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강해진다는 것은 딸을 품에 안고 혼자 선다는 의미였다. 옳은 것 같긴 했지만 외로운 자리였다. 줄리아는 어른이고 엄마였다. - P209

가톨릭교회는 신자들에게 계속 죄책감을 심어줌으로써 성공했고, 따라서 일요일마다 신자석이 가득찼다. 하지만 어머니가 이사간 후 파다바노 자매 중 누구도 성당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어렸을 때 자매들이 정말로 믿은 것은 소설 속 인물들과 자기들만의 놀이와 서로뿐이었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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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스승은 죽었고, 그 죽음은 해변에 부딪히는 파도처럼 어떻게든 살아보려던 윌리엄의 시시한 노력을 전부 쓸어가버렸다. - P195

그는 아이들이 빈 종이에서 형체를 오려내듯이 자기 삶에서 자신을 오려낸 느낌이었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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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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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간을 향해 저지른 폭력의 무시무시함에 전율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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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추측할 수 있어, 그 사람이 외삼촌이었다면 어떻게든 이후에 섬으로 돌아왔을 거라고...... 하지만 확신할 수 있을까? 그런 지옥에서 살아난 뒤에도 우리가 상상하는 선택을 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 - P291

기억나는 건, 그렇게 물을 때면 엄마가 내 손을 놓았던 거야. 너무 세게 잡아 아플 정도였던 악력이 거품처럼 꺼졌어. 누군가가 퓨즈를 끊은 것같이 듣고 있는 내가 누군지 잊은 것처럼. 찰나라도 사람의 몸이 닿길 원치 않는 듯이. - P298

・・・・・・ 다음이 없을 수도 있잖아. - P307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보고는 가만히 웃으며 내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어. 뒷머리도,어깨, 등도 이어서 쓰다듬었어.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 P311

하지만 곧 둘만 있는 시간이 오고, 실랑이 끝에 기저귀를 갈고, 가벼운 편이라 해도 손목을 시큰거리게 하는 엄마 무릎을 들어올려 파우더를 두드리고, 내 손을 움켜잡고 잠든 엄마의 베개 옆에 머리를 묻으며 생각했어. 영원히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는다. - P313

점점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가끔 말한다 해도 단어들이 섬처럼 흩어졌어. 응, 아니, 라는 대답까지 하지 않게 되었을 때부터는 원하고 청하는 것도 없어졌어. 하지만 내가 까서 준 귤을 받아들면, 평생 새겨진 습관대로 반으로 갈라 큰 쪽을 나에게 건네며 가만히 웃었어. 그럴 때면 심장이 벌어지는 것 같았던 기억이 나. 아이를 낳아 기르면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걸까 생각했던 것도. - P314

이상하지. 엄마가 사라지면 마침내 내 삶으로 돌아오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돌아갈 다리가 끊어지고 없었어. 더이상 내 방으로 기어오는 엄마가 없는데 잠을 잘 수 없었어. 더이상 죽어서 벗어날 필요가 없는데 계속해서 죽고 싶었어. - P314

자료가 쌓여가며 윤곽이 선명해지던 어느 시점부터 스스로가 변형되는걸 느꼈어.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더이상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상태………… 심장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이미 떨어져나갔으며, 움푹 파인 그 자리를 적시고 나온 피는 더이상 붉지도, 힘차게 뿜어지지도 않으며, 너덜너덜한 절단면에서는 오직 단념만이 멈춰줄 통증이 깜박이는…………… - P316

숨을 들이마시고 나는 성냥을 그었다. 불붙지 않았다. 한번 더 내리치자 성냥개비가 꺾였다. 부러진 데를 더듬어 쥐고 다시 긋자 불꽃이 솟았다.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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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만 하지 않는 거야, 정말 작별하지 않는 거야? - P192

다른 유골들은 대개 두개골이 아래를 향하고 다리뼈들이 펼쳐진 채 엎드려 있었는데, 그 유골만은 구덩이 벽을 향해 모로 누워서 깊게 무릎을 구부리고 있었어. 잠들기 어려울 때,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쓰일 때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처럼. - P211

구덩이들을 향해 열 명씩 세워졌을 거라는 추정 기사가 사진 아래 실려 있었어. 뒤에서 총을 쏘아 구덩이로 떨어지게 하고, 다음 차례의 사람들을 다시 줄세워 쏘기를 반복했을 거라고. 그 유골만 다른 자세를 하고 있는 이유가, 흙에 덮이는 순간 숨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그때 들었어. 그 유골의 발뼈에만 고무신이 제대로 신겨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을 거라고. 고무신도, 전체 골격도 크지 않은 걸 보면 여자거나 십대 중반의 남자인 것 같았어. - P212

이상한 일입니다. 내가 그 말 못할 고문 당한 것보다.... 억울한 징역 산 것보다 그 여자 목소리가 가끔 생각납니다. 그때 줄 맞춰 걷던 천 명 넘는 사람들이 모두 그 강보를 돌아보던 것도.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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