이 이만큼 굴러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이렇게 타인의 목숨을 살리는 최일선의 사람들의 건강과 안위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우리의 목숨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누구도 그 침상의 환자가 내가 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목숨을 살리기 위한 일에 한 개인이 지는 짐이 너무 무겁다는 생각도, 그래서 혹시 여기에 보탤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생각해보지만 지금의 저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저 이 책을 가능한 한 많은 이들이 읽을 수 있길,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그가 꿈꾸는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이 우리나라에 정착되는 일이 끝내 이루어지길. 이를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는 것 정도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와 그의 팀, 그를 돕고 함께하는 이들이 하는 일이, 그들과 그들 가족의 희생이 그 무게만큼의 열매로 맺어지길. 정말 머지 않은 때에 꼭 그런 날이 오기를 기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