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역사를 진정으로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모든 역사책이 센강의 낚시꾼에 관한 그날의 사소한 일화를 빼놓지 않고 다루기를 바란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일에 비추어 볼 때, 그 일화는 사실임이 분명할 뿐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될 역사적 진실인 것 같다. 우리는 현재 매일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 P55

이 시대의 대다수는 역사가 아니라 언제나 오직 자신의 삶을 산다. - P56

평범하지 않은 사건들이 사방에서 벌어지더라도 일상생활은 평범하게 계속 이어진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이런 동시성을 나는 한 신문에 실린 항공사진을 보고 명확히 이해했다. 사진에는 살인적인 폭격이 쏟아지는 참호와 옆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가 같이 담겼는데, 농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말을 끌며 밭을 갈고, 콩코르드광장에서 왕이 처형될 때 센강의 낚시꾼들이 했던 것과 똑같이 폭격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 P57

사람들 대부분은 평범하지 않은 모든 사건에 관심을 둘 의향이 매우 강하고, 그것에 몰두하고 참여하려는 의지가 있으며, 심지어 그것을 소망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모두 더 강한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이 자연법칙은 우리의 참여의지와 공감 능력을 현명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제한한다. 강한 흥분이 연속되면 필연적으로 피로가 누적되고, 너무 오래 계속되는 과도한 긴장은 일종의 마비를 일으킨다. 2000년 전에 이미 그리스 극작가들은 이것을 비극의 법칙으로 알고 있었다. 소포클레스와 아이스킬로스는 극의 길이를 두 시간, 길어야 세 시간으로 제한해야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비극이 한없이 길어지면, 그것에 몰두하는 능력이 오히려 감소하기 때문이다. - P59

우리의 심장은 너무 작아서 일정량 이상의 불행을 감당하지 못한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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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자꾸 잊어버린다. 방금 전까지 당신이 어디 있었는지,
무슨 치료를 받았는지, 지금은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 건지 잊는다. - P222

당신은 이미 잊었다. 자신이 얼마나 재치 있는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 나름으로 옷차림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는지 잊었다. 작은 키 때문에 늘 굽이 있는 단화를 신고, 자유스러운 밝은색 옷을 걸치고, 흰색과 노랑색 계열의 스카프를 두르고, 눈꼬리가 살짝 처진 눈엔 언제나 어렴풋한 장난기가 어려 있었던 것을.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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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겨울마다 나는 나무에 물을 주고 이파리를 마대 방수포로 감싸주었다. 어쩐지 그 나무가 죽지 않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일인 것만 같았다. - P68

"아까 강연에서 그 여자가 했던 말이 자꾸 생각나. 그거 있잖아, 우리의 선택과 행동은 그것이 진정한 자아와 맺는 관계를 기준으로 판단된다는 말, 그리고 진정한 자아와 조응하는 행동이 가치 있다고 여겨진다는 말. 하지만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더이상 통제할수 없다면 어떡하지? 자기 몸을 더이상 통제할 수 없다면?" - P88

지금까지 여러 달을 지나는 동안에도 우리는 계속 기다려온 것만 같았다. 이 회색 지대를 부유하면서 어떤 미래가 올지 모르는 채로 모든 결과를 조마조마 걱정하고, 혼자 있는 순간에는 요즘 우리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 어떤 느낌을 견디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몸이 엄청나게 허약하며, 갑작스럽고 불가해한 방식으로 우리를 배반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었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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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평범한 생활?
덴고가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생활‘의 이미지는 깊이와 색채가 빠져버린 유형적인 것밖에 없다. 부부, 그리고 대개는 아이가 둘. 어머니는 앞치마를 걸치고 있다. 김이 나는 냄비, 식탁에서의 대화 덴고의 상상력은 거기에서 단단한 벽에 부딪힌다.
평범한 가족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과연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덴고 자신은 식탁에서 아버지와 대화를 한 기억이 없다. - P348

그의 사고는 모든 출구가 막힌 미로에서 치즈 냄새만 맡는 가엾은 쥐처럼, 똑같은 길을 빙빙 돌고 있을 뿐이었다. - P356

"중요한 것을 손에 넣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돼. 그게 세상의 룰이야." - P362

"물론 논리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인간의 행동에는 결과적으로 나름의 의미가 발생하지." 고마쓰는 말했다. - P366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자고 우시카와는 마음먹었다. 살갗을 좀더 두껍게 하고, 마음의 껍질을 단단하게 만들고, 하루하루를 하나씩 규칙적으로 쌓아나가는 것이다. 나는 단지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유능하고 참을성 있고 무감각한 기계. 한쪽 입으로 새로운 시간을 들이쉬고, 그것을 헌 시간으로 바꾸어 다른 한쪽 입으로 토해낸다. 존재하는 것, 그 자체가 이 기계의 존재 이유이다. - P393

어떤 사람이든 사고나 행동에는 반드시 패턴이 있고, 그런 패턴이 있으면 거기에 약점이 생기지. - P409

패턴이 없으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어. 음악에서의 테마 같은 거야. 하지만 그건 동시에 인간의 사고나 행동에 틀을 만들고 자유를 제약해. 우선순위를 바꾸고, 어떤 경우에는 논리성을 왜곡하지. - P409

가장 중요한 일은 퍼센티지로 결정되는게 아니니까. - P411

주의 깊게, 참을성 있게, 게으름 피우지 않고 세상을 바라본다. 좁게 구획된 세계의 한 획을. 그 미끄럼틀 위의 한 점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람은 뭔가를 놓치는 법이다. 오직 한 쌍의 눈밖에 갖고 있지 않으니까. - P419

"바늘로 찌르면 붉은 피가 나는 곳이 현실세계예요." 덴고는 대답했다. - P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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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것들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는 몰라도 나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구분하는 시각을 잃어버렸으며 살인과 죽음 같은 문제라면 그저 다 슬플 뿐이다. 정당화가 되느냐 아니냐를 따질 일이 아니다. 두 인간과 그들 각각의 가족에게 일어난 아주 슬픈 사건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것 말고는 그다지 할 얘기가 없다. - P14

나는 항상 책과 와인 한 잔, 때로는 칵테일 한 잔을 들고 그 방에 앉아 있는 시간을 즐겼다. 그것이 요즈음 내 인생의 단순한 즐거움이었다. - P20

이곳이 내 집이고, 나는 그 안에서 안전하며, 복도 저편에서는 내 아이들이 각자의 침대에서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 P21

예전에 지녔던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혹은 버려두고 떠나왔다는 느낌이 늘 있었다. - P21

과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는, 그 다른 삶이 살짝 윙크를 보내는 때가있었다. - P24

그때의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어? 그 모든 게 변한다는 것을, 그런 우리가 영원할 순 없다는 것을, 첫 아이가 태어나면 담배가 영원히 사라지고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 와인과 심야의 여유도 사라진다는 것을. 이제 우리가 함께하는 인생은 더욱 풍부해지고, 사랑과 선의는 두 배가 되고, 집안에는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웃음과 더 많은 재미가 있겠지만 결국 우리는 줄어들겠지. - P26

가끔은 뭔가 놓치고 있다거나 뒤처지고 있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보통 그런 느낌은 곧 사라졌다. - P52

나는 서른한 살이었고 내 일을 좋아했다. 내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마야와 함께 있는 한 그저 그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에, 다른 사람의 예술에 소소한 방식으로 기여하고 있다고 느꼈다. 나도 자신이 가는 길의 일부라고, 마야는 언젠가 내게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 말을 믿었다. - P53

그 순간 내가 어떤 감정이었는지 지금 설명하기는 어렵다. 혼란스러운, 슬픈, 불확실한. - P56

나는 잔을 내려놓고 마야를 바라보았다. 벌써 마야가 떠나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빛이 어딘가 달랐다. 아마도 그때가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서 그런 감정을 느낀 - 이미 가버린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낀 - 내 인생의 유일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 P58

이런 점진적인 멀어짐은 그해 여름 내내 일어나고 있었지만 나는 그 순간이 되어서야 그것을 물리적으로 감지했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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