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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보다 태양 ㅣ 스콜라 창작 그림책 51
마시 캠벨 지음, 코리나 루켄 그림, 김세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2월
평점 :
남녀공학(남녀합반은 아니였음) 중학교를 다녔던 제게 음악실은 아주 징글징글한 장소였어요. 음악 시간이면 각 교실이 아닌 음악실로 이동해서 수업을 받아야 했거든요. 이게 뭐 그렇게 징글징글할 일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제겐 그랬어요. ㅜㅠ 사춘기 남녀 학생, 학년 전체가 돌아가며 사용하는 음악실이란...어휴. 그 시절 피끓는 청춘들의 오작교 역할을 했던 음악실, 그리고 그곳 책상 위에 토해낸 엄청난 낙서들. 그걸 본다면 "충분히 그럴만도 해.' 하실 거예요.
책상에는 '화이트'라 불리던 수정액부터, 사인펜, 볼펜, 심지어 조각칼까지 이용한 낙서들이 빼곡했는데요. 음악선생님은 매 수업 시작 전후로 책상을 검사하셨어요. 그러다 혹시라도 새로운 낙서가 발견되면 반 전체가 기합. 아주 징글징글했어요. 성악 전공(부전공으로 기합??)의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그분 덕분에 별의별 기합을 다 체험해볼 수 있던 시절이었거든요.
몇몇 날라리들이 낙서하다가 걸리는 날이면 어휴...
원산폭격의 날이 되는데요. 저는 이거 진짜 못해서 흑흑... 원인제공자인 날라리들에게 "늬들, 수업 끝나고 남아! 가만 안두겠어!!"라고 으름장을 놓고 싶었으나...그러지는 못하고 속으로만 분을 삼켰드랬죠.
(원산폭격이라 함은 일명 "대가리 박아!" 자세예요. 바닥에 머리 박고 멒드려 뻗쳐서 손은 열중 쉬어 자세. ㅜㅠ)
이런 가혹한 벌이 낙서를 줄이는데 효과가 있었냐고요?
전혀요. 오히려 낙서 내용에 선생님을 욕하는 내용이 추가되었다는 거 외에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어요.
낙서가 발견될 때마다 반 전체 학생은 버러지만도 못한 존재가 되어 가혹행위를 겪어야만 했던 그 시절...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구름보다 태양>에 나오는 낙서가 지난 옛 시절의 기억까지 소환하게 할 줄이야. 암튼 그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구름보다 태양>은 학교 여자 화장실 벽에 써 있는 나쁜 말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청소부 아주머니가 발견한 그 '나쁜 말'.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끝내 밝혀지진 않지만 그것의 부정적인 파급력으로 미루어볼 때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의 것임은 분명해요. 나쁜 말이 발견된 이후로 아이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걱정을 하거나 불안해하고, 전보다 더 못되게 구는 등 문제행동을 보이게 되거든요.
아이들의 변화를 재빠르게 감지한 교장 선생님은 전교생을 강당으로 불러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줘요.
"우리 모두는 특별하고, 우리 학교도 특별하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 무엇보다 고운 마음을 가졌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다.
따라서 지금 이곳에 나쁜 말이 설 자리는 없다."라고요.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림 속 아이들의 제각각인 표정만 봐서는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아이들 마음 속에 뭔가가 분명 꿈틀대기 시작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번에는 담임 선생님이 학교를 상징하는 배지를 나눠주며 이런 얘기를 해줍니다.
"너희가 누구인지 꼭 기억하렴."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와 연결지어 본다면
"세상 무엇보다 고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란 걸 기억하라는 의미겠지요?
한편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해주는데요. 그것은 나쁜 말이 적혀 있는 화장실 벽을 바꾸는 일이었어요. 아이들은 나쁜 말이 적혀 있는 벽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채워 넣으며 나쁜 말이 내뿜었던 부정적인 영향권에서 조금씩 벗어나는듯 보였지요.
그러나 나쁜 말은 그림 아래 벽 그곳에, 그리고 이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 이것은 아이들을 다시 또 의기소침하게 만드는데요. 이에 대해 선생님은 나쁜 말은 남아있지만 우리가 믿는 좋은 것들로 그 벽을 칠했을 때 이미 달라진 거라고 알려줘요.
교장 선생님도 멋지지만, 담임 선생님도 참 훌륭한 분이란 생각이 드는 장면이었어요.
이후 아이들은 나쁜 말이 써져 있던 벽에 자신들이 그린 벽화를 보며 시를 쓰는데요. 짧지만 마음에 참 와닿는 내용이라 이곳에 옮겨 봅니다.
회색보다 초록이,
구름보다 태양이 더 많다.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이,
미움보다 사랑이 더 많다.
우리 안에 담겨진 많은 것들중에서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려준 고마운 선생님. 덕분에 회색보다 초록을, 구름보다 태양을, 보다 좋은 것을 선택하는 방법을 알게 된 아이들. 앞으로 만나게 될 세상의 온갖 나쁜 말들 앞에서도 아이들은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분명 배웠으리라 생각해요.
앞서 잠깐 짚어본 중학생 시절의 나였다면 상상도 못했을 이야기들을 이렇게 그림책을 통해 만나보니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과거 학창 시절의 나는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이 더 많다고 믿고 자랐지만 우리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을 거란 믿음이 생겼으니까요. 그리고 '나쁜 말'에 노출된 아이들을 현명하게 이끌어줄 멋진 어른들이 많아졌다는 것에 안심도 되고요.
앞으로 우리가 사는 동안 우리 앞에 수많은 나쁜 X, XX, XXX들이 덤벼들어 우리의 영혼을 갉아 먹으려 할 때면 주문처럼 외워 봐요, 이렇게!
구름보다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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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그림책포럼 서평단에 당첨되어 위즈덤하우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음을 알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