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밤 고래뱃속 창작그림책
퍼트리샤 토마 지음, 백지원 옮김 / 고래뱃속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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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동물은 동화 속에만 존재합니다."
- 퍼트리샤 토마



퍼트리샤 토마 작가의 <두 개의 밤>에는 사슴과 늑대가 등장합니다.
세상 모두가 잠든 밤, 배고픈 늑대가 먹잇감을 찾으며 이야기가 시작되지요.
곤히 잠자던 엄마 사슴과 아기 사슴은 늑대의 표적으로 아주 딱이었습니다. 둘은 늑대에게 쫓기게 되는데, 아기 사슴이 엄마를 놓치고 맙니다.
이제 늑대와 아기 사슴 간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되는데요.

다행히도 아기 사슴은 고사리 덩굴 속으로 몸을 숨겨 늑대를 따돌리는데 성공합니다.
이 장면에서 이어지는 먹잇감을 놓친 늑대와 엄마를 놓쳐버린 아기 사슴의 절규가 아주 기가 막히게 들리는데요.

늑대 : "배고파아아아아아!"(아 5개)
아기 사슴 : "엄마아아아아아아!"(아 6개)

아기 사슴의 외침이 엄마 사슴에게 닿았던가요. 엄마가 아기 사슴을 찾아옵니다. 그리고는 아기 사슴에게 이렇게 말하며 젖을 물립니다.

"많이 배고팠지?"(엄마 사슴이 아기 사슴에게)

사슴 어머님 "많이 무서웠지?"도 아니고 "많이 배고팠지?"라뇨. (뜬금없다 느끼는 건, 혹시 저 하나인가요?)
"배고파아아아아아!"라고 외친 건 늑대였지, 사슴이 아니었는데 말이죠. (엄마가 늑대 소리를 착각했을리 없고...음...미스터리~)

한편 먹잇감을 놓친 늑대는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데... 고개를 푹 숙인 모습이 무척 서글프고 처량하게 느껴집니다.


서평을 작성하던 중에 우연히 고래뱃속 출판사의 퍼트리샤 토마 작가 인터뷰 글을 보게 되었는데요.
이 글을 시작하며 언급했던
"사악한 동물은 동화 속에서만 존재합니다."라는 작가의 말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의 생각이 <두 개의 밤>에 모두 녹아들어가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고요.

<두 개의 밤>은 동물의 세계에서 먹고 먹히는 관계를 두고 선과 악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건 무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요. 평소 이런 주제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던지라 꽤나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하나의 사건이 되었든 간에 그것을 단순히 평면적으로만 바라볼 게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양면성을 다각도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제목이 "두 개의 밤"이 되었을까요???)


마지막으로 <두 개의 밤>을 보면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그림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죠.
종이 위에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데 그치지 않고, 종이를 여러 겹으로 오리고 붙여서 입체감을 살린 흔치 않은 기법과 매장면 배경으로 등장하는 꽃과 식물에 내포된 의미, 상징일텐데요.
식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 출판사 책소개와 작가 인터뷰 등을 통해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감정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식물들을 통해 각 장면의 정서를 표현했습니다. 사슴들이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첫 번째 장면에는 달콤한 블랙베리를, 늑대가 사슴을 쫓는 두 번째 장면에는 독성이 있는 붉은색의 디기탈리스를 그려 넣었습니다. 쫓기는 아기 사슴 앞에는 덫처럼 생긴 파리지옥을 그렸고 추격을 멈추지 않는 늑대 옆에는 인동덩굴을 넣었죠. 엄마를 잃어버린 아기 사슴 곁에는 꺾여버린 초롱꽃을 넣어 패닉을 상징했습니다. 사슴이 엄마를 부르는 장면에는 달맞이꽃으로 기다림의 정서를 표현했고, 불룩한 모양의 노란색 복주머니란은 배 속의 아기를 기다리는 늑대 부부 곁에 들어가 있습니다."- 퍼트리샤 토마

배경에 그려진 꽃과 식물들의 의미를 알고나니 <두 개의 밤> 이야기가 한결 더 풍성하게 다가오는데 어떠신가요?
각 식물들의 실제 사진과 그림을 찾아 비교해보는 것도 참 흥미롭더라고요. 꼭 한 번 검색해 보길 추천합니다.

간결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결코 단순하지 않은 그림책 <두 개의 밤>, 책을 덮어도 머릿 속에서 끝나지 않을 이야기 속으로 초대합니다. 꼭 오셔서 보세요.^^


서평이벤트를 통해 고래뱃속으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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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그믐날 밤 작품 해설과 함께 읽는 작가앨범
방정환 지음, 허구 그림, 장정희 해설 / 길벗어린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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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통해 모르고 지나쳤을 법한 것들을 배웁니다.

하나, 소파 방정환(방정환 선생님의 호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선생님을 단순히 어린이날을 만든 분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아동문학가였다는 사실.
둘, 어린이날이 처음부터 5월 5일이 아니었다는 점. 
5월 1일이었다가 해방 후부터 5월 5일로 정해져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사실.
셋, 올해가 어린이날 100주년이라는 점.

몰라도 사는데 큰 지장이 없겠지만 이렇게 알고 있어서 손해 볼 일도 없겠지요. 오늘도 그림책을 통해 "지식+1", 아는 것이 늘었습니다.

마침 어린이날 100주년 기념으로 새롭게 출간된 <4월 그믐날 밤>을 아름다운 5월, 서평이벤트를 통해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미술관에 온 듯 멋지고 아름다운 그림과 새 세상이 열리는 첫날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4월 그믐날 밤>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모두가 잠든 밤 고운 빛깔의 치마를 입은 각양각색의 꽃들이 내일 있을 잔치 준비로 분주합니다. 날이 밝으면 좋은 세상이 온다며 모두 새 옷을 입고 준비중이지요. 그 곁에는 말없이 이 모두를 지켜보는 소녀가 있고요.

그때 조그만 인력거 하나가 참새 새끼를 태우고 등장하는데요. 이를 본 꽃들이 놀라서 우르르 몰려갑니다. 내일 잔치를 위해 제비와 종달새들은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 중인데 독창을 하기로 한 꾀꼬리가 목 병이 났다는군요.
꾀꼬리 걱정을 하던 꽃들은 좋은 꿀을 참새 편으로 꾀꼬리에게 전달합니다. 약으로 먹고 얼른 목병이 낫기를 바라면서요.
참새가 돌아간 후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 제비.
꽃들에게 일일이 수고가 많다며 인사를 건네는데요. 제비는 5월이 온줄도 모르고 잠자는 꽃과 벌레를 깨워 놓고 왔다네요.
5월 초하루, 날이 밝기도 전에 모두들 각자의 자리로 이동해 잔치 손님을 맞이하는데요. 목병이 나서 걱정했던 꾀꼬리가 도착하자 모두들 환호합니다.
일 년 중 가장 빛나는 햇볕이 비추고 잔치 분위기는 무르익어 갑니다. 온갖 새들이 5월의 노래를 부르고 거기에 맞춰 나비들이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
즐거운 봄이었습니다. 좋은 놀이였습니다.

특별나게 햇볕 좋은 아침에 사람들은 모여들면서
"아이고, 복사꽃이 어느 틈에 저렇게 활짝 피었나!"
"아이그, 이게 웬 나비들이야!"
"인제 아주 봄이 익었는걸!"
하고 기쁜 낯으로 이야기하면서 보고들 있었습니다.

5월 초하루는 참말 새 세상이 열리는 첫날이었습니다."

어린이날 축제를 준비하는 꽃과 동물들, 그리고 깊은 밤 홀로 깨어 말없이 이들을 바라보는 단발머리 소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잔뜩 풍기는 그림이 책을 보는 내내 눈을 즐겁게 해줍니다. 
책 마지막 부분에 실린 작품 해설에 따르면 <4월 그믐날 밤>은 방정환 선생이 쓴 대표 창작 동화로 인간이 관찰자가 되어 그려 낸 아름다운 판타지 동화라고 하네요. 이런 설명이 아니더라도 책을 보는 내내 환상의 세계에 초대된 듯한 느낌이 가득합니다.  

한편 잔치를 위해 서로 돕고 협력하는 꽃과 새들의 모습은 방정환 선생의 평소 생각이 이야기 속에 자연스레 녹아든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방정환 선생이 창간한 잡지 <어린이>에는 늘 이런 구호가 실렸다고 합니다.

"씩씩하고 참된 소년이 됩시다. 
그리고 늘 서로 사랑하며 도와 갑시다."


목 병이 난 꾀꼬리를 걱정해주고 챙기는 꽃들의 모습과 잔치 준비에 한창인 꽃들을 일일이 격려하는 제비의 모습 속에서 "늘 서로 사랑하며 도우라"는 방정환 선생의 메시지가 전해지는데요.
<4월 그믐날 밤>을 어린이와 함께 읽으며,
어린이에 대한 인격적 대우와 사회적 지위를 위해 헌신한 방정환 선생의 노력들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면 좋을 듯 합니다. 그런데 옆에 어린이가 없으시다고요? 지금은 청소년이 된 자녀도, 아니면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한때는 어린이었다는 사실. 그 때 그 시절, 어린이었던 나를 떠올려보는 것 또한 의미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린이날 100주년 기념 <4월 그믐날 밤> 도서를 길벗어린이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아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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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던 용기
휘리 지음 / 창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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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 of sight, out of mind.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던가요. 친구와 나 사이에 겨우 한 번의 겨울방학이 지났을 뿐인데, 방학이 끝나고 마주친 둘 사이엔 반가움보다 서먹한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늘 함께였는데, 이제는 눈이 마주쳐도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렸어요. 특별한 이유도 없이 점점 멀어지는 친구와 나의 사이...


"한번 놓친 인사는 시간이 갈수록 하기 어려웠어."<잊었던 용기> 중에서
멀리서 힐끔힐끔 친구를 살피는 나.
인사라도 먼저 건네지 못하고 망설이는 이유는 자존심 그 비슷한 감정 때문일까요. 내가 먼저 굽히고 들어가는듯한 그 느낌 말이죠. 그런데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타이밍! 서먹해진 사이를 좁히려면 망설이며 시간을 허비할 게 아니라 재빨리 행동에 나서야 하는데 말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안녕!" 이라는 말 한마디 건네는 그 쉽고 간단한 일이 정말 어려운 일이 되는데... 서로 떨어져 바라보는 저 거리만큼이나요.


"친구가 내게 먼저 말걸어 주기를 기다렸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잊었던 용기>증에서
망설이는 사이, 어느덧 봄은 오고 봄꽃이 활짝 피었어요.
이 좋은 날, 친구와 함께라면 더없이 좋고 행복할텐데.
여전히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창밖만 내다 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당연한 일.

책을 보다가 이 장면에서는 옛일이 떠올라 이렇게 말하고 싶어질지 몰라요. "어서 그 애에게 뭐라도 말을 해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더불어 지난 시절, 망설이다 멀어진 거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놓친 인연들을 함께 떠올리게 될지도요.


"나는 친구와 다시 가까워지고 싶어.
손잡고 인사하고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다 말하고 싶어." <잊었던 용기>중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친구와 예전처럼 가깝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들기는커녕 점점 더 커져만 가요. 그래서 봄이 가기 전에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내는데요. 친구에게 편지가 도착해 답장이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길게만 느껴졌을 거예요.



먼저 편지 보내 줘서 고마워.
나도 사실은 너와 인사하고 싶었거든. <잊었던 용기>중에서
친구 역시 나와 같은 생각, 나와 똑같은 마음이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비로소 '나'의 마음도 꽃이 만발한 진짜 봄을 맞이합니다. 친구 없는 봄은 따뜻한 봄이 아니었을테니까요. 그래서일까요. 둘 사이의 서먹함이 눈녹듯 사라지는 이 페이지가 참 좋았어요.
나 혼자만 친구와 다시 가까워지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는 걸 확인했을 때의 그 기쁨은...왈칵 눈물을 쏟게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이제 네가 싫어졌어."라며 행여 매몰찬 답장이 오면 어쩌나 움츠러든 마음이 단번에 스르르 녹아내리듯이 말이죠.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게 착각이었든 아니면 섬세하지 못한 탓에 나와 그애 사이가 서먹해진 이유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해서였든...먼저 나의 마음을 열어 보이고,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해 손 내미는 일은 늘 제 몫이었던 때가 있었어요. 멀어진 관계로 인해 괴로운 밤을 보내는 것보단 차라리 용기 내서 내 진심을 말하는 쪽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그게 상대에 따라 제게 상처로 다가올 때도 있었어요. 어떤 상황에서든 늘 먼저 다가서고 마음을 터놓는 저를 '쉬운 아이', '만만한 상대'라고 여기는 친구도 있었거든요. 그런 일을 몇 차례 겪은 후 저는 용기를 잊었다기보다는 그냥 외면하며 지내왔던 것 같아요.

'나도 알아. 이쯤에서 내가 먼저 전화를 하거나 톡을 보내면 서먹한 이 관계를 다시 회복시킬 수 있다는 걸. 하지만 왜 그래야하지? 그것도 왜 늘 내가 먼저 해야 하냐구. 솔직한 내 마음을 보여줬을 때 돌아오는 상처, 더 이상 아파하고 싶지 않아.' 하며 먼저 손 내밀 수 있는 용기를 차츰 외면하며 살아온 거죠.

<잊었던 용기>는 나에게도 있었던 좋은 점들을 다시 기억나게 해줬어요.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가끔은 그 끈을 확 놓아버리고 싶은 때가 종종 있는데요. '비록 지금은 이모양이지만, 지난 날의 나는 용감하게도(?) 참 솔직했고 먼저 다가설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라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갔던 지난 날들,
잊은 척 외면해왔던 내 안에 숨은 보석 "용기"를 꺼내봅니다.
마음과 마음은 통하는 거라고 제가 먼저 내민 손, 거짓 없이 열어보인 제 마음을 내친 이들 보다 따뜻하게 받아준 이들이 훨씬 더 많았음을 기억하며 말입니다.


서평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제공받았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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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보다 태양 스콜라 창작 그림책 51
마시 캠벨 지음, 코리나 루켄 그림, 김세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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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공학(남녀합반은 아니였음) 중학교를 다녔던 제게 음악실은 아주 징글징글한 장소였어요. 음악 시간이면 각 교실이 아닌 음악실로 이동해서 수업을 받아야 했거든요. 이게 뭐 그렇게 징글징글할 일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제겐 그랬어요. ㅜㅠ 사춘기 남녀 학생, 학년 전체가 돌아가며 사용하는 음악실이란...어휴. 그 시절 피끓는 청춘들의 오작교 역할을 했던 음악실, 그리고 그곳 책상 위에 토해낸 엄청난 낙서들. 그걸 본다면 "충분히 그럴만도 해.' 하실 거예요.

책상에는 '화이트'라 불리던 수정액부터, 사인펜, 볼펜, 심지어 조각칼까지 이용한 낙서들이 빼곡했는데요. 음악선생님은 매 수업 시작 전후로 책상을 검사하셨어요. 그러다 혹시라도 새로운 낙서가 발견되면 반 전체가 기합. 아주 징글징글했어요. 성악 전공(부전공으로 기합??)의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그분 덕분에 별의별 기합을 다 체험해볼 수 있던 시절이었거든요.

몇몇 날라리들이 낙서하다가 걸리는 날이면 어휴...
원산폭격의 날이 되는데요. 저는 이거 진짜 못해서 흑흑... 원인제공자인 날라리들에게 "늬들, 수업 끝나고 남아! 가만 안두겠어!!"라고 으름장을 놓고 싶었으나...그러지는 못하고 속으로만 분을 삼켰드랬죠.
(원산폭격이라 함은 일명 "대가리 박아!" 자세예요. 바닥에 머리 박고 멒드려 뻗쳐서 손은 열중 쉬어 자세. ㅜㅠ)

이런 가혹한 벌이 낙서를 줄이는데 효과가 있었냐고요?
전혀요. 오히려 낙서 내용에 선생님을 욕하는 내용이 추가되었다는 거 외에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어요.
낙서가 발견될 때마다 반 전체 학생은 버러지만도 못한 존재가 되어 가혹행위를 겪어야만 했던 그 시절...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구름보다 태양>에 나오는 낙서가 지난 옛 시절의 기억까지 소환하게 할 줄이야. 암튼 그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구름보다 태양>은 학교 여자 화장실 벽에 써 있는 나쁜 말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청소부 아주머니가 발견한 그 '나쁜 말'.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끝내 밝혀지진 않지만 그것의 부정적인 파급력으로 미루어볼 때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의 것임은 분명해요. 나쁜 말이 발견된 이후로 아이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걱정을 하거나 불안해하고, 전보다 더 못되게 구는 등 문제행동을 보이게 되거든요.


아이들의 변화를 재빠르게 감지한 교장 선생님은 전교생을 강당으로 불러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줘요.

"우리 모두는 특별하고, 우리 학교도 특별하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 무엇보다 고운 마음을 가졌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다.
따라서 지금 이곳에 나쁜 말이 설 자리는 없다."라고요.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림 속 아이들의 제각각인 표정만 봐서는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아이들 마음 속에 뭔가가 분명 꿈틀대기 시작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번에는 담임 선생님이 학교를 상징하는 배지를 나눠주며 이런 얘기를 해줍니다.

"너희가 누구인지 꼭 기억하렴."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와 연결지어 본다면
"세상 무엇보다 고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란 걸 기억하라는 의미겠지요?


한편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해주는데요. 그것은 나쁜 말이 적혀 있는 화장실 벽을 바꾸는 일이었어요. 아이들은 나쁜 말이 적혀 있는 벽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채워 넣으며 나쁜 말이 내뿜었던 부정적인 영향권에서 조금씩 벗어나는듯 보였지요.
그러나 나쁜 말은 그림 아래 벽 그곳에, 그리고 이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 이것은 아이들을 다시 또 의기소침하게 만드는데요. 이에 대해 선생님은 나쁜 말은 남아있지만 우리가 믿는 좋은 것들로 그 벽을 칠했을 때 이미 달라진 거라고 알려줘요.
교장 선생님도 멋지지만, 담임 선생님도 참 훌륭한 분이란 생각이 드는 장면이었어요.

이후 아이들은 나쁜 말이 써져 있던 벽에 자신들이 그린 벽화를 보며 시를 쓰는데요. 짧지만 마음에 참 와닿는 내용이라 이곳에 옮겨 봅니다.


회색보다 초록이,
구름보다 태양이 더 많다.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이,
미움보다 사랑이 더 많다.

우리 안에 담겨진 많은 것들중에서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려준 고마운 선생님. 덕분에 회색보다 초록을, 구름보다 태양을, 보다 좋은 것을 선택하는 방법을 알게 된 아이들. 앞으로 만나게 될 세상의 온갖 나쁜 말들 앞에서도 아이들은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분명 배웠으리라 생각해요.

앞서 잠깐 짚어본 중학생 시절의 나였다면 상상도 못했을 이야기들을 이렇게 그림책을 통해 만나보니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과거 학창 시절의 나는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이 더 많다고 믿고 자랐지만 우리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을 거란 믿음이 생겼으니까요. 그리고 '나쁜 말'에 노출된 아이들을 현명하게 이끌어줄 멋진 어른들이 많아졌다는 것에 안심도 되고요.


앞으로 우리가 사는 동안 우리 앞에 수많은 나쁜 X, XX, XXX들이 덤벼들어 우리의 영혼을 갉아 먹으려 할 때면 주문처럼 외워 봐요, 이렇게!

구름보다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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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그림책포럼 서평단에 당첨되어 위즈덤하우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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