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는 좋은 삶을, 내 유년기보다 훨씬 수월한 삶을 살아왔다.
부족한 것이 없었다. 자기를 사랑하는 두 부모가 있었다. 친구도 많았다. 너른 뒷마당도 있고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교육도 받았다. 그런데도 아이에겐 어쩐지 슬픔이, 불행이 불만족이 있었다. 그건 어디에서 온 걸까? - P154

어쩌면 이언은 이런 불행을 내게만 내보였는지도 모른다. 내 잘못이라고, 나 때문에 자기가 이렇다고 알려주기 위해. 아니면 그보다 훨씬 단순한 문제였을 수도 있다. 그저 자기가 뽑은 패에, 자신에게 주어진 아버지에게 실망한 건지도. 아이가 가장 원한 건 그저 다른 삶이었는지도. - P154

"부모라고 언제나 완벽하진 않아." 나는 말했다. "우리도 자주 일을 망쳐. 결함이 많은 사람들이지. 적어도 부모들 대부분은." 내가 하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도 계속 이어갔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아빠는 다른 부모들 대다수보다 더 결함이 많은지도 몰라. 하지만 네 말이 맞아. 아빠가 거기 있었어야 해. 네 말이 전적으로 맞아."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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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후로 나는 인간의 모든 일이 어떻게 수행되어야 선하고 유효할 수 있는지 알았다. 자기 자신과 모든 목표 및 목적을 완전히 잊고, 오직 도달할 수 없는 궁극적 목표인 완벽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 P83

"신중해지자. 이것은 독일인만의 내부 문제다. 독일인들이 자기네 나라에서 뭘 하든, 하고 싶은 대로 하게 그냥 두자. 독일인들이 서로 잘 알아서 할 것이다. 국경을 넘지 않는 한,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심각한 착오다! 어떤 판단을 내릴 때, 내 나라냐 남의 나라냐를 기준으로 삼는 경우 어쩔 수 없이 늘 같은 형태로 발생하는 착오다. 모든 인간은 권리와 신성한 의무를 지닌 불가분의 통일체고 어떤 깃발과 이름과 이념으로 저질러지든 범죄는 범죄라는 사실을 망각할 때 발생하는 착오다. - P103

침묵, 뚫을 수 없는 침묵, 끝없는 침묵, 끔찍한 침묵. 나는 그 침묵을 밤에도 낮에도 듣는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로 내 귀와 영혼을 가득 채운다. 그것은 어떤 소음보다 견디기 힘들고, 천둥보다, 사이렌의 울부짖음보다, 폭발음보다 더 끔찍하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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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을 잃고 깊은 혼수에 빠진 것과 생명을 잃어버린 것 사이에, 현재로서는 그다지 차이가 없다. 영양보급과 배설 처리가 필요 없어진 것뿐이다. 다만 이대로 두면 며칠 내에 부패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큰 차이가 된다. - P526

인간은 죽은 이에게 자연스러운 경의를 표한다. 상대는 방금 전에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 P529

사실이 명확해질수록 진실은 점점 더 멀어져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 P540

아버지는 덴고의 정신에 무겁고 농밀한 그림자를 남기고 갔다. 우체국 예금통장 하나와 함께. - P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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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엇이 되고 어떻게 변하든 항상 그리고 누구에게나 시작점, 첫 번째 방향을 제시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적어도 스스로 지난 세월의 잔해 속에서 이 첫 번째 순간을 찾아내, 무엇이 우리의 특별한 삶의 방식을 탄생시켰는지 자신에게 또는 자식이나 친구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 P70

위대한 사람들은 거의 항상 매우 친절하다. 그리고 과하게 나서지 않는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관대하다. 이것이 첫번째 교훈이었다. - P74

자기 일에 전념하는 사람은 언제나 큰 욕심 없이 소박하게 산다. - P75

그의 끊임없는 탐구와 노력의 전 생애가 마치 박물관처럼 이곳에 모여 있었고, 방금 시작된 것과 완성된 것, 토르소와 깨진 잔해가 하나의 세계를 이루었다. - P76

그는 내가 거기 있다는 사실조차 완전히 잊었고, 나는 그런 모습에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받았다. 그는 자기가 초대한 손님이 뒤에서 보고 있다는 것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고, 낮인지 밤인지조차 몰랐으며, 시간도 장소도 잊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작품과 그 너머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그가 성취하고자 했던 더 높고 더 진실한 형태만 응시했다. - P79

시간과 공간과 세상을 그토록 완벽하게 잊을 수 있다니, 젊은 나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큰 충격이었다. 그 한 시간에 나는 세상의 모든 예술과 성과의 궁극적 비밀을 확실히 이해했다. 그것은 바로 집중이었다. 크든 작든 어떤 작업이든, 수행하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너무 자주 수백 가지 사소한 일에 분산되고 쪼개지는 의지를 진정으로 원하는 한 가지에 집중하는 영혼의 결단이 있어야만, 오직 그런 결단력으로만 진정으로 일할 수 있다. - P80

그 한 시간에, 나는 지금까지 내게 없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완벽을 향한 의지로 모든 것을 잊는 열정! 크든 작든 자기 일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그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 다른 마법은 없다. 나는 그 한 시간에 이것을 깨달았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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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진지해." 나는 말했다. "그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느낄 뿐이야." - P99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진척되는 듯했고, 아마 그래서 내가 물러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모르겠다. 얼마 뒤에는 이 관계 역시 근래에 맺은 다른 모든 관계와 비슷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거기엔 바로 그 친밀함이, 그 신뢰가 없었다. - P107

세월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친밀함의 문제야, - P107

여러 해가 흐른 뒤에도 가끔 그녀의 눈 속에 얼핏 스치는 그 시절의 다른 자아는 라인벡으로 가는 기차에 오르는 순간 희미해지기 시작해 소도시를 하나씩 지날 때마다 점점 더 흐릿하게 멀어지곤 했다. - P111

예전에는 그런 감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만 그랬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예전에는 우리가 젊음의 어떤 절정에 도달했다는 감각, 우리가 여전히 젊다는 게 아니라 아직은 그런 척할 수 있다는, 더 젊은 자아로 슬쩍 되돌아가 다시 대학 시절의 그 사람들이 될 수 있다는 감각이 있었다. 그건 속임수이자 가장 놀이였고, 우리는 그 놀이를 자주는 아니어도 그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되새길 수 있을 만큼은 이어갔다. - P112

"그런데 가장 무서운 건 뭔지 아니? 이젠 문제가 뭔지도 모르겠다는 거야. 내 말은, 데이비드가 날 배신했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잖아. 그런 거라면 쉽겠지. 어쨌든 문제가 이거라고 짚을 수라도 있을 테니까." - P119

솔직히 말하면 그 순간 내 감정이 어떤 것인지도 확실히 알지 못했다. 화가 난 건 기만당해서였고, 짜증이 난 건 그들이 이 소식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으며, 슬픈 건 그런 일이, 어쩐지 없을 거라고 애써 믿었던 그 일이 이제 정말로 일어날 것 같아서였다. 모든 것이 받아들이기에 너무 벅찼다. - P123

참 이상한 일이다. 마흔세 살이 되었는데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다니, 삶의 어느 시점에 잘못된 기차에 올라타 정신을 차려보니 젊을 때는 예상하지도 원하지도 심지어 알지도 못했던 곳에 와버렸다는 걸 깨닫다니. 꿈에서 깨어났는데 그 꿈을 꾼 사람이 자신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것과 비슷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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