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열세 살 때였던가. 아빠와 짜장면을 먹다 말고 왜 봄만 되면 그렇게 머리를 빡빡 미는지 물은 적이 있었다. "음, 그건... 공장 사람들하고 아빠 마음이 같다는 것을 사장한테 보여주려고 그래." 아빠는 잠깐 고민하더니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래야 다 비슷해 보이거든. 그러면 파업 끝나고 나서도 함부로 못해." - P42
나는 엄마가 티내지않고 따로 달걀을 삶아 으깨서 이시봉의 사료에 섞어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시봉은 때때로 무언가를 잘못 먹고 토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엄마가 이시봉을 안고 욕실로 들어가 입 주위를 닦아주고 배를 문질러주었다. 나에겐 그런 엄마의 존재가 은근한 자부심이었다. 이시봉도, 나도 안전하다는 느낌. 우리가 나중에 어떤 존재가 된다 해도 버려지거나 외면당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 P50
이시봉을 원망한다는 것은 자연을 원망하는 것. 나는 엄마가 곧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길 바랐다. 또 곧 그렇게 되리라고 믿었다. 엄마는 지금 이시봉이 아닌 세상을 원망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그 화풀이를 이시봉에게 해선 안 되는 것이라고…………… 이해와 원망은 엄연히 다른 거니까. - P52
초등학교 선생될 인간들을 다 점수로만 뽑으니까 모범생들만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고, 그 모범생들이 모범생 아닌 아이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이었다. - P58
"자기가 어떤 상태인지 자기 자신은 잘 모를 때가 있거든." - P64
때때로 인간의 역사와 동물 혈통의 역사는 이런 식으로 다르게 기술된다. 인간의 역사는 사건을 중심에 둔 채 쓰이지만, 동물 혈통의 역사는 필연적으로 생존과 번식에 방점이 찍힌 채 기록되기 때문이다. 누가 태어나고, 누가 인간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았는가? 누가 돌봐주었고, 누구와 짝짓기를 했는가? 죽는 순간, 바로 옆에 누가 있었는가? 그 사실이 핵심을 이룬다. 그래서 이 역사는 사적이고 생략이 많으며 편협할 수밖에 없다. 생존을, 번식을, 모든 가치의 중심에 두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밝은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인간의 역사 또한 한 꺼풀 벗겨보면 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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