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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던 용기
휘리 지음 / 창비 / 2022년 4월
평점 :
Out of sight, out of mind.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던가요. 친구와 나 사이에 겨우 한 번의 겨울방학이 지났을 뿐인데, 방학이 끝나고 마주친 둘 사이엔 반가움보다 서먹한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늘 함께였는데, 이제는 눈이 마주쳐도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렸어요. 특별한 이유도 없이 점점 멀어지는 친구와 나의 사이...
"한번 놓친 인사는 시간이 갈수록 하기 어려웠어."<잊었던 용기> 중에서
멀리서 힐끔힐끔 친구를 살피는 나.
인사라도 먼저 건네지 못하고 망설이는 이유는 자존심 그 비슷한 감정 때문일까요. 내가 먼저 굽히고 들어가는듯한 그 느낌 말이죠. 그런데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타이밍! 서먹해진 사이를 좁히려면 망설이며 시간을 허비할 게 아니라 재빨리 행동에 나서야 하는데 말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안녕!" 이라는 말 한마디 건네는 그 쉽고 간단한 일이 정말 어려운 일이 되는데... 서로 떨어져 바라보는 저 거리만큼이나요.
"친구가 내게 먼저 말걸어 주기를 기다렸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잊었던 용기>증에서
망설이는 사이, 어느덧 봄은 오고 봄꽃이 활짝 피었어요.
이 좋은 날, 친구와 함께라면 더없이 좋고 행복할텐데.
여전히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창밖만 내다 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당연한 일.
책을 보다가 이 장면에서는 옛일이 떠올라 이렇게 말하고 싶어질지 몰라요. "어서 그 애에게 뭐라도 말을 해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더불어 지난 시절, 망설이다 멀어진 거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놓친 인연들을 함께 떠올리게 될지도요.
"나는 친구와 다시 가까워지고 싶어.
손잡고 인사하고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다 말하고 싶어." <잊었던 용기>중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친구와 예전처럼 가깝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들기는커녕 점점 더 커져만 가요. 그래서 봄이 가기 전에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내는데요. 친구에게 편지가 도착해 답장이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길게만 느껴졌을 거예요.
먼저 편지 보내 줘서 고마워.
나도 사실은 너와 인사하고 싶었거든. <잊었던 용기>중에서
친구 역시 나와 같은 생각, 나와 똑같은 마음이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비로소 '나'의 마음도 꽃이 만발한 진짜 봄을 맞이합니다. 친구 없는 봄은 따뜻한 봄이 아니었을테니까요. 그래서일까요. 둘 사이의 서먹함이 눈녹듯 사라지는 이 페이지가 참 좋았어요.
나 혼자만 친구와 다시 가까워지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는 걸 확인했을 때의 그 기쁨은...왈칵 눈물을 쏟게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이제 네가 싫어졌어."라며 행여 매몰찬 답장이 오면 어쩌나 움츠러든 마음이 단번에 스르르 녹아내리듯이 말이죠.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게 착각이었든 아니면 섬세하지 못한 탓에 나와 그애 사이가 서먹해진 이유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해서였든...먼저 나의 마음을 열어 보이고,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해 손 내미는 일은 늘 제 몫이었던 때가 있었어요. 멀어진 관계로 인해 괴로운 밤을 보내는 것보단 차라리 용기 내서 내 진심을 말하는 쪽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그게 상대에 따라 제게 상처로 다가올 때도 있었어요. 어떤 상황에서든 늘 먼저 다가서고 마음을 터놓는 저를 '쉬운 아이', '만만한 상대'라고 여기는 친구도 있었거든요. 그런 일을 몇 차례 겪은 후 저는 용기를 잊었다기보다는 그냥 외면하며 지내왔던 것 같아요.
'나도 알아. 이쯤에서 내가 먼저 전화를 하거나 톡을 보내면 서먹한 이 관계를 다시 회복시킬 수 있다는 걸. 하지만 왜 그래야하지? 그것도 왜 늘 내가 먼저 해야 하냐구. 솔직한 내 마음을 보여줬을 때 돌아오는 상처, 더 이상 아파하고 싶지 않아.' 하며 먼저 손 내밀 수 있는 용기를 차츰 외면하며 살아온 거죠.
<잊었던 용기>는 나에게도 있었던 좋은 점들을 다시 기억나게 해줬어요.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가끔은 그 끈을 확 놓아버리고 싶은 때가 종종 있는데요. '비록 지금은 이모양이지만, 지난 날의 나는 용감하게도(?) 참 솔직했고 먼저 다가설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라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갔던 지난 날들,
잊은 척 외면해왔던 내 안에 숨은 보석 "용기"를 꺼내봅니다.
마음과 마음은 통하는 거라고 제가 먼저 내민 손, 거짓 없이 열어보인 제 마음을 내친 이들 보다 따뜻하게 받아준 이들이 훨씬 더 많았음을 기억하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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