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이 내 안의 뭔가를 달래준다는 걸 알았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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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살갗을 바꾸는 일이다." - P7

나는 아이에게 우리 인간들은 때때로 이렇게 거대한 규모로 서로를 해하는 짓을 한다고 설명해준다. - P14

아이는 호주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볼 순 없지만, 어떤 나무들은 처음 살던 나라에서 다른 장소로 실려 와서도 행복하게 자랄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 P25

물론 그 누구의 인생도 이렇게 기억의 구슬들을 꿰어놓은 것처럼 깔끔하고 명료하게,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개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긴 인생이란 불완전하게 기억된 결심들이 연거푸 쏟아져 내리는 일종의 폭포로 이해할 수도 있다. 초기에 품었던 결심 중 어떤 것들은 희미하게 지워진다. 잃어버린 기억과 배신, 믿음의 상실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우회로를 거치고도 이어지는 결심들도 있다. 또 어떤 결심들은 세월이 흘러도 약간만 변형된 채 계속 유지된다. 예상치 못한 트라우마와 상처를 만나면 차는 언제든 도로 밖으로 탈선할 수 있고, 그러면 그 사람은 영원히 목적지를 상실할 수도 있다. - P34

하지만 이를테면 불타오르듯 뜨거운 얼굴에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이 닿는 것과 같은 의도치 않은 순간에 솟아나는 가늠할 수 없는 숭고함이 계속하겠다는 결심을 되살릴 수도 있으며, 최소한 일시적으로라도 자기 회의와 후회가 주는 삶의 무게를 줄여줄 수도 있다. 혹은 휘청거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아름다움 앞에 선 한순간이 한때 그 사람이 품었던 큰 의미를 지닌 삶을 살겠다던, 자신의 기대에 부합하는 삶을 살겠다던 결심에 다시금 불을 당길 수도 있다. - P34

세찬 바람에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더블클러치로 변속하는 그의 민첩한 발동작을 바라보던 나는, 그가 자기 세상의 본능적 경험 속으로 나를 초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P38

내가 탐닉했던 비행의 아름다움은 대학교 1학년 때 알루미늄의 인장력에 대한 수업과 풍동 시험을 분석하는 수학, 항공공학의 경험주의와 충돌했다. 열대의 푸른 캘리포니아 하늘과 겹겹의 구름을 향해 텀블러비둘기들을 날려보낼 때마다, 혹은 유칼립투스에 앉아 있던 그 새들 사오십 마리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어떤 신호에 촉발되어 별안간 박차고 날아오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안에서 부풀어 오르던 심장의 빠른 박동은 화학에서도 물리학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별들이 보석처럼 박힌 밤하늘 아래 사하라 서부의 모래언덕들 위를 스치듯 날아가던 생텍쥐페리의 저돌적인 정신은 미적분학 강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어느 물리학 세미나에서도 이카로스의 도전적이고 무모한 허세에 담긴 의미는 다루지 않았다. - P43

열일곱 살의 나는 세상과 직접 맞닿는 경험을 갈망했다. 하지만 내 충동 대부분은 형태도 목표도 없는 순전히 은유적인 충동이었다. 나는 미성숙한 수많은 남자아이가 그렇듯 모종의 지위를 성취하려는 필사적인 마음에 허둥대기만 할 뿐, 그 갈망을 명확히 구현하지는 못했고 자의식만 가득했으며 방어적이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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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는 ‘재일코리안‘, ‘오키나와인‘, ‘장애인‘, ‘게이‘라는 식으로 언제나 손가락질당하고, 딱지가 붙여지고, 지목 당한다. 그러나 다수자(majority)는 ‘일본인‘, ‘내지인‘, ‘건강한 사람‘, ‘이성애자‘라고 손가락질당하고, 딱지가 붙여지고, 지목 당하는 일이 없다. 따라서 ‘재일코리안‘의 상대어라고 하면 편의적으로 ‘일본인‘이라는 말이 끌려 나오지만, 애초부터 이 두 단어는 같은 평면 위에 나란히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한쪽은 색깔에 물들어 있다. 이에 반해 다른 쪽은 다른 색깔에 물들어 있지 않다. 이쪽에는 애당초 ‘색깔이란 것이 없는‘ 것이다. - P166

한쪽에 ‘재일 코리안이라는 경험‘이 있고, 다른 한쪽에 ‘일본인이라는 경험‘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한쪽에는 ‘재일 코리안이라는 경험‘이 있고,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애초에 민족이라는것에 대해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일도 없는‘ 사람들이 있을 따름이다. - P166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평범함‘이다.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바로 평범한 보통 사람이다. - P166

난 이것이야말로 평범함이라는 것이로구나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수수하게 티셔츠만 걸쳐도 여자로 있을 수 있다는 것. 물론 우리 남자는 더 나아가 ‘어느 쪽에 속하는 성(性)인가?‘를 생각하는 과제조차 면제받고 있다. 남자는 마음껏 ‘개인‘으로서 행동하고 있지만, 우리 곁에서 여성들은 ‘여자로 있다‘ - P167

누구도, 누구에게도 손가락질을 받지 않는, 평온하고 평화로운 세계, 자기가 누구인가를 완전히 망각한 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세계, 그것은 우리 사회가 꾸는 꿈이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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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말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그다지 재미있지 않은 이야기를 해보고 나서야 비로소 무엇이 가장 재미있는가를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말하는 사람이 흥미를 갖고 있는 데다 흥분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면,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누군가 무엇에 흥분해서 이야기는 것이 좋습니다. - P273

대부분의 경우 이쪽에서 별로 내키지 않을 때 상대편은 더욱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 P276

"지금 네가 뛰어들고 있는 타락은 일종의 특수한 타락인데, 그건 무서운 거다. 타락해가는 인간에게는 감촉할 수 있다든가 부딪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런 바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장본인은 자꾸 타락해가기만 할 뿐이야. 이 세상에는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자신의 환경이 도저히 제공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데, 네가 바로 그런 사람이야. 그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환경이 자기가 바라는 걸 도저히 제공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276그래서 단념해버리는 거야. 실제로는 찾으려는 시도도 해보지 않고 단념해버리는 거야. 내 말 알겠니?"

"너는 아무 가치도 없는 일로 고귀한 죽음을 감수하려는 것이 분명하거든." - P277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고귀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비겁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 P277

"내가 말하려는 것은 교육을 받고 학식이 있는 사람이 밑바탕에 발랄한 재능과 창조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경우는 불행히도 드문데- 단지 발랄한 재능과 창조력만 가진 사람보다 훨씬 가치 있는 기록을 남기기가 쉽다는 거야. 그런 사람은 더 명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추구하는 경향이 있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사람들의 십중팔구는 학식이없는 사상가들보다 겸손하다는 점이야. 알겠니, 내 말을?" - P280

여러분은 이런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다.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사람을 보면서 그 사람이 무언가 말해주기를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것은 꽤 힘겨운 일이다. 이건 정말이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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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은 다른 사람의 말은 절대로 전해주지 않는다니까. - P224

그놈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저 "그래요?"
하고 말할 뿐 그냥 위로 올라갔다. 나쁘진 않았다. 정말 우습기도했다. 그러니까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하기만 하면 상대편은 이쪽에서 원하는 대로 해주게 마련이다. - P235

그애는 얼굴을 베개에 약간 파묻은 채 자고 있었다. 우습게도 입을 벌리고 자고 있었다. 어른이 입을 딱 벌리고 자면 꼴불견이지만 어린애는 그렇지 않다. 어린애는 베개에 침을 마구 흘리고 자도 우습게 느껴지지 않는 법이다. - P237

"앨리가 죽은 건 나도 알아. 내가 그것도 모르는 것 같니? 그래도 좋아할 순 있잖아? 누가 죽었다고 해서 좋아하던 것까지 그만둘 순 없지 않니? 특히 우리가 알고 있는, 살아 있는 사람보다 천 배나 좋은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지." - P254

"변호사라면 괜찮지만...... 내겐 역시 매력이 없어. 내 말은 항상 죄 없는 사람의 생명을 구해준다든가 한다면야 변호사도 좋아.
하지만 막상 변호사가 되면 그런 일은 하지 않거든. 그들이 하는 일이란 돈을 모으든지 골프를 치든지 브리지를 하든지 차를 사든지 마티니를 마시든지 명사인 체하든지, 뭐 그런 짓이나 하게 된다 이 말이야. 가령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을 실제로 한다 해도 그것이 정말 사람의 생명을 살려주고 싶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굉장한 변호사가 되겠다는 소망에서 그랬는지 모른단 말야. 다시 말해서 재판이 끝나면 법정에서 신문 기자나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서 치사한 영화 장면처럼 칭찬을 받고 사람들이 등을 어루만져주고 하는 그런 으리으리한 변호사가 되겠다는 야망에서 한 것인지 모른다 이 말이야. 자기가 엉터리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겠니? 그게 문제야." - P255

"‘만나면‘을 ‘붙잡는다면‘으로 잘못 알고 있었어." 하고 말했다. "어쨌거나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조그만 어린애들이 어떤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항상 눈앞에 그려본단 말야. 몇천 명의 아이들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곤 나밖엔 아무도 없어. 나는 아득한 낭떠러지 옆에 서 있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주는 거지. 애들이란 달릴 때는 저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런 때 내가 어딘가에서 나타나 그애를 붙잡아야 하는 거야.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면 돼.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야.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은 그것밖에 없어.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지만 말야."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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