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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요괴 - 2017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수상작 ㅣ 밝은미래 그림책 51
마누엘 마르솔 그림, 카르멘 치카 글, 김정하 옮김 / 밝은미래 / 2021년 10월
평점 :

길을 잃고 나서야,
다시 말하면 세상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하며,
우리의 위치와 우리의 관계의 무한한 범위를 깨닫기 시작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 중에서
여기, 숲속에서 길을 잃은 한 남자가 있습니다.
매일같이 빨간 트럭을 몰고 산을 넘는 남자.
그 트럭엔 피스파스(, 즉 빠른 배송을 강조하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요. 배송 관련 일을 하는 그 남자의 바쁜 일상이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지네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배송 트럭을 몰고 산을 오르던 그는 뜻밖의 상황과 마주하게 되는데요.
그것은 바로 배변감. 화장실도 없는 산 중턱에서 갑자기 신호를 보내오는 자신의 대장에 배신감을 느낄 겨를도 없이
그는 바로 차를 세웁니다. 그리고 황급히 숲속으로 들어가 쿠르르쾅쾅!!
그런데 말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납니다.
시원하게 볼 일을 마쳤으니 서둘러 트럭이 있는 곳으로 나가 출발해야 하는데
어느 길로 들어왔는지 당최 찾을 수가 없다는 거.
잔뜩 당황한 모습으로 숲을 헤매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습니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어요.
아무도 없어요."
남자의 독백인지, 작가의 말인지 불분명하나
길을 잃고 헤매는 남자 곁에 사람이 없다는 건 확실합니다.
주변에 있는 것이라곤 나무와 꽃과 산짐승들 그리고.... 정체 불명의 무언가가 있을 뿐.
길 잃고 헤매는 남자를 계속해서 예의주시하고 있는,
검은 몸체에 붉은 눈을 하고 있는 이것의 정체는 뭘까요.
이 책의 제목 그대로 "숲의 요괴"일까요?
그러고 보니 '이것'의 등장 이후로 남자에게는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는데요.
그것은 바로
꽃향기를 맡는 코와 독수리의 날개 치는 소리를 듣는 귀,
나무 구멍을 통과한 손과 시냇물에 담근 발이 비정상적으로 커진다는 점.
그리고 이보다 더 결정적인 장면은
깊은 산속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산꼭대기까지 올라간 남자가 요상하고 기괴한 존재로 변해있던 것이죠.

기괴한 모습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이 남자 (아니 괴물, 요괴??)
자신의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표정만큼은 사람이었을 때와는 다르게 진심으로 해맑고 행복해 보입니다.
아까부터 내내 이 남자 곁을 맴돌던 정체불명의 무언가도 전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말이죠.
이쯤에서 독자들은 슬슬 아저씨의 생계가 (목이 빠져라 택배를 기다리는 수화인들의 항의로 인해) 곤란해지지 않을까
걱정되기 시작하는데요.
다행히 아저씨는 자연속에서 맘껏 뛰놀다가 산을 내려옵니다.
숲에서 길을 잃은 덕분에 놀랍고도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 이 남자.
어느 쪽이 이 남자의 본모습일까요?
'숲의 요괴'는 어쩌면 이 남자를 가리키는 게 아닐런지요.
잠시동안 자연에 온통 마음이 쏠려 자신의 존재마저 망각하는 무아지경에 이르렀던 경험은
앞으로 남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지는데요.
길을 잃고 나서야 자연의 방대함과 기기묘묘함을 느끼고,
무엇보다 잃어버린(잊고 지낸) 자신의 본모습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숲의 요괴> 책장을 덮으며 다시금 떠오르는 생각입니다.
* 서평이벤트에 당첨되어 밝은 미래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