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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화당의 여장부, 박씨 - 박씨전 ㅣ 처음부터 제대로 우리 고전 3
김영미 지음, 소복이 그림 / 키위북스(어린이) / 2022년 1월
평점 :
부채로 얼굴을 반 이상 가린 여인의 모습이 매우 신비로워 보입니다. 주변을 감싼 용과 호랑이의 기운 또한 예사롭지 않고요. 그림 작가가 누군가 보니, 아~~~~~'소복이' 작가님이시군요. 책 속에 어떤 그림들이 담겨 있을까 기대에 가득차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 책장을 휘리릭 넘겨보았습니다만. 감상할 수 있는 그림이 거의 없고, 크기 또한 매우 작아서 아쉬웠습니다. 그림책이 아니니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좀 많이 아쉽더라고요.
그러나 아쉬움도 잠깐!
글 작가인 김영미 작가의 여는 글이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왜 여자 영웅의 이야기는 드문 걸까요?
우리는 여자 영웅의 이야기를 만들거나 찾아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실제로는 우리 주변에는 여자 영웅이 많은데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
<박씨전> 그런 의미에서 아주 반갑고 고마운 이야기책이랍니다. 여자들이 차별과 억압 속에서 살아야 했던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동서양의 고전 소설을 통틀어 손에 꼽힐 정도로 씩씩하고 매력적인 여자 영웅이 나오거든요."
차별과 억압으로 여성에게 특히나 가혹했던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전개될 박씨전.
대강의 줄거리만 알고 있었지, 한 권의 책도 읽어보지 않았던 터라 호기심을 가지고 책장을 넘겨보았는데요.
흡입력있게 술술 읽히는 것이 꽤나 흥미진진, 재밌었습니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조선 인조 임금 때 이득춘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어느 날 우연히 박처사를 만나게 되고, 박처사의 제안으로 서로의 아들 딸을 혼인시키기로 약속을 하죠. 득춘의 아들 시백은 훌륭한 외모에 아버지를 닮이 지적인 능력까지 뛰어난 걸로 그려지는데요. 딸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사윗감으로 욕심낼 만한 시백. 도인 또는 신선으로 그려지는 박처사라도 시백의 매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거겠죠.
그렇다면 이쯤에서 박처사의 딸은 어떨지 궁금해지는데요.
금강산에서 혼인 후 시백의 집에 와서야 얼굴 모습을 드러낸 박씨의 모습 또한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그게 말이죠. 못생겨도 너~~~무 못생겨서 시백은 물론 시아버지 득춘까지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는 거 아닙니까. ㅜㅠ
외모가 추한 탓에 남편인 시백에게 외면당하고 집에서 일하는 하인에게조차 무시 당하는 박씨. 박씨는 시아버지 득춘에게 뒤뜰에 초당을 하나 지어 달라고 하는데요.
여기서 잠깐!!! '초당'이라 함은 초가집을 가리킨다고 본문에도 친절히 설명되어 있는데요. 위에서 보듯 책표지에서는 물론 각 장의 시작 부분에 나오는 그림에도 모두 기와 지붕 형태로 표현되어 있어서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보입니다.
암튼 박씨는 득춘이 지어준 초당에 '피화당'이라는 현판을 걸고 그곳에서 여종 계화와 함께 외로운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박씨는 놀라운 재주 몇 가지를 보여주는데요. 갑작스레 입궐하게 된 득춘의 조복을 하룻밤만에 지어내고, 삼백 냥 짜리 비루한 말을 삼만 냥 천리마로 만들어 이윤을 남기지요. 그뿐 아니라 신비한 연적을 시백에게 전해 장원 급제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해요.
이같은 일들이 외로운 박씨의 삶에 변화를 가져다줬으면 좋으련만 여전히 시백은 박씨를 외면하네요.
시간은 흘러 박씨가 혼인한지 3년이 되던 해,
박처사가 박씨를 찾아옵니다. 그리고는 말하죠.
"너의 액운이 다했으니 이제 그 누추한 허물은 벗어라."
허물을 벗은 박씨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모두의 짐작대로 절세가인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박씨의 아름다운 외모에 시백은 홀딱 반하고, 지난 날을 후회하며 반성합니다. 잘못을 뉘우치는 시백을 박씨는 넓은 품으로 용서하며 둘은 드디어 첫날밤을 보냅니다. ❤️ ❤️ ❤️
박씨와 시백이 금슬 좋은 부부가 되었다는 점에서
박씨의 변신은 참 다행이다 싶지만,
꼭 아름다운 외모로 변신해야만 하는가에 생각이 미치면 약간의 아쉬움이 듭니다. 물론 박씨의 지혜롭고 어진 성품이 아름다운 외모와 만나 시너지를 낸 건 사실이지만요.
이후 박씨는 조선을 위협하려고 드는 오랑캐의 첩자와 장수들을 기지를 발휘해 제압하는 등 많은 활약을 하게 되는데요.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매우 박진감 있게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 책의 여는 글에서 보았듯이 박씨는 매우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보기 드물게 재주와 덕을 갖추기까지 했고요.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박씨의 삶의 변화를 이끈 터닝포인트가 외모의 변화, 변신이었다는 점입니다.
변신 이전에도 박씨는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일들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박씨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은 그때 잠깐뿐이었지요. 박씨에 대한 비호감이 호감으로 변하기에는 재주 하나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는게 사실입니다. 역시 여자는 예뻐야 하는 걸까요? 이것이 여자 영웅 이야기의 한계라면 한계겠지요. 남자 영웅 또한 외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역시나 마찬가지고요.
한편 후반부에서는 여종 계화의 활약이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같은 여자라도 양반가의 부인인 박씨보다 종의 신분인 계화의 운신의 폭이 훨씬 더 자유로웠기에 계화는 자신의 모습을 유감없이 드러내놓고 오랑캐 장수 용울대의 목을 벨 수 있었거든요.
"나는 이 댁의 여종 계화다. 오랑캐 장수 따위가 하찮은 힘만 믿고 당돌하게 쳐들어왔으니 우리 댁 부인께서 네 머리를 베어 오라 하신다. 그러니 순순히 내 칼을 받아라!"
칼을 들고 오랑캐 앞에 나서며 이 대사를 읊는 계화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여종 계화의 이야기가 좀 더 비중있게 다뤄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마지막으로 이 책의 좋은 점에 대해 얘기하면서 마무리할게요.
첫번째로는 고전을 처음 접하는 아이들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옛말에 대한 설명, 뜻풀이가 친절하게 나와 있다는 점이고요.
두번째는 <박씨전>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설명과 역사 속 실제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이 부록으로 실려 있어서 매우 유용하다는 점이에요. 재미있는 이야기도 읽고 역사도 배우고 일석이조죠.
서평이벤트에 당첨되어 키위북스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은 도서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