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을 가장 절망케 하는 건 무엇입니까 - P9
나는 내가 본 것이 별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 P10
사고 첫날, 외국 언론에서 조난자의 수온별 생존시간을 따져보는 사이 한국에서는 사망시 보험금을 계산했다. 사람들은 권력이 생명을 숫자로 다루는 방식에 분개했다. - P10
이름을 들었다. 학생, 실종자, 희생자, 승객이라 불릴 때와 달리, 그들의 가족이 늘 불렀던 방식으로, 본명으로, 별명으로 불리는 걸들었다. 가족들로서는 살면서 만 번도 더 불러본 이름이었을 거다. 그 이름에 담긴 한 사람의 역사가 시간이 그 누구도 요약할 수 없는 개별적인 세계가 팽목항 어둠 속에서 밤마다 쩌렁쩌렁 울렸다. - P11
이 나라 국민들의 ‘안녕‘ 마지노선이 이제는 복지도, 교육도, 의료도 아닌 생존이 돼버린 것처럼, 놔달라 했다. - P11
정부는 계속해서 명령을 내리고 민심을 달래는 ‘입‘이길 자처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들이 간절히 원한 건 권력의 ‘귀‘였다. - P13
우리가 원하는 건 사과라고, 우리 마음을 좀 읽어달라는 것뿐이라며 영정을 안고 울었다. - P13
앞으로 우리는 누군가 타인의 고통을 향해 ‘귀를 열지 않을‘ 때, 그리고 ‘마음을 열지 않을‘ 때 그 상황을 ‘미개‘하다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 P14
어떤 낱말이 가리키는 대상과 그 뜻이 일치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걸, 기의와 기표의 약속이 무참히 깨지는 걸 보았다. - P14
우리는 우리가 본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본 것이 이제 우리의 시각을 대신할 거다. - P15
‘믿으라‘는 말이 ‘믿을 만한 말‘로, ‘옳은 말‘이 ‘맞는 말‘로 바로 설 때까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걸까. - P15
"저를 가장 절망하게 만든 건, 더 노력해야 된다는 말이었어요." - P16
아무리 노력한들 세상에는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고통과 그 고통이 담긴 타인의 몸이 있다는 걸 알았다. - P16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나가는 과정일지 몰랐다. 그렇게 조금씩 ‘바깥의 폭‘을 좁혀가며 ‘밖‘을 ‘옆‘으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 이해가, 경청이, 공감이 아슬아슬한 이 기울기를 풀어야 하는 우리 세대가 할 일이며, 제도를 만들고 뜯어고쳐야하는 이들 역시 감시와 처벌 이전에, 통제와 회피 이전에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인지도 몰랐다. - P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