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주 오영선
최양선 지음 / 사계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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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동으로 가족생활을 하는 단위인 세대의 책임자, 세대주.

이 소설의 주인공인 오영선이 세대주가 된 것은 투병중이던 어머니가 갑작스레 돌아가시게 되고 집을 얻게 되면서부터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영선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자신의 미래뿐이었다. 그래서 공시를 선택했고 그 공시 준비를 위한 4천만 원을 모으기 위해 일을 했다. 결심한대로 3년 동안 그 돈을 모았으나 갑작스런 엄마의 죽음 앞에 계획은 삐그덕대기 시작한다.


우연찮게 영선은 엄마의 통장을 상속받을 수 있고 그 통장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직 이십대 후반이고 결혼에 전혀 뜻이 없었던 그녀였기에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물론 그 밑바탕엔 '집이 꼭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자리잡았던 것 또한 무시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영선의 생각에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집주인이 전세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통보하면서부터다.


현재의 전세 보증금 1억 2천만 원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을 동생 영우와 보러 다니며 둘은 초라한 현실과 마주한다. 매매든 전세든 지금보다 더 나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모아놓은 돈을 쓰거나 대출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대출에 부정적인 영선과 그 반대인 영우. 둘의 갈등이 불보듯 뻔한데, 영선이 대출에 대해 부정적인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것, 엄마에게 찾아온 암, 이 모두가 대출금(빚)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집에 관해서 무덤덤했던 영선에게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게 되는데, 그것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회사의 주 대리라는 인물 덕분이다. 주 대리는 집이란 상품이고, 특히 아파트는 투자 상품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투자 상품이기 떄문에 아파트를 사는 건 시간을 사는 것과 같다는 말까지 덧붙이며 말이다. 집은 거주 이상의 삶이 쌓이는 곳이라 생각해온 영선에게는 무례함까지 느끼게 하는 말이었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대부분 주 대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시간은 흐르고 주 대리와 영선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와지면서 영선도 집에 대한 생각 자체가 바뀌게 된다. 보다 적극적이고 과감해진달까?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아요.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져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 것이니까요.

<세대주 오영선> 본문 중에서"



새로운 전셋집을 보러 가기로 한 전날, 영선이 서가에서 꺼내든 책 <빨강 머리 앤을 만나다> 속의 한 문장이다. 엄마의 죽음, 그리고 엄마와 함께 살던 집을 떠나야 하는 일 그리고 마지막에 영선이 아파트를 매매 계약하고 세대주가 되는 일. 이 모두는 영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특히 영선의 명의로 된 아파트를 장만한 건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고 그 안에서 느끼는 영선의 불안과 두려움. 앞으로 진행될 영선의 미래는 어떠할지 참으로 궁금하다. 자신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은 세상일과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앤처럼 "정말 멋진 일이야!'"라며 감탄을 하게 될지. 아니면 세대주가 되어서 겪게 되는 새로운 문제와 맞닥뜨릴지. 그래서일까?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시작될 영선의 삶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사계절 출판사로부터 무상 제공받은 도서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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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맛 사탕 - 자꾸만 신경 쓰이는 맛 사탕의 맛
이네 지음 / 길벗어린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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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우가 자꾸만 신경 쓰였다."



누군가가 자꾸 신경 쓰인다는 이 문장 하나에

가슴이 콩콩 설레이는 경험을 했다.

나이가 들면서부터 누군가가 신경 쓰이는 것보단 거슬리는 경우가 더 많았는데...

내 머릿속이 온통 '자꾸 신경 쓰이는 그 누군가'로 꽉 차버리는 기이한 일.

누군가에게 내 모든 신경이 집중되는 순간,

바로 첫사랑이 시작되는 그 지점...

먼 옛날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 이제는 세월이 흘러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았더랬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연두맛 사탕>을 읽으며

오랜만에 그 기억들을 꺼내볼 수 있어서 참 기뻤다.

내가 가장 순수했을 때의 모습을 다시 추억할 수 있어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표지 속에 보이는 뒷모습의 여자아이는 '현수'다.

현수의 남자 짝꿍은 '지우'인데, 둘은 늘 티격태격하는 사이.

그런데 현수는 언제부턴가 자꾸 지우가 신경쓰이기 시작한다.

좋은 감정으로...

지우 역시 현수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듯 보이는데

예기치 않은 오해로 둘의 관계가 어긋난다.


현수와 지우의 오해와 갈등 그리고 이별은

그간 봐왔던 드라마 미니시리즈의 공식과 너무 비슷해서 새롭진 않다.

그러나 중학생 현수의 풋풋한 첫사랑을 엿보며

이미 어른이 된 우리지만 현수와 같은 나이, 그 시절로 잠시 타임 리프할 수 있다는 거.

그거야말로 <연두맛 사탕>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어른이 된 현수와 지우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얘들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용기내어 고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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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맛 사탕>을 함께 본 열 살 딸아이는

"어, 정말 재밌네?!" 딱 한마디 해줬다.

아이는 어떤 느낌이었을지 궁금한데, 얘길 잘 안해준다. 대신 "오글거리지 않아서 좋았다."고 한마디 더 해줬다. 인심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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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를 잡는 아버지 작품 해설과 함께 읽는 작가앨범
현덕 지음, 김환영 그림, 원종찬 해설 / 길벗어린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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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표지속 멱살을 잡고 있는 아이는 바우, 소작농의 아들입니다.

바우에게 멱살을 잡힌 아이는 마름의 아들 경환이고요.

비록 경환의 멱살을 잡고 있기는 하나 경환보다 아래 쪽에 위치한 바우의 모습에서

마름과 소작농이라는 계층의 높고 낮음이 느껴진달까요?


주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바우와 경환이는 같은 소학교를 졸업했으나

경환이는 서울 상급 학교로 진학한 반면 바우는 집안 농사를 거들어야 했습니다.

바우는 자신의 하루하루가 좋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을 경환의 하루와는 다름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틈나는대로 그림을 그립니다.



시간이 흘러 여름 휴가를 보내기 위해 경환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전보다 얼굴이 하얘지고 옷차림새에 잔뜩 멋이 들어갔다는 차이만 있을 뿐 경환의 자랑질과 거들먹거리는 성품은 그대로입니다. 서울까지 가서 좋은 학교, 훌륭한 선생 밑에서 배웠으면 뭔가 달라질 법도 한데 말입니다. 경환이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유행가를 부르며 어린애들을 몰고 나비를 잡는 것뿐. 소학교 내내 바우에게 성적으로 밀리던 경환이 분풀이 하듯 뻐기는 모습이 바우 눈에는 무척 거슬립니다.




한가롭게 소 먹이를 주는 동안 그림을 그리고 있는 바우 곁으로 경환이 무리가 올라옵니다.

마침 바우 손에 있는 호랑나비를 보고 자신에게 달라는 경환과 그런 경환이 매우 못마땅한 바우.

경환이 동물 표본 숙제를 한다고 앰한 나비를 못살게 구는 탓에 그림 그리는데 필요한 나비 구경이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

네가 동물 표본을 만들기에 나비가 필요하다면

난 그림 그리는 데 필요한 나비야.

너만 위해서 생긴 나비는 아니지.

"

바우가 뭐라고 말하건 간에 계속해서 빈정대는 경환과

경환의 그런 모습에 비위가 상한 바우. 바우는 잡고 있던 나비를 경환에게 주는 척하다가 그냥 날려 버립니다.

이로 인해 머리 끝까지 심술이 난 경환은 바우 집 식구들의 식량이 달려 있는 참외밭을 엉망으로 만듭니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바우가 아니기에 둘은 한바탕 싸움을 하게 됩니다.

마름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경환의 엄마는 자신의 아들을 때린 바우네 아버지를 압박하고,

아버지는 바우를 혼냅니다. 그뿐 아니라 바우의 그림 그리는 책까지 조각내어 버리지요.

애초부터 참외밭이 그리 된 것은 바우의 잘못이 아닌데

경환에게 가서 빌라는 아버지.

자신의 소중한 그림책까지 찢긴터라 바우의 마음은 억울함으로 가득 차오릅니다.

이튿날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화는 전혀 가라앉을 기색이 안보입니다.

나비를 잡아 경환이에게 가지 않으려거든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어제와 같은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바우는 경환이에게 머리 숙이는 일이 무엇보다 싫었습니다. 자신에게도 체면과 자존심이라는 게 있는데다, 아무 잘못 없는 내가 왜 경환이에게 나비를 잡아주고 머리를 숙여야 하나... 그 생각뿐이었지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우연하게 바라본 메밀밭.

누군가가 나비를 잡고 있습니다.

바우는 그 누군가가 경환이 집 머슴일꺼라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바우가 그토록 야속하다 생각했던 사람,

바로 바우의 아버지였습니다.

"

바우는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하니 아래를 바라보고 섰다.

그러다가 갑자기 언덕 모래 비탈을 지르르 미끄러져 내려가며

그렇게 빠른 속력으로 지금까지 잠기어 있던 어두운 마음에서 벗어나

그 아버지가 무척 불쌍하고 정답고

그리고 그 아버지를 위하여서는 어떠한 어려운 일이든지 못 할 것이 없을 것 같고,

바우는 울음이 되어 터져나오려는 마음을 가슴 가득히 참으며

언덕 아래 메밀밭을 향해 소리쳤다.

"

메밀밭에서 아들을 대신해 나비를 잡으러 쫓아다니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위해서는 못 할 것이 없을 것" 같다는 바우의 독백이

가슴 속 깊이 뜨겁게 다가옵니다.

나비가 알에서 애벌레 그리고 번데기로 단계를 거쳐 성장하는 것처럼

바우 역시 한 단계를 어렵게 거치고 성장했음을 바로 이 독백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요.

지금 당장 바우의 삶은 여전히 어렵고 고생스럽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과 희망은 보다 더 단단하게 뿌리내릴 거라 기대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노랑 나비처럼 자유롭게 꿈을 향해 날아오를 바우를 상상해봅니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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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 수목원
한요 지음 / 필무렵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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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요 작가의 <어떤 날, 수목원>은 여러 편의 일기를 그림과 함께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작가는 서로 다른 계절의 나무들과 풍경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그 당시 수목원을 걸으며 떠올린 이야기들을 담아냈다. 개인적으로 글보다는 그림에 눈이 더 가는 그림책이다.


색연필 드로잉이라 책을 받아보기 전 기대했던 쨍한 초록색과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이...

그러나 며칠을 두고 들여다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지나간 기억 속 풍경과 이야기를 담아내는 건 색연필의 흐릿함이 더 낫겠다 싶은 생각이랄까.

비록 내게는 글과 그림이 겉돌아 기대했던만큼의 만족감은 얻을 수 없었지만 책이란게 그렇지 않은가. 읽을 때마다 그 맛과 느낌이 달라지는 것. 그래서 이 책은 곁에 두고 오래 볼 요량으로 며칠 째 침대 옆 협탁에서 멋진 표지를 뽐내고 있는 중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에게 그림책 읽어주고 잠시 책 속 초록이들을 감상하며 힐링하는데 이 책이 요즘 제몫을 단단히 해내고 있다.


<어떤 날, 수목원>에서 특별히 마음가는 문장이 있어서 적어본다.


"나무들 사이를 걷다 보면 쪼그라는 자신을 챙길 여유와 용기가 조금 생기는 것 같다."


작가는 어떤 점에서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도 나무들 사이를 걸으며 여유도 되찾고 뭔가 용기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암튼 나무는 나에게 새로운 호흡을 내뱉게 해주었다.

정말이지 뭐하나 나무랄데 없는 나무.


길고 긴 겨울, 플랜테리어를 위해 초록식물 대신(나는 식물킬러 ㅜㅠ) 초록이 묻어나는 그림책들을 모으고 있다. 겨울을 나기 위해 햇살을 모으는 프레드릭처럼 말이다. 그 책들 속에는<어떤 날, 수목원>을 꼭 포함시켜야 할 것 같다. 초록이 점점 그리워질 계절, 겨울을 함께 할 그림책이 혹시 필요하다면 이 책을 권해드리고 싶다.



_이 책은 서평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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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과 작은 새 웅진 세계그림책 126
유모토 가즈미 지음, 사카이 고마코 그림, 고향옥 옮김 / 웅진주니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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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의 단짝 친구인 작은 새가 죽었다.

늘 곰 옆에 있었던 작은 새. 작은 새가 없다는 것은 곰에게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둘은 영원히 함께 할 거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어제 아침보다, 내일 아침보다, 오늘 아침"이 가장 좋다던 작은 새.

곰은 작은 새와 나눈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우리는 늘 매일 찾아오는 '오늘 아침'에 함께 있어서 좋았는데...

곰은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만약 어제 아침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어."라고.




단짝 친구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곰은

작은 상자에 새를 넣어 늘 함께 다닌다.

이를 본 다른 동물들은 안쓰러운 마음에 한마디씩 말을 건네지만

곰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한다.

"곰아, 이제 작은 새는 돌아오지 않아. 마음이 아프겠지만 잊어야지."



곰이 그걸 몰라 저럴까.

이제 다시 작은 새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곰을 가장 슬프게 하는 건데.

잊으라 말하면 쉽게 잊혀지던가. 시간이 흘러도 희미해져갈 뿐 온전히 잊혀지지 않는다는 걸 우리 모두 알지 않나.



슬픔에 빠진 이에게 어떤 위로를 건네야 맞는 건지, 여전히 어렵다.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슬픔을 100퍼센트 이해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니

상대방의 슬픔, 고통에 공감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그 사람의 슬픔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 뿐.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조금씩 옅어질테니 그때까지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주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최정례 시인의 「칼과 칸나꽃」이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슬퍼하자 실컷

첫날은 슬프고

둘째 날도 슬프고

셋째 날 또한 슬플 테지만

슬픔의 첫째 날이 슬픔의 둘째 날에게 가 무너지고

슬픔의 둘째 날이 슬픔의 셋째 날에게 가 무너지고

슬픔의 셋째 날이 다시 쓰러지는 걸

슬픔의 넷째 날이 되어 바라보자


최정례 , 『레바논 감정』, 문학과지성사, 2006




곰 또한 시 속 화자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깜깜한 방에 들어간 곰은 꼼짝도 안하고 앉아 있는다.

그렇게 하루 이틀, 며칠이 지나는 동안 곰의 슬픔도 조금은 무뎌졌을까.

오랜만에 창문을 열고 바라본 바깥 풍경이 곰의 눈에 들어온다.

화창한 햇살과 풀내음 가득한 바람, 하늘에 떠 있는 구름까지

곰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지는 듯하다.



그렇게 찾아온 새로운 그날, 운명처럼 곰은 들고양이를 만난다.

둘은 상대방이 지니고 있는 상자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 한다.

곰이 들고 있는 상자 속 작은 새를 본 들고양이는 놀랍게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곰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넌 이 작은 새랑 정말 친했구나.

작은 새가 죽어서 몹시 외로웠지?"

<곰과 작은 새> 중에서



그리고는 자신의 상자에서 바이올린을 꺼내 곰과 작은 새를 위해 연주를 한다.




들고양이의 연주곡을 들으며 작은 새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곰.

비록 곁에 있진 않아도 곰의 추억 속에선 언제나 친구로 남아 있을 작은 새를 이젠 보내주기로 결심한다.


"나 이제 울지 않을래. 작은 새는 앞으로도 계속 내 친구니까."


작은 새와 함께 해바라기를 하던 곳에 작은 새를 묻고

곰은 들고양이와 함께 떠나기로 작정한다.

그때 곰의 눈에 들어온 작은 탬버린 하나.

누군가의 손때가 묻어 꼬질꼬질한 그 탬버린의 주인이 궁금해진다.

'들고양이에게도 이제껏 함께 지내던 친구가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곰은 묻는 대신 이렇게 말한다.


"나, 연습할 거야.

춤추면서,

탬버린을 칠 수 있도록 말이야."



"연습할 거야."라는 곰의 말이

"(네 슬픔도 헤아릴 수 있도록) 노력할 거야."로 읽히는 건 왜일까.

나의 슬픔을 네가 알아주었듯 나도 네 슬픔에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별로 인해 빈 자리를 비록 부족하지만 내가 채워주고 싶다는 말로도 들린다.


책에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도 들고양이는 곰과 비슷한 일을 겪은 듯하다. 그래서 곰에게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있는 말을 건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경험하고 느껴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잘 모르는 슬픔이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가? 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우리는 그저 공감하려고 노력할 뿐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타인의 슬픔이나 고통에 깊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너무나 부족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말없이 그 사람을 지켜봐주는 것뿐이다.

위로랍시고 건네는 말들이 슬픔의 당사자에겐 또다른 생채기를 남기고 상처를 후비는 일이 된다면

그냥 침묵을 택하기로 하자. 대신 그 사람을 향해 안테나를 바짝 세우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본 도서는 제이그림책포럼 서평 이벤트를 통해 웅진주니어로부터 제공받았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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